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모(박정희대통령과 육영수여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부산․경남 모임) |
회의자료 |
일 시 : 2012.11.5 (월) 18:30 장 소 : 사무실 회의실 카페명 : 다음(Daum)→박정모 | |
전화 : 051) 302-8801 팩스 : 051) 302-8803 | |||
∙ 박정희대통령 기념도서관 건립기금모금 - 부산은행 031-01-032121-0 박정모 |
∙ 회비∙찬조금 계좌번호 - 부산은행 031-12-065269-9 정분옥 | ||
박정희는 독재자이다~ 그러나 그 독재는 국가와 국민과 민족을 위한 독재였으며, 나라를 지키기 위한 독재였다...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은 정당하게 평가되어야 하며, 박정희 대통령의 꿈은 '복지사회 실현'이었다. |
1. 경과보고
가. 10월 월례회의 (2012. 10. 8 (월) 19:00)
◦ 주요내용 - 모임에 대하여 물어보고 건의할 사항에 대한 질의응답 시간 가짐
- 새로오신 회원 : 권정옥∙김금∙김용태∙김태호∙김태희∙김형원∙박원도∙송태석
이정복∙정재환 이사 (10명)
◦ 고액회비 및 찬조금 내신 분 (10월분)
금 액 |
내신 분 | |
1,000,000 |
1 |
정분옥 회장 |
300,000 |
2 |
정병호 상임고문, 도봉큰스님 |
150,000 |
1 |
박외숙 부회장 |
100,000 |
4 |
김점수 중앙위원, 노명숙∙노영훈 부회장, 심순자 이사 |
80,000 |
1 |
박상식 자문위원 |
50,000 |
4 |
한추홍 부회장, 우옥자 여성위원장, 강영자∙이근배 이사 |
30,000 |
1 |
김정순 이사 |
20,000 |
3 |
배일부 자문위원, 김진건∙사공문 이사 |
◦ 물품 주신 분 - 정분옥 회장 : 과일 (바나나 3box, 수박2)
- 김태부 이사 : 책1권 (한강의 새벽)
◦ 회의자료 설명 및 자료제공
- 역사에 승부를 건 한 초인(超人)의 비장한 생애 - 박정희와 미국육사
-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임금 선덕여왕
- 야 주자들, 노무현의 무엇을 계승하고 극복한다는건가
- 노무현 前 대통령의 북한 관련 발언 모음
- 진드기처럼 국회에 들러붙는 종북파를 퇴치하려면
나. 여성위원회 10월 월례회의 - 2012. 10. 8 (월) 12:00, 다이아몬드 호텔 1층 연회실
다. 양산시지부 10월 월례회의 - 2012. 10. 8 (월) 18:30, 남강영양돌솥밥 (양산 북부동)
라. 양산시지부 임원회의 - 2012. 10. 22 (월) 19:00, 송암 추어탕
마. 거제시지부 주요회원 임시모임 - 2012. 10. 27 (일) 18:00, 거창 식육식당
2. 공지사항
가. 박정희 대통령 제95주년 탄신제
- 일 시 : 2012. 11. 14 (수) 10:00, 장 소 : 구미생가 (구미시 상모동)
- 출 발 : 2012. 11. 14 (수) 07:00, 출발지 별도공지
나. 정분옥 회장 국민훈장 목련장 수상 (2012. 10. 30)
- 1 -
===================================================================================================
3. 박정희 대통령 숭모전당 (기념∙도서관) 건립기금 모금현황
- 관리계좌 : 부산은행 031-01-032121-0 박정모 2012. 10. 31 현재
수 입 부 |
|
지 출 부 | |||||||||||||||||||||||||||||||||||||||||||||||||||||||||||||||||||||||||||||
과 목 |
금 액 |
과 목 |
금 액 | ||||||||||||||||||||||||||||||||||||||||||||||||||||||||||||||||||||||||||||
기 금 |
32,220,000 |
- |
- | ||||||||||||||||||||||||||||||||||||||||||||||||||||||||||||||||||||||||||||
이 자 |
1,908,315 | ||||||||||||||||||||||||||||||||||||||||||||||||||||||||||||||||||||||||||||||
계 |
34,128,315 |
계 |
- | ||||||||||||||||||||||||||||||||||||||||||||||||||||||||||||||||||||||||||||
※ 31,697,019원 정기예금 - 만기 : 2013. 3. 6 (1년정기예금이자 : 933,276원 발생) 기금 내신 분 (순서 - 금액별, 직위별, 가나다순) : 75명
|
- 2 -
===================================================================================================
4. 동전 모으기에 동참하신 분 : 32명
- 관리계좌 : 부산은행 140-12-023999-9 이현주 재무국장 2012. 10. 31 현재
계 : 모금액 555,790 + 이자 615 = 556,405 참여 : 32명 | |||||||
내신 분 |
금 액 |
|
내신 분 |
금 액 |
|
내신 분 |
금 액 |
정분옥 회장 정병호 상임고문 김상훈 고문 박영수 고문 김점수 중앙위원 강순자 부회장 노명숙 부회장 박외숙 부회장 손찬이 부회장 구맹회 이사 권희동 이사 김상섭 이사 문필선 이사 박영수 이사 박한수 이사 변종길 이사 손연자 이사 윤상수 이사 이차희 이사 장복녀 이사 진혜정 이사 남기영 양산회장 천숙희 해운대회장 정기환 거창회장 신천팔 거창국장 성남태 진해회장 김재곤 사무처장 우옥자 여성위원장 박옥희 여성위감사 이현주 재무국장 김도원 여성부장 이찬일 청년위원 전용기 홍보부장 |
93,200 1,460 2,120 8,580 77,590 2,140 75,410 27,810 12,380 31,440 160 760 9,000 4,300 15,040 5,440 19,490 1,600 990 1,250 10,730 8,370 8,770 22,400 19,800 4,150 2,000 33,980 19,000 7,050 4,240 17,750 7,390 |
|
|
|
|
|
|
- 3 -
===================================================================================================
정수장학회의 진실
1961년 5.16 혁명에 성공한 박정희 대통령은 불우한 청소년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고, 민족 문화 창달과 사회 사업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미국인 스코필드 박사가 장학 사업에 써 달라고 당시 화폐 단위로 25 만환의 기금을 기부해 왔다. 따라서 박정희 대통령은 민족문화 연구원에 연구를 맡겨서 미국의 유명한 내셔날 리서치 센터같은 장학회를 설립토록 지시한다.
기금의 출연은 박정희 대통령, 그리고 혁명위원 및 국영기업체 임직원, 정부산하 기관 임직원, 사회 유지들로 부터 모금하기로 하고 스코필드 박사가 기부한 돈을 시작으로 해서 문교부가 책정한 금액을 모금하기로 하고 문교부에 법안 마련을 지시 하였다. 그러던 중 고 이병철 회장을 비롯하여 김우중 회장 김지태씨가 친일행각으로 돈을 번 재산가이자 국회의원으로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 재산 해외도피 및 탈세 그리고 부정부패 혐의로 혁명 정부에 의해 수사를 받게 되었고, 이병철 회장은 일본으로 도피하고 김지태씨는 악덕 기업가로 사회적 평판이 좋지 않아서 구속되어 7년형을 선고 받았고 이병철을 비롯한 13명의 기업가들은 재산 헌납 각서를 혁명 정부에 제출하고 나서야 풀려 날 수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병철 회장에게 사람을 보내 설득하여 귀국을 시키는 한편 기업체들이 제출한 헌납 각서를 모두 되돌려 주면서 조국 근대화 사업에 매진하여 줄 것을 독려하였다고 김우중씨는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김지태씨는 워낙 평판이 좋지 않아서 자신의 부일 장학회를 5.16 장학회에 기부하는 것으로 해서 풀려나 기업가로서 승승장구 하였으며 수출산업 훈포장까지 받았던 사실이 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사업이 부진하게 되고 설상가상 김지태씨의 사망으로 인해 삼화고무의 전설은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조금 더 조사를 해 보면 알겠지만 부일의 김지태씨는 아마도 혁명정부에 잘못 보인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기업 평판이 좋지 않았었고, 죄질 또한 결코 가볍지 않은 탓이었다고 기록되고 있다. 그가 헌납한 재산은 부산MBC+서울MBC+부산일보+일부의 토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모태로 하여 국가재건최고회의는 '5.16장학재단'을 만들고 여기에 박정희는 물론 많은 사람들의 기부금을 내서 자금을 눈덩이처럼 불렸다. 이로 인해 처음에는 김지태가 내놓은 장학재단 자금이 100%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김지태가 내놓은 MBC 및 부산일보 지분은 겨우 15%에 불과하고 85%가 새로 불어난 기부금이 차지한다. 이제까지 이 장학회로부터 장학금을 받은 사람은 4만명이 넘으며 일설에 의하면 노무현도 여기에서 장학금을 받았다고 한다.
'5.16장학회'라는 이름이 지금까지 지속돼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전두환이 공연히 이를 '정수장학회' (박정희+육영수)로 바꾸어 공적 냄새를 지우고 사적 냄새가 나도록 개명을 했고, 여기에 박근혜가 근무하도록 하여 월급이라도 타먹으라는 친절한 배려를 했다. 지금은 MBC지분 전체의 70%가 방문진으로 넘어가 있고 그 30%만이 정수장학회재산이다. 현재 총자산은 238억원 정도라 한다. 재산을 내놓은 김지태는 그의 회고록을 통해 박정희를 경제개발의 역사적 위인으로 평가했고, "5.16장학회 운영을 만족스럽게 생각한다."는 취지의 표현을 했다.
최근 그의 후손이 헌납당시 강제성이 있었다며 반환소송을 냈지만 2012년 2월 법원은 강제성은 있어 보이지만 그것이 김지태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구속하는 정도는 아니었으며 위법행위에 속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했다. 박근혜는 2005년 노무현 세력의 압박에 의해 이사장 직을 사퇴했고 그 후 대사 출신이자 박정희 대통령 의전비서관이었던 최필립이 현재까지 이사장 직을 수행하고 있다. 당시 1962년 5월 9일자에 의하면 김지태를 비롯한 8명은 첫 고등혁명군사 재판을 받았고 동년 5월 24일자에는 탈세액이 무려 당시의 돈 8억환이었다고 한다. 8억이면 현재의 가치로 환산하기 어렵겠지만 물가 대비 비교하면 최소 1600억에서 4000억 정도이다. 만약에 정수장학회를 문제 삼으려 한다면 지금의 남해 화학과 한국중공업 등 정수장학회와 함께 설립된 10개의 공기업 모든 재산을 이병철을 비롯한 부정 축재자에게 돌려주어야 할 것이다.
- 4 -
===================================================================================================
정수장학회 관련 대응논리
◉ 정수장학회는 강탈한 장물이다.
- 김지태가 헌납한 것을 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받았고 소유주도 개인이 아니라 재단이며
비밀리가 아니라 공개적으로 운영했다.
- 김지태 헌납 재산은 정수장학회 전체 재산의 15%에 불과, 부일장학회는 정수장학회 설립
투자된 일부 재산일뿐.
- 정수장학회는 고 김지태씨의 부일장학회를 승계한 것이 아니라 다른 기부금도 모아서
새로 만든 것이다.
- 정수장학회는 친일로 부를 축적하고 부정부패를 일삼던 김지태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것
(김지태는 일제시대 때 토지수탈 앞장 선 동양척식회사에 근무하며 부를 축적한 악질적인
친일 자본가)
- 법원의 판결은 '강압은 틀림없지만 무효에 이를 정도의 강압은 아니다'는 것. 친일 재산
환수에 어느 정도 강압이 있었다는 점이 이 시점에서 그렇게도 큰 문제인가?
- 친일로 부를 축적하고 부정부패를 일삼던 김지태의 대변인 노릇을 하는 문재인과 안철수를
심판해야한다.
◉ 재단으로 운영되었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박정희가 강탈해서 사유화한 것과
마찬가지다.
- 2006년 노무현 정권 시절, 삼성 이건희 회장이 8천억 원을 공익재단 출연형태로 헌납하고
현대차 정몽구 회장이 2007년 재판 진행 중에 1조 원대 사재를 사회에 환원한다고 말했는데
이를 노무현 정권이 삼성과 현대로부터 강탈했다고 야기해도 되는 것인가? 또 그 정권시절에
이뤄졌기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의 사유재산이고 장물인가?
◉ 박근혜가 정수장학회를 실효지배하고 있다.
- 법인 관련법의 기본도 모르는 소리. 정수장학회는 공익법인이고 법과 정관에 따라 이사진이
운영하는 것이지 개인이 소유하거나 실효지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안철수가 안철수재단
을 실효지배할 수 없고 문재인이 노무현재단을 실효지배할 수 없는 것과 같다.
◉ 실소유주인 박근혜가 정수장학회를 사회에 환원시켜야 한다.
- 대선 후 사실무근으로 드러난 이회창 병풍 사건(김대업 사건)의 복사판이다. 실체도 없고
법적인 문제도 없는 것을 국민 정서에 호소해 일단 대선에 이기고 보자는 민주당의 꼼수
- 정수장학회에 대해서는 수차례 검증을 통해 박근혜에 대한 의혹은 풀렸고, 또 서울시
교육청 감사에서도 문제가 없었는데 그것을 꺼내는 것은 민주당의 네거티브
◉ 박근혜가 정수장학회 팔아 PK에 쓰려한다.
- 명백한 허위사실이다. 호남을 자극하여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구태정치
- 5 -
===================================================================================================
박정희의 10월 유신으로 대한민국이 더욱 성장했다
정치권에서 '維新(유신)체제'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 9월 10일 <동아일보>가 리서치 앤 리서치에 의뢰,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의 압도적 다수 (약 68%)가 '朴正熙(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체제가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역, 연령, 이념, 소득, 학력의 차이를 뛰어 넘어 全계층에서 긍정적 평가가 나왔다.
1972년 10월 17일 유신조치는 불법적으로 憲政(헌정)을 중단시킨 점에서 朴 대통령의 두 번째 쿠데타였다. 정치적 자유와 언론 자유가 제약되고 민주화 운동에 대한 탄압이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역사적 평가는 이런 법적 측면을 포함하여 國政(국정)과 국민의 삶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이어야 한다. 따라서 7년의 유신 기간 한국에서 일어난 일들을 입체적으로 균형 있게 볼 필요가 있다.
유신기간(1972~79년)에 세계경제는 두 차례의 오일쇼크를 맞아 큰 타격을 받았으나 朴 대통령은 정치 코스트를 최소화하고 國力(국력)의 조직화, 능률의 극대화를 통해서 위기를 극복,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중화학공업 건설, 自主(자주)국방력 건설, 새마을 운동, 중동 진출, 의료보험 도입이 이 기간에 이뤄졌다.
維新(유신)기간에 건설한 중화학공업-전자, 조선, 종합제철, 석유화학, 자동차, 기계공업은 오늘의 한국을 세계 10大 경제대국으로 밀어 올리고 一流(일류)국가를 꿈꿀 수 있게 한 기반이다. 한국인들이 장기간 먹고 살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유신기간 중 노조의 활동은 많은 제약을 받았으나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세계에서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1977년 7월 1일부터 시행된 의료보험은 세계적 성공사례이다. 朴 대통령은 굶주리는 사람이 없는 나라를 만들고, 돈이 없어 병원에도 가보지 못하고 죽는 사람들이 없는 나라를 만든 것이다. 유신기간의 경제발전으로 성장한 중산층이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主力軍(주력군)이 되었다.
유신시절 용감하게 自由(자유)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투옥되었던 사람들은 빵과 자유를 다같이 누리는 민주복지국가를 만드는데 기여한 애국자들이다. 당시엔 서로 맞섰던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은 이제 역사적 관점에서 서로의 역할을 평가하고 힘을 모을 때이다. 역사논쟁은 국민을 통합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종북좌파 세력이 建國(건국) 60주년 행사를 거부, 조국을 생일 없는 나라로 만들려 했던 것을 기억한다. 광화문에 李承晩(이승만) 建國 대통령 동상을 세우고, 8.15를 건국절로 기념해야 나라가 바로 선다. 성숙해진 국민들의 역사관을 정치선동꾼들이 깨지 못하도록 잘 감시하자.
- 2012. 9. 13 조선일보 광고
- 6 -
===================================================================================================
박정희 같은 위대한 결단을 보고싶다
- 세계 최빈국 한국, 强者필리핀 박정희∙마르코스 치하 때 운명역전,
월남전 적극 참전 등 한강의 기적은 국가운명건 결단 없으면 추락
취재차 사흘간 필리핀에 머무는 동안 머릿속에서 '성장'과 '분배'라는 단어가 떠나지 않았다. 1960~70년대 아시아 강국(强國)이던 한 나라의 침체를 목격하며 국가에 성장은 멈출 수도, 멈춰서도 안 될 과제라고 생각했다. 놀라운 것은 쓰러져가는 추레한 건물 사이에 버티고 선, 어느 선진국에도 없는 화려하고 거대한 쇼핑몰이 이 나라 거대 가문(家門) 소유라는 사실이었다. 부의 쏠림이 낳을 수 있는 극단적인 사례가 멈춰버린 성장 곁에 있었던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와 동양의 강자였던 국가의 운명이 엇갈린 것은 출신∙경력∙성격까지 비슷했던 박정희와 마르코스, 두 대통령 치하(治下)였다. 당시 외교가에서 두 사람의 닮은 점이 화제였다고 한다. 1917년에 태어난 두 사람은 까무잡잡한 얼굴, 날카로운 눈매, 작은 키, 카랑카랑한 목소리까지 비슷했다. 박정희가 그랬듯 마르코스도 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훈장을 27개나 받은 군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1966년 그런 두 사람이 만났다. 월남 참전 7개국 정상회담 자리였다. 당시 한국의 1인당 GNP는 130달러였고, 필리핀은 269달러로 동남아 선두그룹이었다. 마르코스는 가난한 나라의 대통령을 무시하고 경원(敬遠)했다. 이유는 월남전에 보낸 병사 수 때문이었다. 한국은 4만 2500명을 베트남에 보냈다. 가난했지만 미국에 이어 둘째로, 발언권이 셌다. 호주가 4500명으로 3위, 필리핀이 2000명, 뉴질랜드 170명, 태국은 17명에 불과했다.
당시 월남전 참전을 앞두고 반전(反戰) 움직임은 한국에도, 필리핀에도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박정희가 월남전을 기회로 여겼고 마르코스는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뚜렷한 대비(對比)가 두 정상의 연설에 나타난다. 마르코스는 회담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맨 처음 환영사에서 느닷없이 평화론을 편 것이다. "평화와 자유는 모든 인류의 권리이며 소망입니다. 평화와 자유가 없는 곳에 인류의 번영과 행복은 없습니다..." 단상(壇上)에 앉은 수뇌들의 표정이 변했다. 그중에서 가장 대로(大怒)한 이는 존슨 미국 대통령이었다. 그는 마르코스의 말이 시작하기 무섭게 열렬히 손뼉을 쳐댔지만 사람들은 그게 분노의 표현임을 알고 있었다.
박정희의 연설은 달랐다. 월남전에서 휴전이 이뤄지기 전까지 외국 군대가 철수해선 안 된다며 월맹(越盟)의 베트콩 지원 중지를 촉구했다. 말은 베트남을 향했지만 실은 한반도의 안전을 고려한 심모원려(深謨遠廬)였다.
마르코스는 자신이 평화주의자임을 과시하는데 그쳤지만 대한민국은 한 지도자의 선택으로 많은 것을 얻었다. 국군의 현대화가 이뤄졌고 외화 획득 통로가 열렸으며 기업인들의 해외 진출 물꼬가 터졌다. 두 사람은 마지막이 같았다. 장기 집권의 끝에 한 명은 암살당하고, 다른 한 명은 성난 국민에게 쫓겨난 것만 달랐을 뿐이다. 그런데도 두 사람이 다스렸던 국가의 지금 모습은 너무도 다르다.
앞으로 여섯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우리는 새 지도자를 선출한다. 그렇게 환호받던 한 지도자의 형이 영락(零落)하는 모습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그렇게 자신에 차있던 지도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도 우리는 지켜봤다. 그런가 하면 누구는 북한에 모든 것을 갖다 바쳤다는 의심을 사후(死後)까지 받고 있으며, 또 누구는 나라를 거덜낼 뻔했다는 무능(無能) 이미지를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이는 우리 국민이 그만큼 대한민국호(號)의 명운을 가를 위대한 결단을 본 지 오래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벌써부터 터져나오는 포퓰리즘 공약의 범람 속에서 필리핀에서 얻은 단상(斷想)을 굳이 적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 2012. 7. 5 조선일보 태평로 문갑식 선임기자
- 7 -
===================================================================================================
19代 국회에 反국가단체 및 利敵(이적)단체 출신이 19명
- 이들이 무슨 문제를 일으킬지 대한민국이 아슬아슬
1. 從北세력이 상전으로 모시는 북한정권의 反인류 범죄들
• 1950년 6월 28일 서울로 들어온 북괴군은 서울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국군 부상
병들 (100명 이상 추정)을 모조리 학살하였다.
• 외국까지 따라가서 한국의 국가 지도부 인사들을 테러, 17명을 죽였다. (아웅산 테러 사건)
• 주민들이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먹고 살려고 강을 넘어 도망치면 사살한다.
• 배고픈 주민들은 미쳐서 자녀를 잡아먹고, 김정일-김정은은 곰발바닥 요리를 먹어
비만체형이 되었다.
• 북한의 남자는 남한 남자보다 키가 14㎝나 작은 난장이족으로 변하고 평균 수명은 15년
이나 짧다. 그것도 모자라 '지도자를 결사옹위하는 총폭탄이 되자'고 강요한다.
• 계급혁명의 공산주의를 한다면서 3代 세습 王朝(왕조)를 만들었다.
• 3代에 걸쳐 700만 명을 죽였다. 6∙25남침전쟁으로 300만, 굶겨서 300만, 강제수용소
에서 100만. 이들의 시신을 한 줄로 놓으면 서울~마드리드를 덮는다. 1만 4000㎞
• 요약하면 이들은 학살-테러-민족반역-거짓선동-守舊(수구)반동-파쇼집단이다.
2. 천국에 살면서 지옥의 악마를 숭배하는 從北분자들의 행태
• 천국 같은 남한에서 국가가 주는 온갖 혜택을 누리고 살면서 지옥의 악당을 숭배하고 지옥
을 탈출해온 동포들을 '변절자'라고 욕한다.
• 입만 열면 인권, 인권하더니 북한동포를 위한 人權法(인권법) 제정을 한사코 반대하고,
간첩과 공작원을 편하게 해주기 위하여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한다.
• 전쟁 중인 나라인데 적군을 사사건건 편들고 국군을 공격한다. 천안함 폭침 부정,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등. 적군의 핵무장을 비호하고, 한미동맹 해체-주한미군 철수를 주장
한다.
• 北의 3代 세습을 옹호하는 그 입으로 이승만-박정희를 독재자라고 욕한다.
3. 19代 국회에 전과자가 61명
반역 세력과 비겁 세력이 결탁, 從北을 진보라고 유권자들을 속인 결과, 전과자 61명이 19
代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 가운데 28명이 보안법과 반공법 위반자이고, 그 중 19명은 反
국가 단체와 利敵단체 출신이다. 이런 국회는 반드시 變故(변고)를 일으킬 것이다. 그래서 국민
들은 먹고 살기도 바쁘지만 종북국회의원들을 감시하는데 최선을 다하자.
- 2012. 7. 4 조선일보 광고
- 8 -
===================================================================================================
탈북 대학생 눈에 비친 '아슬아슬한 나라 대한민국'
임수경 민주통합당 의원으로부터 "입 닥치고 살아, 이 변절자들아"라는 폭언을 들었던 탈북 대학생 백요셉씨가 탈북에서 한국 정착까지 6년 과정을 기록한 일기장 14권엔 그의 눈에 비친 '이상하고 아슬아슬한 나라, 대한민국'의 모습이 담겨 있다. 백씨는 19세 때인 2003년 처음 두만강을 건너 탈북을 시도하다 세차례나 붙잡혀 북송(北送)을 당하고서 2008년 10월 기어이 한국에 들어온 젊은이다.
백씨가 대학에 입학해 받은 첫 수업에서 담당 교수는 자기가 북한 문제 전문가라며 "북한에 관한 가장 확실한 정보는 노동신문이고, 가장 못 믿을 것은 탈북자"라 했다 한다. 백씨는 "이 말을 듣는 순간 피가 끓었다"고 했다. 노동신문은 전체 6면 중 2, 3면을 최고 지도자 동정(動靜)을 주민에게 전달하는 데 쓰는 김씨 일가의 선전 도구다. 6월 7일자는 2면을 증면(增面)해 8개 면 중 7개 면을 김정은 말과 몸짓을 전하는 데 할애했다. 명색이 북한 전문가라는 교수가 노동신문 기사는 믿을 만하고, 목숨 걸고 탈출해 북의 진짜 모습을 전하는 탈북자 말은 못 믿겠다고 했을 때 백씨 심정이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문제의 교수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도발에 대해선 "자기(북한)네 앞바다에서 포탄 쏴대는데, 이런 XXX들 하고 쏜 것 아니냐. 응당한 징벌"이라 설명했다 한다. 백씨는 '이게 대한민국인가. 악몽(惡夢)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고 자기 볼을 꼬집어 봤을 것이다. 이런 일이 어디 백씨가 다니는 대학뿐이며, 그 교수뿐이겠는가.
백씨가 탈북을 시도하던 2005년 8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만난 한국 대사관 직원은 "대한민국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나라가 아니다. 중국어를 알면 중국에 가서 살고, 아니면 북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한다. 백씨는 그날 일기에서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고 썼다. 그 당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우리는 미국과 생각이 다르다"면서 북한은 핵(核)을 평화적으로 이용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의장으로서 외교∙안보를 총괄하던 통일부 장관이 이런 말을 하던판이니 외교 현장 실무자들이 탈북자 처리에 난감해했을 만도 하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대한민국 외교관이, 이미 세 차례 북송당한 적이 있고 다시 북으로 끌려가면 참형을 각오해야 하는 백씨와 같은 탈북자에게 그런 말을 했다는 건 그때 대한민국이 정상(正常)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어이없는 대한민국 모습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왕재산 간첩 사건으로 징역 9년을 선고받은 총책 김덕용은 2008년 5월에, 징역 7년을 선고받은 인천 지역책 임모씨는 2003년 7월에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돼 보상금도 받았다. 그 당시 두 사람은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는 간첩 활동에 열심이었다.
백씨 같은 탈북자 2만명은 지금 억장이 무너지고 더 무시무시한 현실을 목격하고 있다. 북한을 지옥으로 만든 김일성 3대를 떠받들어 온 사람들이 대한민국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국회의사당안을 활보하고 있는 장면이다. 집권당을 노리는 제1 야당의 대표가 되겠다는 사람은 민족 반역자 김씨 3대(代)를 받드는 조무래기 주사파의 국회의원 자격을 심사하는 것은 "악질적인 범죄행위"라고 핏대를 세우고 있다. 생지옥을 탈출하려다 세 번 실패하고 네 번째 만에 성공해 대한민국 국민이 된 백씨가 이 위태위태한 대한민국 모습 앞에서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 2012. 6. 8 조선일보 사설
- 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