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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화대 범봉
나는 산이 좋더라
영원한 휴식처럼 말이 없는
나는 산이 좋더라
꿈을 꾸는 듯 멀리 동해가 보이는
설.
설악.
설악산이 좋더라
--- 진교준, 「설악산 얘기」에서
▶ 산행일시 : 2011년 8월 13일(토), 흐림, 비
▶ 산행인원 : 혼자 감
▶ 산행시간 : 10시간 11분(휴식과 중식시간 포함)
▶ 산행거리 : 20.9㎞
▶ 갈 때 :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06시 30분 발 첫차로 한계령으로 감(요금 : 15,500원)
▶ 올 때 : 설악동 소공원 주차장에서 택시 타고 속초시외버스터미널로 가서(요금 :
13,000원), 20시 30분 발 동서울 가는 우등버스 타고 옴(요금 : 16,100원)
▶ 시간별 구간
06 : 30 - 동서울종합터미널 출발
09 : 35 - 한계령(935m), 산행시작
10 : 11 - 1,307m봉
10 : 45 - 서북 주능선 진입, ┬자 갈림길(1,350m)
11 : 36 - 1,456m봉
11 : 58 - 1,461m봉, ┣자 지능선 분기, 오른쪽은 독주폭포로 감
12 : 30 - 끝청봉(1,604m)
12 : 57 - 중청봉(1,676m)
13 : 48 ~ 14 : 06 - 희운각(喜雲閣)대피소, 중식
14 : 31 - 신선대(1,240m)
15 : 38 - 1,275m봉
16 : 27 - 나한봉(1,280m)
16 : 49 - 마등령
18 : 09 - 철계단
18 : 50 - 비선대
19 : 46 ~ 20 : 30 - 설악동 소공원 주차장, 산행종료, 속초시외버스터미널
22 : 50 - 동서울종합터미널 도착
1. 귀때기청봉 남쪽 지능선
▶ 끝청(1,604m)
주말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한계령 가는 첫차 차표를 수요일에 예매하려는데 여유가 석장
남았다. 주말 호우예보가 있으니 설악산 입산이 통제되지나 않을까? 부화뇌동. 갈까 말까 망
설일 겨를 없이 예매했다. 그러나 속초를 비롯하여 동해안으로 가는 버스는 분단위로 임시 배
차되어 터미널은 명절 귀성 때보다 더한 북새통을 이룬다.
춘천고속도로. 톨게이트 하이패스가 버벅대더니 월문터널부터 정체다(정체는 시속 30㎞ 미
만일 때를 말한다). 이천터널까지 그런다. 차가 미적거리면 잠도 잘 오지 않는다. 차창 밖 차
량행렬 내다보면 번호판 숫자로 도리짓고땡 노름하며 오늘의 운수를 시험한다. 망통과 따라
지가 잦다. 범인과 위인의 차이는 이런 데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인도의 천재수학자 라마
누잔에게는 차번호도 학문이자 의미 있는 수식의 배열이었다.
“이 무렵 하디가 런던 남서쪽의 푸트니에서 요양 중이던 라마누잔에게 병문안을 왔다. 그날
은 하루 종일 흐린 날씨였다. 얼굴을 마주한 하디가 ‘날씨도 그렇고, 내가 탄 택시 번호도
1729였어. 오늘은 정말 별 볼일 없는 하루야’ 하고 농담처럼 말했다. 이에 라마누잔은 곧바로
‘상당히 재미있는 숫자군요, 세제곱의 합으로서 두 가지로 표현할 수 있는 숫자 중에 가장 적
은 것입니다.’ 그는 하디 앞에서 1729=13 + 123, 1729 = 93 + 103이라고 또박또박 두 가지
식을 썼다.”(후지와라 아사히코 지음, 이면우 옮김,「천재수학자들의 영광과 좌절」). 하디는
라마누잔의 스승이다.
한계령 도착 09시 35분. 평소의 예상시간(2시간 20분)에 비해 45분이나 더 걸렸다. 산행에서
45분은 엄청 크다. 가장 장시간인 휴식 겸한 점심시간도 20분 내외다. 칠형제봉을 가는 걸음
으로 얼른 보고 108계단 오른다. 위령탑 뒤 탐방안내초소로 다가가자 관리공단직원이 묻는
다. 어디까지 가는지, 물은 얼마나 넣고 가는지. 공룡능선을 간다하면 막을지도 몰라 대청봉
이라 하고, 물은 2.5리터 사실대로 말한다.
오가는 사람이 없어 한적하다. 사면 돌아가는 숲속에는 어쩌다 길 잃은 바람이 들릴 뿐. 말복
땀을 줄줄 흘린다. 매미가 악써대니 더욱 덥다. 데크계단 올라 한계령에서 500m 진행된 지능
선 마루금. 일단의 등산객들이 쉬고 있다. 그네들이 곧 등로에 길게 늘어설 것 같아 내쳐간다.
박석 깔아놓은 것 같은 돌길의 연속이다.
여기 올 때면 언제나 그렇듯 도둑바위골 옆 귀때기청봉 지능선의 암봉을 알현한다. 오늘도 의
연하다. 잠시 평평하게 진행하다 1,307m봉에 올라 서북주릉 일람하고 돌길 주춤주춤 내린다.
나지막한 봉우리 2개 넘고 바닥 친 안부는 사태 났던 골짜기다. 예전에 샘이 있었지. 대슬랩
덮은 테크계단 오르다 뒤돌아서서 망대암산 쪽 조망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날이 맑으나 흐
리나 항시 가경이다.
마주친 등산객 다섯 명이 저마다 통통한 오이를 입에 가득 물고 있다. 진하게 나는 상큼한 오
이향이 지나가는 사람을 환장하게 한다. 입안에 저절로 침이 괸다. 보행 중 흡연보다 더 큰 해
악(?)을 끼친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는 이런 것도 단속했으면 좋겠다. 서북주릉 ┬자 갈림
길. 앉아 쉬려니 바람이 세게 불어 금방 서늘해진다. 곡백운 암봉군, 건너 용아장성, 그 너머
공룡능선 감상한다.
끝청 가는 길. 능선 마루금 비킨 숲속 길이다. 거목인 주목 두 그루가 나온다. 보기 좋다. 너덜
길이 시작된다. 젖어있어 미끄럽다. 앞사람 넉장거리 외마디에 덩달아 나도 비틀한다. 야트막
한 안부 지나 슬랩. 전망바위는 꼬박 들린다. 산은 확실히 겨울 산이다. 지난겨울 그 강강하고
도 장려하던 모습은 간곳없다.
1,401m봉 넘어 긴 오름 끝은 너덜 두른 1,456m봉이다. 사방조망 좋다. 용아장성이 발아래다.
실루엣으로 보이는 점봉산은 듬직하다. 여름방학이라 그런지 어린아이를 대동한 가족과 학
생 동아리가 자주 보인다. 그들의 땀 흘리는 모습이 아름답다. 1,461m봉. ┣자 지능선이 분기
한다. 오른쪽 독주폭포로 가는 길은 둥근이질풀 꽃으로 덮였다.
아깝다. 아치문 모양인 나무는 죽었다. 죽어서도 아치문이다. 서서히 오른다. 산상화원 일체
의 야생화는 사진촬영 금지다. 바람이 가만두지 않는다. 무릎 꿇고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그
렇다. 점점 나무숲 키 작아지고 숨 가쁘게 오르다 이윽고 머리 내밀면 끝청봉 정상이다. 용아
장성과 공룡능선의 침봉석림은 현란하다.
2. 멀리는 망대암산, 서북주릉 진입하면서
3. 귀때기청봉은 안개에 가렸다, 서북주릉 삼거리에서
4. 귀때기청봉 북쪽 지능선
5. 곡백운 주변
6. 점봉산
7. 멀리는 가리봉, 주걱봉, 삼형제봉
8. 봉정암
▶ 희운각(喜雲閣)대피소
끝청봉 바위로 둘러싸인 공터에 한 가족이 점심식사 중인데 초등학생인 듯한 아이가 힘들어
입맛이 없는지 밥투정한다. 아빠는 생선 발라 얹은 밥숟가락 들고 도리질하는 아이 입을 조준
하느라 애 쓴다. 따지고 보면 그래도 이때가 즐거운 날이다. 바윗길 오르내리다 박석 깔린 길
지나 중청봉 사면 돈다. 대청봉은 다만 바라보고 읍할 뿐. 중청대피소도 멀다. 바로 소청봉으
로 향한다.
소청봉. 소청대피소 쪽으로 한껏 다가가 용아장성 봉정암 들여다본다. 희운각대피소 가는 길.
울퉁불퉁 돌길이 시작된다. 상전벽해다. 지난겨울 그 신나던 봅슬레이 코스가 들쭉날쭉한 바
위라니. 이따금 계단 길 나와 신선대 아래 천불동계곡 주변의 침봉석림 만물상 구경한다. 줌
인은 내 발로 다가가는 것. 자연히 발길 서둔다.
희운각대피소. 많은 등산객들이 쉬고 있다. 나도 여기서 점심밥 먹는다. 수도 옆 탁자 등산객
들이 버너 불 피워 삼겹살 구수한 냄새 풍기며 소주 마시는 통에 내 밥맛을 잃는다. 권주 한
잔 없다. 이따 속초 가서 삼겹살을 먹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런데 1인분도 주문 받던가? 다
람쥐가 떼로 돌아다닌다. 다람쥐가 수저만 들지 않았다. 두리번거리다 내 밥상머리에도 올라
덤빈다. 다람쥐가 밥도 먹고 라면도 먹는다.
희운각대피소의 내력을 새삼 알게 된다. 대피소 바깥벽에 쓰여 있다.
“한국산악회 소속 ‘제1기 에베레스트 원정대’가 히말라야 원정을 위하여 설악산 ‘죽음의 계곡
(옛 지명 반내피)’에서 등반훈련을 하던 중 1969년 2월 14일 계곡의 막영지에서 눈사태를 당
하여 전원(10명)이 사망하게 된다. 이 사고 이후 희운(喜雲) 최태묵(崔泰黙, 1920~91, 경북 청
도) 선생이 이곳에 대피소를 세우면 이러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본인의
사재를 들여 이 자리에 대피소를 건립한 것이다.”
공룡능선으로 든다. 무너미고개 ┣자 갈림길에 안내판이 있다. 요지인즉 공룡능선 가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란다. 마등령까지 5.1㎞. 거기서 비선대까지 3.7㎞. 다시 설악동 소공원까
지 3㎞. 8시간 넘게 걸린단다. 그러나 간다. 등로 잘 닦아놓았겠다. 나무에 야광등도 달려있겠
다. 그저 왼발 오른발 번갈아 앞으로 내지르기만 하면 될 일.
9. 울산바위
10. 천화대 범봉
11. 공룡능선, 오른쪽이 1,275m봉
12. 공룡능선, 1,275m봉 넘기 전
13. 공룡능선, 오른쪽이 1,275m봉
14. 공룡능선, 1,275m봉 넘기 전
▶ 마등령, 설악동 소공원
물 졸졸 흐르는 지계곡을 건너 슬랩을 철주 쇠줄잡고 오른다. 마주치는 등산객들이 다 저녁에
공룡능선을 탄다며 부디 조심하시라 걱정해준다. 다시 한 차례 떨어졌다가 쇠줄 잡고 긴 슬랩
오르면 신선대다. 바람이 무척 세다. 도열한 천화대 범봉, 1,275m봉, 나한봉 등의 첨봉은 교
악으로 미동 없이 무섭도록 침묵한다.
홀로 백두대간 종주 중이라는 등산객을 만난다. 08시 20분에 한계령에서 올랐다고 한다. 나
처럼 비선대로 하산할 예정이다. 몇 년 전에 위암수술을 받았는데 죽든 살든 백두대간을 타는
게 소원이었다고 한다. 열심히 산을 타다보니 위암은 완치되었고 건강이 종전보다 훨씬 더 나
아졌단다. 약으로 산을 간단다. 동행이 생겨서 반갑지만 보조 맞추기가 어렵다. 그분은 오늘
밤 속초에서 자고 내일도 산행할 것이라고 하여 급한 이는 나다. 앞서간다. 삶은 달걀과 두 개
남은 자두가 온전히 내 것이다.
옛길 리지는 출입금지라고 막았다. 덕분에 고민 덜었다. 뚝 떨어져 빙 돌아간다. 바닥 친 안
부. 샘물이 흐른다. 이제는 1,275m봉이다. 금줄 넘어 범봉 들여다보고 나서 쇠줄 잡고 슬랩
오른다. 협곡 너덜로 이어진다. 바람도 여기에서는 쉬어 가는지 잠잠하다. 덮다. 여태 잘 돌아
가던 선풍기가 갑작스런 정전으로 딱 멈춘 것 같다. 눈물 아닌 땀이 앞을 가린다. 긴다.
1,275m봉 아래 너른 공터. 바람골이다. 소름 돋게 시원하다. 내리고 오르고 시시포스적 고역
은 계속 된다. 일순 하늘이 어두워지고 사방 적막이 감돌더니 세찬 비바람이 몰아친다. 일제
히 평행사선 긋는 빗줄기가 장관이다. 안개는 온 길 갈 길 가린다. 이곳저곳 그만 기웃거리고
어서 내려가라는 뜻. 정덕수의 시 ‘한계령에서’ 그대로다.
저 산은
내게
이제는 내려가라 하고
서북주릉 휘몰아온 바람
함성되어
내 어깨를 떠미네
그래 가자하고 고개 숙이고 나한봉을 넘는다. 마등령이 한달음이다. 마등령에는 몇몇 등산객
들이 야영준비로 부산하다. 마등봉(1,326.7m) 오르기 전 갈림길에도 타프 치고 야영하려는
등산객들이 있다. 데크계단을 내린다. 마등령 샘터는 위쪽에서 쓸려온 자갈로 흔적 모르게 덮
였다. 약간 올라 금강문 지나기가 되다. 건너편 1,275m봉에는 눈발처럼 안개가 흩날린다.
마등봉 지능선 진입. 자갈길이다. 쌍장 짚고 절뚝이며 내려가는 등산객들을 앞지른다. 철계단
나오고 마의 너덜길이 시작된다. 비선대까지 0.7㎞, 장군봉 중턱 테라스에는 하강하는 산꾼
들이 자일을 늘어뜨리고 있다. 비선대가 가까워지고 무릎이 시큰하다. 어둑하다. 장군봉 우러
러 공수하고 비선대 무지개다리 건넌다. 와폭 물소리만 계곡에 가득하다.
길가 가게는 문 닫았다. 소공원. 내일 보름달이 먹구름 뚫고 둥근 얼굴 내민다.
(부기) 서울 가는 길. 소공원주차장에서 택시 타고 속초시외버스터미널로 가자고 한다. 속초
는 고속버스터미널과 시외버스터미널이 따로 있어 동서울로 가려면 시외버스터미널로 가야
한다. 시외버스터미널은 목우재 넘어 가니 시간과 요금이 크게 절약된다. 시내버스는 언제 올
지 알 수가 없다. 오늘은 대포항 주변일대가 차량들로 꽉 막혔다고 한다.
15. 공룡능선, 1,275m봉 넘기 전
16. 공룡능선 나한봉
17. 공룡능선 1,275m봉
18. 천화대, 왼쪽 멀리는 화채봉
19. 천화대 희야봉, 범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