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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생활 체험 학교를 준비하며..
모든 것은 주님의 뜻대로..
9일 기도를 시작하며 이 소중한 인연을 준비했습니다.
새삼스레 수체에 지원을 하게 되었던 이유는 저에게 수도 생활 체험 학교는 복잡한 지금 상황을 떠날 수 있는 좋은 계기일 것이라는 기대였습니다. 가끔 수도원이나 수녀원을 방문하면서도 그 곳에 푹 잠겨 보고 싶은 동경.. 어쩌면 그런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일주일에 걸려서 짐을 싸며, 모기약에 비상 상비약, 준비할 것을 메모해 두어 가며 일일이 다 챙겼습니다. 조가 배정되자마자 조명의 뜻을 한 번 찾아 보고, 미리 예습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안셀모 신부님의 글에 내용을 다 일일이 프린트하여 다이어리에 메모해 가며 읽어 보고, 혹여 복장이 잘못되지는 않을까, 노래를 못 외워서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필요한 걱정까지 하면서, 하루 하루를 맞이했습니다.
집을 떠나 수도원으로 도착하는 길까지, 묵주 기도도 하고, 기차에서 꾸벅꾸벅 졸기도 하며, 도착하기만을 기대했지요. 기차역에서 내려 많은 수체 식구들을 만나는 순간, '꽤 많네.. 생각보다 어색하네..'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제 기대감을 줄여 주지는 못 하였습니다. 그저 빨리 도착하였으면 하는 마음 뿐이었습니다.
8월 14일 입문의 날
수도원에 도착하여..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 가지,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모든 날,
주님 집에 사는 것이라네.
(시편 27, 4)
수도원에 도착하자, 제일 먼저 보인 것은 우리를 맞이해 주시는 환한 웃음의 수사님들과 카..메라였습니다.
사실 카페에서 평화 방송에서 취재가 나온다는 사실에 '나 뚱뚱한데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건 아닐까? 기도하는데 카메라가 앞을 지나다니거나 하면 신경이 쓰이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걱정도 한 아름 하기도 하였었지요.. 그래서 조금은 카메라를 피해 볼까 하는 마음에 빨리 접수를 하면서 자료집을 받고, 휴대폰을 꺼 수사님께 맡겨 드리고 피정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피정의 집 방문을 연 순간이 제가 이 수도원에 머물 것이라는 것을 인지한 첫 순간이었던 듯 합니다.
사실.. 처음 방 앞에 호수와 이름이 붙여져 있는 곳에 제 이름이 없어 다소 당황하기는 했지만, 금새 '아, 호수만 보면 되겠구나.' 하고 수긍하며 바로 짐을 풀어 놓게 되었지요..
나름 수도원을 많이 돌아 다니면서, 수도원식의 방 (침대, 책상, 세면대, 옷걸이만 있는 ㅋㅋ)에 익숙해 있다고 생각했지만, 늘 들어 갈 때마다 내 방과 다르기에 어색한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하지만 이렇게 피정의 집 방에 들어 와 짐을 풀곤 하면 '아.. 내가 일상을 떠나 온 게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하지요. 그제서야 왜관 수도원에 왔다는 것을 실감하며, 짐을 대충 풀고, 다시 수도원 구성당으로 갔습니다.
입회식과
수도원에 입회하여
하느님과 형제들 앞에서 자신을 봉헌하며,
수도승답게 살 것과 순명할 것, 정주할 것을 서원하게 됩니다.
입회식과
드디어.. 더부룩한 수염을 지니신 헐크 같이 생긴 원장 신부님 (저희 어머니가 사진을 보시더니.. 그.. 그렇게 말씀 하셨다는..)의 앞에 무릎을 꿇고 하얀 수도복을 받았습니다. 그 때 머릿 속에 든 생각은 ‘헉.. 옷 다 검정색으로 챙겨 왔는데 비치면 큰일인데.., 아, 이거 후드티인데’ 등의 지극히 인간적이고 엉뚱한 상상이었습니다.
수도복을 착복하면서, 마치 어린 아이처럼 들뜬 저였습니다. “와, 내가 수도복을 입어 보다니.. 이거 어떻게 입는 거야? 헉.. 영대가 작아~ 그래도.. 이런 걸 입어 본 게 어디야!!” 라는 생각을 하며 수도복을 입고, 자리에 앉고 나지 왠지 몸가짐을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착복 후에 스스로의 이름을 변화하고 싶은 것으로 적으라고 하셨을 때, 그동안 제게 필요한 것을 적었습니다. 그것은 ‘여유’ 였습니다. 일상 안에서 지치지 않을, 휴식을 할 수 있는,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여유를 저는 바랬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떠나 보내고, 아픈 일들과 혼란을 겪고, 제가 바라는 것과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과정에서 저는 혼란스러운 나날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저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지요.
그리고 나서 서원을 다짐하는 서약식을 하였습니다. 지금 이 곳에서 베네딕도의 정신대로 충실히 이 수도 생활 체험 학교를 살아 갈 것을 말입니다. 수도승의 삶을 따라 이 시간을 살아 보겠다는 서약을 할 때, 저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님, 주님의 말씀대로 저를 받으소서.
그러면 저는 살겠나이다.
주님은 저의 희망을 어긋나게 하지 마소서.”
라고 노래를 부르며 서원을 마쳤습니다. 서원을 마침으로써 제가 이 베네딕도 수도원의 (잠시 동안이긴 하지만) 구성원이 된 것입니다.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
사랑이란 존재 그 자체이다.
자기의 나약한 점을 보이길 두려워하지 않으며,
서로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풀벌레 소리와 풀내음이 진하게 퍼져 있는 이 곳 수도원에서 누군가와 등을 맞대고 서로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 사람이 나와의 친분이 있고 없고를 따질 필요도 없으며 그저 그 사람 자체로 얼마나 큰 축복이 되는지!!
그 과정이 끝나자 서로의 생각대로 서로를 밀어낼 수 있음을, 내가 아닌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가르쳐 주신 신부님의 말씀에 재미와 진한 여운을 받은 것은 두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수도원 견학
지금 이 곳이..
당신을 더욱 가까이, 더욱 구체적으로 따르려는
‘예수님의 제자’ 가 사는 곳입니다.
서울에 있는 분도 출판사에 자주 들렀던 저로서는 수도원에서 분도 출판사를 운영하는 것도 알고 있었고, 공예실 등 다양한 일들을 하고 계시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실제로 제 눈으로 그러한 공간을 보는 것은 매우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스테인드 글라스를 하시는 공간에서 요나 수사님의 소개를 들으며, 성물을 제작하시던 수사님(죄.. 죄송해요.. 미처 성함을 못 외웠어요. ^^:;)의 말씀을 들으며 그저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스테인드 글라스의 실물을 주님께 봉헌 드릴 수 없어 사진을 찍어 함께 봉헌드린다는 요나 수사님의 말씀과 일일이 수사님들이 만드신 고상과 찍어 만든 플라스틱 제품과의 차이를 말씀해 주시며 얼마나 많은 수고와 노력, 사랑으로 이 작업을 하시고 계시는지 말씀해 주시는 나이 든 수사님의 말씀에서 그저 단순한 노동으로서 이 일을 하고 계시는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도원 곳곳의 텃밭과 작업장, 나무들을 보며 자연과 함께 머무시는 삶 속에서 얼마나 즐거우실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저녁 명상 및 기도
Cantare amantis est! (노래는 사랑하는 사람의 몫이다.)
저는 성무 일도를 참으로 좋아합니다. 수도원 체험을 한다고 했을 때 가장 기뻤던 것은 아마도 매 시간마다 성무 일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제게 있어 성무 일도 시간은 아무런 생각을 할 필요 없이 주님을 위한 찬미를 외칠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러했기에 저녁 명상 및 기도 시간은 저에게 기대하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저의 기대보다 더 크게 채워졌습니다. 베네딕도의 찬미의 시간은 그레고리안 성가로 인하여 더욱 더 풍성해진 것 같았습니다. 수사님들의 성가 소리를 들으며, 악보를 띄엄 띄엄 읽으며 따라 부르려 노래를 해 보았지만 미흡한 저로서는 그저 허밍의 수준으로밖에 부르지 못하는 게 너무 아쉽기만 하였습니다. 찬미의 노래 소리가 이렇게 울려 퍼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웠던지요!
Lectio Divina
독서로 구하시오. 묵상으로 얻을 것입니다. 기도로 두드립시오. 관상으로 열릴 것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
아타나시오 신부님께서 강의를 해 주신 Lectio Divina 시간은 마치 저희 본당 신부님을 연상하게 해 주셨습니다. 직접 실습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어 아쉽기는 했지만, 주님의 말씀을 담을 수 있는 방법을 알게 해 주시고, 주님 앞에 머무르는 데 좋은 지표를 주셨습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성모의 노래가 Lectio Divina를 잘 드러내 주는 구절이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저도 모르게 ‘아,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옛 성현들의 그러한 노력과 마음에 제가 미치지 못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말입니다. 다른 것을 한다는 핑계로 더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으려는 저의 모습에 반성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방에 돌아가 밤에 저도 모르게 성경 구절을 찾아 입에 곱씹어 보았습니다.
제 마음이 주님 안에서 기뻐 뛰고 제 이마가 주님 안에서 높이 들립니다.” (1사무 2, 1-2)
식사 (침묵)
삶에서 가장 고귀한 성취는 침묵을 지키면서 하느님이 그 안에서 일하시고 말씀하시도록 맡겨 드리는 것이다.
(에크하르트)
침묵 식사는 예전에 들렀던 절의 스님들을 생각나게 하였습니다. ‘발우 공양’의 정신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 시간조차도 감사의 마음으로 온전히 바치고 주님이 주신 모든 것들을 욕심 없이 본인이 취할 만큼만 식사를 하는 시간..
미처 경험해 보지는 못하였지만, 성경 소구를 들으며 침묵으로 식사를 하는 수도원에서도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시간이 되지 않겠습니까!
다만 같은 조의 우준 안토니오 형제님이 체해서 아픈 것이 다소 걱정이 되었었지요..
끝기도
만일 그대가 온전히 진실하게 기도한다면, 그대 안에 깊은 신뢰심이 생길 것이다.
그러면 천사들이 그대를 동반할 것이며,
그대에게 모든 피조물의 의미를 알려 줄 것이다. (기도 80)
(안셀름 그륀, 사막을 통한 생명의 길 중)
끝기도를 하러 가면서 저는 앞서 가는 수체 형제 자매님들의 뒷모습에서 수도자와 같은 모습을, 그리고 이 곳이 천국인 것 같은 마음을 저는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수체를 다녀 오면서 제 카메라에 유독 뒷모습들이 많이 찍혀 있었던 까닭은 어쩌면 제 마음에 천사들의 뒷모습으로 느껴져서 였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하루를 마치는 끝기도 시간을 기쁘게 맞이했습니다. 오늘 하루를 주님께 봉헌드리는 이 시간 속에서 저는 여유와 안정이라는 것을 얻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마 이 때부터였을 것입니다. 카메라나 주변에 어떤 것들이 신경이 쓰이지 않게 된 것들이..
참회 예절과 고해 성사
하느님, 당신은 이 고해를 통해 저에게 모든 것을 내려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축복 받은 날입니까
(샤를 드 푸코, 고해 성사 후)
참회 예절과 고해 성사 시간은 저에게 가장 기쁜 시간이었습니다. 아.. 주님의 사랑은 얼마나 크고 놀라우신지요.. 저는 참회 예절을 통하여 저의 지난 시간과 마음을 되돌아 보고, 입 밖으로 내어 놓기 싫었던 내 나약함과 부끄러움을 내어 놓았습니다. 수사님께서 주신 나의 삶의 여정을 되돌아 보며를 적으며, 저는 저를 다시 한 번 돌아 보았습니다.
나의 삶의 여정을 되돌아 보며를 제출하려고 하자, 색다른.. 반전 아닌 반전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뒷 면에도 다른 항목들이..^^:;
처음 자기 소개서를 작성할 때부터 느꼈던 것이지만, 정말 Detail한 성찰 시간이었습니다. 나 뿐만이 아니라, 내 가족, 그리고 내가 영향을 받은 사람들까지 두루 두루 생각하며 참회를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삶의 여정을 되돌아 보며를 적으면서 제 마음도 조금씩 정돈되어 가고 있었던 듯 합니다.
복도에 앉아 고해 성사를 기다리는 것은 제게는 참으로 긴 시간이었습니다. 그저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눈 앞에 성모님께서 보였습니다. 성모님을 바라 보며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불현듯 성모님께서는 제 상처를 안아 주셨습니다.
성모님의 옷자락이.. 그 옷자락이.. 마치 제게 저 옷자락만 만져도 제 모든 아픔이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습니다. 계속 만져도 되나, 만져도 되나 하다 생각을 하고 있는 순간, 제 머리 속에 하혈하는 여인의 믿음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저 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라는 그 여인의 믿음이 제게 다가 왔습니다. 어떤 것을 요구할 필요도, 바랄 필요도 없음을.. 주님의 곁에서 있는 것만으로도, 주님께서 함께 하여 주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저는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들어가 고해 성사를 바치고, 신부님께서 “뭐, 더 말할 거 있어?” 라는 말을 하시는 순간 저는 성모님의 가르침을 내어 놓았습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나 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
내게 베푸신 그 모든 은혜를.
구원의 잔을 들고서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네.
주님께 나의 서원들을 채워 드리리라.
(시편 116, 12-14)
고해를 마치고, 덤벙대고 주의 깊지 않은 저는 수도원에서 피정의 집을 오는 길을 미처 기억하지 못 하고 공사장에서 일하시던 형제님들께 길을 여쭈어 보고 랜턴으로 비추어 주시는 길을 걸어 피정의 집에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씻고 자리에 머물다 그냥 누우면 시트가 젖을 것 같아 선풍기 바람에 머리를 말리며 그 시간을 보내는 겸 성경을 펴고 가슴에 와 닿는 구절을 다이어리에 메모해 두고 그 날의 하루를 마무리하였습니다.
8월 15일 누림의 날
아침 기도 & 독서 기도
Gustate et videte quoniam suavis est Dominus
(보고 맛 들여라, 무릇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를)
아침이 되고 또 다시 수도복을 입는 순간..
순간의 게으름으로 인하여 수도복의 무게와 의미를 음미할 시간도 없이 간단하게 준비를 하고 성당으로 갔습니다.
아침 기도를 하면서 그제서야 여러 수사님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정말 저는 주위를 잘 보지 못 하는 사람인가 봅니다. 나이 어린 수사님부터 나이 많으신 수사님들, 모든 수사님들이 함께 어울려 기도를 드리는 이 시간이 저에게는 너무나도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대가족이 한데 모여 어울러 살 수 있다는 것도 주님께서 함께 하여 주시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Centering Prayer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 안에서 나 자신만이 아니라 그 분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십니다.
그 때 우리의 무는 그 분의 전부가 됩니다.
(토마스 머튼, 묵상의 능력 중)
아… 안셀모 신부님께서 가르쳐 주신 Centering Prayer 시간.. 마음을 주님께로 한데 모아 머무르는 것.. 그런데..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졸았습니다. 그래요.. 졸았어요.
그래도 여러 형제 자매들과 하느님 앞에서 머물면서 졸았답니다. 뭐.. 휴식이 필요해서 존 걸 거예요.. 분명.. (변명인 걸 압니다.)
그 동안 제가 얼마나 기도를 게을리 해 왔었는지, 얼마나 제 의지가 나약한 지 여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속으로 ‘앞으로는 이런 일은 없도록 해야지..’ 하며 기도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새삼스레 마음에 담았습니다.
아침 식사
아침 식탁에 앉았습니다. 밥상 위에는 수많은 생명들이 있었습니다. 쌀, 배추, 무, 당근, 고추, 마늘, 콩, 참깨, 오이, 감자, 상추 등. 이 생명들이 내 생명을 위하여 소리 없이 자신을 내어 주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나와 더불어 모두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이기에 분명 내 형제 자매임에 틀림없습니다. 형제요 자매이기에 기꺼이 나를 위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자신을 내어 준 것입니다.
(브라이언 피어스, 동행 중 )
아침 식사 시간에는 어제와 다른 방법을 도입했습니다. 반찬을 돌리는 게 불편하다는 생각에 다른 방법을 도입했습니다만, 역시 시행 착오.. 모두가 식탁을 한 바퀴 도는 바람에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되었지요..
그래도 그 시간은 서로 담소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식사를 하기 시작하였답니다. 우리 우준 안토니오 형제님은 아직도 속이 안 좋아서 별로 식사를 하시지 못하긴 했지만 말입니다..
Pax Benedictina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1요한 5,4)
“저는 이야기를 재미 있게 하지 못 합니다.” 라는 원장 신부님의 말씀으로 강의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제가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지극한 인내로 형제들의 약점을 참아 견뎌 사랑으로 감싸고 수용하며, 노약자들을 배려하는 정신을 가지며, 타인에게 탓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탓을 강조하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제가 가장 못 하는 세 가지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쭈욱 글을 쓰면서 적지는 않았지만, 이 수체 기간 동안에도 제가 얼마나 많은 투정을 벌였던지요. ‘저 사람은 왜 저러지? 왜 이렇게 불만이 많지? 왜 이렇게 말이 많지? 왜 다들 제각각이지? 왜 이렇게 불편하게 하지?’ 등 등의 불평과 투정 말입니다.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 와 다시 한 번 되돌아 보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갈 수 있는 작은 일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곤 합니다.
저는 투덜이 스머프입니다. 입만 열면 투덜 투덜 한다는 것을 제가 알면서도 고치지 않았던 제 모습이 얼마나 부끄러웠던지요.. 굳이 수도승이 아니더라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의를 통하여 다시 한 번 가슴으로 품어 가게 되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
그 분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는 구원의 빛 안에서 우리의 보편적인 어머니가 되십니다.
(성 베르나르도의 권고 중)
아,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이 공간에 충만한지요. 미사가 시작되고 이 시간을 맞이하면서 많이 헤매기도 하였지만, 우리 주님의 사랑을, 성모님의 사랑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많은 신자들과 수체 체험자들, 수도승들이 함께 하는 이 공간에 평안이 머무르고 있는 듯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저희에게 평안을 허락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저희에게 찬미의 노래를 허락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시간입니까!! 이 얼마나 즐거운 시간입니까!! 이 얼마나 설레는 시간입니까!!
대축일 미사를 지금 이 곳에서 머무르며 맞이하는 것은 너무나도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점심 식사
맛있는 고기가 나온 점심 식사 시간이었습니다. 뭐.. 그만큼 많은 일을 하라는 것이라는 이야기들도 있었고, 상아 안젤라 자매님과 유정 안젤라 자매님의 멋진 성대 모사까지 재미 있는 식사 시간이 되었습니다. 활발한 바오로 형제님도 재미 있으셨고, 이제 모둠 식구들끼리 대화도 조금씩 활발하게 시작한 식사 시간이 되었지요..
노동 체험
인간의 노동은 ‘그리스도 십자가의 작은 몫’을 짊어지는 일이다.
그러하기에 노동 자체를 사랑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1995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어록 중에서)
제가 고대하고 고대하던 시간, 노동 체험 시간이 돌아 왔습니다. 논이나 밭이면 좋았을 텐데 노인 마을로 간다고 해서 안에서 일을 하나 보다 하는 생각만 했지요.. 수사님들의 사복 차림에 충격을 입고 놀래기도 했습니다.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요.
야곱 수사님의 ‘냉정하고 cool하게’ 의 정신 덕분에 요셉 형제님이 논에 들렀다가 다소 조금 늦게 오셔서 저희가 하는 일이 매우 힘든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던 작은 에피소드도 있었답니다.
저희 모둠을 두 조로 나뉘어 청소와 어르신들을 목욕 시켜 드리는 조와 벌초를 하는 조로 나뉘었습니다. 저는 벌초를 하는 조이었지요. 예전에 벌초를 구경했던 경험 탓에 다소 수월하게 벌초를 시작했습니다.. 그.. 그렇지만 그런 저에게도 신기한 경험이었답니다. 햇빛이 따갑게 내리쬐는 날 벌초를 하는 곳에서 이렇게 다양한 식물을 바라 보는 것도 색달랐지요. 분명 많은 분들이 도와 주셨을 텐데도 중간 중간 버섯도 발견되고, 예쁜 꽃도 발견되고, 개미, 각종 벌레들도 구경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노인 마을에 머무시는 할머님들께서 저희와 같이 이야기를 하고 싶으시다고 하셔서 잠시 담소도 나누었습니다.
신나게 벌초를 마치고 나서 원장 수사님께서 저희와 같이 이야기를 나누어 주시고, 간단하게 노인 마을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이제 막 울고 있는 예쁜 강아지들도 구경시켜 주시고, 짚더미 위로 강아지를 살짝 던지셔서 다른 자매님들이 놀란 것도 어쩌면 하나의 경험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 감사하게도 다시 오면 기쁘게 맞이해 주시겠다는 말씀도 해 주셨습니다. 또. 사무실에서 양념된 김치와 음료수를 내어 주셨고, 카메라 팀이 들르시면서 막걸리와 아이스크림을 주셔서 감사히 나누어 먹었습니다.
더운 날씨에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지만, 이 작은 노동과 삶 속에서 주님이 함께 하고 계시다는 걸 느끼고, 이러한 노동이 우리와 모두를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해 주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룹 작업 (체험 나눔)
모든 인생이 특별할 수만은 없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늘 함께 해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바라 볼 줄 아는 법을 배우는 것!!
체험을 나누며 친교의 밤에 발표할 것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주제는 “하느님의 평화를 나와 나의 주변에 실현하기 위해 나는 어떤 것을 해야 하는가?” 였습니다.
그런데 저희 모둠은 너무 Idea Bank가 많아서인지 서로의 나눔을 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하나로 모으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나눔을 지켜 보시던 야곱 수사님과 봉사자 미카엘라 자매님의 도움으로 곁가지를 살짝 살짝 쳐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도 아직도 무엇을 해야 할 지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지요..
저녁 기도
제 기분에 맞는 데에서만 기도할 수 있는 영혼은 자주 기도할 수 없다.
이런 사람은 제 고장 책 밖에 읽지 못 하는 사람처럼 되고 만다.
(십자가의 성 요한, 잠언과 영적 권고 중)
저녁 기도는 저한테는 이번 수체 중 가장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수도복을 입으면서 에어컨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의 기도라니.. 유독 땀을 잘 흘리는 저로서는 땀으로 범벅인 시간이라 집중이 조금 흐트러지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의 수도자들은 선풍기나 에어컨, 혹은 소음에 노출된 순간에도 기도를 드릴 수 있었는데 왜 나는 아닐까?’ 그건 제가 그 분만을 바라 보는 데 서투르기 때문일 겁니다.. 공간과 시간이 모두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제 욕심 때문이었을 테지요..
그룹 나눔
미처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조들이 많은 까닭에 그레고리안 성가 배우기 시간은 아쉽게도 없어지고, 그룹 나눔이 계속 되었습니다. 헤메고 헤매다 저녁 식사가 목전에 다가 오자 겨우 전지에 저희 주제를 적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희 조의 나눔은 난항을 거듭했습니다. 시간이 다가 올수록 마음은 급하지만, 어떻게 진행이 될 지 한 치 앞도 모르는 상황이었지요..
저녁 식사
저녁 식사 시간은 늦게 도착한 까닭에 급하게 식사를 마치었지요. 아직도 그룹 나눔은 남아 있고, 해야 될 것이 많이 남아 있었음에 조바심이 남아 있었지요. 그래도 맛있는 저녁 식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룹 나눔
정전으로 인하여 에어컨 설정이 바뀌는 바람에 끝기도 시간이 그룹 나눔 시간으로 바뀌어 급하게 발표를 할 것들을 다듬었습니다. 아직 아무 것도 제대로 정하지 못 했던 저희 조는 연극을 급하게 정하고, 배역을 나누는 것도 겨우 겨우 시간에 맞추고, 대사는 모두 애드리브로 하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긴박감이 흘렀던 시간이었습니다. 다가 오는 시간의 촉박함이라니.. 심지어 친교의 밤을 가지기 위해 구성당으로 가는 길까지도 자신의 역할이 헷갈리거나 순서를 헷갈려서 성당 밖에서 급하게 순서와 간단한 스토리만을 정하고 마치었습니다.
친교의 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루가 6, 23)
친교의 밤이 시작이 되고, 즐기는 마음으로 이 시간을 맞이하였습니다. 물론 미처 마무리되지 않기는 하였지만, 이상하게도 걱정은 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여 주시는 이 시간이 잘 마무리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모둠의 발표가 시작되자마자 뛰어난 완성도에 걱정을 하는 모둠 식구들에게 괜찮다 이야기해 주며, 야곱 수사님의 얼굴을 살짝 보자, 발표가 끝나면 끝나실수록 급속도로 힘들어 보이시는 것이 연극 발표가 모두 끝나고 나니 2살은 늙어 보이시는 모습에 저희 모둠 식구들 모두 웃으며 긴장을 풀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저희가 너무 긴장을 해 일부러 저희를 위하여 미리 선수를 치신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무 것도 완벽하게 준비된 것은 없었지만, 연극은 무사히 끝났습니다.
캐릭터에 너무 적합한 애드리브를 하신 야곱 수사님, 야곱 수사님의 대사에 급 당황하셨던 우리 예쁜 미카엘라 봉사자님, 막 걱정에 헤매더니 무대에 올라 가 180도 변신한 베네딕도 형제님.. 베네딕도 형제님의 선전에 당황하시어 본인이 생각한 대사가 아닌 다른 말씀을 해 버리신 안젤라 자매님. 그림을 너무나도 예쁘게 그려 주신 로사 자매님, 왜 이렇게 일찍 마이크를 뺏어 가냐고 하셔서 저를 미안하게 하셨던 세레나 자매님과 스콜라스티카 자매님, 저와 함께 모금함을 드는 역할을 하는 바람에 대사가 없어서 죄송했던 요셉 형제님, 불량 아이들을 열심히 연기하느라 힘드셨던 상아 안젤라 자매님과 우준 안토니오 형제님, 본의 아니게 비보이를 하느라고 고생했던 토마스 아퀴나스 형제님, 착한 아이들을 연기하셨던 부모보다 연상이신 안토니오 형제님과 레지나 자매님, 어쩌다가 이야기를 꺼내셨으나 이야기에 없었던 경비 역할을 하시느라 수고하셨던 라파엘 형제님, 해설자가 할 역할이 별로 없었다고 하셨지만 저희 조의 발표를 너무 멋지게 해 주신 바오로 형제님 모두 너무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이렇게 한 분 한 분의 노력과 주님의 자비로 무사히 연극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다른 조의 연극 또한 매우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어쩌면 그렇게도 많은 것을 준비하고 완성시키셨는지 참 대단한 수체 식구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이사야 수사님의 여자 친구 분장은 잊을래야 잊을 수 없을 듯 합니다.
박해일 형제님 (현직 회장님)의 총평과 심사 위원의 시상에 요셉상을 받고, 제일 처음 주셨다는 이유만으로 6등을 했다고 급하게 우울해한 것도 아주 잠시, 저희 모둠 식구들과 복불복 사다리를 통해 치킨을 받고 급하게 up된 저희는 다른 모둠도 마찬가지였지만 서로가 가진 음식을 함께 나누어 가며 즐거운 친교의 밤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노래로 찾는 사람들과 함께 광란의 밤을 보내며 이 시간을 즐겁게 나누었습니다. 야곱 수사님의 에어컨 앞 춤(이라고 해야 하는 게 맞을지는 모르지만) 또한 절대 잊혀지지 않을 듯 합니다. 자료로 남기지 못한 게 너무나도 아쉬울 정도로 말입니다.
피정의 집으로 돌아 와 뒷풀이 시간에는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은 저희 모둠 식구들끼리 모여 상으로 받은 것들을 꺼내 보며, 누구에게 선물을 주나 고민을 하다가 정진 조의 정진 베네딕도가 훌륭한 성직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책을, 저희를 인도해 주신 마음에 감사를 담아 야곱 수사님께 녹차와 찻잔을 드리기로 하고, 사담을 나누며 편지를 쓰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 갔습니다. 특히 안토니오 형제님의 “진규형, 언제 와요?” 는 저희 모둠 식구들이라면 누구든지 잊지 못할 기억일 것입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너희는 맛보고 눈여겨 보아라.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지! 행복하여라. 그 분께 피신하는 사람 (시편 34, 9)
숙소에 올라 와 씻고 하루를 되돌아 보았습니다. 낮에 필기했던 내용들을 다시 한 번 깔끔히 정리하고, 성무 일도 시간 중 마음에 와 닿았던 구절을 찾아 메모해 두고 다시 한 번 돌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즐거운 하루를 맞이했음에 기쁘게 많은 이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음에, 그리고 지금 여기 있음에.. 벅찬 기쁨을 다시 한 번 곱씹으며 하루를 마무리하였습니다.
8월 16일 나눔의 날
아침 & 독서 기도
간밤에 늦잠을 잔 까닭에 기도 시작 8분 전 기상, 정말 급하게 옷만 입고 뛰쳐 나와 기도를 갔습니다. 얼마나 급하게 옷을 입었는지 티가 안에서 2겹으로 눌렸는데도 모르고 있었다지요.. 기도 시간에 갑자기 이상하게 입은 옷에 신경이 쓰이는 것을 가다듬느라 얼마나 당혹스러운지 모릅니다. 다시 한 번 여러 수사님들이 매일 매일 이 시간에 일어나셔서 기도를 하시는 모습이 위대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Centering Prayer
아침 기도 시간에도 옷이 신경이 쓰여 몸둘 바를 몰랐는데 기도 시간이야 오죽했겠습니까..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던 게 바로 어제인 게 아니라 1년 전이었던 것처럼 졸고, 옷에 신경을 쓰고 참으로 부끄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졸다 일어나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고 잠시일지라도 집중해 기도를 하려고 노력을 하려 해 보았습니다. 그러고 나니 어느 새 기도 시간이 끝나 있고, 제 정신은 잠의 세계에서 돌아 와 있더라구요..
아침 식사
아침 식사 때는 저희 조의 친분을 과시라도 하는 듯 열심히 수다를 떨고, 어제 있었던 일을 나누면서 즐겁게 식사를 하였습니다. 이 식사 시간은 전날 결정한 내용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의견을 물어 보고 이야기를 하며 많이 웃게 해 준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변화되고 싶은 것들
저는 당신의 향기를 맛보았고 이제 그 향기를 목말라 하나이다.
당신은 저를 어루만져 주셨고 저는 당신이 주시는 평화에 싸여 불타오르나이다.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중)
베네딕도의 평화 안에서 변화가 된 것들과 변화하고 싶은 것들을 적으라는 말씀에 저는 잠시 고민을 하였지만, 어렵지 않게 이것들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이 곳에서 제가 느끼고 배운 것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베네딕도 수도원에 와서 여유와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 배려, 나눔,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저를 머무르게 하였습니다. 벅차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들을 품으며 믿음을 배우고, 주님의 뜻을 들으려 노력하고, 한 번 더 배려하며, 필요한 것 이외의 욕심을 버리고, “지금 이 순간”을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알고자 노력할 수 있도록 변화될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며 사는 방법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라.
온 세상이 너를 거부한다 해도 너는 나의 것이며 나는 너만의 것임을 잊지 말아라.
(브라이언 콜로디척 신부, 마더 데레사, 나의 빛이 되어라 중)
아빠스님의 강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스승의 가르침이 얼마나 위대하고 소중한 것인가를 알게 해 주셨습니다. 자연을 사랑하고, 약한 이를 위하여 언성을 높이시며, 불안하고 교만한 이들을 위하여 쓴 소리를 하실 수 있는 스승, 아빠스님이셨습니다.
그 분은 내 마음의 성소에 문을 두드리셨고, 그 강의 중에 제 마음도 넘실 넘실 흘러 넘쳤습니다. 사랑이 매우 기쁜 마음으로 주변으로 조금씩 전염이 되어 가듯, 아빠스님의 마음도 조금씩 제 마음 속으로 채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렇게 멋진 강의를 열정적으로 해 주시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주일 미사
그레고리안 성가로 또 다시 미사를 올립니다. 주님 사랑을 제가 가슴에 담아 고이 간직할 수 있기를.. 여기 있는 모든 이들과 이 자리에 없는 모든 이들에게도 주님 사랑이 충만하기를.. 기도 드렸습니다. 제가 받은 것들을 내어 드릴 수는 없지만,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내 버리지 않으시고, 그 곁에서 어루만져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기를 빌었던 것 같습니다.
기념 촬영
기념 촬영은 너무나도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사진 밖에 안 남는다지만, 소중한 인연은 가슴에 남습니다. 사진은 그 인연과 그 시간들의 기억, 느낌들을 다시 한 번 회상시킬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되어 주는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에게 이 시간은 소중한 인연입니다. 이 인연이 너무 소중하기에, 이 시간들을 잊고 싶지 않기에.. 고등학교 3년 동안 단체 사진 외에 사진을 잘 찍지 않던 저도 열심히 사진을 찍는 것에 동참하였습니다.
이 시간은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즐겁게 웃으며 사진을 찍고, 여기 저기 마치 제가 고등 학교 수학 여행을 온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조별 작업
마지막 조별 작업은 수도복을 벗고 이루어졌습니다. 불현듯, 안젤라 자매님의 말이 떠오릅니다. “이거 주시면 안 되나?” 하시길래 제가 “집에 가서 입으실 수도 없잖아요.” 라고 말씀 드리자, “잘 다려서 기념으로 갖고 있거나, 정 뭐하면 겨울에 잠옷으로 입죠.” 라고 하시더라구요..
이제 수도복을 벗는 것이 어색할 만큼 며칠 사이에 더위에 고생도 하였지만 정도 든 수도복을 벗는 느낌은 홀가분하기도 하였지만, 한 편으로는 서운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짐을 싸고, 열심히 묵주를 만드는 데 집중을 하다가 갑자기 야곱 수사님의 한 마디에 저희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저희는 주소록은 다 썼나요? 뭐.. 글 써 주고 (롤링 페이퍼) 이런 거 안 하나요?”
그러자, 다들 그제서야 생각이 난 것처럼 “아, 써야지요.” 라고 말하면서 시작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주소록은 급하게 한 부만 적어 복사를 하기로 하고, 롤링 페이퍼를 급하게 쓰기 시작하였지만 너무 늦게 시작을 하는 바람에 저희가 제일 늦게 파견 예식에 들어 갔음에도 불구하고 미처 롤링을 채 완성도 하지 못하였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물 증정식도 하였습니다. 정진 베네딕도에게 모두의 애정 어린 말이 적혀 있는 책을, 수사님께도 우리 모두가 한 마디씩 적은 편지와 선물을 드리고 급하게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미 많이 늦어 있었습니다만..)
파견 예식
주님,
감사하는 마음에서 생겨난 생생한 평화를 이웃에게 나누어 주게 하소서.
하느님께서 주신 평화의 그윽한 미소를 통해 세상에는 은밀히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이웃이 알게 하시고,
평화의 간결한 말을 통해 인간의 삶에는 청결한 진실이 있음을 이웃이 알게 하시며,
평화의 투명한 침묵을 통해 인간의 영혼에는 신비한 음향이 있음을 이웃이 알게 하소서.
(기도가 필요한 날에 중)
파견 예식은 돌아 오지 않았으면 하는 아쉬움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느꼈던 것, 되돌아 보았던 것, 서약해 놓았던 것을 되돌려 받으며, 이 수체 기간이 끝났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과 책갈피를 뽑으며, 이 수체로 인하여 얻은 것, 그리고 앞으로 생각할 것들을 마지막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
책갈피를 뽑으며 하나는 자신이, 하나는 자신이 사랑하거나, 용서해야 할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신 신부님의 말씀이 귓가에 맴돕니다. 책갈피 내용이 이해가 안 되어 한참을 고민하며 생각한 것은 접어 두고 말입니다. 다른 이들의 말에 귀담이 듣고 침묵하려는 노력과 세상에 소금이 될만한 꼭 필요한 말들을 나누고, 주님의 뜻에 따라 순명하는 삶.. 을 다시 한 번 다짐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서로와 서로를 뜨겁게 안으며, 감사와 찬미를 나누고, 마음과 마음을 부딪혔습니다. 이 헤어짐에 아쉬움을, 그리고 이렇게 좋은 인연의 감사함을 뜨거운 포옹으로 서로에게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비록,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한 식구로서, 함께 하였던 우리의 사랑을 나누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일상으로 돌아 와서
우리는 하느님께 피어 오르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 2코린 2, 15)
혹여 기차 시간을 맞추지 못할까 불안하여 너무나도 급하게 서울을 올라 오느라, 파견 예식을 마치고 짐을 가지고 급하게 나와 기차역으로 향하였습니다. 멀리서 손을 흔들어 주시는 신부님과 수사님들, 며칠 동안을 함께 한 수도원을 뒤로 하며 그 곳을 떠났습니다.
집에 돌아 와 신나게 어머니께 사진을 보여 드리며 수다도 떨고 책갈피를 함께 나누고, 그냥 “아, 즐겁게 놀러 갔다 왔다!” 라고 생각하자고 생각하고 잠을 청하였습니다.
하룻밤이 지나자, 수도 생활 체험 학교를 보내면서 더 많은 것을 느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준비를 하면서 많은 기대를 하였지만, 오히려 제게 그 기대는 장애물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기대하고 상상한 것과 비교를 하면서 보낸 시간들.. 그래서였을까요? 오히려 하루 하루가 지나면 지날 수록 미처 알아 보지 못 했던 주님의 사랑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제는 하루 종일 입가에 “주님, 제 입이 주님 찬미를 전하오리다.” 라는 말이 맴돌았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바라 보던 그 며칠 간의 마음이 일상에 돌아 와서도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기 때문일 터이지요, 그러더니 오늘은 안셀모 신부님의 새 이름이 하루 종일 머릿 속을 맴돌았습니다. “있는 그대로” 지금 이 자리에서, 이 모습 그대로 함께 하시는 주님을 잊지 않기를.. 다시 한 번 곱씹고 또 곱씹어 봅니다.
보통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잊혀지는 것이 옳지만 이상하게도 수체 후에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주님 향한 찬미와 생각들이 곱씹어지고, 수체에 대한 기억이 흐릿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머릿 속에서 떠오릅니다. 이 수체 기간 동안 여러 인연들과 프로그램, 수도원의 기도 속에서 제가 인식하지 않았든, 인식하였던 간에 많은 기억과 추억으로 제게 남아 있게 된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이 시간을 허락하여 주신 베네딕도 왜관 수도원 공동체와, 봉사자님들, 저와 함께 이 시간을 나누어주신 28차 수체 식구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제게는 주님 향한 마음의 작은 이야기가 됨과 더불어 마음의 안정, 여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쓰다 보니, 길어 졌습니다만, 차마 너무 길어 편집을 할 엄두가 안 나.. 그냥 올립니다. 두서 없는 이야기이고 말재주가 없어 재미 있거나 잘 쓰지도 못 하였지만, 그냥 웃으며 넘어 가 주시길 빌어 보며.. (너무 길다고 미워하지만 말아 주세요!!)
다들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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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주님의 평화가, 사부 성 베네딕도의 평화가 늘 소화 데레사님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이 시간에 이 귀한 글을 읽을 수 있음이!!!
감사합니다. 주님 사랑 안에서 머무시는 하루가 되시길 저 또한 기도합니다.
우리들 모두~ 하느님 사랑과 일치 성 베네딕도의 평화의 옷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축복받으셔요^^ 여정동안 우리들을 위해 묵묵히 기도하고 일치해주신 우리 수도원 아빠스님 신부님들과 수사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소중하고 귀한 글 너무너무 멋지고 감사합니다! 기쁨과 사랑평화 많이 지내셔요♬ pax benedictina~^^
축복까지..^^ 감사합니다. 늘 "있는 그대로" 사랑을 나누면서 지내시는 하루하루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제가 놓치고 있던 부분까지 상세히 얘기해주셔서 다시금, 지난 시간들을 떠올려보았답니다^^ 너무 감사해요~~ 그리고 소화 데레사 자매님 덕분에 저희가 많은 도움을 받았답니다!!! 앞으로도 기도모임이나, 수도원에서 다시 뵙길 기대할께요~~ 늘 주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길,,,
ㅋㅋ 아닙니다. 이 긴 글을 읽으시다니. 인내가 참으로 대단하시다는.. 바오로 형제님께도 주님의 평화가 늘 함께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