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있을 때였습니다. 교회로부터 멀지 않은 길가 가게 한 곳이 수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며칠 후 지나가다 보니 산뜻하게 리모델링된 식당이 문을 열었습니다.
안을 들여다보니 테이블이 네 댓 개 놓여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주 작은 식당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식당 이름이었습니다.
간판 역시 작았는데, '엄마 뿐식'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순간, 간판이 잘못되었다고
여겼습니다. '아주머니가 글자를 잘 모르시나? 그렇다면 간판을 만든 사람은 알 텐데,
왜 저렇게 썼지?'라고 여기며 '엄마 분식'으로 되어 있지 않은 데 대해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발길을 돌려 돌아오는 동안 제 마음은 감동으로 가득 찼습니다.
식당 이름에 담긴 주인 아주머니의 마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주머니는
식당을 통해 손님들에게 엄마가 되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최고의 식탁을
차리는 분은 엄마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먹는 모든 음식들
중에서 가장 최고의 음식은 엄마의 음식이요, 최고의 요리사는 엄마가 아닐까요?
그런데 그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나면 더 이상
엄마의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엄마의 음식이 최고인 이유는 우수한 재료와 맛 때문 만은 아닙니다.
거기 담긴 사랑 때문입니다. 최고의 사랑이 담긴 음식을 만드는 분은 '엄마 뿐!'
이고, 그래서 식당 주인 아주머니는 '엄마 뿐식'이라
이름을 붙여서 엄마의 사랑으로
손님을 위한 음식을 준비하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우리는 평소에 가기 힘든 고급 레스토랑에서 매우 비싼
음식을 대접받은 것은 오랫동안 기억하며 감사하는 반면에, 수십년 동안 최고의
식탁을 차려 주신 어머니께는 별 감사를 느끼지 못하고, 불평을 늘어놓아
마음을 아프게 해드릴 때가 있습니다. 그 배후에는 특별한 것은 좋은 것이지만
평범한 것은 좋지 않다는 편견이 작용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고급 레스토랑의 특별한 식사 때문이 아니라 매일 먹어온 어머니의 식탁 때문입니다.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정상적인 사랑을 아는 사람이라면 일상의 은혜를 소중히 여깁니다.
그러나 사랑이 식거나 변질되고 나면 일상의 은혜를 무시하게 됩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날마다 먹는 만나에 질린 나머지
특별한 음식을 먹고 싶다고 불평했습니다.
"그들 중에 섞여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
하니"(민 11:4-6)
그러나 이러한 불평은 어리석은 것이었습니다. 광야에서 이동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을 생존하게 한 것은 만나였습니다. 만나야말로 최고의 양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날마다 먹는 만나에 감사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흔히 기독교를 기적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저도 치유의 기적을 경험한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그러나 기적을 경험할 때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은 아닙니다.
매일 새벽에 별일 없이 맑은
정신과 몸으로 일어나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릴 때,
먹은 음식을 잘 소화할 때, 사모하는 영혼으로 말씀 앞에 앉을 때, 기쁨으로 사람들을
대할 때, 등교했다가 무사히 하교하는 아이를 맞을 때, 평온한 마음으로 앉아
차 한 잔의 여유와 평안을 맛볼 때… 그 모든 순간들이 은혜의 시간입니다.
특별한 일들만 기적이라고 생각하면 날마다 넘치도록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게 됩니다.
여러 해 전에 한 성도님께서 예배를 미치고 나가시면서 "목사님, 오늘 예배는
제 평생에 최고였어요. 큰 감동을 받았고, 많이 울었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 저는 이렇게 말씀 드렸습니다.
"성도님께는 오늘 예배가 최고였는지 모르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성도님의
지금까지의 모든 예배를 최고로 받으셨을 겁니다."
한때 영락교회에서 부목사로 시무한 적도 있어서 영락교회 성도들과 친숙한
김동호 목사님께서 암으로 수술을 받고 투병 중이십니다. 암 수술 후 기력을
회복한 목사님께서는 당신이 전에 펴낸
책의 이름을 따라 '날마다 기막힌 새벽'이란
이름으로 말씀 묵상을 유튜브로 나누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제목이 멋지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날들은 기가 막힌 축복의
날입니다. 권태롭고
짜증나는 하루가 아니라, 그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사모했으나 얻을 수 없었던,
그래서 누리지 못한 시간입니다. 어마어마한 재물로도, 지식으로도 얻을 수 없었던
시간입니다. 그 하루하루는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시간이니,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 기다리기보다는 평범한 매일의 일상을 기적처럼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늘 대하는 식탁에서 차린 손길의 사랑을 느껴 감사하고, 매일 타는
지하철에서 기쁨을 느끼고, 늘 보는 성도들에게서 사랑을 느끼고, 늘 밟는
영락교회의
뜰에서 주님을 만나고, 늘 앉는 직장 사무실에서 삶의 희열을 맛본다면 그게 최고의
축복일 것입니다. 기적은 이미 우리가 만나는 일상에 숨어 있습니다.
날마다 그 보화를 캐내는 기쁨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 영락교회 발간, 월간지 ‘만남’ 9월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