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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다니엘!
다니엘6장10절-16절
평생, 시골에서만 살던 할아버지 한분이 생전 처음으로 서울에를 가셨답니다. 서울들 가보셨지요? 어떻든가요? 눈이 휘둥그래질 일이 널렸잖습니까!... 여러분, 서울에를 처음 가거나 오랫만에 가게될 경우 해서는 안될 두 마디의 말이 있답니다. 뭔지 아세요? 하나는 '와!...' 이구요, 또 다른 하나는 '어디, 어디?' 랍니다. 63빌딩을 보면서 '와!...' 감탄하고 탄성을 지르면 '나 촌에서 왔시유!...' 티내는 겁니다. '저게 N타워야!...'라는 말에 '어디,어디!...' 해싸면 '나 촌놈이랑게요...' 티내는 거라니깐요...ㅋㅋㅋ
어쨌거나 이 영감님도 서울이란 데를 처음 가셨드랬습니다. 눈이 튀어나올 만큼 놀랄 일들이 많았습니다. 심장 터질듯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중에도 밤을 환한 대낮처럼 밝혀주는 전깃불에 이 영감님이 말 그대로 뿅!!! 가셨습니다. 그럴 것이 평생 그저 등잔불이나 켜놓고 호롱불 밑에서 촛불 아래서 어두침침한 밤을 보내셨던 양반이 대낮처럼 밝은 전깃불을 봤으니...
그는 곰곰히 생각했습니다.
"야, 이걸 시골로 가져가면 기가 막히겠는걸!... 뒷집 박영감도 모르긴해도 까무라칠거야... 앞집 김영감도 기절초풍을 할게야, 암!... 그렇고 말고..."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영감님은 전파사에를 들렀습니다. 형광등을 사고 전선을 사고 스위치를 사기 위해서 말입니다. 드디어 시골로 내려온 그는 동네 영감님들을 죄다 불러 모았습니다. 뒷집의 박영감님도 오셨고 앞집의 김영감님도 오셨습니다. 놀라 자빠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영감님은 청심환 하나씩을 나누어 주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곤 서울서 본대로 천정에는 형광등을 달았습니다. 전선을 늘어뜨렸고 벽에다가는 스위치도 달았습니다. 그리곤 말합니다. 둘러선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자들!!.. 놀라지들 말라고... 기대하시라!..."
그리고는 스위치를 올렸습니다. 어땠을까요? 전깃불이 들어 왔을까요? 천만에요, 만만에 콩떡입니다. 안 들어 왔습니다. 뭐가 문제였나요? 형광등도 있었고 전선도 있었는데... 불을 켰다 껐다 할 수 있는 스위치도 있었는데... 왜 전기가 안 들어 왔던가요? 예, 그렇습니다. 문제의 원인은 하나! 다름아닌 발전소였습니다. 발전소와 연결이 되어 있지를 않았기에 모든 조건을 다 갖추었지만 불은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어떠신가요? 나름, 열심히 산다고 사는데... 어떻든가요? 새벽별을 보고 출근해서 야근에 철야에, 특근까지 해제끼는데도... 주일도 마다않고 죽어라 일하는데도... 돈이 벌리던가요? 통장에 잔고가 많이 남아 있던가요? 그걸 보며 만족하던가요? 흐뭇하십니까? 5년전에 비해, 십년전에 비해 지금이 더 아니 훨씬 좋아졌다고 여겨집니까? 아니지요! 아닐 겁니다. 왜 일까요? 발전소가 문제입니다. 예수 발전소!!! 이게 문제입니다. 나름, 밤낮으로 공부하고 또 주일도 아랑곳없이 공부한답시고 학원으로 도서관으로 돌아치는데... 성적이 올라가던가요? 이 정도면 되었다 싶던가요? 아니지요!... 아닐 겁니다. 왜 일까요? 발전소!!! 발전소가 문제입니다. 예수 발전소가 문제란 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을 보며 실망을 했습니다. 그리곤 죄다 고향길로 향했습니다. 갈릴리로 갔단 말입니다. 고향에 도착한 베드로는 요한은 야고보는 도마는 물고기 잡으러 간다는 베드로를 좇아 갈릴리 호숫가로 갔습니다. 그리고 밤새껏 물고기를 잡자고 덤벼들었습니다. 잡았던가요? 아니요, 못 잡았습니다. 한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밤을 지새웠건만 송사리새끼 한 마리 못 잡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고 물으셨지만 저들은 한마디 대답도 못했습니다. 왜요? 없으니까요... 한 마리도 못잡았으니까요...예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물으십니다.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돈 좀 벌었느냐? 출세했느냐? 성적이 올랐느냐?...' 어떠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돈 좀 벌었습니다. 출세했습니다. 성적, 짱!!! 올랐습니다...' 라고 답 하실 수 있나요? 아닙니다. 아닐 겁니다. 뭐가 문제일까요? 발전소!!! 예수 발전소가 문제 였습니다. 인생의 발전소가 되시는 우리 주님과 연결이 되어져 있지 않다 보니 모든 것이 허사였고 헛수고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과 연결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한번 따라 하시겠습니다.
...예수 발전소, 예수 발전소...
제가 오늘은 바보(?)한 사람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름은 다니엘입니다. 나이는 81세이구요. 바벨론을 거쳐 페르시아의 국무총리를 지낸 사람입니다. 여기까지 봐서야 왜 그가 바보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 바보(?)였습니다. 최소한 믿음생활을 하는 부분에서는 그랬다는 말입니다.쉽게 쉽게 , 대강대충 믿을 수 있었는데... 나름, 똑똑하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하는데...그는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고지식하게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타협을 몰랐습니다. 오로지 믿음의 길만을 걸었습니다. 무모하리만큼 그는 그랬습니다. 목숨까지도 걸 정도였으니...어떤가요? 바보(?)맞지요?...
바보의 종류에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머리가 덜 떨어진 바보가 그 하나겠지요.
박씨성을 가진 바보가 한사람 있었데요. 그를 아들로 둔 부모는 평생의 시름이었습니다. '저거 저거, 사람 노릇도 못 하고... 어쩐담!!! 지금이야 부모가 살아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우리가 죽어 이 세상을 떠난다면 어쩐단 말인가!' 박가의 부모는 바보 아들을 위해 금덩어리 하나를 남겨 주었습니다. 유산으로 말입니다. 부모로부터 유산을 물려받은 박가 바보,
"이걸 어떻게 하지, 어디에 보관한담! 아무래도 옆집 사는 김가놈이 걸리는걸, 그 녀석이 이 사실을 알면 이 금덩어리를 빼앗을지도 몰라."
그리곤 박가는 뒷동산으로 갔습니다. 큰 나무밑에 금덩어리를 묻었겠지요. 그래도 마음이 놓이질 않습니다. 특히나 옆집 김가가 걸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큰 글씨로, 작게 쓰면 김가가 못 볼지도 모르니까, 뭐라고 썼는고 하니
...김가 이놈아, 여기 금덩어리 없다!...ㅋㅋㅋ
박가가 걱정하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옆집 김가가 금덩어리를 산 위에 묻었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입니다. 근데 문제는 이 김가 또한 못지않은 바보였던 거죠. 금덩어리를 파내어 가면서 뭐라 썼는 줄 아세요?
...박가 이놈아, 금덩어리 옆집 김가가 가져가지 않았다...ㅋㅋㅋ
다니엘같은 바보를 1번 바보, 김가나 박가같은 바보를 2번 바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몇번 바보가 되시겠습니까? 1번이 되어야할 줄로 믿습니다. 잔머리 굴리지 않으면서 우직하게 한 길, 믿음의 길을 갔던 다니엘같은 바보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은 바보(?)다니엘이 일러주는 믿음의 정의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건지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예수, 목숨걸고 믿어야 합니다.
각 나라의 국민성을 말한게 있더라구요. 중국 사람들과 일본 사람들은요, 너도 좋고 나도좋고... 너도 잘 되고 나도 잘 되고 랍니다. 너 살고 나 살자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말입니다. 너 죽고 나 살자라는군요, 근데요, 여러분! 유대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강적이 생겼답니다. 어느 나라인줄 아세요? 한국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말입니다. 너 죽고 나 죽자!... 랍니다. ㅋㅋㅋ...
여러분, 예수!... 죽기살기로 믿어야할 줄로 믿습니다. 목숨걸고 믿어야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한 순교일지를 소개할께요... 하나같이 순교의 길들을 갔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 한때는 예수님을 부인하는 실수도 저지르긴 했지만 결국 그는 로마에서 십자가를 거꾸로 지고 순교하는 길을 갔습니다. 그의 형제였던 안드레 역시도 소아시아에서 X자형 십자가를 지고 순교했구요. 요한의 형제였던 야고보는 칼에 목베임을 당하는 순교자의 첫열매가 되기도 했습니다. 의심 많기로 이름났던 도마, 그 또한 인도에서 순교자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빌립도, 바돌로매로 잘알려진 나다나엘도 마태도 시므온도 또 다른 유다도...모두모두 순교의 길을 걸었습니다. 딱 한사람, 요한만이 백수하여 순교의 길을 걷지 않았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삶이 편안했다거나 순탄했다거나 용이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순교자의 길을 간 사람들 보다도 더 힘겹고 고통스런 삶을 살았습니다. 순교자 이상의 순교자적 삶을 살았다 이 말입니다.
여러분, 예수!... 얼렁 설렁 믿으시면 안됩니다. 대강 대충 믿어서 될 일이 아닙니다. 목숨을 거셔야 합니다.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믿으셔야 합니다. 초대교회나 로마교회 당시에는 말입니다. 크리스챤이 된다는 건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예수를 믿겠습니다' 란 말은 곧 '내가 예수를 위하여 죽겠습니다' 란 말이었다 이겁니다. '내가 원형 경기장으로 가겠습니다. 사자의 밥이 되겠습니다' 란 의미였다 이 말입니다.
본문의 다니엘을 보십시요. 바보(?)다니엘!!! 그는 예수를 믿음에 있어서 목숨을 걸었습니다. 나름, 똑똑한 체하는 사람들은 대충 쉽게 쉽게... 그렇게들 믿음 아닌 믿음을 보였습니다마는 바보(?)다니엘은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목숨을 걸었습니다. 눈 한번 질끈 감으면 그만일 것을... 그는 결코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까짓 평생할 신앙생활 기도생활 삼십일쯤 안 한다고 대수랴!! 고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마는 그는 절대로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당당히 사자굴 속으로 한걸음 한걸음 위대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살자고 예수를 믿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죽자고 믿었습니다. 바보처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역시 그 친구에 그 친구들입니다. 풀무불 가운데로 망설임없이 뛰어 들어갑니다. 똑똑한 사람들(?)은 절대 그리하지 않았는데...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바보같았던지라, 아니 바보였던지라... 죽음을 향해 과감히 걸어갔던 것입니다.
바울의 고백이 생각납니다. 뭐라했나요? 사도행전 20장24절에 뭐라 고백했나요?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할렐루야!!!
목숨 걸고 전도하십시요. 우리가 죽을 자리 이곳, 신방통정지구에서 말입니다. 목숨을 걸고 예배를 드리십시요. 목숨 걸고 기도하십시요. 세상 사람들은 바보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목숨을 건 전도자의 삶을, 순례자의 삶을 '잘했다, 착하고 충성되이 살았구나!...' 인정하시고 칭찬하실 것입니다.
해외토픽에 그런 뉴스가 올랐더라구요. 우리나라 돈으로 채 십원도 안 되는 것 때문에 부부가 목숨을 끊었답니다. 사건인즉 아내가 남편모르게 십원을 가져다가 차를 샀답니다. 마시는 차 말입니다. 붕붕!!! 차가 아니라요, 후에 이사실을 안 남편이 부화가 나서 홧김에 독약을 먹고 자살을 했다네요... 참말로 죽을 일도 쌨습니다. 남편이 떠나자 아내는 남은 자식 넷을 혼자 키울 자신이 없었더라나요! 해서 그 역시도 남편의 뒤를 따라갔다는군요. 이런... 똑똑한 사람들 같으니라구...
제 성질에 못이겨서 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인류를 위해 죽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위하여 죽어야 한다구요? 예수님입니다. 죽기로 예수믿어서 다니엘과 같은 바보(?)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예수, 고생스럽게 믿어야 합니다.
자칭 똑똑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편한 길만을 찾습니다. 쉬운 길로만 가려합니다. 그들이 좋아하는 4자성어가 있습니다. '참 쉽죠잉...'ㅋㅋㅋ 그러나 다니엘, 그는 쉬운 길을 마다했습니다. 편한 길을 놔두고 어려운길을 택했습니다. 그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갈 당시의 나이가 열다섯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의 나이는 여든한살입니다. 무려 칠십여년의 생을 머나먼 낯선 땅에서 지냈던 것입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포로가 되어서도 결코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왕의 상에 올랐던 각종의 산해 진미로 그를 유혹했지만 다니엘 바보(?)그는 절대로 신앙을 버리는 일은 없었습니다. 남들 모양 쉽게 쉽게 그저 좋은게 좋은 거라고 차려진 음식, 그것이 우상을 섬기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랑곳하지 않고 부어라 마셔라!!! 했던 이들과는 분명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차라리 채식만을 먹는다 하더라도... 그래서 배를 곯는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편한길로 가고 싶습니까? 아닙니다. 어렵고 힘든 길이라도, 고생이 뒤따르는 길이라도 그길을 우리 주님께서 기뻐하신다면 가셔야 합니다. 제자대학!!! 하셔야 합니다. 제자대학 왜 안하느냐고 물을라치면 '힘들어서요, 어렵다면서요, 고생된다면서요...' 그래서 못 한답니다. 안 한답니다. 아닙니다. 그래서 될 일이 아닙니다. 어렵게 어렵게 예수를 믿으십시요. 사단은 우리에게 쉬운 길만을 가라고 유혹합니다. 사단은 예수님마져도 쉬운 길로 유혹했습니다. 뭐라했던가요? 자신에게 절하라고 했잖아요, 천하만국을 다주겠다고... 굳이 십자가의 그 고통의 길을 갈게 뭐라면서요... 우리 예수님이 그 꼬임에 홀랑!!! 넘어가셨던가요? 아니지요. 십자가의 고생길을 가셨습니다. 묵묵히 가셨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에게도 교훈을 주셨습니다. '좁은 길로 가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넓은 길, 넓은 문은 쉽고 편하여 그리로 들어가고자 하는 자가 많으나 너희는 그리하지 말라... 비록 길이 좁고 협착하여 가는 길이 온통 고생스럽더라도 그 길끝에는 영광이 있으니, 영생이 있으니 기쁨이 있고 영원한 복락이 있으니... 그길로 가거라...'할렐루야!!!
직장 생활하시기가 어떻든가요? 이웃 사람들과 지내기가 어떻지요? 쉽던가요? 믿음 생활 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으신가요? 그렇다면 잘못 신앙생활 하시는 겁니다. 제대로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의 직장 생활은, 이웃 생활은 가정 생활은 어렵습니다. 고생스럽습니다. 당장 회식 하나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술판이 벌어지고 온갖 쾌락과 향락이 펼쳐지는 회식자리!!! 그리스도인 된자로서 달갑나요? 아니지요. 불편합니다. 술, 안먹습니다. 아닌가요? 불신자들보다 더 많이 마시나요? 술 안 먹는다해서 손해본 적이 없으시다구요? 잘못 믿으시는 겁니다. 술잔을 거부하고 향락을 거부하고... 그러다보니 자연, 핀잔을 듣고 핍박을 받고... 잘 믿으시는 것입니다. 놀러가자는 남편말에 홀라당!!! 그러자고 하시나요? 그 날이 주일인데두요... 남편 말 따르느라 별로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겪지 않으신다구요? 잘못된 믿음입니다. 주일은 주님의 날입니다. 주님앞에 나와 예배 드려야할 날입니다. 놀러가자는 남편의 말에 당당히 주일임을 밝히고 교회로 향할때 핍박이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잘된 믿음입니다. 바보처럼 믿는 믿음이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입니다.
경제가 어렵다보니 어떤가요? 십일조를 해야하나 말아야하나를 놓고 고민이 되겠지요!... 고민끝에 십일조를 안 한다면... 쉬운 길을 택한것입니다. 잘못된 믿음의 길로 간것입니다. 나름, 똑똑해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책망하십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교회 오시는 길이 멀다구요? 그래서 고생스럽다구요!... 잘 믿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당진서부터 예배를 드리자고 오시는 분이 있습니다. 갓난아기를 안고..'나같으면 안 온다!'ㅋㅋㅋㅋ... 오랜 시간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고 긴 시간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으니 잘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굳이 당진으로 이사갈 것까지는 없습니다. ㅋㅋㅋ...
요한복음 6장에는 우리가 잘 아는 사건 하나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름하여 '오병이어의 기적'이 그것입니다.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남자만 오천명, 그러니까 남녀노소를 다 합친다면 족히 이삼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배가 터지도록 먹고도 열두바구니가 남는 놀라운 역사가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가 문제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를 말씀하십니다. 죽음을 말씀하십니다. 고난을, 고생을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어땠나요? 떡을 먹네, 고기를 먹네 할때는 좋다고 모였던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죄다들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열두제자만이 남았을 뿐입니다. 기가막힌 예수님이 하소연을 하셨습니다. 제자들을 향하여 말입니다. '너희들도 가려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지요. '생명의 말씀이 여기 있는데 우리가 뉘게로 가겠습니까!' 고생하겠다는 말입니다. 십자가를 지겠다는 고백입니다. 바보가 되겠다는 말입니다. 똑똑한 사람들은 약삭빠르게 고기만을 받아먹고 바람과 함께 사라졌지만 그리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이와 같으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교회가 초원아파트 앞의 임시 예배처소를 떠나 드디어 입성을 했잖습니까? 헌데요, 이곳이 아직 개발중인 지역이다 보니 별... 희한한 일이 다 있습니다. 전화선이 안 들어 왔습니다. 인터넷이 안됩니다. 우리 교회에서 사용하는 인터넷이 엘지 파워콤입니다. 제가 뭐, 특정 회사를 선전하거나 깎아내리자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엘지 파워콤을 쓰고 있는데 이걸 이리로 이전해 와야할게 아니겠어요! 하여 이전 신청을 했겠지요! 기사가 나와 보더니만 이동네는 통신선이 깔려 있지않아서 인터넷 연결이 어렵답니다. 향후 이삼년안에는 계획도 없답니다. 그러면서 본사에 지역 사정을 알려서 인터넷을 해지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겠다더군요. 사실 아직 약정기간이 남아 있었거든요. 그렇지만 불가항력적인 일이니만큼 손해가 없도록 하겠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본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해지를 위해서는 주민등록등본이 필요하답니다. 임시예배처소에 주소가 올라있는 등본이 말입니다. 그래, 제가 그랬지요!'여기는 교회이고 내 집은 따로이 있어서 주민등록등본상에 주소가 안 나와 있습니다 '라구요!.. 그러자 이번에는 사업자등록증을 보내달랍니다. 제가 또 그랬지요.'여기는 교회인데 교회는 사업자 등록증이 없고 고유번호증이라는게 있어서 사업자 등록증을 대신합니다. 은행이고 관공서고 다 그거면됩니다.'라구... 본사 직원 한다는 말이 그건 안 된답니다. 반드시 주민등록등본이나 사업자 등록증이 필요하답니다. 저요, 뚜껑 열리는줄 알았습니다. 이삼십분간을 실갱이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하나님을, 믿음을 생각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앞에 섰을 때에 내 딴에는 최선을 다했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그 무엇인가가 없다면 그 낭패를 어떻게 할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믿음의 표가 우리에게 없다면 .... 내게 있는 걸 가지고 아무리 설명해 봤자 소용이 없다면....
여러분,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믿음의 흔적들이 있습니까? 고생의 흔적들이 있으신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고생의 흔적을 내보이라고 말씀하신다면 이 주머니에서 꺼내놓고 저 주머니에서 꺼내놓을 고생의 흔적, 십자가의 흔적!....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끝으로 예수, 한결같이 믿어야 합니다.
다니엘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갈 때의 나이가 몇이라고 했던가요? 예, 그렇습니다. 열다섯이엇습니다. 그후로 칠십여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금은 여든한살이구요. 역사적으로도 커다란 변화가 있었습니다. 바벨론 제국이 망하고 페르시아 제국이 들어섰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네 인생은 말입니다. 환경에 따라 삶이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인지상정입니다. 믿음도 그렇다 싶습니다. 학생시절에 그렇게도 신앙생활을 잘 하고 믿음이 좋다 싶다가도 대학에 진학을 한다거나 취업을 하게되면 언제 그랬냐 싶게 믿음이 변질되어 가는 모습을 심심치않게 보게 됩니다. 바뀐 환경속에 믿음 하나를 제대로 지키질 못하는걸 주변에서 많이 보게 됩니다. 사업이 어렵거나 삶에 이런 저런 문제가 있을 때에는 그저 하나님만을 찾고 그 분께만 의지하다가도 형편이 나아지거나 사업이 잘 되기라도 할나치면 신앙을 팔아버리기 일쑤입니다. 안타깝게도 그게 인생의 연약한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환경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하는 겁니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것입니다. 전문용어로 뭐라나요? 어른들 말씀하실 때 뭐라지요? '빈덕'이라지요. 빈덕 떤다다고 합니다. 딱 그렇습니다. 믿음에 일관성이 없습니다. 한결같지가 않습니다. 한결같아야 할줄로 믿습니다. 왔다갔다하지 마십시요. 이랬다 저랬다하지 마십시요. 자식을 낳더라두요. 아들만 쭉... 낳든지, 딸만 쭉... 낳든지 하셔야 합니다. 왜 아들 낳다가 딸 낳다가... 이랬다 저랬다 하나요?ㅋㅋㅋㅋ...
다니엘은 한결같았습니다. 어린시절 포로로 잡혀가는 극한 환경과 상황속에서도 그의 믿음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에 있을 때나 바벨론에 있을 때나 하나님을 향한 그의 믿음은 동일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와 함께 보이는 채식 결의만 보더라도 증명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에서 믿는 하나님이 다르고 바벨론에서 믿는 하나님이 다르고... 그게 아니었다니까요! 그런 믿음을 가지다 보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밖에요... 그를 귀히 여길 밖에요.... 그를 높일 밖에요... 그는 바벨론 제국의 국무총리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일인지하요 만인지상의 자리에까지 올랐단 말입니다. 우리말에 화장실 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저 아무 것도 아닐 때에야 그러려니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아무 것도 아닌 자리가 아닙니다. 최고의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달리 마음을 먹을 수도 있었겠지요. 신앙이 변질될 수도 있겠지요!... 하닙니다. 다니엘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말단이었을 때나 총리에 자리에 올랐을 때나 한결같은 믿음을 보였습니다. 그렇게 흘러간 세월이 칠십여년.... 이제 다니엘은 팔십을 넘은 나이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랍니까? 중대한 선택을 해야할 기로에 섰습니다. 다니엘을 모함하는 정적들이 파놓은 함정에 꼼짝없이 걸렸다 싶습니다. 정쟁에서 밀려난 다니엘의 정치적 라이벌들은 그를 어찌 되었든간에 총리의 자리에서 끌어내리고자 했습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놈 없다고 다니엘을 수없이 털었습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이래요? 아무리 털고 또 털어봤자 다니엘에게서는 아무런 흠도 결점도 찾을 수가 없지 뭡니까? 눈 씻고 또 씻고 더씻고 찾아봐도 허사였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드디어 한가지 길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다니엘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었습니다. 그걸 걸고 넘어지기로 한겁니다. 흠을 잡다가 잡다가 못잡으니까 결국에 가서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 생활이 흠이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어떻습니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습니까? 어떻게 하나님 잘 믿는게 흠이 된단 말입니까? 그러나 다니엘은 그게 흠이었습니다. 놀렐루야!!! 정적들은 왕에게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곤 말합니다.
"왕이시여, 오늘부터 시작해서 한달 동안은 누구라도 아무 신에게든지 아무에게든지 간에 경배하거나 기도하거나 절하지 못하게 하시길 바랍니다. 오직 왕에게만 절하고 경배하고 왕에게만 존경을 표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만일 이를 어길시에는 사자굴에 집어 넣기로 하기를 원합니다. 오직 왕만이 영광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아주 중요한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정적들의 다니엘을 향한 믿음입니다. 그들은 설령 왕이 금령을 발표한다할지라도 다니엘은 결코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나 만상에나... 만약 저들이 다니엘을 향한 믿음이 없었다면, 그러니까 다니엘이 신앙을 한달간 접고 하나님께 기도하거나 예배드리는 것을 멈출 수도 있다는 의심을 했다면 절대로 저들은 왕에게 그런 황당한 제의를 하진 않았다 이겁니다. 불신자들 마저도 인정해 주는 믿음... 바보(?)다니엘!!! 맞지않습니까? ...
아니나 다를까! 다니엘은 저들의 믿음대로 자신의 믿음을 지켰습니다. 사자굴로 들어갈 지언정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81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사자굴을 향하여 당당히 걸어갑니다. 타협이냐 믿음이냐의 상황에서 그는 믿음의 길을 갔습니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나라가 바뀌는 파란의 시절 속에서도 그의 믿음은 한결같았습니다. 한결같았습니다. 한결같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십자가를 향하여 달려가는 여러분들의 모습이, 또 제 모습이 한결같으시길 다시 한번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처럼 어떠한 경우에라도 흔들림없이 십자가의 사명을 감당하시는 바보(?)같은 신앙인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새누리교회의 성도 여러분!!!
다니엘을 따라가시지 않겠습니까? 바보(?)가 되지 않으시렵니까? 살길이 있음에도 굳이 목숨을 걸었던 다니엘처럼, 편한 길 쉬운 길 놔두고 고생 길을 걸었던 다니엘처럼, 불신자들마저도 인정했던 한결같은 믿음의 소유자 다니엘처럼... 바보(?)들에게 주실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합니다.
*나누어 봅시다.
1.십년전, 그러니까 1999년당시 당신은 어디에 살고 있었으며 무슨일을 하고 있었나요? 십여년간의 삶은 어땠으며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시나요?
2.당신의 삶은 '예수발전소'와 연결되어 있다고 여기십니까? 나름, 열심히 살고는 있는데 날마다 사는 모습이 거기서 거기는 아닌지요? 문제가 예수님과 연결상태가 불량해서 그렇다고 여기지는 않습니까? 당신의 삶속에 예수 발전소와 연결될 수 있는 길에는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3.당신은 신앙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꾸준하게 하나님을 믿었던가요? 아니면 곁길로 나갔다가 오신 적이 있었나요? 나누어 봅시다.
4.당신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손해를 보았다거나 당한 고난이 있었다면 무엇이 있었나요? 나누어 봅시다.
5.불신자들마저도 놀랄만큼의 믿음을 가졌던 바보(?)다니엘을 보면서 당신이 느끼는 점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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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죽기를 각오하고 주님만을 섬기셨고 죽기를 각오하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던 믿음의 조상들과는 달리 우리는 너무 편하게신앙생활을 하고 있지 않나싶습니다. 편한대로만 내멋대로만 하는 신앙 생활이 아닌 하나님께만 영광돌리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힘들고 어려운일이 있을지라도 꿋꿋히 나아가겠습니다
목숨을 건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되었습니다.맞습니다.목숨을 걸기를 작정한다면 안될것도..못이룰것도 절대로 없을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저의 가정에 그리고 저희 새누리교회에 주신 비젼과 꿈이있는한 그것을 포기하지않고 죽기를 각오하고 내달린다면 반드시 주님께서 좋은것들로 채워주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10년전 저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너무도 큰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헌데..언제가 아내가 저에게 저의 정공을 찌르는 한마디의 말을 하더군요..자기가 그러니까 그것밖에 받지 못하는것라구요...아무래도 제가 고생을 덜한 모양입니다. 바보 다니엘 처럼 저 또한 더 바보가 되어야겠습니다
예수님 목숨걸고 믿어야합니다. 너무나도 가슴 가슴찡한 말씀입니다. 로마의 카타콤,터어키의 카파도키아 동굴속에서 박해를 피해 목숨을 걸고 믿음을 지키며,사자밥이 될지라도 하나님을 버리지 않았던 믿음의 조상들이 있었기에 지금 저희들의 편한 신앙생활이 있음을 의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바라시는 신앙을 갖고 지키기 위해 힘들고 어려운 일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은혜를 주시고 다시 채워주시고 함께해주시는 사랑에 감사 드렸습니다. 더 힘든 일이 생길 수도 있겠지요....하지만 믿음으로 이겨내고 주님께 더욱 헌신하는 저와 우리 가정이 될 것입니다.
옛 신앙인들보다는 참 우린 편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건 사실이지만 때론 힘들고 어려운 일들때문에 낙심될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보 다니엘처럼 오직 믿음으로 나아간다면 이기고 승리하는 우리가 될거라 확신합니다 새누리교회 화이팅!!
목숨을 걸일이 있다는것에 행복합니다. 가치있는 일에 목숨을 건다는것이 황홀합니다. 내가 죽고 그래서 다른 사람을 살릴수 있다면...무엇보다도 우리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면... 생각만해도 행복합니다. 황홀합니다. 신방통정지구!!! 우린 죽으러 왔습니다. 죽으면 살것입니다.
발전소 없는 스위치, 모양만 있는 형광등, 흉내만 낸 얼렁설렁한 믿음이었음에 반성합니다. 어떤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영광,기쁨,영생,복락을 향해 사자굴에 들어갈지언정 타협하지 않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없는 사명으로 목숨걸고 고생스럽게 한결같이 하나님을 신뢰했던 다니엘의 믿음을 바라보며 자신과 사단과 타협하지 않기를 기도해 봅니다
어느 상황속에서든지 다니엘처럼 한결같은 믿음을 소유하는자가 되야겠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언제나 이 말씀이 나의 마음을 울립니다.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끝까지 교회를 위해, 한영혼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바보가 되겠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던 흔들리지 않게 주만 붙잡을 수 있게 하소서..
정말 죽을줄 알면서도 하나님만 믿고 따르는 다니엘을 보면서 이것이 참된 신앙이구나 이것이 참된 믿음이라는 것을 깨닫고 더욱더 성경을 많이 읽고 기도를 많이 해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이는 것처럼 바보 다니엘처럼 하나님만 바라보며 목숨을 다하며 이세상에 겸손으로 본을 보이는 진정한 1번 바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