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카라 여행10 - 앙카라의 한국전쟁 기념관을 나와 오페라 극장을 거쳐 밤에 맥주를 들다!
5월 14일 앙카라 의 아타튀르크 추도원 을 보고 아나톨리아 박물관 을 거쳐 앙카라성 에
오른후 울루스 광장 을 지나 터키 독립전쟁 기념관 을 보고는 겐츨릭 공원 을 구경합니다.
그러고는 무슨 전쟁 기념관 을 지나 "한국 공원" Kore Parkı 을 찾아 6.25
전쟁에 참전한 터키군 노병 인 할아버지 를 만나.... 서로 정을 나눕니다.
6.25 에 참전한 터키군은 만오천명 으로 미국과 영연방에 이어 세번째로 많은 규모 인데
721명이 전사하고 175명이 행방불명 되었으며 234명 포로에 2,490명 명이 부상당했습니다!
터키군 15,000명 중에 모두 3,600여명 의 인명 손실을 입은지라... 터키 에서는
코레아 와는 "칸카르데쉬", 즉 "피로 맺어진 형제" 라고 부른답니다.
그런데 한가지 아쉬운건 역지사지 (易地思之) 라..... 김일성은 6.25 남침 하면서
석달 안에 전쟁을 끝내면 미군의 개입 은 없을거라고 스탈린에게 장담 합니다.
미국은 주한 미군을 철수 했고 애치슨 라인 을 발표해 한국과 대만을 미국의 방어선에서
제외 했으며 6월 24일 토요일 부터 전방의 비상 경계사태를 해제 하고
군인의 3분지 1 을 휴가내지 외박 을 보냈으며.... 트럭 은 수선하러 후방으로 뺐습니다.
미 고문단 은 비상경계사태 해제 와 서울 장교구락부 낙성식 을 주장해 관철시킨후 도쿄로
휴가 를 가버리고... 전방의 주요 지휘관들은 24일 밤부터 춤추고 술 마신지라 밤 12시
넘어 잠자리에 들었는데, 4시간후인 6월 25일 새벽 4시 에 북한군의 침공이 시작되었지요?
미국으로 이민간 동아일보 모 기자 는 일요일인 6.25 당일 서울에서 야구경기 를 보다가
시합이 중단되자 불평 하면서 친구들과 술마시러 갔으니 평소 개성 북쪽 송악산 에서
국군과 북한군 사이에 전투가 자주 있었던지라 이번에도 국지전 으로 오해 했던 것입니다.
김일성 은 미국은 1차와 2차 세계대전에서 유럽 전쟁에 개입하는데 의화가 토론 하느라
1년 이상이나 지나서야 참전 했던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3개월 내에
부산을 함락하게 되면 미군은 개입할 기회를 놓친다고 그리 판단 했던 모양인가 봅니다.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애치슨라인으로 한국을 미국 방위선에서 제외 한다고 발표한게 엊그제
인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일요일인데도 부리나케 움직여 의회 통보조차 없이 사흘만인
6월 28일 전쟁 참전을 결정 하고는 7월 1일 미군은 부산에 상륙했으니 과히 전광석화 네요?
미국은 2차세계대전시 일본 해군에 하와이가 폭격 당하고 미드웨이가 기습 당했으며
캘리포니아에 일본 잠수함 이 나타나는등 불안에 떨었으니 국가안보를 위해
태평양을 내해 로 만들어야 하고... 그럼 일본을 친미국가 동맹국 으로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민족주의 정권이 일으킨 전쟁으로 국민들이 피해와 고통을 받은지라 사회주의
정권 이 들어설수 있는 상황에서 중국대륙을 공산당 이 차지하자 공산주의 팽창 을
한반도 쯤에서 막아야 하는데, 저 어리석은 김일성 이 미국이 쳐놓은 덫에 걸려든 것일까요?
김일성이 미국 참전 안한다 오판했다면 맥아더는 38선을 돌파해 진격해도 중공군의 개입은
없을거라고 확신했으니 유엔군에 영연방국들은 38선 돌파를 반대 하였는데도 맥아더 가
앞장서 진격하자 마침내 중공군 개입으로 참담한 패배를 당해 흥남철수 작전 에 몰리는데
확신이란 무서운게 맥아더는 중공군 포로 를 보고서도 이건 소수의 정찰병 이라고 우깁니다?
임진왜란 때 제 코도 석자인 명나라 가 개입할 여력이 없는데도 7년간 연병력 25만 이 넘는
대군을 보낸건 적국 일본과 국경선을 접하는걸 용인할수 없었기 때문 입니다.
막대한 전비지출로 재정적자가 누적되자 무리한 과세에 시달린 농민이 반란 을 일으킵니다.
명나라는 임진왜란 참전과 농민반란 때문에 여진족들이 흥기하는걸 막지 못했습니다.
여진족들이 후금 을 세우자 이를 진압하느라 군대를 만주로 보내고....
군비 조달을 위해 세금을 폭징 하는지라 농민 반란은 전국에서 대규모 로 일어납니다.
후금군을 막아야 하니 30만 대군을 만리장성 산해관에 배치하니 후방이 허술해졌고 다른 농민 반란군 진압에 병력을 집중했다가 또 다른 반란군인 이자성 농민군이 북경을 함락 하는데
만일 조선에 파병하지 않고 압록강변만 지켰으면 재정적자가 발생해 세금을 폭징하는 일이
없었을테니 농민 반란도 없고 여진족도 흥기하지 못했을테니 명나라가 망하지는 않았겠지요?
358년 세월 이 흘렀지만.... 명나라 때와 마찬가지로 중국은 압록강에서 적대국 이자
세계 최강대국 인 미군과 국경을 접하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은 악몽 이지요?
해서 국군과 유엔군이 대동강을 건너 평양을 공격 하자 중공군은 압록강을 건너 옵니다!
맥아더 나 이승만 이 임진왜란에 관한 역사 를 읽고... 역지사지(易地思之) 하는
마음을 가져 대동강과 원산 선에서 진격을 멈추고는 중공에다가 더 이상
진격하지 않을 것이며 평안도와 함경도에 북한 정권 이 유지되는데 동의
한다고 약속했더라면..... 저는 중공군의 개입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우상화 되기 전 이라... 그러면 김일성은 전쟁 패배의 책임
을 지고 실각 했을 것이며, 이후 남북대결에서 왜소해진 북한은 소련과 동구
공산국 붕괴시에 역시 남한으로 흡수통일 될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단 대한민국이
통일되어도 중국과 소련에 적대하는 일 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확신시켜야 합니다만?
2차 대전후 연합국에 공동 점령된 나라가 셋 있으니 독일과 오스트리아 그리고 한반도
입니다. 오스트리아 는 좌익과 우익이 내란 을 치뤘을 정도로 상호 불신 이
팽배했는데도.... 나라를 위해 원수지간인 좌우익이 서로를 용서하고 손을 잡았습니다.
오스트리아 공산당과 민족주의 정당 은 공동정부를 설립해 좌우익이 동거 ( 김일성과
이승만이 공동정부 를 세움? ) 하며 미국과 소련에 절대로 적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함으로써... 미,소,영,불 네나라 군대를 철수 시키고 영토를 보전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중국땅의 김구 임시정부에서는 좌우익이 동거 했음에도 불구
하고... 김구와 김규식이 평양 을 방문해 김일성과 회담 하는등 이런 노력은
김일성과 이승만 양쪽에서 거부 되고 "분단되어 전쟁" 까지 치루었던 것이네요?
한국공원 을 나와 히타이트인지 앗시리아 시대인지 모를 특이한 조각상 과 예쁜
분수대 를 지나 10분을 걸으니 오른쪽에 멋진 건물이 보이기로 건너가니
오페라 하우스 Opera House 인데.... 벌써 부터 사람들이 몰려드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고는 계속 걸어서 얕으막한 언덕을 넘어가니 공원 인데 조각상 들도
멋이 있고 또 조그만 내가 흐르고 있어 산책하듯 걸을만 합니다.
게속 걸어서 이윽고 지하철 시히예역 Sihhiye 에 도착하는데 원래 계획으로는 조금
더 걸어서 건너편에 있는 쿠르툴루슈 공원 Kurtulus Parkı 을 보는 것이라....
구글맵 지도 에서 보자니 호수 에다가 여러 특이한 조각상 들이 늘어서 있어 볼만한 곳
이건만 하루종일 강행군에 체력이 바닥 이 난지라 더 걸을 힘이 없는게 아쉽네요?
역 광장 에 서있는 수사슴의 기념상 을 바라보면서 고민하다가 포기하고는 시히예역 으로
들어가 지하철 을 타고 한 정거장 크즐라이역 Kizilay 에 내려 지상으로 올라옵니다.
크즐라이 광장 은 5거리 인데... Garanti Bankasi-Kizilay Subesi 대로에서
Selanik Cad 거리 로 접어들어 호텔로 가기 위해 언덕 을 오르는데
이 거리에는 유난히도 레스토랑 이 즐비한데 나무와 꽃 으로 장식된게 볼만합니다.
호텔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 으로 들어가서는 하루종일 엄청 강행군에 목이 타는지라
첫 마디 가 “더유해브 비라 Bira ?”라고 말하니 “욕! Yok”..... 없다네요!
앙카라는 터키 수도이자 현대적인 관광도시 임에도 무슬림들은 술을
마시지 않는지라... 대부분의 레스토랑에서는 술을 팔지 않습니다.
해서 종업원 에게 "어디로 가면 맥주를 마실수 있느냐" 고 간절한
눈빛 으로 묻습니다. “비라 네레데? Bira Nerede? "
그러니까 저 건너편 을 가리키는데 레스토랑을 나와 내려가니 별 장식도 없는 흐름한
집인데, 거기 내어놓은 테이블 에서 금발의 서양인 관광객 들이 맥주 를 마시네요?
그러니까 이스탄불과 안탈리아나 시데 또는 페티예 같은 지중해변의 관광도시 를
제외하고 터키에서 술 은 레스토랑 이 아닌 카페 를 찾아야 하는 것인가 봅니다?
하루종일 뙤약볕에 얼마나 걸었는지.... 터키식 피자인 피데 를 안주로 시켜 게걸신
들린양 500 CC 잔을 연거푸 비우니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 옵니다. 내일은
아슈티역의 시외버스 터미널, 오토가르 Otogar 에서 버스를 타고 샤프란볼루 에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