공정과 상식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고 하지만 요즘 우리나라 정치만큼 혼란스럽고 바쁘게 돌아가는 시계는 없을 듯합니다. 자유와 평등을 지지하며 민주주의를 옹호한다고 똑같이 주장하는 정치인들인데, 왜 허구한 날 서로 대립하고 싸우는 일은 줄어들지 않는 걸까요? 진실과 사실과 가짜가 뒤섞여 돌아가다 보니 구분도 하기도전에 묻히고 사라집니다. 여.야 모두 사활을 건 선거를 치러야 하니 그럴 법도 합니다. 그렇다고 국민이 정치뉴스에 휩쓸려 진위를 모르고 지나갈 것이라고 착각한다면 그건 큰 오산입니다. 말하지 않는 국민 다수와 유권자들이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됩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고학력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사안에 따라 감성적으로 판단할 것인지, 이성적으로 판단할 것인지를 대다수의 국민은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흙수저니 금수저니 하는 기준은 경제적, 사회적 요소를 기반으로 한 불평등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10명 중 1명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불평등이 큰 문제라고 우려를 표하고 분노하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벌어진 공정성 시비의 절대다수는 결과가 불평등해서가 아니라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것입니다. 보상에 접근할 기회가 공평했는지, 그 보상이 능력에 따라 제대로 분배 됐는지를 문제 삼는 것이지요. 거꾸로 말하면 과정이 '공정' 했다고 간주되면 결과의 불평등은 수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 간 능력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그 결과로 나타나는 불평등은 정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애초부터 기회가 박탈되는 차별은 공정의 부정입니다. 출발 조건이 다르고 진행되는 과정이 다르기 때문에 기회의 평등이 반드시 결과의 평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결과의 평등을 완전히 포기할 수도 없고 이를 위해서는 과정에서의 특별한 고려와 결과에서의 일정한 조정이 필요합니다.
공정과 상식이란 말에는 누구에게나 똑 같은 기준의 잣대로 판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자본주의로 치달으면서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의 불공점한 구조가 한계점에 도달하면서 공정에 대한 요구는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와 부자가 다르고, 권력자와 권력이 없는 자에 대한 기준이 달랐던 우리 사회구조에 대해 국민이 변화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법을 부정하고 공정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로 변한지는 오래입니다. 아니, 으레 그러려니 하고 체념해 버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법은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법은 복잡한 사회를 안정시키고, 평화와 질서를 유지 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와의 약속입니다. 공정과 상식은 우리 사회를 건전하고 안정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공정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는 구성원들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공동선을 실현 하기 어렵습니다. 공정과 상식이 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법률의 원칙이 잘 지켜지고 다스리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공정에 이렇게 관심이 많은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공정 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공정은 공동체의 대다수 구성원이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상식과 부합됩니다. 사람들은 상식에 어긋나지 않아야 공정하다고 생각합니다. 공정과 상식이 일상화되고 그것이 국가적 기준으로 확보되고 잘 지켜지는 것이 법치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최대 다수의 국민들이 행복해지는 지름길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이제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이며, 국민소득도 높은. 자타가 인정하는 선진국입니다. 그러나 행복지수는 OECD에서 최하위권입니다. 이런 현상은 문화와 생각의 차이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공정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 형제들이 싸울 때, 부모가 중재를 하거나 야단을 치는 것을 상정해 보면, 두 아이 모두 부모가 공정하다고 수긍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결과적으로 공정하다거나 공정 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즉, 생각하는 사람의 태도와 가치관에 따라 다릅니다. 따라서 시대와 나라에 따라서도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이제 국가는 공정한 경쟁의 심판자 역할이 아니라. 평등한 사회,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게 공정 논쟁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대한민국에서 공정보다 평등과 정의가 더 우선적이어야 하고 국가의 정책적, 제도적인 노력과 함께 우리 교육이 집중해야 할 방향이고 풀어 가야 할 숙제라 하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상식(常識)이란 말은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식이 풍부하다'고 했을 때와 '상식이 통한다!고 했을 때의 상식은 의미가 다릅니다. 전자가 이것저것 많이 아는 지식을 뜻한다면, 후자는 인간이 지녀야할 건전한 판단력을 말합니다. 그게 그거 같지만 엄연히 차이가 납니다. 만물박사처럼 아는 것은 많지만 건전한 판단력 대신 편견과 독선이 가득 찬 사람이 있습니다. 거꾸로. 배운 것은 별로 없지만 삶에서 터득한 지혜가 풍부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처럼 상식은 교육의 정도와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인간은 전자의 상식을 통해 후자의 상식을 기르기 위해 열심히 노력 합니다. 그게 바로 교육의 이념이기도 합니다.
세상만사 모든 상식적인 것 가운데 그래도 인간이 지쳐야 할 불문율 그것이 도덕입니다. 한마디로 물 흐르듯 순리에 따르는 모든 것이 상식입니다. 그러나 요즘 우리 사회에선 상식이 푸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아니 푸대접을 넘어 아예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입니다. 상식과 거리가 먼 일들이 너무도 자주, 그리고 태연스럽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도자는 사회에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몰상식이 가장 횡행하는 곳은 아무래도 정치판입니다. 몰상식이 판치는 세상에서 국민은 희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란 법과 원칙이 지켜지고, 미래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며, 제 본분을 지켜 열심히 일하면 누구나 잘 살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사회입니다. 상식이 강물처럼 흐르는 그런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