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진氏(52)가 함북 회령 정거리 12호 노동교화소를 나왔을 때 보위원들을 그를 “진짜 영웅”이라 불렀다.
임씨도 한때는 잘 나가는 黨員(당원)이었다. 그러나 먹고 살기 어려워 탈북자 渡江(도강)을 돕다가 발각돼 버렸다. 하필이면 압록강 넘도록 도와준 사람이 국군포로였고 임 씨는 “장군님의 대외적 권위를 훼손했다”며 사형판결을 받았다. 死刑은 다시 13년 형으로 낮춰져 결국 7년을 옥에서 살았다.
2000년 초 교화소 시절엔 시체를 실은 차가 하루에 트럭 한 차는 나왔다. 그가 출소할 때도 하루에 두 세 명은 죽어나갔다. 허약(영양실조)으로 죽은 사람이 많지만 보위원에 맞아 죽거나 작업 중 죽어간 사람도 적지 않았다. 800명 정원에 1600명 정도 수감된 교화소에서 시체는 계속 나왔다. 그렇게 7년을 버티고 나오니 “영웅”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뻘건 당증은 떼이고 꺼먼 낙인이 찍혔다.
임 씨는 교화소에서 나온 뒤 ‘인민의 낙원’이라는 북한을 돌아보았다. 자연스럽게 그도 강을 넘었고 중국을 거쳐 한국에 왔다. 그때가 2009년이었다. 북한에서 미술가였던 임 씨는 시간 날 때 교화소 시절을 그림으로 기록해갔다. 생각하기조차 끔찍했지만 그건 마치 의무감이나 사명감 같았다.
임 씨가 그렸던 15장의 그림은 2년 뒤 한국인들의 마음을 흔든다. 몇몇 사람의 손을 거쳐 지난 2월 한동대 세이지(세상을 이기는 그리스도의 지성)가 인사동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개최한 ‘그곳에는 사랑이 없다’는 북한인권전시회에 게시된 것이다. 3월14일까지 삼청동 한벽원미술관에서 열리는 延長(연장) 전시회에선 그의 또 다른 작품도 전시될 것이다. 죽음을 이겨낸 7년이 우리의 굳어진 양심을 녹이는 셈이다.
며칠 전 기자와 만난 임 씨는 선하고 ‘슬픈’ 사람이었다. “장군님 권위를 훼손했다”는 죄 아닌 죄가 만든 시련 탓인지 타고난 성격 탓인지, 메모를 하면서 가슴이 미어졌다.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전시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우연히 찾았습니다. 가서 보니 작년에 제가 어느 분께 그려준 그림이 걸려 있더군요. 기뻤습니다. 아 이렇게라도 죽어가는 사람들의 고통을 알릴 수 있구나 싶더군요. 정말 기뻤습니다.”
지난 2월 전시회장을 찾은 2만5000여 명의 관람객은 임 씨의 그림을 보면서 북한에서 타고 있는 ‘지옥 불’을 보았다. 우리가 利己(이기)와 풍요와 안일에 젖은 사이 휴전선 이북은 황량한 감옥이 돼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었다.
임 씨가 있었던 노동교화소는 흔히 정치범수용소로 알려진 관리소보다는 나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금 북한은 정치범수용소와 노동교화소의 구분이 사실상 없어진 상태다. 노동교화소 역시 비법월경, 즉 탈북과 같은 죄 아닌 죄로 끌려온 이들이 갇히는 곳이 되었다.
“내가 있던 교화소에 가장 많은 죄명은 비법월경죄나 인신매매 같은 것들입니다. 그 다음은 迷信(미신)행위죠. 그리고 소를 잡는 것과 같은 도둑질이 있죠. 살인·강도 같은 범죄는 오히려 많지 않습니다.”
비법월경, 탈북은 2번 째 걸렸을 땐 6개월, 3번 째 걸렸을 땐 2년 이상, 4번째 걸렸을 땐 5년 이상의 중형이 가해진다고 한다. 임 씨는 “迷信행위”로 걸려들어 온 사람도 많은데 “주체사상 말고는 모두 미신이니 占(점)치는 것은 물론 기독교 신앙을 이유로 잡혀 온 사람도 상당수에 이른다”고 말했다.
“기독교 믿었다는 이유로 끌려온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기독교를 믿었다는) 얘기를 다른 수감자에 했다가 걸리면 독방에 끌려갑니다. 저는 다른 이유로 2번 갔었죠. 7일, 5일 동안 있어보았습니다. 거긴 지옥 중에 최악입니다.”
노동교화소는 ‘강한 노동으로 징벌하라’는 김일성의 교시에 따라서 세워진 곳이다. 정치범수용소는 수확 철이면 감자, 보리, 밀이라도 먹을 수 있다지만 임 씨가 있던 교화소 식사는 옥수수 강냉이와 배추·무 이파리 소금국이 식단의 전부였다.
“소금국 통에는 5~6 cm 모래가 가라앉아 있습니다. 배추·무 잎이라도 있는 경우는 괜찮은 날이죠. 맹물에 강냉이라도 먹으면 다행입니다. 교화소 안에선 이미 사람이 아니죠. 김일성·김정일 생일 날 아침에 나오는 쌀 밥 한 번이 유일한 영양식단입니다.”
임 씨가 있던 교화소에는 14~15살 된 아이들부터 수감돼 있었다. 먹을 게 없어 도둑질 한 아이들 등 다양했다고 한다. 탈북자들은 “정치범 교화소와 정치범 관리소, 경제범 교화소와 교양소, 집결소, 노동단련대를 지도에 표시하면 북한은 하나의 거대한 감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임 씨가 아무런 죄 없이 끌려온 것처럼 북한의 2400만 인민은 잠재적 囚人(수인)들이다. 그래서 그곳엔 사랑이 없고, 자유가 없고, 생명이 없다. 저 불쌍하고 가련한 同族노예들에게 우리가 쌀과 비료와 달러를 주면서 外飾(외식)하는 것은 僞善(위선)이기에 앞서 사악한 정권에 힘을 싣는 또 다른 악함이다.
우리가 북한에 줘야 할 것은 그래서 식량이 아니라 자유요, 생명이고 사랑이다. 북한의 죽어가는 영혼을 그린 임정진氏의 슬픈 눈빛, 애처로운 눈물 앞에 이곳에 사는 우리는 한 없이 부끄러웠다. 解放者(해방자)를 기다릴 저들의 절규가 귓가를 때렸다. (아래는 임정진씨가 그린 교화소 그림 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