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은 사람들에게 거미 연구를 금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거미학자는 ㅡ중세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말이지만 ㅡ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이 부수적이라는 점과
자신의 연구결과가 기독교의 영원한 진리와 관련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학자가 거미나 나비나 갈라파고스핀치에 대해 무엇을 발견하든 그 지식은 하찮은 것에 불과했고,
사회나 정치, 경제의 근본적 진리와 무관했다.
사실 일이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 시대에나, 심지어 가장 경건하고 보수적인 시대에도
자신들의 전통 전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뭔가 중요한 것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존재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하찮은 존재로 취급받거나 박해를 받았다.
혹은 그들은 새로운 전통을 세우고, 이제 자신이 세상에서 알아야할 모든 것들을 안다고 주장하기 시작햇다.
일례로 예언자 마호메트는 다른 아랍인들이 신의 진리에 무지하다고 비난하는 것으로 종교 경력을 시작했다.
그러나 마호메트는 아주 금방 자신이 모든 진리를 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으며,
추종자들은 그를 '예언자들의 봉인(The Seal of the Prophets)'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제는 마호메트에게 주어진 계시를 넘어서는 다른 계시는 필요하지 않았다.
오늘날의 과학은 지식의 전통으로서는 독특하다.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집단적 무지를 공개적으로 인정한다는 점이 그렇다.
다윈은 스스로 '생물학자의 대표'를 자처하거나 생명의 수수께끼를 최종적으로 해결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몇 세기에 걸친 광범위한 연구를 한 뒤에도 생물학자들은
뇌가 어떻게 의식을 만들어내는지에 대해 좋은 설명을 전혀 얻지 못했다고 인정하고 있다.
물리학자들도 무엇이 빅뱅을 일으켰는지,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 모른다고 인정한다.
또 다른 경우에는 끊임없이 나타나는 새로운 증거를 기반으로
서로 경쟁하는 과학이론들이 큰 소리로 논쟁을 벌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경제를 운영하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개별 경제학자들은 자신의 방법의 최선이라고 주장할 지 모르지만,
금융 위기가 오거나 주식시장 버블이 터질 때마다 정설이 바뀌고 있다.
그리고 경제학의 결정판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널리 받아들여지는 견해다.
그리고 또 다른 경우에는 이용 가능한 증거들이
특정이론을 너무나 일관성 있게 지지하는 나머지 다른 대안들이 이미 오래전에 다 밀려났다.
그런 이론들은 진리라고 받아들여지자만,
모두가 동의하는 바 만일 그 이론에 반대되는 새러운 증거가 등장한다면
해당 이론은 수정되거나 폐기되어야 한다. 좋은 예가 지구 판구조론과 진화론이다.
현대 과학은 무지를 기꺼이 받아들인 덕분에 기존의 어떤 전통 지식보다 더 역동적이고 유연하며 탐구적이다.
덕분에 우리는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능력과 새로운 기술을 발명할 역량이 크게 확대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선조 대부분이 대처할 필요가 없었던 심각한 문제를 하나 제기하기도 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하며 지금의 지식도 잠정적인 것이라는 가정은 우리가 공유하는 신화에까지,
즉 수백만 명의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협력하게 만들어주는 신화에까지 적용된다.
만일 이 신화들 중 많은 것이 의심스럽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우리는 어떻게 사회를 유지할 수 있을까?
우리의 공동체, 국가, 국제 시스템은 어떻게 기능할 수 있을까?
정치사회적 질서을 안정시키려는 현대의 모든 노력은
다음의 두가지 비과학적 방법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1. 하나의 과학이론을 택해서 통상의 과학적 관례와는 반대로 그것이 궁극적인 절대진리라고 선포하는 것,
이것은 나치당원과 공산주의자들이 사용한 방법이었다.
나치당원들은 자기네 인종정책이 생물학적 사실들의 필연적인 귀결이라고 주장했다.
공산주의자는 마르크스와 레닌의 경제적 진리는 절대적이고 신성한 것이며
여기에는 결코 반박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햇다.
2. 과학은 내버려두고 과학과 무관한 절대진리에 따라 사는 것,
이것은 자유주의적 인본주의 전략이엇다.
자유주의적 인본주의는 인간의 고유한 가치와 권리에 대한 도그마적인 신조를 토대로 건설된 이념인데,
그 신조는 호모 사피엔스에 대한 과학적 연구결과와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공통점이 없다.
하지만 놀랄 것은 없다,
과학 자체도 스스로의 연구를 정당화하고 자금을 공급받으려면
종교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신념에 의지해야 하는 마당이니까.
그럼에도 현대 문화는 이전 어떤 문화보다 더욱 폭넓게 기꺼이 무지를 받아들여 왔다.
현대의 사회질서을 지탱해준 요인 중 하나는 기술과 과학적 연구방법에 대한
거의 종교적인 믿음의 확산이었다.
이것은 절대 진리에 대한 믿음을 어느 정도 대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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