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다석일지(2022년 12월 16일, 금요일, 흐림 / 24490일째)
종교를 넘어 진리파지의 시대
나는 태어나 지금까지 68년을 사는 한세대 동안 원시시대 신앙에서 초현실시대의 종교까지 모든 형태의 신앙을 경험한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종교 없이 살 수 없다는 생각에서 종교를 넘어 사는 삶, 더 나아가 탈종교의 삶을 경험하고 있다. 종교를 넘어 사는 영성의 시대를 맞이하여 가능하겠지만 이성으로 분별하고 따져 묻고 판단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서 가능하다고 본다.
다른 종교 전통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생각과는 좀 다르겠지만 나는 그리스도교 입장에서 그동안의 생각을 정리해 본다. 제도 종교의 교리와 신념체계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생각할 뿐만아니라 예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생각해 왔다. 30년 전의 사건이지만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한 감리교신학대학 학장이었던 변선환 교수는 교단 종교재판을 받고 목사 교수직 파면과 출교까지 당하였다. 이웃종교와의 대화를 주장한 선구자였던 변선환 교수는 아직도 신원회복이 되지 않은 상황이다.
나는 18세까지 교회교육에 사육되어 예수이외의 신앙은 우상숭배이고 타파해야할 대상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이 20세가 지나 교회의 가름침과 예수의 삶을 따르는 신앙이 다르다는 것을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알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목회자들의 삶이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무교회주의라는 말은 들어왔지만 내가 가깝게 하기에는 거리가 있는 신앙이었다. 함석헌이 ‘성서 입장에서 본 한국역사’라는 책을 써 기독교 내외에서 유명했지만 함 선생도 정통주의 입장에서 무교회 신앙을 따르다가 1950년에 이르러 성서 넘어의 신앙이야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책 제목을 ‘뜻으로 본 한국역사’로 바꾸어 펴냈다. 50년도 이전까지는 함석헌 선생도 유대주의 역사와 성서 안에서 생각하고 말해 왔다. 성서를 넘어선다고 말하면서도 책에서나 대화에서는 성서이야기를 예를들어 말하였다. 따라서 성서 내용을 모르거나 교회에 나가지 않는 사람들은 그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었다.
우리사회에서는 2000년대에 들어서 이웃종교와의 대화, 다양한 신앙 양태, 종교를 넘어 통종교적 삶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명상과 관상기도, 침묵과 영성생활을 하는 신앙인들이 많아졌다. 제도교회 신앙의 한계를 알게 된 사람들은 가나안 교회(안나가 교회를 거꾸로 사용) 모임을 갖고 더 나아가서는 영성시대를 맞이하여 탈종교의 시대의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하기에 이르렸다.
다석 유영모가 말하던 통종교적 신앙, 우리 문화 역사 안에 활동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이해를 통해 신학의 토착화 가능성과 한국신학, 우리말로 철학하기를 말하게 되었다. 천부경과 도덕경, 동경대전, 중용, 대학, 맹자 그리고 반야심경에 나오는 절대자 개념이 서로 통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하느님은 어느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 안에서만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나라 역사와 문화 안과 밖에서(within and out of culture) 그리고 문화 위에서(above culture) 역사하시는 우주적인 절대자(Cosmos Being)라는 것을 이해하기에 이르렸다. 결국 열린 마음으로 진리를 추구하고 절대자를 이해하여 진리를 파악하고 지키는 신앙, 즉 진리파지의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