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 식량 아끼려 군 장병들 '강제 외출'…
1957년 4월 6일 국회에서 야당이 "모 군부대의 '장병 강제 외출'에 관해 진상조사를 하자"고 주장했다. 토·일요일마다 장병들을 부대 밖으로 등 떠밀어 내보낸다는 것이다.(경향신문 1957년 4월 7일 자) 군인들은 늘 외출에 목말라 있는 법인데 외출이 왜 문제가 됐을까. 휴일마다 30~50%의 장병을 내보내 부대의 쌀 소비를 줄이고는 남은 쌀을 처분해 장교들이 쓰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샀기 때문이었다. "병사들이 뚜렷한 목적도 돈도 없이 외출·외박을 나가면 인근 주민에게 민폐를 끼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나라 살림이 어려워 국군 병사들이 배고픔을 겪던 시절의 일이었다.
◀ 위는 모 부대의 사병 '강제 외출'을 비판한 기사(동아일보 1957년 4월 11일 자). 아래는 1960년 논산훈련소 훈련병들이 면회 온 가족과 만나고 있는 모습(KTV 화면).
물론 군부대가 장병들을 너무 많이 외출시켜 문제가 된 일은 아주 드문 경우다. 그보다는 부대장이 외출을 엄격히 제한해 병사들이 어려움을 겪는 일이 많았다. 북한 무장 공비의 침투 등으로 군에 비상이 걸릴 때마다 장병들의 외출·외박·면회는 무조건 금지됐다. 외출한 병사들이 부대 밖에서 말썽을 일으켜도 한동안 외출이 얼어붙었다.
제1공화국 시절엔 선거철이면 "정치적 이유로 군인들 외출을 묶었다"는 논란이 일어났다. 1959년 6월 5일의 강원도 인제 민의원 재선거를 앞두고 40일간 이 지역 부대들이 장병의 외출·외박을 금지한 일이 대표적이다. 당시는 군 부재자 투표제도 실시 전이어서 장병들은 주둔 지역에 등록된 유권자였다. 인제군 유권자 3만6606명 중 무려 55%나 되던 군 장병이 외출 금지 때문에 후보들 연설을 못 듣는 사태가 일어났다. 병사들의 복지 문제를 넘어 참정권 침해 논란으로 번졌다.
당시의 야당 후보는 35세의 정치 신인 김대중씨였다. DJ는 "내 연설에 참석한 군인 수가 62명에 불과했다"며 불만을 표했다. 야당이 부대 인근에서 연설할 때 부대 안에선 불도저로 큰 소음을 내며 공사하는 일도 있었다. 군 당국은 "부대 내부 행사가 유세 시간과 우연히 겹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야당은 '지능적 부정선거'라며 이승만 정부를 비난했다.(동아일보 1959년 6월 12일 자)
역사적 부정선거가 된 1960년의 '3·15 대통령 선거'때도 장병 외출 금지 논란이 불거졌다. 야당이 강원도 군부대 밀집지역에서 '일당 독재 반대'등을 외치는 유세를 할 때마다 그 지역 부대들이 장병 외출을 금지했다는 주장이 야당과 언론에서 제기됐다. 야당은 3월 7일 국방부 장관에게 "사병들 투표권 행사 방해 말라"는 공한(公翰)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 시대에 대한 지나친 반작용일까. 오늘의 장병들이 받는 대접은 하늘과 땅만큼 달라졌다. 지난달부터 전군 장병들에게 평일 일과 후 외출을 전면 허용해 장병들도 환영하고 부대 주변 주민들도 경제에 활기를 더해주고 있다고 반기고 있다. 장병 인권 보장이라는 방향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전체 병력의 35%까지 내보내는 게 합당한 것인지 의문이다. 작년 조사 때 장병 외출 전면 허용을 반대하는 여론이 49%였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외출 허용 폭은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