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들이 회의하는 자리가 있는데, 그 자리에 묘를 쓰면 벼슬도 할 수 있고 사람도 난다.
그 곳은 산골 깊은 곳이라,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렵단다."
잘 새겨들은 학동은 직접 그 자리를 찾아보기로 결심했대.
저녁마다 산이란 산은 다 뒤진 거지.
도깨비들 회의장 찾는 게 어디 쉬운 일이었겠어?
그런데 어느 날, 한밤중인데도 산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대.
학동은 덤불 속에 숨어 그 장소를 잘 지켜보았지.
그러면서 한다는 생각이,
'이 장소를 잘 기억해놓고,
도깨비 놈들이 또 회의하러 오면 내가 쫓아버려야겠다.'
그러고 일단 학동은 돌아갔대.
독한 녀석.
며칠 뒤, 하 씨 학동은 다시 그 장소로 갔는데
도깨비들이 나타날 즈음 그 자리에 벌렁 드러누웠어.
나름 작전이었겠지? ㅋㅋ
그런데 잠시 후, 도깨비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대.
누워있는 하 씨 학동을 발견한 거야.
근데 또 도깨비들이 학동의 시체놀이에 깜빡 속아서는,
"하 정승이 세상을 떴네, 하 정승이 세상을 떴어~ 이를 어쩔 거나."
"우리가 장례를 치러줘야 하겄네."
이러더래
ㅋㅋㅋ
심지어 한 도깨비가 나서더니
"하 정승을 아무 데에나 묻을 순 없으니, 우리 회의장에 묘를 쓰는 것이 좋겠어."
하고 말하더라는 거지.
도깨비들이 학동을 둘러메고 자신들의 회의장까지 가서 그를 묻으려 할 때,
학동이 벌떡! 일어나가지고는
"이 놈들! 너희는 도깨비들이 아니냐?
내가 네놈들이 회의를 못 하게 하려고 이곳에 왔다!!"
하며 버럭버럭 소리를 친 거야.
내가 도깨비래도 심장 떨어지는 일이지.
그래서 도깨비들은 뿔뿔이 도망쳤고,
학동은 그 자리에 말뚝으로 표시를 한 뒤 산을 내려왔대.
다음 날 아침, 그 곳이 매우 험한 산골이었음을 확인한 학동이
집에 돌아가더니 아버지께 하는 말.
"할아버지의 산소를 이장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입장에선...
회초리 몇 방 휘두를 말이지?
"산소를 이장하자니, 어린놈이 그게 무슨 소리냐!"
"하지만 아버지, 사람도 나고 벼슬도 하는 좋은 자리가 있습니다."
결국 학동은 아버지와 둘이 그 장소에 묘를 썼고,
훗날 과거에 급제해 정승 벼슬까지 했다는 이야기.
(비슷한 이야기로는, 도박으로 알거지가 된 김서방이 도깨비를 불러 "같이 자살하자" 협박하고 ㅋㅋ 겁먹은 도깨비가 명당 자리 알려줘서 부자 되는 이야기도 있어.)
참고로, 서해안과 남해안의 어촌에는 "산망"이라는 풍습이 있거든. 연초에 달도 없이 제일 어두운 밤에, 산에 올라가서 도깨비불을 찾는 거야. 도깨비불이 나타난 자리를 봐두었다가 거기에 어장을 만들었겠지. 이 풍습은 어살로 물고기를 잡는 갯벌 지역에 많았대. 바다도깨비는 갯벌에 사니까!
도깨비고사를 지내는 모습.
저 제단에 메밀묵 있다.
그리고 생소할 수도 있지만, 도깨비는 '물의 이미지'가 꽤 강해. 도깨비가 습성이 다양해서 이미지를 딱 '물' 하나로 단정지을 수 없긴 한데, 바다 도깨비와 더불어서 '습하고 음침한 곳에 사는, 그리고 비가 오거나 궂은 날씨에 자주 나타나는' 도깨비의 모습을 보고 농민들은 도깨비가 비구름을 몰고 다닌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야. 심지어 전북 상월리에선 화재를 막으려고 도깨비한테 제사를 지내기도 한대. 도깨비터에 농사를 지으면 풍년을 기대하는 이유를 알겠지?
사람 볼 줄 아는 도깨비
도깨비는훗날 큰 인물이 될 사람을 미리 알아보기도 해. 될성부른 나무가 될 떡잎들을 어릴 때부터 돕거나 보호해주기도 한다네. 일종의 수호신 같은 거지.
근데 사실은ㅋㅋ 실제 위인들이 태어난 고향에서 도깨비 이야기가 일종의 '작은 신화' 역할을 했던 거야. 그러니까
"우리 고향에 ㅇㅇㅇ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이 어릴 때부터 도깨비가 그 재주를 딱 알아봤다니까~."
이런 식이지. 이건 그냥 간단하게 이야기 하나로 설명하자.
<<허적의 도깨비 가마 이야기>>
(약간 씁쓸주의)
허적은 엄정면 괴동리 출신이었는데, 청룡사로 공부를 하러 다녔어.
청룡사엔 허적과 함께 공부하는 신 씨 성의 선비가 있었거든.
근데 신 선비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게 하나 있었대.
허적은 자기보다 청룡사에서 훨씬 멀리 사는데도,
매일 먼저 글방에 도착해서 공부를 하고 있는 거야.
그래서 하루는 신 선비가 물었어.
"여보게. 자네는 나보다 훨씬 멀리서 오면서도 어찌 늘 먼저 와있는가?
피로한 기색조차 없고 말일세."
"강달고개에 이르면 항상 꽃가마 한 채가 기다리고 있다가
나를 태우고 순식간에 묵봉산을 넘어 청계골 앞에 내려다주고 가는데,
누가 왜 그러는지는 나조차도 알 수 없다네."
대답 듣고 나니까 더 이상하지?
신 선비도 마찬가지였나봐.
그래서,
"그럼, 내일은 내가 그 곳에서 꽃가마를 타고 글방에 와도 되겠나?"
"그렇게 하게."
다음 날 새벽, 신 선비는 날이 밝기도 전에 강달고개에 갔대.
정말 그 곳엔 꽃가마 한 채가 딱 있더라지.
신 선비가 의아해하며 다가서자, 난데없이 두 사나이가 나타나더니
신 선비 앞으로 가마 문을 대고 그를 태웠어.
그리고 발을 내리고는 흡사 나는 것처럼 빠르게 달리는 거야.
흔들림 조차 없이!
그런데, 얼마쯤 가다가 가마가 우뚝 멈춰서더니
사나이들의 대화 소리가 들리더래.
"무게가 전보다 훨씬 가벼워진 것 같지 않아?"
"무슨 일인지 확인해보고 가세."
그들은 발을 걷어 올리고 들여다보더니,
사람이 바뀌었다면서 막 나오라고 말을 하더래.
그러고선 하는 말이,
"허적 선생은 장차 이 나라의 영수가 되실 분이라
하늘의 뜻에 따라 우리가 글방까지 모시는 것인데,
당신은 그렇지 않으니 내리시오!"
신 선비는 겁이 나서 잠시 당황하다가 마음을 다잡고 물었어.
"그럼, 나는 장차 무엇이 되겠습니까?"
사나이들은 신 선비의 얼굴을 살피더니
"찰방 관직을 할 상이군."
하고는 더 이상 말도 없이 쌩 가버렸대.
그 후 허적은 영의정 벼슬까지 올랐지만
신 선비는 정말 찰방(오늘날의 역장) 밖에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야.
될 놈, 안 될 놈 차별한다 그치? ㅠㅠ
이런 이야기에서 도깨비는 위엄 있는 신이라기보다, 오히려 '수호자'의 위치에 가까워. 어린 인재가 큰 인물이 될 수 있게 뒤에서 도와주잖아? 즉, 도깨비는 능력이 있어도 인간 위에 군림하지 않고 인간의 성공을 돕는 그런 존재야. 사람과 어울리고자 하는 성격이 다시 한 번 드러나는 거지. 한 마디로 도깨비는 옛 인재들에게 그들의 능력을 부각시켜주는 '증인'같은 것이었나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