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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앙생활
1. 올해 사순시기부터 멀리 여행을 가거나 새벽에 골프 라운딩을 가는 경우 외에는 거의 매일 새벽미사에 나간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주님의 극진한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며, 오늘도 기적의 새날을 나에게 열어주신 주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린다. 미사에 참례하면서 듣게 되는 예수님의 복음 말씀, 이에 대한 신부님의 강론이 항상 새롭게 마음에 다가오며, 기쁘게 성체를 받아 모시게 된다.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다. 그러나 이처럼 성당에 가는 게 부담이 아니라 하나의 커다란 기쁨으로 느껴지고 그래서 매일 기쁘게 평일 미사에 참례하기까지 참으로 오랜 기간이 걸렸다.
나는 결혼당시 아내가 가톨릭신자인줄 모르고 일반예식장에서 혼례를 올리고 애를 셋 낳을 때까지 천주교에 대해서 한 번도 관심을 가져 본 일이 없었다. 그런데 부산 근무 시 이미 작고한 나의 대부(代父) 손중모 변호사님 집 부근으로 이사를 가고 나서 아내가 느닷없이 성당에 나가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그때까지 성당 문 앞에도 가본 일이 없지만 성당이나 교회 어느 곳이나 선(善)을 가르치는 곳인 줄을 알고 있었기에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아내는 고등학교 때 영세를 받았는데, 대학 때부터 무서운(?) 오빠 눈을 피해 놀러 다니기 위해 성당 간다하고 집을 나와 놀러가느라고 성당을 안 나간 이래 그동안 줄곧 냉담해왔다는 것이다. 어떻든 애들이 커가면서 애들과 같이 성당에를 따라다니기 5년쯤 지난 1979년 1월부터 3월까지 3개월간 부산 중앙동 성당에서 행해진 ‘지성인 교리반’ 에서 예비자 교리를 받고, 그해 부활절 며칠 전날 나 혼자 당시 주거지관내인 부산 대연동성당에서 알폰소(당시는 알퐁소로 표기)라는 세례명으로 영세를 받았다. 교리를 맡아하신 어느 신부님께서 하느님과 그 아들 예수님의 존재에 관하여 설명하신 내용이 그럴 듯 했다.
신부님의 말씀을 요약하면, 우리가 세종대왕을 본 일이 없는데도 그가 이씨조선 제4대 임금으로서 한글을 만들었다고 믿고 있는데 이는 그러한 사실이 ‘이조실록’ 이란 책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신약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로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죄 많은 우리 인간을 구제하기 위하여 우리와 똑같은 사람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시어 온갖 멸시와 고통을 받으시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 이 신약성경은, 온갖 기적을 행하며 제자들을 가르치던 예수님께서 어느 날 맥없이 붙잡혀 십자가 처형을 당하는 걸 보고 모두 겁내어 뿔뿔이 흩어져 도망간 제자들이 문을 잠그고 숨어 지내는 방안에, 며칠 후 다시 나타나시어 그들에게 말도 하시고 음식도 드시는 것을 보니 생전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다고 하신 예수님 말씀 그대로이어서, 이 분은 분명 하느님의 아들임이 분명하다며, 당시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마르꼬, 마태오, 루카, 요한 등이 각자의 입장에서 예수님의 생전 행적을 기록한 것이니, 이는 이조실록과 마찬가지로 그 기재 내용을 믿을 만 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신(하느님)의 존재를 믿어보기로 작정하고 세례를 받았으나, 3개월 동안의 짧은 예비자 교리 공부를 한 것만으로는, 세례를 받음으로 그때까지 지은 모든 죄가 소멸되고 하느님 자녀로 새로 태어난다는, 세례의 참뜻을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뿐더러 혼자 세례를 받다보니, 여럿이 함께 세례를 받을 때와 같이 축하객이 북적거리고 꽃다발을 받아들고 단체로, 또 가족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며 모두들 기뻐하는 축제와 같은 분위기가 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영세를 받아 기쁘다는 감정이 전혀 생기지도 않았다. 그 결과 영세 후에도 테니스 모임 등 일이 생기면 쉽게 주일을 빼먹게 되고, 아니어도 주일을 지켜야 된다는 의무감에서 마지못해 주일미사에 참례하는, 이른바 ‘일요신자’ 행세를 오래 동안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1984년 쯤 대구 수성동성당에 나갈 때 주임신부님의 권유로 ‘레지오 마리에’ (통상 “레지오” 라고 불린다)라는 신심단체에 가입하게 되었다. 레지오는 성모마리아를 정점으로 하는 군대조직의 신심단체 중 가장 아래 단위부대로, 10명 내외로 구성되는 신자들의 모임인데, 쁘레시디움(Pr.)이라고도 부른다. 단원의 개인성화와 복음전파가 주된 목적이지만, 매주 한 번씩 정해진 시간, 장소에서 규칙적으로 회합(주회)이 이루어지고 종종 주회 끝에 2차 주회라 하며 맥주 집에 함께 가서 생맥주를 마시는 등으로 단원들 간에 친교가 이루어지고, 또 성당의 모든 행사 일정이 레지오 회합 때 단원들에게 상세히 전달됨으로 단원은 성당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보다 잘 알게 된다.
레지오에 가입하기 전에는 주일미사에 나가도 반갑게 인사하는 교우도 없으니 미사가 끝나는 대로 곧장 돌아오고 말지만 이제 친해진 레지오 단원과 기쁘게 인사하고 차를 나누며 이야기도 할 수 있어, 한결 같은 교우라는 소속감을 가지게 되고, 성당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다 자세히 알게 되니 성당이 벌리는 행사에 관심이 가고 시간이 나면 아내에 끌려 더러 참여하게도 되었다. 그러나 레지오 가입으로 그 전보다는 성당에 나가는 것이 다소 생소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뿐이지, 하느님이 어떤 존재이고 나와는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에 주일에 의무적으로 미사에 참례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전부일 뿐이고 일주일 내내 세상의 온갖 잡다한 일상으로 돌아와 하느님의 존재나 내가 신자라는 것도 잊고 지낼 때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러다가 1987년 1월 15~18일 주임신부님의 추천으로 3박 4일간 대구대교구 남성 제71차 꾸르실료 교육을 받게 되었는데, 그 교육에서 어렴풋이 하느님을 체험한 것인가, 알 수 없는 희열을 느끼게 되었고 그 이후부터는 주일에 성당에 나가는 것이 부담이 아니라 하나의 기쁨으로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그 때부터 영혼의 갈증을 풀어주는 각종 신앙서적을 찾아 읽고, 성당의 여러 행사, 예컨대 구역 모임, 단체로 가는 전국 각지의 성지순례, 피정 등에도 보다 적극적으로 참석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성경에도 관심을 갖게 되어 변호사 개업을 하기전인 1988년 1월 쯤 대구 범어동성당 김옥수 신부님께서 모집한 ‘모세오경’ 성경공부 모임에 등록하여 2개월여 동안 난생 처음으로 창세기, 출애급기(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대한 신부님의 체계적인 강의를 듣기도 하였다.
1992년 11월 3일 대구에서 한창 변호사 업무로 바쁠 때인데도 김무한 주임신부님의 명으로 수성동성당의 평협회장(평신도사도직협의회장-지금의 사목회장)직을 맡아 5년 간 계속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대구대교구 평협 선교분과위원장을 맡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신부님의 명을 거절할 수가 없어 형식적으로 여러 직책을 맡고 있었지만 신앙심이 깊어서가 아니라 부장판사 출신으로 능력 있는 변호사라는 사회적 지위 때문에 맡겨졌을 뿐, 나 자신의 신앙이 아주 미약할 때이어서 지금 돌이켜보면 그러한 직책을 맡았다는 게 부끄럽기 그지없다.
어떻든 그러한 직책에 있다 보니 대구대교구 평협회의에도 종종 참석하여 교구장이신 이문희 대주교님의 말씀도 듣게 되고 신앙심이 깊고 훌륭한 분들과 교구발전을 위한 교구 시노드(일종의 교구차원의 신앙 쇄신모임)에도 관여한 것이 나 자신의 신앙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듯하다.
한편 1996년 가을 쯤부터 4년 동안, 대구 파티마수녀원에서 주관하는 ‘어버이 성서모임’에 다니면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공부를 하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저녁에 압량에 있는 강의실까지 가서 한 시간은 성서학을 전공한 수녀님의 강의를 들은 다음, 한 시간 동안 그룹 모임에서 봉사자의 지도아래 ‘복음 나누기’를 하는데 이는 그날 강의들은 성경말씀을 우리 생활과 관련시켜 서로 이야기 하는 것이다. 아내는 나 보다 4년 먼저 이러한 과정을 모두 마치고 그 때는 봉사자로 나와 함께 다녔다. 신, 구약 성경을 개괄적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부분을 공부할 수 있어 신앙을 키우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4년 간 ‘어버이 성서모임’을 수료한 기념으로 아내와 같이 그때 공부를 같이한 분들과 더불어 신부님과 수녀님 인솔아래 2000년 1월, 20여일에 걸쳐 구약 성경의 무대인 이집트 시나이 산을 비롯하여, 예수님이 태어나시어 복음을 전파하시다 십자가 처형을 받으신 이스라엘의 베들레헴, 나자렛, 갈릴레아, 예루살렘 등 신약성경에 나오는 역사의 현장을 살펴 볼 기회도 가졌다.
2. 위와 같이 성경공부를 하고 잇달아 이집트,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오고 부터는 서서히 새벽미사에도 종종 나가게 되었다. 대법원에 와서는 업무가 바빠서 대구 수성동성당에서 오랫동안 해온 레지오 활동을 쉬었지만, 출근 전 가능한 한 아내와 같이 방배동성당의 새벽미사에 참례한 다음, 성당 뒷산을 거쳐 우면산대성사까지 산책을 다니며 묵주기도를 바치곤 했다. 퇴직 후 건강이 좋아진 2007년 3월부터 수녀님께 부탁하여 추천받은 방배동성당 “사랑의 샘 Pr.” 에 들어가 레지오 단원으로 한 달에 두 번씩 즐겁게 봉사를 나가는데, 한 번은 성가소비녀수녀회에서 운영하는 미아리의 무료진료병원인 성가복지병원에서 매주 실시하는 무료급식소에 매월 넷째 토요일 레지오 단원 5~6명이 함께 가서 배식봉사를 하고, 또 한 번은 매월 둘째 일요일 서초노인요양센터에 역시 레지오 단원 5~6명이 함께 가서 중증장애노인들을 휠체어에 태워 산책을 시켜주고 점심식사수발을 들어 주는 것이다. 2014년 7월부터는 레지오 단장의 직책까지 맡았다.
뿐더러 나 자신이 신앙에 맛 들여 하루하루를 기쁘게 살고 있기에 친구들과 함께 산행을 하거나 그 외 장소에서도 친구들을 만나면 저절로 화제를 신앙문제로 이끌어 믿지 않는 이에게는 예비자교리 반에 나가도록 권하고, 영세를 받고도 쉬는 교우에게는 성당에 나가도록 권하게 된다. 심지어 기차 옆 좌석의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위와 같이 주님의 복음 말씀을 전하려고 말을 걸게 된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참으로 좋으신 하느님을 모르고 세속 일에만 얽매여 영혼의 구원에 관심 없이 살아가는 주위의 모든 사람이 너무나 안타깝기 때문이다.
3. 신혼 때는 아무리 힘든 일을 하는 경우라도 자신을 극진히 사랑하는 아내 또는 남편을 생각하면서 콧노래를 부르며 기쁘게 그 일을 해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주님이라고 믿는 하느님께서는 아내나 남편보다 훨씬 극진히 우리를 사랑하신다. 당신의 외아들까지 우리를 구원하기위한 속죄 제물로 내어주신 분이시니 더 말해 무엇 하랴? 이것을 깨닫는 것이 신앙에 맛 들이는 것이고, 하루하루를 주님의 품안에서 기쁘게 살아가는 길이다.
요즈음은 공연히 울적해지거나 크고 작은 우환으로 저기압이 될 때에도 우리를 극진히 사랑해 주시는 주님의 크나큰 사랑에 생각이 미치면 곧 바로 오이지 같은 얼굴이 활짝 펴지며 주님의 따뜻한 손길로 모든 것이 잘 되리라는 희망에 마음의 평온을 되찾게 된다.
젊을 시절, 아직 신앙을 갖기 전에는 내가 능력이 좋아서 좋은 학교도 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 간 것으로 알았지만, 믿음이 깊어지면서 보이지 않는 주님의 손길이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4년에 걸친 성경공부 끝에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오고 매일 새벽미사를 나가기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대법원 행정처장으로 부터 내가 대법관으로 제청 되었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당시 12명의 대법관 중 겨우 한명, 그것도 6년 만에 뽑는 변호사 몫 대법관 자리가 대구에서 개업하고 있는 나에게 돌아온 것도, 또 대법관 재직 3년째부터 그때까지 별문제가 없었던 심장판막이상증세의 악화로 몇 번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고 갑자기 쓰러지는 증상이 생겼는데도 (다행했던 것은 이때 옆에서 누군가가 손만 대면 정신이 돌아와 아무 일 없었듯이 평소와 다름없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었다), 대법원의 사무실에서나 법정에서 재판을 하는 중에는 한 번도 그러한 일이 없었고, 다만 하루 빨리 상태가 극도로 악화된 심장판막을 수술로 교체하라고 경고 하듯이, 아내와 함께 성당에서 미사 중에 그러한 일이 생기게 함으로써, 대법원에서 중도하차하지 아니하고 정년까지 근무할 수 있게 된 것도, 퇴직 직후 심장판막 교체수술 후 10년 가까이 전혀 그러한 일이 없다가 올 2월 초순 너무 건강을 자신한 나머지 몸을 혹사하자 역시 과로하지 말라고 경고 하듯, 성당미사 중에 또 쓰러지게 한 것, 이 모두가 주님의 품안에서 기쁘게 살고 있는 나에 대한 주님의 따뜻한 손길이었음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4. 영세를 받고 곧 바로 하느님을 ‘주님’ 이라고 고백하며 기쁘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는 사람은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은 사람으로 극히 드문 일인 것 같다. 내 경우에는 앞에서 자세히 기록한대로, 영세를 받고도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믿고 신앙에 맛 들이기까지는 장구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였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경우에도 좋은 대학에 진학하거나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하려면 남다른 노력을 해야 한다. 하물며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 분의 우리 인간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깊고 뜨거운지를 깨닫고 받아들이는데 어찌 아무런 노력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 신앙의 길도 마찬가지이다.
돌이켜보면 영세를 받고 의무적으로 주일미사에 겨우 나갈 때인 40대 중반부터 대구 수성동성당 상아탑 Pr.에 가입하여 단원들과 친교를 이루고 활동을 하게 된 것이 오늘처럼 기쁘게 신앙생활을 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당시는 현직 판사로 재직할 때이었는데 업무가 바빠 레지오 활동을 할 수 없다고 피하다가 이재명 주임 신부님의 강권(?)에 못 이겨 마지못해 가입하게 된 것이지만 지금은 그렇게라도 레지오에 가입하여 활동 하도록 해 주신 신부님이 참으로 고맙게 생각된다. 영세를 받았으나 아직 주님을 잘 몰라 주일 미사에 나가는 게 부담스러울 때 몇몇 친한 교우들이라도 있어야 성당에 나갈 마음이 생기는데, 매주 정해진 날 회합을 하는 레지오 이상으로 친교를 이루는데 좋은 신심단체가 없다. 레지오에 가입하여 오랫동안 활동하다 보니 매주 주 회합 때 알로꾸시오(훈화)를 해주시는 신부님과도 가깝게 되어 신부님의 추천에 의해 꾸르실료 교육도 다녀오고, 본당의 여러 직책도 맡게 된 것인데, 당시에는 신앙이 미숙한 상태였지만 그러한 본당내의 여러 직을 맡아 활동하다 보니 본당이 주관하는 각종행사 예컨대 본당의 날 행사, 성지순례, 피정, 특강 등에도 적극 참여하게 되고, 영적 갈증을 풀기 위해 가톨릭신문도 정기구독하고 영성에 관한 신앙서적도 찾아 읽게 되었으며 성경공부모임에도 나가게 된 것이다. 또 주일마다 ‘성당주보’에 실린 주옥같은 신부님의 글과 매일미사 책에 실린 ‘오늘의 묵상’을 매일 빠짐없이 읽는데 이 또한 영성생활에 많은 도움이 된다.
몇 년 전부터 미사 때마다 기쁘게 성체를 모신 후에는 피아골 피정의집 강길웅 지도신부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세 가지 내용으로 묵상을 하는데 이 또한 신앙을 굳건히 지켜나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 첫째는 감사의 기도이다. ‘예수님, 오늘도 저에게 기적의 새날을 열어 주시고 건강한 몸으로 미사에 참례하여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게끔 이끌어주시니, “예수님, 감사합니다.”’ 둘째는 사랑의 고백이다. ‘예수님, 당신은 하느님이시면서 저희를 극진히 사랑하신 나머지 죄 많은 저희를 구원하시려고 저희와 똑 같은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시어 온갖 멸시와 고통을 받으시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까지 하셨으니, “예수님, 사랑합니다.”’ 셋째는 행복 선언이다. ‘예수님, 당신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시어 늘 저희와 함께 계시면서 저희를 벗으로 대해주시며 매일 당신의 몸과 피를 영적양식으로 내어 주시고 또 저로 하여금 그것을 받아 모실 수 있게 이끌어 주실 뿐만 아니라, 저희가 생을 마칠 때 하늘나라에 저희를 위한 영원한 거처를 마련하고 계시니, “예수님, 행복합니다.”’ 또 하나 강길웅 신부님이 추천한 ‘성심의 메시지’(이재현 신부 옮김) 라는 책을 미사 때마다 가져 다니며 미사가 끝난 다음 한, 두 페이지씩 읽고 묵상하는데, 그 내용은, 요세파 수녀를 통해 하신 예수님 말씀으로, 예수님의 우리에 대한 극진한 사랑을 깨닫게 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영세를 받아 가톨릭 신앙인이 된 이상 누구나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을 알고 믿음으로써, 이 세상에서는 어떠한 처지에 있던지 늘 감사하며 기쁘게 살고 언젠가 죽는 날 우리 모두 영원한 생명을 얻어 하늘나라(천국)에서 다시 기쁘게 만날 수 있어야겠다.
보잘 것 없고 죄 많은 저에게 이러한 믿음의 은총을 내려주신 주님! 영원히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아멘!
5. 올 성령강림대축일(2014. 6. 8 주일) 명동대성당 주임 고찬근 신부님께서 서울주보에 쓴 ‘오소서 성령이여’ 일부를 아래에 인용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인생이란 것이 따지고 보면 별거 아닙니다. 생로병사(生老病死), 낳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 그것이 인생입니다.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던 아이들이 치킨 집 할아버지를 더 반기게 되고, 학창시절에 우정을 다짐하던 친구들도 다 잃어버리고, 연애시절 뜨겁던 사랑도 식어 버리고, 자식들은 제 짝 찾아 떠나고, 외로움에 지치자 온갖 집요한 병들이 친구하자고 조르고, 남은 것은 허무한 죽음뿐인 것, 그것이 인생 아닙니까? 이런 생각에 무의미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너무나 뜻밖에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 그의 사랑을 받게 되면 인생은 충만한 아름다움으로, 새로운 희망으로 돌변합니다. 미지근한 마음이 다시 뜨거워지고, 고목나무 같던 가슴에 푸른 잎이 돋고, 노란색 꽃이 피어납니다. 이렇듯이 사람을 뜨겁게 만들고, 적극적인 삶을 살도록 변화시키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하느님의 다른 이름으로서, 우리를 뜨겁게 변화시키고, 온전히 차지하고, 사랑으로 이끄는 분이십니다.”(2014. 8)
첫댓글 작년 6월 같은 제목으로이 카페에 한번 올린 일이 있지만 그글은 나의 자녀들, 특히 나이어린 손자, 손녀들을 위해 적은 것이어서 이를 영세를 받고도 아직 기쁘게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거나 가톨릭신앙에 관심을 가지는 동기분들을 위하여 다시 정리하여 올린 것입니다. 7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신앙을 가지고 사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고 즐겁기에, 오늘 부활대축일을 맞이하여 여러분도 신앙에 맛들여 노년을 보다 행복하고, 기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에서입니다.
하느님께 귀의할 생각을 갖고 있는 동기들에게 큰 도움이 되겠읍니다.잘 읽었읍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