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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比스님이 읽어주시는 화엄경(2021.1.21.PM7시)
세계성취품(世界成就品)
세계 성취의 10종사
화엄경 한단락 공부하겠다. 역시 지난 시간에 이어서 세계성취품, 세계가 성취되기까지 여러 가지 현상들이 있을 수 있는데 그 중에서 열 가지를 들어서 쭈욱 이야기 하고 있다.
6) 세계 장엄
여섯 번째는 세계의 장엄이라고 하는 내용이다. 이것은 우리 보통 사람들의 삶과도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가. 10종 장엄
이시(爾時)에 보현보살(普賢菩薩)이 부고대중언(復告大衆言)하사대 제불자(諸佛子)야 응지세계해(應知世界海)에 유종종장엄(有種種莊嚴)이니 소위혹이일체장엄구중(所謂或以一切莊嚴具中)에 출상묘운장엄(出上妙雲莊嚴)이며 혹이설일체보살공덕장엄(或以說一切菩薩功德莊嚴)이며 혹이설일체중생업보장엄(或以說一切衆生業報莊嚴)이며
그때에 보현보살이 다시 대중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불자들이여, 응당히 알아라. 세계바다에 가지가지의 장엄이 있으니, 이른바 혹은 일체 장엄거리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구름을 내어 장엄하며, 혹은 일체 보살들의 공덕을 말하여 장엄하며, 혹은 일체 중생들의 업보를 말하여 장엄하며”
제가 불교TV를 보면 스님들하고 대담을 하는데, 대담할 때 뒷배경이 제가 낸 화엄경 강설책 81권을 책장에 꽂아놓고 대담하는 스님이 계신다. 여러 책 중에 그것이 그렇게 돋보였다.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겠고, 그냥 당신이 좋아서 중요한 위치에 책을 꽂아 놓다보니 그렇게 됐을 것이다. 방을 장엄한 것이 얼마나 마음에 들고 좋은지 그 스님을 만나면 내가 삼배를 깍듯이 할 참이다.
TV에 잠깐 비치는데 그 뒷배경이 무엇으로 장엄되어 있느냐, 그것이 그 사람의 삶이고 그 사람의 인격이기도 하다. 형식적으로 책을 잔뜩 꽂아놓는 사람들도 물론 없지 않지만, 형식적으로 남보라고 꽂아놓는다 하더라도 다른 먹을 거리나 찻잔, 차 이런 것을 잔뜩 쌓아 놓은 방보다야 그래도 책이 꽂혀 있는 것이 훨씬 보기가 좋다.
다 자신의 표현이다. 장엄도 되지만 장엄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자기 자신을 표현한 것이다. 여기 제가 이런 말을 써 놓았다.
세계를 장엄하고, 우리들이 살아가는 환경을 장엄하고, 내 집, 내 방을 장엄하는 것은 무엇으로 하는가.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름다운 장엄거리다. 값지고 소중한 물건들과 아름다운 그림이나 조각품을 떠올릴 것이다. 일체 보살들의 공덕을 말하여 장엄한다고 하였다. 또는 혹은 일체 중생들의 업보를 말하여 장엄한다고 하였다. 보살들은 하는 일마다 공덕의 일이다. 무엇보다 보살의 공덕을 설명하는 것은 세상과 환경과 내 집을 장엄하는 가장 뛰어난 장엄거리일 것이다. 심지어 중생들의 업보를 설명하는 것도 큰 교훈이 되는 장엄거리다. 아침 신문에 올라오는 콩나물 장수 할머니의 선행 기사는 그 어떤 값진 물건보다 훌륭한 장엄거리일 것이다.
우리는 자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거실이라든지 방이라든지 집이라든지 이런 것을 치장을 한다고 하는데 치장이 곧 장엄이다. 우리가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떤 방 어떤 거실에 제가 쓴 글씨 통류(通流)라고 하는 글씨가 걸려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도시통류(道是通流)라, 우리 인생의 가장 이상적인 삶이 도(道)라고 한다면 그 도란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뭐냐? 통류다. 어디든지 다 막힘없이 통하고 흘러가는 것이다. 소통이다.
요즘 소통을 중요시 여기는 사회가 되었다. 가족간에 부부간에 형제간에 도반들 사이에 회사에서 정치에서 소통이 안되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장사하는 일도 그렇고 모든 것이 다 그렇다. 통류(通流)라는 말에 맺힌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작은 액자가 그렇게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을 뻥 뚫리게 하는 장엄도 있다.
오늘 우리가 이 시간부터 주변에 나는 어떻게 장엄하고 있는가? 어떤 이들은 저의 책을 잘 정돈해서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서 유튜브로 보내서 ‘이렇게 장엄하고 있노라 ’라는 모습을 보이는 분들도 있었다. 아무튼 고마운 일이다.
여기는 우리들의 삶하고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겠다.
혹이시현일체보살원해장엄(或以示現一切菩薩願海莊嚴)이며 혹이표시일체삼세불영상장엄(或以表示一切三世佛影像莊嚴)이며 혹이일념경(或以一念頃)에 시현무변겁신통경계장엄(示現無邊劫神通境界莊嚴)이며 혹이출현일체불신장엄(或以出現一切佛身莊嚴)이며 혹이출현일체보향운장엄(或以出現一切寶香雲莊嚴)이며 혹이시현일체도량중(或以示現一切道場中) 제진묘물광명조요장엄(諸珍妙物光明照耀莊嚴)이며 혹이시현일체보현행원장엄(或以示現一切普賢行願莊嚴)이라 여시등(如是等)이 유세계해미진수(有世界海微塵數)하니라
“혹은 일체 보살들의 서원바다를 나타내 보여서 장엄하며, 혹은 일체 삼세 부처님의 영상을 표시하여 장엄하며, 혹은 일념사이에 무변한 겁의 신통경계를 나타내 보여서 장엄하며, 혹은 일체 부처님의 몸을 출현하여 장엄하며, 혹은 일체 보배향기구름을 출현하여 장엄하며, 혹은 일체 도량 가운데 모든 진귀하고 미묘한 물건의 광명이 밝게 비침을 나타내 보여서 장엄하며, 혹은 일체 보현의 행원을 나타내 보여서 장엄하였으니, 이와 같은 것이 세계바다 미진수가 있느니라.”
우리가 떠올리는 장엄하고는 차원이 전혀 다른 것이다. 이런 데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엇으로 나를 장엄하는가’, 외면의 장엄을 주로 이야기 했지만, ‘내면의 장엄은 과연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항상 우리 화엄행자들, 화엄학인들은 이 화엄경으로써 내면에 장착하고 있어야 된다. 화엄경을 딱 준비하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하고 대화를 한다든지 상거래를 한다든지 뭘 한다 하더라도 화엄경 한마디가 척 나올 수 있도록 장엄하고 장착하고 있어야 할 줄 안다.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 이상하게 보일지라도 그런 기회를 통해서 화엄경을 소개하고 좋은 말씀을 하나 더 전하는 계기가 된다. 여기 또 내가 중요한 글을 실어서 읽어드리겠다.
보살들은 서원의 삶을 산다. 그 서원이 무엇인가를 낱낱이 열거하여 나타내 보인다면 그것은 대단히 훌륭한 장엄거리가 될 것이다.
서원, 원력, 꿈, 희망 그것을 다 나타내 보이면 근사하다. 물론 마음속에 장착하고 있어야 되고, 마음속에서 꽉 차면 저절로 외면에도 그것이 드러난다.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큰 서원이나, 보현보살의 10대원이나, 아미타불의 48대원이나, 나옹화상 발원문이나, 예불할 때 읽는 이산혜연선사 발원문 등등 얼마나 많은가. 일체 삼세 부처님의 영상인 온갖 불상이나 사진이나 그림 등도 훌륭한 장엄거리다. 그 모든 것 중에서 끝으로 “보현의 행원을 나타내 보여서 장엄한다.”라고 하였다. 실로 세상을 아름답게 장엄하는 진정 값진 장엄거리는 보현행원임을 알 수 있다.
진정 값진 장엄거리는 보현행원임을 알 수 있다. 보현행원을 우리가 딱 마음에 장착하고 그것으로써 내면을 장엄하고 그 내면의 장엄이 차고 넘치다 보면 밖으로 표현이 된다. 송곳을 주머니에 넣어 놓으면 저절로 뾰족한 끝이 주머니 밖으로 뚫고 나온다.
이런 말도 있다. 옛날에 식객을 3천명을 거느린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중국의 맹상군이라 할까 춘신군이라 할까 그런 사람들은 식객을 무려 3천명을 키웠다. 3천명 대단하다. 그게 꼭 3천명은 아니라 하더라도 최소한도 2천명은 되었을 것 아닌가. 모두 각자 나름대로 한칼 한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몇 년이고 그 집에서 공짜 밥을 먹고 있다가, 주인이 무슨 큰일을 도모할 때 이 사람들이 모두 뛰어난 재능을 한 번쯤 발휘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도대체 3년을 살았는데 아무런 재주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 이 주인이 외교를 하러 떠나는데 열 명을 뽑아서 가게 되었다. 아홉 명을 뽑고 한 사람을 못 뽑아서 망설이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떡 나타나더니 “저를 그 대열에 넣어주면 어떻겠습니까?” 이렇게 부탁을 했다. “아 이 사람아 자네는 여기 우리집에 있은 지 3년이 넘었다는데 아무런 장점이 보이지 않는다. 무슨 재주가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지 않느냐? 송곳 끝이 뾰족하면 주머니에 넣기만 하면 그 끝이 주머니 밖으로 뚫고 나오는데 자네는 한 번도 그런 송곳 끝을 보여준 적이 없으니 난감하다.” 그러니까 “주인님, 지금부터 나라는 송곳을 주인님의 주머니에 넣어 보십시오.” 라고 하였다. 말이 근사하다.
“그동안은 뾰족한 끝을 밀어 보일 기회가 없어서 내가 못 밀어 보였지, 제대로 주머니에 송곳을 넣게만 해주면 내가 끝만 내보이는 것이 아니라 송곳 전체가 밖으로 나와서 한 번 큰 일을 치룰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이 사람의 진짜 실력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 한마디 말만 하더라도 상당히 괜찮아서 외교를 하는데 이 사람을 데려갔다.
옛날 춘추전국 시대에 그런 일들이 많았다. 춘추전국시대의 이야기다. 그래서 이 사람을 정말 데려갔지만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결국은 그 사람이 회담을 하는 데, 국가와 국가사이의 아주 큰 거래를 하는데 이 사람이 나서서 다 했다고 하는 역사가 있다.
그런 것들도 내면의 장엄, 아주 멋진 장엄이 되겠다.
나. 게송으로 거듭 펴다
이시(爾時)에 보현보살(普賢菩薩)이 욕중선기의(欲重宣其義)하사 승불위력(承佛威力)하사 관찰시방(觀察十方)하고 이설송언(而說頌言)하사대
그때 보현보살이 그 뜻을 거듭 펴려고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관찰하고 게송으로 설하였습니다.
광대찰해무유변(廣大刹海無有邊)이 개유청정업소성(皆由淸淨業所成)이라
종종장엄종종주(種種莊嚴種種住)하야 일체시방개변만(一切十方皆徧滿)이로다
광대한 세계바다 끝이 없으니
모두가 청정한 업으로 이룬 바더라
갖가지로 장엄하고 갖가지로 머물며
일체 시방에 두루 가득하도다.
광대한 세계바다 끝이 없으니
모두가 청정한 업으로 이룬 바더라
갖가지로 장엄하고 갖가지로 머물며
일체 시방에 두루 가득하도다
이런 게송 참 좋다. 이제 이런 게송이 좋다고 느껴질 때도 됐다. 공부를 많이 했지 않는가? 시간이 또 상당히 흘렀다.
드넓은 우주는 유형 또는 무형으로 광대한 세계바다가 끝없이 가득 차 있다. 그것은 모두가 뛰어난 업력으로 이뤄진 바다. 가지가지로 장엄하여 일체 시방에 두루두루 가득하다. 유형은 유형으로 장엄하고 무형은 무형으로 장엄한 것이다. 산은 산으로 장엄하고 물은 물로 장엄한 것이다. 바람은 바람으로 장엄하고 구름은 구름으로 장엄한 것이다. 장엄 아닌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참 좋은 말이다.
무변색상보염운(無邊色相寶焰雲)이 광대장엄비일종(廣大莊嚴非一種)이라
시방찰해상출현(十方刹海常出現)하야 보연묘음이설법(普演妙音而說法)이로다
끝없는 색상의 보배불꽃구름이
광대하게 장엄하여 한 가지가 아니라
시방 세계바다에서 항상 출현하여
아름다운 음성 널리 내어 법을 설하도다.
끝없는 색상의 보배불꽃구름이
광대하게 장엄하여 한 가지가 아니라
시방 세계바다에서 항상 출현하여
아름다운 음성 널리 내어 법을 설하도다
보살무변공덕해(菩薩無邊功德海)와 종종대원소장엄(種種大願所莊嚴)이여
차토구시출묘음(此土俱時出妙音)하야 보진시방제찰망(普震十方諸刹網)이로다
보살의 끝없는 공덕바다와
가지가지 큰 서원으로 장엄하여
이 국토에서 동시에 묘한 소리를 내어
시방의 모든 세계그물을 널리 진동하네.
보살의 끝없는 공덕바다와
가지가지 큰 서원으로 장엄하여
이 국토에서 동시에 묘한 소리를 내어
시방의 모든 세계그물을 널리 진동하네
중생업해광무량(衆生業海廣無量)하야 수기감보각부동(隨其感報各不同)을
어일체처장엄중(於一切處莊嚴中)에 개유제불능연설(皆由諸佛能演說)이로다
중생의 업의 바다 한량없이 넓어
그를 따라 받는 과보 각각 다름을
일체 곳의 장엄 가운데서
다 모든 부처님을 말미암아 능히 연설하도다.
이 게송은 순전히 중생업의 바다 문제고, 그것은 과보 그를 따라서 받는 과보가 각각 다르다. 업 이야기가 화엄경에 자주 나온다. 우리들이 사는 삶은 전부 업놀음이다. 순전히 업으로 표현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사실은 따지고 보면 전부 업놀음이다. 업을 어떻게 짓고, 지은 대로 또 어떻게 받고, 어떻게 그 업을 갚고 하는 관계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람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거의 백퍼센트가 업으로 얽히고설키고 그렇게 엮여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중생의 업의 바다 한량없이 넓어
그를 따라 받는 과보 각각 다름을
일체 곳의 장엄 가운데서
다 모든 부처님을 말미암아 능히 연설하도다
부처님이 그 이야기를 다 해놨다. 업대로 우리는 살아가기에 업을 잘 지어야 된다. 우리가 지금 이런 시간 TV에서 재밌는 것을 할 시간이기도 한데 그래도 지금 119명이나 되는 분들이 이렇게 공부한다고 이 유튜브 방송에 들어와서 실시간으로 우리가 함께 공부하고 있다. 참 좋은 공덕을 닦는 일이고 복을 짓는 일이고 정말 좋은 업을 짓는 일이다. 이보다 더 좋은 업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어디 가서 이런 좋은 업을 짓는가.
여기서 이야기 되는 것이 100% 소화가 되고 안되고는 차치하고라도, 우리가 한마음 내어서 이런 화엄경을 듣는다고 하는 사실, 이보다 더 좋은 업을 짓는 것은 없다.
여러 가지 경전강의도 있고 불교TV 같은 데, 라디오 같은 데서 불교를 이야기 하는 시간들도 참 많은데 그중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가르침은 무엇인가? 화엄경이다. 그 화엄경을 우리가 한 번 공부해 보겠다고 이렇게 도전장을 던지고 도전한다고 하는 이 사실, 얼마나 위대한가? 이것은 정말 위대한 일이다. 두고두고 자랑할 거리다. 자자손손에게 자랑할 거리이다. 화엄경 사경을 하시든지 아니면 제가 쓴 화엄경강설이라도 잘 공부해서 거기에 빼곡하게 자기의 소견을 달고, 주석도 달고 해서 열심히 공부해서 후손들에게 물려줘 보라. 얼마나 근사한 일이고 자랑스러운 일이겠는가?
‘우리 할머니가, 우리 할아버지가 이렇게 공부 알뜰히 해서 손때 묻은 책을 우리들에게 물려줬다. 이 내용이 뭔지 아는가 말이다. 이 세상에서 그 많고 많은 수천 억 책 중에서 제일가는 책이다. 부처님이 6년 고행 끝에 보리수하에서 진리를 깨닫고 나서, 깨달음을 성취한 그 내용이 여기에 담겨 있는 것을 우리 할아버지가 우리 할머니가 우리 아버지가 어머니가 공부를 했다. 그것이 책으로 남겨져 있으니 이 책을 보관만 해도 우리는 극락가고 천당에 가는 것은 따 논 당상이다’ 이런 믿음을 가져야 된다.
중생의 업의 바다는 참으로 넓고도 넓다. 수천 억 수천 조의 중생이 있고, 그 수효의 중생들 모두 업이 다르고 업을 따라 받는 과보도 역시 다 다르다. 이러한 사실을 그대로 낱낱이 다 표현하는 것, 그것이 곧 부처님이 연설한 것이다.
우리가 공부를 이렇게 해서 당장에 한 두시간에 한 두달 안에 일 이년 안에 불교가 가슴에 확 닿으면 더 좋겠지만 그저 꾸준하게 ‘이것이 내 삶이려니’ 생각을 하고 공부하는 그 자세가 중요하다.
삼세소유제여래(三世所有諸如來)가 신통보현제찰해(神通普現諸刹海)하시니
일일사중일체불(一一事中一切佛)이여 여시엄정여응관(如是嚴淨汝應觀)이어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여래가
신통으로 모든 세계바다를 널리 나타내니
낱낱 사물 가운데 모든 부처님이여
이와 같이 엄정함을 그대는 관찰하라.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여래가
신통으로 모든 세계바다를 널리 나타내니
낱낱 사물 가운데 모든 부처님이여
이와 같이 엄정함을 그대는 관찰하라
청정하게 장엄함을 그대는 관찰하라, 훌륭한 게송이다.
과거미래현재겁(過去未來現在劫)의 시방일체제국토(十方一切諸國土)여
어피소유대장엄(於彼所有大莊嚴)을 일일개어찰중견(一一皆於刹中見)이로다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겁과
시방 일체 모든 국토와
그곳에 있는 크나큰 장엄을
낱낱이 다 세계 가운데서 보도다.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겁과
시방 일체 모든 국토와
그곳에 있는 크나큰 장엄을
낱낱이 다 세계 가운데서 보도다.
부처님이 처음으로 정각을 이루시고 나니 그 땅은 견고하여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졌으며, 땅뿐이 아니라 사자좌와 보리수와 궁전 등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게 장엄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장엄은 무한 과거에서부터 무한 미래에까지 이미 그렇고 현재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다. 새롭게 바꾸고 꾸미고 치장을 해서 장엄된 것이 아니다. 본래로 그렇게 장엄되어 있다.
좋은 설명이다.
일체사중무량불(一切事中無量佛)이 수등중생변세간(數等衆生徧世間)하사
위령조복기신통(爲令調伏起神通)하사 이차장엄국토해(以此莊嚴國土海)로다
일체 사물 가운데 한량없는 부처님이
중생의 수와 같이 세간에 두루 하사
조복하게 하려고 신통을 일으켜서
이것으로 국토바다를 장엄하였네.
일체 사물 가운데 한량없는 부처님이
중생의 수와 같이 세간에 두루 하사
조복하게 하려고 신통을 일으켜서
이것으로 국토바다를 장엄하였네
종일토록 먹지 아니하고 종일토록 잠을 자지 아니하면서 아무리 생각하고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현재의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밖에는 별다른 것이 없더라. 보이고 들리는 것 외에는 다른 아무 것도 없더라. 그렇다면 지금 보이는 이것이 그대로 부처님이요, 지금 들리는 이것이 그대로 부처님의 광장설법이요, 지금 이대로가 청정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의 화장장엄세계다.
우리는 이쯤 차원으로 믿고 그렇게 알고 살아가야 된다. 지금 이대로가 청정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의 화장장엄세계다. 부처님만 화장장엄 세계를 누리라는 것은 없다. 부처님은 오히려 우리가 그렇게 누리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도 그렇게 누리면서 살아야 되는 것이다.
일체장엄토묘운(一切莊嚴吐妙雲)호대 종종화운향염운(種種華雲香焰雲)과
마니보운상출현(摩尼寶雲常出現)하나니 찰해이차위엄식(刹海以此爲嚴飾)이로다
일체 장엄이 아름다운 구름을 토하는데
갖가지 꽃구름과 향기불꽃구름과
마니보석구름을 항상 나타내어
세계바다가 이것으로 장엄하였네.
일체 장엄이 아름다운 구름을 토하는데
갖가지 꽃구름과 향기불꽃구름과
마니보석구름을 항상 나타내어
세계바다가 이것으로 장엄하였네
아름다워라, 세상이여!
환희로워라, 인생이여!
아, 이대로가 화엄장엄세계요,
이대로가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인 것을!
이 네 줄이 화엄경의 종지를 잘 표현했다고 생각이 든다.참 아름다운 것이 이 세상 그대로고 그렇게 다 눈에 다가와야 된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지금 이대로가 가지가지 꽃구름과 향기불꽃구름과 마니보석구름으로 찬란하게 장엄되어 있다 그것을 볼 줄 알아야 할 것이요, 더 이상 다른 장엄을 찾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것을 볼 줄 알아야 할 것이요, 더 이상 다른 장엄을 찾지 말아야 할 것이다. 손님이 온다고 하면 빚을 내서라도 좋은 물건을 사다가 평소에 사용하지도 않는 것을 사다가 거실에 장엄해 놓고, 대접한다고 하면 새로운 그릇도, 평소에는 쓰지도 않으면서 새로운 그릇을 사다가 ‘보라’고, ‘우리는 이렇게 산다’고 그렇게 자랑하는 경우들이 많다. 우리 화엄행자들, 화엄학인들은 철이 좀 들어야 한다. 최소한도 그렇게는 안하실 것이다. 그렇게는 안하리라고 믿는다. 수수하게 평소 사는 모습 그대로 자기 실제의 모습 그대로 나타내 보이는 것, 그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시방소유성도처(十方所有成道處)에 종종장엄개구족(種種莊嚴皆具足)하야
유광포회약채운(流光布迴若彩雲)하니 어차찰해함령견(於此刹海咸令見)이로다
시방에 있는 성도(成道)한 곳에
가지가지 장엄을 다 구족하여
광명이 흘러 퍼져 고운 구름 같으니
이곳에서 세계바다를 다 보게 하도다.
시방에 있는 성도(成道)한 곳, 도를 이룬 곳, 우리가 모두 앉은 그 자리에서 도를 이루면 그대로 성도한 곳이 된다. 어제 심청전 이야기를 조금 하면서 심학규 심봉사가 눈을 뜰 때 그 잔치자리에 참석한 사람도 눈을 뜨고, 잔치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사람도 눈을 뜨고, 올라오다가 눈을 뜨고 내려가다가 눈을 뜨고, 화장실에 갔다가 눈을 뜨고, 오다가 눈을 뜨고, 밥 먹다가 눈을 뜨고 술마시다가 눈을 뜨고, 전부 눈을 다 떴다.
우리가 눈을 뜨면 그대로 모든 사람들이 다 눈을 뜨는 것으로 되어 있고, 눈을 뜨지 못한 입장에서는 부처님도 눈을 못 뜬 것이 된다. 이치가 그렇게 되어 있다.
눈을 뜨면 동물이나 아니면 물에 있는 어류나 다 눈을 뜬 것으로 되어 있고, 눈을 뜨지 못한 입장에서는 부처님 아니라 어떤 성인이라 하더라도 아직도 눈을 못 뜬 상태가 되어 있다, 하는 것이다. 참 심청전 마지막 대목이 이야기하면 할수록 감동적이고 그 이치가 그렇게 깊다.
우리 화엄행자들은 그런 이치를 잘 이해해서 그런 이야기를 가지고 친구들하고 모여서 세상 이야기처럼 하면서 불법의 이치를, 마음의 이치를 슬쩍 전하는 방법도 좋은 포교의 방법이리라, 이런 생각을 한다.
보현원행제불자(普賢願行諸佛子)가 등중생겁근수습(等衆生劫勤修習)하야
무변국토실장엄(無邊國土悉莊嚴)하니 일체처중개현현(一切處中皆顯現)이로다
보현보살의 원과 행을 모든 불자들이
중생과 같은 겁 동안 부지런히 닦아서
끝없는 국토를 다 장엄하니
모든 곳에서 다 나타나도다.
보현보살의 원과 행을 모든 불자들이
중생과 같은 겁 동안 부지런히 닦아서
끝없는 국토를 다 장엄하니
모든 곳에서 다 나타나도다
세계 장엄에 대한 마지막 게송이다. 국토를 장엄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진기한 보석과 광명들이 있었다. 끝으로 보현보살의 행원을 오랜 세월 동안 수행하여 다시 끝없는 국토를 장엄하는 것으로 결론을 맺었다. 장엄이 국토를 장엄하지만 국토를 위한 것은 아니다. 오로지 중생을 위하고 사람을 위하고 생명을 위한 것이 그 목적임을 밝힌 내용이다.
보현보살의 원과 행을 모든 불자들이
중생과 같은 겁 동안 부지런히 닦아서
끝없는 국토를 다 장엄하니
모든 곳에서 다 나타나도다
보현보살의 원과 행을 모든 불자들이 중생과 같은 겁 동안 부지런히 닦아서 끝없는 국토를 다 장엄했다.
보현보살의 행원, 보현보살의 행과 원으로써 그 넓고 넓은 국토를 다 장엄했다. 무슨 금은보석으로 장엄했다는 말이 아니다. 다이아몬드로 장엄했다는 말도 아니다.
요즘 집들을 보면 돈 있는 사람들은 참 화려하게 잘 짓는다. 화려하게 잘 짓고 아파트도 고급아파트는 전부 이태리 대리석 같은 것을 갖다가 집을 꾸미고 얼마나 잘 짓는지, 한 평을 꾸미는데 돈이 몇 억이 드는지 모른다. 그렇게 장엄을 한다. 그것은 세상의 안목으로 장엄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마음의 장엄도 얼마나 되는지 그런 것들도 한 번 곁들여서 ‘이렇게 내가 잘 장엄해 놓고 사는데 내 마음, 내면의 장엄은 또 얼마나 장엄이 됐는가’‘내가 제대로 사람들에게 그 장엄을 보이는 것은, 그 장엄이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어떤가?’ ‘그 영향은 어떤가?’이런 것까지 연관시켜서 우리가 생각할 줄 알아야 되지 않겠나, 이런 생각을 해본다.
오늘 화엄경 공부 여기까지 하겠다.
*
오신 분들 한 번 살펴보겠다.
*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성불하십시오.
첫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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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보현보살의 원과 행을 모든 불자들이 중생과 같은 겁 동안 부지런히 닦아서
끝없는 국토를 다 장엄하니 모든 곳에서 다 나타나도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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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 - 자기 자신의 표현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장엄하는 진정 값진 장엄거리는 보현행원이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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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내가 잘 장엄해 놓고 사는데 내 마음, 내면의 장엄은 또 얼마나 장엄이 됐는가’‘
그 영향은 어떤가?’이런 것까지 연관시켜서 우리가 생각할 줄 알아야 되지 않겠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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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는 통류와 같다.
걸림없이 사방으로 자유자재로 통하는 흐르는 물과 같다
고맙습니다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