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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자의 로마서 Romans as seen by the evangelist
바울 사도가 로마서를 강의한다면?
샬롬! 바울 사도가 혼탁한 세상을 보면서 예수님의 허락을 받아서 잠시 이 세상에 왔습니다. 천주교 교황과 개신교 세계 연합회장이 이 사실을 압니다. 그리고 모든 성당의 주임 신부가 알고 모든 개신교 목사가 이 사실을 압니다. 그리고 그런데 장소가 지구의 어디일지 문제가 됩니다. 바티칸 성당이 될지 지구 최대 단일 교회 여의도 순복음 교회가 될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강의가 있고 질문이 개신교와 천주교 대표의 순서로 있습니다. 온 지구의 예수님을 믿는 성도가 다 시청을 합니다.
바울 사도는 현 지구상의 로마서의 큰 두 줄기의 이해를 압니다. 천주교의 이해와 개신교의 이해입니다. 로마서를 이해를 달리해서 서로 교리로 논쟁을 하면서 500년의 세월을 보냈으니 개신교의 태생이면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개신교 교리로 신앙생활을 하고 천주교 태생이면 천주교의 교리로 일생을 신앙생활을 합니다.
과연 개신교의 손을 들지 천주교의 손을 들지 아니면 새로운 주장을 펼지 온 지구가 궁금할 것입니다.
온 지구가 바울 사도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바울의 로마서가 온 지구에 미친 영향은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의 미국과 영국과 유럽의 개신교 국가와 한국과 중국과 그리고 다양한 나라에 개신교의 복음이 전파가 된 것도 바울의 로마서에 대해서 이전과 새롭게 이해를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이해가 이렇게 온 세상의 역사를 바꾸고 주관함은 성경 말씀이 그냥 인간의 말씀이 아니라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시요, 인간과 만물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모든 업적과 노력이 지구와 같이 사라져도 우주가 사라져도 글자 한자 한 점 변함없이 존재할 말씀이 바로 성경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 중에서 신 구약의 66권이 한 성경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신약 성경 중에서 성경의 다이어 몬드라고 불리는 로마서의 이해는 역사를 바꾸고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고 나의 운명도 역시 이런 역사와 나라의 운명에 따라서 나의 의지와 조금도 상관없이 결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CNN 뉴스가 생중계하고 영국의 BBC가 생중계하고 중국과 일본의 공영방송도 이에 대해서 중계를 할 것입니다. 천주교와 개신교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바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온 정성을 다해서 집중할 것입니다. 이렇게 로마서의 올바른 이해는 온 지구상의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날짜와 시간과 장소가 정해지면 온 세상의 방송이 바울에 대해서 미리 설명하고 자신의 방송의 시청률을 높이고자 할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서를 잘못 이해하고 가짜로 가르친 모든 목사 혹은 신부 혹은 성경 교사는 사색이 될 것입니다. 진리가 선포가 되는데 자신이 알고 가르친 것과 다른 내용을 바울 사도가 설명하니 이제 자신의 가르침대로 믿고 산 자신과 가족과 그리고 자신의 양 무리를 보면서 어떻게 이를 바로잡지 하고 당황해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모든 성직자가 사는 날 동안에 일어나면 지극히 다행인데 이런 진리도 모르고 자신이 아는 데로 가르쳐서 나중에 예수님 앞에 서니 자신의 가르침이 대부분 거짓말인 것이 밝혀지면 자신도 자신을 따라서 잘못 알고 잘못 믿은 수도 없는 성도와 함께 지옥으로 가게 될 것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영혼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성도는 과연 어떤 주장이 더 옳지 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 당연함이 너무나 부족한 것이 지금 온 지구상에 사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신학자도 일생을 걸쳐서 진리를 밝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같은 로마서 같은 로마서 1장 17절을 두고서 서로 이렇게 다투는 것에 대해서 우선 자신의 진영의 교리를 수호하기보다는 참된 진리에 대해서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신학자의 태도입니다. 무분별하게 따라가면 절대로 되지 않습니다.
우선 방송은 온 지구상의 모든 방송이 바울 사도가 누구인지 조망을 할 것입니다. 과연 바울이 어떤 인물이기에 이렇게 온 인류의 역사를 운명이 짓는 글을 쓰고 지금도 모든 세상의 가장 유명한 대통령이나 가장 유명한 가수나 혹은 연예인보다 비교가 되지 않게 성경을 통해서 혹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바울이라는 이름이 하루에도 수십억 명이 조회를 하는지 이번 기회에 밝히고자 애를 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특집이 온 방송을 통해서 편성이 될 것이고 온 바울 연구가들 바울 전문가들이 설명을 할 것이지만 이제는 로마서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지극히 말을 아낄 것입니다. 곧 바울이 등장해서 그가 쓴 바울 서신 로마서에 대해서 온 지구인이 알게 강의를 하고 또 질문도 받고 답도 할 것이기에 자신이 알고 가르치는 로마서의 내용에 대해서 지극히 조심하고 그리고 비로소 개신교의 목사는 천주교의 가르침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천주교도 역시 개신교의 가르침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로마서로 설교하고 강의를 한 신부와 목사와 성경 연구가들은 바울의 자신의 로마서에 대한 강의가 자신의 말에 대한 심판이 될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로마서 강의를 앞두고 로마서에 대한 강의를 무분별하게 할 목사 신부는 이제 아무도 없습니다. 동영상으로 강의를 하려고 준비한 모든 신부 목사 신학자가 감히 그 동영상을 올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도 자신이 있는 사람들은 올려서 자신이 올바르다 하는 것을 인정을 받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보시는 바와 같이 천주교와 개신교의 두 주장이 너무나 강하게 500년을 지배했기에 비로소 과연 어느 것이 옳은가에 더 관심이 있지 자신이 전하려고 하는 로마서의 강의나 유튜브에 대해서는 절제에 절제를 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 비로소 다른 사람의 주장에 대해서 겸손히 살피게 될 것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바울이 과연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논의는 폭발을 할 것입니다. 이는 로마서의 내용에 대한 것이 아니라 로마서를 쓴 사람에 대한 것이니 자료를 통해서 검증이 가능하기에 이에 대해서 온 세상의 방송이 바울이 어떤 사람인지 밝히려고 모든 정성을 다할 것이고 이참에 온 세계에 자신의 방송을 소개할 수가 있으니 모든 국가가 바울 전문가를 초청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바로 겁도 없이 용감하게 인터뷰에 응할 신학자, 목사, 신부, 성경 교사와 연구가가 얼마나 있을지 궁금합니다. 바로 자신의 말이 심판이 되기에 그런 것입니다. 이렇게 바울 사도가 직접 이 세상에서 강의를 하는 것은 모든 이에게 큰 관심과 걱정이 되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로마서를 정말로 올바로 이해하고자 늘 관심을 갖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만 배나 무서운 일이 바로 예수님 앞에서 심판이 진행이 되는 것입니다. 이 심판에서 살아남자면 이 세상에 살 동안에 우리는 로마서에 대해서 정말로 진지하게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어떤 신학자가 어떤 목사가 어떤 교사가 어떤 선생이라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냥 자신이 로마서를 믿고 따라서 행동한 데로 심판이 진행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변명도 통하지 않고 바로잡을 시간도 없이 바로 결정이 되고 지옥으로 혹은 천국으로 갈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서로를 전도의 대상으로 보고 서로에 대해서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서로 간에 옳다고 주장하며 500 년이 흘러온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의 내용보다 바울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먼저 관심이 폭발할 것이 분명합니다.
과연 바울이 누구인가? 어떻게 로마서를 썼는가? 그리고 다음이 로마서의 내용일 것입니다.
먼저 바울 사도가 이방인의 전도자란 사실이 밝혀질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도 없이 신학으로 바울을 연구하고 전도도 없이 로마서를 배우고 전한 모든 사람이 절망하게 될 것입니다. 김연아 선수와 같이 피겨를 세계적으로 잘 하는 전도 부분의 일인자 전도자가 바울 사도인데 피겨를 한 번도 타 보지 못하고 교수로 피겨를 가르치려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감히 전도도 한 번도 밖에서 해 보지 않은 사람이 신학교 교수로 목사로 로마서를 강의를 했다면 이들은 이제 절망 만이 존재할 것입니다. 해 보지도 않은 일을 마치 전문가와 같이 되어 거짓을 말했기에 절망이 가득할 것입니다.
둘째로 바울 사도가 구약 성경의 율법에 대해서 깊이 연구하고 알고 그대로 실천을 하려 했던 사람이 온 천하에 밝혀질 것입니다. 즉 바울 사도는 법학자였으며 그것도 모세 오경의 율법의 대가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성경의 율법에 대해서 부정적이고 잘 이해를 하지 못하고 로마서를 가르쳤던 신학자 목사 신부 성경 교사는 또 절망을 미리 할 것입니다. 역시 자신이 알지 못하는 분야를 바울 사도는 율법의 대가로서 로마서에 언급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 둘에 걸린 대부분의 신학자 목사 신부 혹은 성경 연구가는 바울 사도의 로마서의 강의가 죽음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없으면 좋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죽기 전에 로마서의 진리가 무엇인지 알아야만 되기에 사형 심판을 앞둔 사람과 같이 벌벌 떨면서 강의를 두렵고 두려운 마음으로 지켜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예수님 앞에서 심판을 받기 전에 미리 진리를 알기에 양심이 있는 목사 신학자 혹은 성경 교사 심지어 모든 성도가 다 이 바울 사도의 강의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기울일 것이 분명합니다.
세 번째 바울 사도의 특징이 온 세상에 밝혀집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도리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잡아서 옥에 가두던 반 예수님의 선봉에 있던 사람이었고 그리고 예수님을 만났고 눈이 멀고 먹지 못하고 3일을 지낸 후에 완전히 과거에 다른 사람이 되어서 아나니야를 만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받아서 성령의 인도로 여생을 적어도 20년을 살면서 쓴 글이 로마서 임을 알게 되었을 때 또 수많은 신학자 목사 신부 혹은 성경연구가들이 절망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과연 예수를 믿고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받은 바울은 어떤 강의를 할 것인지 자신이 아직도 성령을 받은 경험이 없는 사람은 크게 걱정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자신이 로마서로 박사 학위도 받고 목사도 되고 교수도 되고 성경 연구가가 되고 바울 전문가가 되었는데 자신은 진작 성령도 없이 지식으로 이렇게 먹고살고 있는데 진짜가 와서 자신과 다른 성령 체험을 하고 로마서를 가르치니 얼마나 자신이 올바르게 가르치는지 궁금할 것이고 그리고 자신이 전하고 가르친 내용이 올바르지 않을 수도 있으니 긴장과 두려움으로 바울 사도의 강의를 기다릴 것이 분명합니다.
전도도 없고 율법도 모르고 성령도 없이 감히 바울 사도의 로마서를 신학으로 배우고 목회를 하고 교수로 있고 성경의 전문가로 있는 모든 사람이 자신과 완전히 다른 신분인 바울 사도의 삶과 그 삶에 나온 로마서를 이제 직접 확인하게 되면서 너무나 다른 자신과는 다른 인간 바울에 대해서 경악하고 두려움에 벌벌 떨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의 입에서 나오는 로마서의 내용이 너무나 자신의 가르침과 다를 때 이를 안 대중의 분노와 비난과 그리고 모든 자신의 지위에서 누리던 영화가 물거품이 되는 것에 대해서 경악하고 두려워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도 이 세상에서 겪는 것이 만 배나 다행인데 바로 예수님 앞에서 어떻게 견딜 수가 있을 것입니까? 이렇게 로마서의 올바른 이해는 나도 죽고 살고 나에게 배우는 사람도 죽고 살게 할 성경 말씀으로 너무나 중요한 신약의 서신인 것입니다.
그래서 대중을 따라서 가는 것입니다. 혹 다른 주장을 하면 무리에서 이탈해서 홀로 그 주장을 펴야 하는데 아무도 동조하지 않으니 이를 견디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다수를 따라서 갑니다.
우리가 바울 사도와 같이 되어 바울 사도가 살던 삶을 그대로 살면 우리는 로마서를 잘 이해하게 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바울 사도도 성도가 자신을 본 받아서 신앙생활을 하라고 권면했습니다. 먼저 율법을 잘 배워야 합니다. 로마서는 법률 서적의 성격도 너무나 강합니다. 당연히 법학도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을 했으니 그 법적인 지식이 반영이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율법에 대해서 너무나 잘 배우고 율법대로 사는 것이 의롭다 인정을 받는 유일한 길이라 믿고 이 믿음에서 벗어나는 것은 공격하고 없애려고 한 것입니다.
먼저 로마서는 율법의 가치와 귀함에 있어서 너무나 깊은 이해를 지닌 사람 바울의 기록이란 사실입니다. 그런데 율법에 대해서 아는 것도 부족하고 율법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은 절대로 로마서를 잘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당연히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명령 즉 마태복음 5장 17-20절의 말씀도 외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와 율법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제가 이렇게 잠실교회 2성전에서 글을 쓰는데 반가운 분들을 만났습니다. 매일 새벽 기도에 빠지지 않고 성가대로 50년을 봉사하신 장로님 권사님 부부셨는데 이분들께서 제게 뭐 하냐 하고 물으시길래 로마서의 새로운 이해를 전합니다. 천주교와 개신교의 논쟁이 500년 동안 있는데 하나님께서 제게 이 두 교회가 서로 이해하고 하나가 되게 하는 로마서의 이해를 주셔서 전한다고 하니 관심을 가지시며 무슨 내용이야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본문에 답이 있는데 우리가 본문을 보면 이 논쟁에 대한 답을 바로 얻을 수가 있다 즉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란 로마서 1장 17절의 구절이 실제로 영어로 보면 의인은 믿음을 갖고 하루하루 사는 사람이다 로 되어 있어 오직 믿음도 아니고 믿음+행위도 아닌 믿음을 갖고 하루하루 삶을 사는 사람이 의인이다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믿음이기는 하지만 어떤 믿음인지에 대한 설명도 역시 성경에 있는데 우리 성경은 믿음에서 믿음으로로 번역이 된 부분이 처음부터 끝까지 잘 믿음으로 되어 있고 이에 대한 설명이 로마서 4장에 있는데 1-16절은 오직 믿음이 맞는데 75세 때 아브라함의 믿음이고 17-22절은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서 변치 않고 믿는 믿음에 대해서 설명하며 하나님의 2차 믿음의 인정이 있다. 그리고 야고보서 2장에 그가 110 무렵에 3차에 걸친 테스트가 있고 이를 다 합격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의 믿음이 되어야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을 받는다 장로님과 권사님께서 일생을 쉬지 않고 아침에 성가대에서 찬양으로 영광을 돌리시고 쉬지 않고 전도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하시듯이 처음 믿으실 때도 합격이고 중간이 언젠지 모르니 또 체크를 하셨을 때도 합격이고 지금도 합격이니 이렇게 일생을 잘 믿는 사람이 의롭다 인정을 받는다. 혹 믿다가 타락하는 사람. 쉬는 사람, 죽음을 앞두고 부인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라고 설명을 드리니 권사님께서 직접 그 구절을 찾아서 확인을 해 보시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찾아서 보여 드립니다.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이것은 바울 사도의 오셔서 설명이 아니라 제가 이해한 내용을 잠시 전했는데 이를 소개한 것입니다. 이 이해는 천주교 개신교의 이해를 다 같이 수용하며 하나가 되게 하는 이해입니다.
신학자가 이렇게 이해를 곧 체크하고 맞는지 틀리는지 분별이 가능합니다. 오직 믿음도 아니고 믿음+행위가 아닌 예수님을 믿고 의롭게 되려는 자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갖고 하루하루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바울 사도는 이렇게 주장할 것입니다. 모든 성도는 예수님을 믿고서 믿지 않는 일반 사람도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교회나 성당에서 예수님의 이름의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를 받고 성령을 받아서 하루하루 살아가야 합니다. 로마서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냐 혹은 믿음+행위로 의롭게 되냐를 서로 누가 옳다고 다투는 책이 아니다. 그리고 로마서 1장 17절의 의미가 이런 천주교 개신교의 주장의 의미가 아니다. 로마서는 예수님을 믿고 하루하루 살가는 방법을 설명한 글이다. 로마서 1장 17절은 틀림없이 그렇게 설명이 되었다. 기록이 되어 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이 되어야 한다. 한 순간의 믿음도 아니고 믿다가 왔다 갔다 하는믿음도 아니고 오직 한결같이 일생을 통해서 믿는 믿음이 되어야 한다. 그 예를 아브라함으로 로마서 4장1-16절 17-22절 그리고 야고보서 2장에 차례로 설명을 하였다. 이를 확인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이여야 하며 이런 믿음을 가지고 하루하루 믿음대로 사는 사람이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을 받는다. 그리고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도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 설명이 바로 로마서 7장 6절의 설명이다.
롬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6. 우리는 율법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죽어서 그 제약을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낡은 법조문을 따라서 섬기지 않고 성령께서 주시는 새 생명을 가지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6. But now, by dying to what once bound us, we have been released from the law so that we serve in the new way of the Spirit, and not in the old way of the written code.
개역개정, 공동 번역, NIV 순서
[그러나 이제는 우리를 한 때 얽매였던 것에 대해서 죽었으므로 율법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새로운 방법으로 섬기는 것이지 즉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지 옛날에 하던 낡은 방법 즉 율법을 가지고 섬기던 방법으로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성령을 선물로 받았으니 성령님을 인정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으로 우리의 삶의 모습을 바꾸어야 한다. 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방법이 바로 믿음 생활이다. 성령님은 우리를 돕기 위해서 오신 분이시고 또 우리를 거듭나게 즉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시는 분이시다. 나는 예전의 바울이 아니다 예전의 율법을 조문조문 지키던 바울이 아니라 성령을 받고 거듭난 새로운 창조물이 된 하나님의 작품 바울이다. 나의 옛 사람은 사라졌다. 모든 성도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으면 이렇게 거듭나게 된다. 거듭난 성도는 이제는 성령의 인도에 민감하게 되어 예전에 어떤 행위를 할 때 내 생각으로 율법을 보면서 결정하던 것을 성령께서 순간순간 바로 바로 인도하시니 그 인도를 받고 살아야 한다. 우리의 믿음 생활의 올바른 모습이다.
이렇게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살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 생긴다. 이 믿음의 비밀 성령의 인도의 비밀을 알기 바란다. 성령께서 성도를 어떻게 인도하시겠는가? 이는 직접 성령의 인도를 받고 성령의 인도대로 살아 보면서 그 결과를 보면서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절대로 성령의 인도도 없이 마음대로 살면서 이루어지는 경지가 아니가 그 경지가 바로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말씀에의 순종이다.
나는 이를 로마서 13장 8-10절에서 설명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
롬 14: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얼마나 멋있는 일인가! 나를 비롯해서 모든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독사의 자식들아! 위선자야! 하고 책망을 받으면서 사랑이 없음에 대해서 예수님을 힘들게 했는데 이제 성령께서 이렇게 우리를 사랑을 통해서 율법을 완성하게 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게 하니 얼마나 복되고 귀한 일인가? 역사상 율법으로 의롭다 인정을 받는 사람이 너무나 드물었는데 이렇게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그리고 우리가 새롭게 창조가 되므로 즉 엎 그레이드가 됨으로 이렇게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율법을 완성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성령님을 찬양해야 할 것이다. 이에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다 또 놀라운 일이 있으니 로마서 3장 31절에서 설명했다. 반드시 모든 세상의 성도는 깊이 생각해야 되는 구절이다.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믿음 생활을 한다고 율법을 파기하느냐 절대로 아니다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운다. 믿음 생활이 곧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생활이고 성령의 인도를 받다 보면 율법을 사랑을 통해서 완성하고 이렇게 율법이 완성이 되니 곧 율법을 굳게 세우게 되는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렇게 율법을 조문 조문 지키려고 애를 써도 다 지키지 못해서 율법을 굳게 세우지 못했던 우리 바리새인이 이제는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서 새 사람이 되어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믿음 생활을 하다 보니 이렇게 율법을 굳게 세우는 사람이 다 되었다.
이렇게 율법이 굳게 서는 것이 예수님께서 삼위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일이다. 왜 그런가 율법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모든 인간이 서로 화목하게 살 수가 있는 유일한 법이다. 가장 공평하고 정의로운 법이다. 이 법이 그대로 지켜지는 곳이 바로 이 땅에 세워지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이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1000년을 기다리며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키길 바라셨다. 선지자를 보내시며 때론 심판을 선포하시고 때론 기적을 보이면서 이스라엘이 율법을 잘 지키길 간절히 바라셨다. 그런데 실패하자 이제 하나님께서 새로운 방법을 고안하셨다. 에스겔서에 있다.
겔 36: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삼위 하나님의 총동원 구원이 이렇게 표현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구원에 대해서 계획이 있고 예수님께서 이를 직접 오셔서 실천하셨다. 그리고 성령께서 오셔서 거듭나게 하신다 그리고 그 목적이 바로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다.
로마서는 1장에서 믿음으로 하루하루 사는 것을 설명했고 4장에서 어떻게 믿음으로 사는가를 아브라함을 통해서 설명했고 이 믿음의 삶이 로마서 7장 6절과 같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이 되어야 하고 이렇게 성령의 인도를 받다보면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움으로 비로서 하나님께서 꿈을 꾸시는 이 땅에서의 천국을 설명한다. 로마서 14장 17절에 있다.
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성령안이란 말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이고 의는 율법이 완성되고 굳게 세워지는 상태이고 이 의가 행해지는 곳에 평화, 평강이 있고 정의가 있고 평강이 있는 곳에 기쁨이 샘솟는 곳이 된다.
율법을 너무나 중요한 하나님의 나라의 기둥이며 기초이며 모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율법에 정통한 율법학자를 원하셨다. 간절히 원하셨다. 율법학자라야만 이런 원리를 설명할 수가 있으니 간절히 이 땅에 있으실 때 자신에게 천국에 대해서 율법학자가 배우길 원하셨다. 그 말씀이 마태복음 13장 52절에 있다. 나와 대부분의 율법학자는 이런 예수님에 대해서도 예수님의 부르심에 대해서도 부르심의 뜻에 대해서도 잘 이해를 하지 못했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52. He said to them, "Therefore every teacher of the law who has been instructed about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the owner of a house who brings out of his storeroom new treasures as well as old."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길, " 그러므로 모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교육을 받은 율법학자는 그 집의 주인이 자신의 보물창고에서 옛 보물을 꺼내서 나누어 주고 새 보물도 역시 꺼내서 나누어 주는 것과 같이 된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보물 창고에서 즉 말씀의 창고에서 옛 보물 즉 구약의 말씀도 자신과 같이 꺼내서 때를 따라서 성도에게 나누어 주고 또 신약의 말씀도 역시 꺼내서 나누어 주는 자신이 하던 사역과 같은 사역을 할 동역자로 율법학자를 원하셨다. 왜 율법학자이여야만 했는가? 율법을 잘 아는 사람만이 예수님께서 구약의 율법에 예언한 바로 그 분임을 알게 되고 율법학자들이 율법에 대해서 잘 아니 율법을 굳게 세워야 서는 이 땅의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적임자이며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신약의 말씀과 함께 구약의 말씀도 성도들에게 잘 가르쳐야 하는데 이를 율법을 모르는 사람이 잘 할 수가 없으니 율법학자를 꼭 집어서 말씀을 하신 것이다. 그런데 지원자가 없자 나에게 직접 오셔서 나를 회개하게 하시고 이렇게 로마서를 쓰는 자신의 종으로 쓰신 것이다.
정말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고 예수님의 뜻을 잘 받들고자 하는 사람은 이방인의 경우 반드시 율법을 잘 배우고 또 반드시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서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우는 나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 마태복음 5장의 말씀을 잘 실천함으로 당연히 천국에서 큰 자가 되는 것이다. 이 땅에 그렇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잘 세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율법에 대해서 잘 모르고 로마서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율법을 잘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즉 성령도 모르고 성령의 인도도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은 이 땅에서 아무리 큰 교회나 성당의 담임이라 해도 천국에 가지 못할 수도 있고 천국에 가더라도 지극히 작은 자로 영원토록 살 것이다. 라고 강의를 할 것으로 저는 믿습니다. 저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로마서를 잘 설명을 해 줄 것이나 적어도 큰 줄기는 같을 줄로 저는 믿습니다.
저는 비록 바울 사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신학 대학원, 대학원 행정학과를 졸업했고 행정고시를 8년간 하루에 13시간 공부한 경험이 있고, 1992년 성령을 받고 25년 이상 성경을 읽고 정리했고 전도도 30년을 쉬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진리를 전하도록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동행하시면서 쉬지 않고 극심한 가운데 격려와 성경을 깨닫는 기쁨을 주셨습니다.
이제 이 로마서의 새로운 이해로 모든 교회가 하나가 될 시점에 왔고 이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와 함께 성도의 하나 됨은 언어의 하나 됨이 큰 요인을 차지하는데 이제 영어로 온 지구인이 하나가 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제가 이미 수십 번 소개를 했고 저도 영어가 비약적으로 향상이 되고 있습니다. 제 방법대로 하시면 토익 700점 이상이신 분은 6개월 만에 길게는 1년 만에 영어를 한국말고 같이 하지 못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 오신 후 2000년 이제는 모든 지구상의 교인이 하나가 되는 때가 온 것입니다. 그리고 영어로도 하나가 되어야 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이 두 명제를 알고 실천하는 교회와 개인이 향후 온 세계의 역사를 주관하는 나라 집단 개인이 될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께 직접 불을 받은 김정관 목사입니다. 부디 믿고 이 놀랍고 귀한 축복의 초대에 응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믿습니까? 이 땅에서 사는 것은 대부분 70-80년으로 도찐개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로마서를 알고서 성령의 인도를 매일 받는 사람과 그냥 대충 마음대로 사는 사람은 그 결과가 너무나 다릅니다. 정말로 자신이 알고 믿던 교리를 잠시 접고 제가 전하는 메시지를 성경을 찾아보시면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때는 이제 하나 됨의 때가 된 것입니다. 개신교와 천주교가 같이 제가 전하는 로마서의 새로운 이해를 거절할 이유가 절대로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 나라를 세우는데 기준이 없으면 절대로 그 나라는 설 수가 없습니다. 기준도 없으면 대형교회 목사가 독재를 합니다. 성도가 천국에 가는 것에 관심이 없게 됩니다. 정말로 조용히 내 목사가 일생을 걸쳐서 마태복음 5장 17-20절의 내용으로 설교를 해 주면서 천국에서 큰 자가 되라고 격려를 한 적이 있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한 번도 없다면 그는 큰일이고 그 목양을 받는 성도도 큰일입니다.
사랑의 하나님! 주일 날 잠실교회에서 하나님의 하나 됨의 뜻을 바울 사도의 강의라는 제목으로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놀랍고 크신 은총에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언어로 하나가 되고 로마서의 새로운 이해로 하나가 되는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믿고 실천하는 모든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큰 복을 먼저 주실 이 분야에 도전하는 성도들에게 믿음과 용기를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한국이 모든 나라에게 가장 앞서게 하시고 동방의 빛이 한국에서 온 세상을 비추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