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 김기택 민근홍 언어마을
굳어지기 전까지 저 딱딱한 것들은 물결이었다 파도와 해일이 쉬고 있는 바닷속 지느러미의 물결 사이에 끼어 유유히 흘러다니던 무수한 갈래의 길이었다 ◈1-4행 : 생명의 본래적 모습 그물이 물결 속에서 멸치들을 떼어냈던 것이다 햇빛의 꼿꼿한 직선들 틈에 끼이자마자
멸치의 생명력을 앗아가는 존재 부드러운 물결은 팔딱거리다 길을 잃었을 것이다 바람과 햇볕이 달라붙어 물기를 빨아들이는 동안 바다의 무늬는 뼈다귀처럼 남아 멸치의 등과 지느러미 위에서 딱딱하게 굳어졌던 것이다 모래더미처럼 길거리에 쌓이고 건어물집의 푸석한 공기에 풀리다가 기름에 튀겨지고 접시에 담겨졌던 것이다 ◈ 5-13행 : 생명의 박탈 과정 지금 젓가락 끝에 깍두기처럼 딱딱하게 집히는 이 멸치에는 두껍고 뻣뻣한 공기를 뚫고 흘러가는 바다가 있다 그 바다에는 아직도 지느러미가 있고 지느러미를 흔드는 물결이 있다 이 작은 물결이 지금도 멸치의 몸통을 뒤틀고 있는 이 작은 무늬가 파도를 만들고 해일을 부르고 고깃배를 부수고 그물을 찢었던 것이다. ◈14-21행 : 본래적 모습 회복의 욕망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비판적, 상징적, ◈ 표현 ① 일상적 소재를 통해 발견한 생명의 가치 회복을 표현하고 있다. ② 부드러움과 뻣뻣함을 대조하여 잃어버린 생명력에 대한 상념을 노래하고 있다. ③ 멸치라는 생활 속의 소재를 통해 느낀 자연의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힘에 대하여 노래하고 있다. ④ 촉각적 이미지를 주제를 형상화하는 지배적 이미지로 사용하고 있다. ⑤ 생명력을 잃고 딱딱하게 굳어버린 멸치 볶음 반찬과 그것을 먹는 현대인의 모습을 통해서 존재의 생명력을 빼앗는 도시의 문명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⑥ ‘~것이다’의 단정형 표현은 현대인에게 잃어버린 생명력의 가치를 강하게 일깨우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나게 하는 효과가 있다.
◈ 제재 : 멸치 ◈ 주제 : 생명 회복의 의지 / 자연의 부드러운 힘
[시의 짜임]
◈ 1-4행 : 생명의 본래적 모습 ◈ 5-13행 : 생명의 박탈 과정 ◈ 14-21행 : 생명의 본래적 모습 회복에의 소망
[시어 분석]
*물결 : 생명력 / 자유로운 자연적 공간 *바다 : 생명력이 가득 찬 공간 *파도, 해일, 물결 - 부드러움, 자연의 건강한 힘 상징 *길: 생명력이 있는 자유로운 공간 *그물 : 문명/ 파괴적 속성 *햇빛의 꼿꼿한 직선 : 멸치의 생명력을 앗아가는 존재 *그물, 햇빛 :부드러운 자연을 딱딱하게 만든 인공의 손길 *부드러운 물결 : 부드러움 : 생명력 ⇔ 뻣뻣함, 꼿꼿함 : 반생명적 이미지
[해설]
이 시는 현대 문명에 의해 파괴된 생명의 본래적 모습과 생명의 상실 과정, 그 회복의 소망을 순차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화자는 식사 중에 ‘멸치 볶음’ 반찬을 먹으려고 젓가락질을 한다. 멸치 반찬이 되기 전 멸치는 생명력을 지닌 물결 같은 것이었다. 생명이 박탈되면서 접시에 담겨지기까지의 과정을 연상한 후, 멸치의 몸통이 파도를 부른다고 하여 생명의 본래적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소망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뻣뻣하게 굳어 있어 생동하지 못하는 존재인 멸치의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자연 그대로의 생명력 있는 모습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고 있다. 식탁 위에 반찬으로 올라온 멸치 조림을 소재로 부드러움과 뻣뻣함을 대조하여 잃어버린 생명력에 대한 상념을 노래하고 있다.
[관련 작품]
◈ 현대문명의 폐허와 순수?가치관의 상실
김기택 ‘바퀴벌레는 진화 중’ ‘멸치’ / 기형도 ‘안개’ / 김광규 ‘젊은 손수 운전자에게’ / 김광섭 ‘성북동 비둘기’ / 박남수 ‘새’ / 김광규 ‘서울 꿩’ ‘고향’ / 최승호 ‘공장지대’ / 김광균 ‘와사등’ / 김명수 ‘동전 한 닢’ / 정한모 ‘나비의 여행’
◈ 자연의 순수함과 생명력 예찬
김광규 ‘대추나무’ / 박형진 ‘사랑’ / 안도현 ‘겨울 강강에서 ’ / 정호승 ‘새들은 지붕을 짓지 않는다’ [작가] 김기택(金基澤, 1957- ) 시인. 경기도 안양 출생. 중앙대 영문과를 졸업.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론 1991년 <태아의 잠>이 있다. 1994년 <바늘 구멍 속의 폭풍>, 1999년 <사무원>등이 있고, 1995년 제14회 김수영 문학상, 2001년 제46회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