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승원(韓勝源) 생가
우리나라 현대문학의 거장 한승원이 태어난 곳이다. 한승원은 1966년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가증스런 바다'로 입선하고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목선'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할미꽃 군락으로 유명한 한재 아래에 위치한 한승원 생가는 득량만이 바라보이는 작은 어촌이다. 바닷바람 부는 어촌에서 태어난 그에게 바다는 놀이터이자 삶의 현장이었다. 그의 단편 '목선', '포구의 달', '해변의 길손', 장편 '그 바다 끊며 넘치며' 등 한승원 선생의 작품에 유독 바다 이야기가 많은 건 그런 이유 때문일 터다.
소설가이자 시인인 한승원 선생은 1939년 음 8월26일 아버지 한용진과 어머니 박귀심 사이에서 9남매 중의 차남으로 태어났다.고향의 역사적 현실과 숙명에 천착하는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초기에는 남해 바닷가의 풍경을 토착어가 살아있는 작품으로 표현함으로써삶에 대한 토속성과 한(恨)의 세계를 다루다가 나중에 인간의 내면심층을 파고들었다.명덕초등학교, 장흥중·고등학교를 거쳐 1961년 서라벌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입학하여 김동리에게 배웠으며,1968년 《대한일보》와 《목선 木船》이 당선되어 소설가로 등단하였다.
《까치노을》, 《폐촌》, 《포구의 달》, 《해변의 길손》, 《그 바다 끓며 넘치며》 등은 고향 남해 바닷가를 반복적으로 다루었다.그에게 남해 바닷가는 한국 근대사가 압축된 곳이며, 그 안에 존재하는 억압과 해소를 표출하는 원형 상징적인 공간이다.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바다와 마찬가지로 운명에 구속된 채 그에 맞서는 과정에서 비극을 구현함으로써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운명과 대면하는 상태를 지향하고 있다.그가 구사하는 토속적인 언어는 삶의 구체적인 감각과 섬세함을 극대화시키는 도구로 사용되었다.이후 그는 ‘생명력’을 주제로, 인간 중심주의적 문명에 대한 반성과 극복에 관심을 쏟고 있다.
■장흥 한재공원
장흥군 한재공원은 10ha 면적의 국내 최대 규모 할미꽃 자생지로 알려져 있다.
남해 바다로 둘러싸인 장흥군 회진면의 한재공원은 국내 최대의 할미꽃 자생군락지로 보송보송한 솜털로 치장한 검붉은 할미꽃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한국영화의 거장 임권택 감독의 영화 ''천년학'' 촬영지로도 유명하며 공원 위로 올라서면 드넓게 펼쳐진 다도해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풀속에서 보이지 않는 듯 보이는 할미꽃은 두 손녀의 애틋한 정이 서려있는 전설이 전해져온다. 이름 모를 풀 한포기가 나와 할머니의 구부러진 허리처럼 땅을 딛고 진홍빛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 한승원 소설 문학길(장흥 한재고개)
옛날에는 이곳이 덕도라는 섬이었다. 이 한재고개는 덕도의 동쪽마을인 신덕리와 대리와 신상리 사람들이 회진과 대덕으로 나들이하는 통로였다.
천관산으로부터 뻗어온 산맥은 북편에 큰재산을 만들고 고개 서남쪽에 한재산을 만들었는데 한재고개는 그 두 산사이에 놓여있다. 남쪽으로는 고흥반도와 소록도 등 많은 섬들을 품은 득럄만 바다가 짙푸르다. 이 섬 남쪽 대리에 초등학교가 위치해 있어 덕산리 학동들은 이 길을 따라 통학을 했고 신덕리와 산상리와 대리 사람들은 이 고개를 넘어 장에 다니고 관공서의 일을 보러 다녔고, 이 곳 청소년들이 상급학교에 진학을 하기 이해 넘어가던 고개였다.
특히 신덕리 마을 청소년들은 이 고개의 벌판에서 소를 놓아 뜯기고 꼴을 베고 땔나무를 하러 와서 씨름, 달리기, 공치기, 자치기, 유희를 즐기고 소들의 뿔싸움을 시켰다. 가끔씩 덕산리와 장산리와 신상리 청소년들이 소를 끌고 와서 신덕리 소들과 뿔싸움을 붙이면서 환호성을 지르고 씨름을 하면서 야망과 꿈을 키운 고개였다.
▶남파랑길 79코스 트레킹중 장흥 한승원 생가가 있는 신덕마을과 한재고개를 경유하면서 담아본 풍경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