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작은 보라색 제비꽃이
시무룩하게 말했습니다.
“그래, 그래,
여기는 흙마저도 부족해.
여기는 온통 부족한 것들만 가득해.
아무리 강인한 담쟁이라도
여기서는 뿌리를 내리고 하늘로 오르기 힘들 거야.
여기처럼 사방이 막힌 시멘트 벽 아래서는
아무리 용을 써도
담 너머 세상 구경 한 번 못하고
결국은 말라서 죽고 말테지.
게다가 여기는 뿌리 내릴 흙도 부족해.”
노란 애기똥풀이 말했습니다.
3
“그러니 처음부터 어디에 뿌리를 내리느냐가 중요해.”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한 자운영이 말했습니다.
“만일 내가 양지 바른 곳의
거름 밭에 자리를 잡았다면
정말 멋진 꽃을 피울 수 있을 거야.
온갖 벌들이 날아들어서 붕붕- 소리를 내겠지.
만일 내가 옆 골목의 빨간 벽돌담 아래에 있었다면
누군가 지나는 사람들이
더 넓고 좋은 곳으로 옮겨 심어 줄 테지.
그런데 지금 내가 어디 있는지 한번 보라구.”
자운영은 살짝 토라진 듯이 말을 마쳤습니다.
4
그러자 민들레 하나가 말을 했습니다.
“아니야,
우리는 비록 여기에 있더라도
우리 아이들은 저 담 너머로 날아갈 수 있어.
그때까지 힘을 내자고.”
또 다른 민들레가 말했습니다.
“그래, 그래,
그때까지 우리 힘을 내자고.”
5
그러자 그늘에 있던 할미꽃이 고개를 들며 말했습니다.
“자, 이제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겠니.
우리가 언제부터 여기서 살았는지 알 수가 없어.
아마도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도
이곳에서 살았을 거야.
우리는 이곳을 떠날 수 없어.
바람이 불지 않거든.
사방이 꽉 막힌 곳이야.
봄이 되면 우리는 꽃을 피우지.
노란 꽃, 빨강 꽃, 보랏빛 꽃…….
그러나 사람들을 그것을 모를 거야.
저 벽이 무너져 내리지 않는다면
이곳을 벗어나기는 어려워.
내가 이곳에 뿌리를 내린 지가
벌써 삼년 째야.
여기는 햇볕도 물도 아주 귀한 곳이야.
늘 그늘 속에 있다가
막상 해가 비치게 되면
그때는 물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곧 여름이 오고
큰 가뭄이라도 드는 날이면 견디기가 어려울 걸.”
모두 조용히 그 말을 들었습니다.
키 작은 보라색 제비꽃도
노란 애기똥풀도
자운영도 말이지요.
그 담은 너무 높았습니다.
그 사실을 안 순간 모두 슬퍼졌습니다.
6
꼬마 민들레도 슬퍼졌습니다.
무엇보다 힘든 점은
씨앗들이 저 높은 담을 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꼬마 민들레가 뿌리를 내린 곳은
담벼락 아래의 작은 틈새였습니다.
그곳에서 몸을 비스듬히 내밀고 있었던 것이지요.
흙도 부족하고 물도 부족해서인지
키는 더 자라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노란 꽃들을
꽃대마다 달고 있었습니다.
7
그렇게 봄날이 지나가고
드디어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었습니다.
한낮이면 뜨거운 열기로
담장 안이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여기저기서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꼬마 민들레도 너무 어지러웠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정신을 잃을 수는 없었습니다.
8
꼬마 민들레의 몸에도
벌써 두 송이의 씨앗이 생겨났습니다.
꼬마 민들레는
그 탐스러운 씨앗들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저 담을 넘는 날까지
기운을 잃지 말아야 해.
호오옷~
호오잇~
아니야, 여기서 끝이 나서는 안 돼.
호오옷~
호오잇~
꼬마 민들레는 밤이고 낮이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마지막 남은 기운을 냈습니다.
9
시멘트벽 너머엔 누렁소 할아버지가 살았습니다.
시멘트 담장을 넘어 오는
작은 흰나비가 소식을 전해주었답니다.
어느 날 누렁소 할아버지가
벽 사이로 난 작은 구멍으로 말했습니다.
아마도 이번 여름이
자신의 마지막 삶의 순간이라는 것을 알았을까요?
“꼬마 민들레야,
나는 내일이면 나는 팔려 갈 거야.
그러니 내가 마지막으로
너희들을 위해서 저 벽을 무너뜨려 줄게.”
“할아버지,
저 벽은 너무 단단해서 무너뜨릴 수 없어요.”
꼬마 민들레가 말했습니다.
“아니야,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야.”
그리고는 그 긴 뿔을 벽에 대고
무너뜨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시간이 지나도록
두 시간이 지나도록
시멘트 벽에 이마를 대고
밀고 또 밀었습니다.
10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누렁소 할아버지의 머리에 피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조금 쉬었다가는 다시 밀기를 반복했습니다.
마침내 다음날 아침이 되었을 때
그토록 단단하던 벽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가엾게도 누렁소 할아버지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11
눈부신 아침이었습니다.
아침 햇살과 함께 몸이 흔들려 왔습니다.
꼬마 민들레는 깜짝 놀라 눈을 떴습니다.
그래요,
그것은 바람이었습니다.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 바람이 불어와요.
드디어 할아버지가 해냈어요!”
그러나 누렁소 할아버지의 귀에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꼬마 민들레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습니다.
12
그 순간 강한 바람 한 줄기가
무너진 벽 사이를 휘감고 들어왔습니다.
꼬마 민들레는 온몸을 바람에 맡겼습니다.
씨앗들이 휘리릭~ 소리를 내면서
바람을 따라서 높이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저 멀리 둥실둥실
민들레 씨앗들이 날아갑니다.
꿈을 꾸는 듯 멀리 멀리 날아갑니다.
“잘 가거라. 나의 아이들아!”
꼬마 민들레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빈 꽃대를 들어 배웅하듯이 흔들어 댔습니다.
그것은 기쁨의 눈물이었습니다.
저 푸른 하늘 너머로 씨앗들이,
아니 수많은 꼬마 민들레들이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첫댓글 조선달 선생님, 아동문예로 아동작품활동을 시작하심과 등단을 축하드립니다.
남전 선생님, 소식 감사합니다.
저도 아동문예를 읽은 후 조선달 선생님께 축하 전화를 드리고 통화를 하였습니다.
다음 모임에는 오시겠다는 말씀도 해 주셨습니다.
조선달 선생님, 반갑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