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비문 글씨는 환웅이 밝달나라(고조선)을 세우는 과정을 적은 창성조적서비 와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일치한다.
그렇다면 청나란 누르하치가 왜 이런비를 세웠는지 대강 청나라의 역사를 훑어보자
신라 마지막 마의태자가 신라가 망하자 금강산에 들어가 베옷을 입고 살다가 죽었기 때문에 마의태자(麻衣太子)라 한다지만 그는 만주벌판에 들어가 발해 유민들과 살았고 그 후손 김치양이 고려로 들어와 천추태후와 정을 맺고 낳은 아들 후손이 청태조 누르하치기 때문에 그의 성은 애신각라(愛新覺羅)임이 청나라 마지막 황태자 부의 에서 밝혀졌다.
즉 1908년 중국 청나라 선통황제가 즉위 했다. 그는 중국 역사의 마지막 황제였다. 중국 혁명후 그는 친일 전범자로 법정에 선다. 황제의 본명은 아이신줘러푸이, 즉 애각실라(愛覺新羅)가 청 황실의 성씨였다.
아골타는 여진족으로 금(金)나라를 세운 금, 김태조이다. 누르하치 또한 여진족으로 후금(김), 청나라를 세운 청태조이다.
우리는 그동안, 특히 이씨조선에서는 순 중국인인 명나라만을 종주국으로 섬기며 발해 유민들인 여진족을 만주 오랑캐 족이라고 무시 해 왔으나 청나라는 임진왜란때도 동포이니 원병을 보내 준다고 했었다. 그러나 청나라에게 먹히려는 명 나라는 청나라를 만주 오랑캐라 했고 우리는 종주국인 명나라 말만 듣고 일언지하에 거절 하고 임진왜란이 끝이 나고도 다 망한 명나라 말만 듣다가 인조가 삼전도 굴욕을 당하는 병자호란을 만난다. 그렇다면 여진족과 김태조 아골타 후김 >청태조 누하치의 족보를 따져 보자
애 초 고조선이 중국 한나라에게 망하고 휴도왕이 잃었던 나라라를 되찾으려 했으나 한서‘곽거병전’에 나오는대로 휴도왕이 하늘 에 제사 지내는 금인(金人)을 몰수(收休屠祭天金人)”하고 휴도왕의 태자 김 일제를 한나라로 끌고와 마구간 지기를 시켰다. 즉 한나라와 결사항전을 주 장하던 휴도왕은 항복을 꿈꾸던 동족에게 살해당하고, 김일제는 어머니 알 씨(閼氏), 동생 윤(倫)과 함께 한나라로 끌려왔다. 따라서 김일제는 한족이 말하는 흉노의 태자에 서 한나라 왕실의 말을 키우는 마부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큰 공을 세워 큰 벼슬을 하나 휴도왕과 함께하던 유민들은 한반도로 흘러 들어와 신라를 세웠고 그 신라 고조선 유민들이 남긴 고조선 글자가 지금 경북 경산시 와촌면 강학리 명마산 글씨바위에 선명이 남아있다.
한편 668년 고구려가 당나라에게 망하고 30년 후에 고구려의 유민 대조영이 발해(辰國은 고조선이기 때문에) 대진국를 세운다.
그후 대조영의 장자이고 발해를 세우는데 일등 공신 이지만 거란 여인에게서 출생 했다는 이유로 고구려 유민 발해인 들에게 축출되어 망한 거란으로 쫓겨 간 검이와 후손들은 원한을 품고 거란을 재건, 926년 발해를 멸망시키지만 그 유민들은 다시 우리 민족의 나라인 정안국을 세운다.
여기서 고려 천추태후의 정부였던 김치양이 나타나는데 그의 조상이 신라 마의태자 후손이며 그의 후손이 금태조 아골타가 되고 청태조 누르하치가 되니 청황실의 성씨가 애신락라(愛新覺羅), 즉 신라를 사랑하고 깨달으란 말이다.
따라서 얼마전 청나라도 한민족의 나라인데 다만 자금성에 한자 이외에 써진 첩해몽어가 한자에 밀리어 없어지다 보니 청나라 후예들조차 중국인인줄 안다.
일본인들은 김치를 기무치라 하고 택시를 다꾸시라 하는것은 그 사람들의 혀가 반도막이 아니라 그 나라 글자가 그 모양이니 그런 것이고 청나라가 빌려쓰던 첩해몽어도 한자에 밀리어 그 민족 조차 중구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상 우리는 그나라 글자가 그 만큼 중요하다는 것인데 우리 글자는 하느님이 하늘과 땅과 사람의 철학 밝히는 [천부인 ㅇ ㅁ△]이니 소중히 잘 보관하고 써야 할 텐데 전에는 한자에 미쳐 한글은 언문 취급을 하더니 불과 50년 후인 지금은 또 영어에 미쳐 또 언문이 되니 위 청태조의 건국 비문을 보면서 중국 대륙도 한국땅임을 알아야 하고 그 청태조 비문을 보면서 하나 둘 셋 ...열의 뜻을 밝히는 [진본 천부경] 신지녹도문 글자가 진실인줄 알아야 하고 따라서 우리 말 우리글자를 잘 지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