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됩니다. 연휴동안 궁금하지요. 재활용 수거아저씨들이 책장을 부습니다.
옹이 있는 한토막으로 三頭一足鷹을 刻해 봅니다. 刻이라 해봤자 단면도 쭈루룩
칼날 꺼내 쓱쓱 하는 것이지만 꼴이 잡히기 시작하면 은근히 땀이납니다.
글구 소학생용 수채물감, 아크릴칼라, 포스타칼라 덕지덕지 바르면 끝이지요.
밝은 칼라를 많이 쓴 것은 '새해가 밝게 빛날 해'라는 암시지요.
3방향을 감시하는 매서운 눈매, 철갑 깃털, 흰목털의 위엄, 날카로운 발톱,
왠만한 잡귀 쯤이야 '껌이죠'
멩글어 보니 허공 속 광배가 삼재따위는 우습게 보입니다.
해동청 보라매는 원래 갈색이지만 종교가 되기위해선 위선적 덧칠이 필요하답니다.
신화 속 메두사처럼 세개의 대가리는 動적 움직임을 연상합니다.
즉 살아있는 생물적 위엄을 의미합니다.
잡귀나 삼재같은 불확실한 설정은 죽어있다는 것을 전제로 시작하는 도그마입니다.
죽음위에 오롯이 존재하는 살아있음이야말로 미래에
불확실한 도그마들을 단번에 제압하고 소멸할 수 있는 가치입니다.
생각 속에서 무수히 떠올라 소멸되는 가치들.
사람이 우선되는 가치야 말로 우주생성의 원리입니다.
곧 내가 있어야 삶의 설정들이 생성소멸됩니다.
흰 벽에 삼재부적과 벽사글귀를 적어볼까 했지만 다 소용없는 일이라는걸 깨닫게 됩니다.
샤머니즘과 샤머니즘에서 출발한 모든 종교들은 한 통속입니다.
혹세무민이라는 칼 세자루가 보입니다.
사람들이 만든 칼 세자루가, 위선적인 삼위일체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三頭一足鷹
삼두일족응은 한자를 보면 알겠지만 머리가 세 개고 발이 하나인 매다. 흔히 삼두매라고도 부른다.
한국에서는 3을 중시했으며, 머리가 세 개가 된 것은 그 결과로 보인다. 이 새는 삼족오와 함께
한국인의 소위 '신조(神鳥)'라 할 수 있다.
삼재(三災)를 세 개의 머리로 쪼아발긴다고 하여 조선 후기부터 그 그림을 액막이 부적으로
삼아 가지고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입춘대길 부적에도 그려져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조선 시대에 귀신을 잡아먹고 행운을 불러오는 길조로 삼두일족응이라고도 하는데 다리가 2개,
혹은 3개 달린 것도 있어서 보통 삼두매 아니면 삼두응이라 한다.
무속판에서는 탁멸삼재(啄滅三災)의 신조(神鳥)라는 뭔가 있어 보이는 명칭으로 부르며.
한자를 풀이하면 삼재를 쪼아서 없애는 신성한 새란 뜻이다.
삼재부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정월에 문에 붙이는 삼재부로 흔하게 보이던
매 머리 삼재부는 본래 탁멸삼재부로 불립니다.
啄滅三災符
남쪽에서 날아온 머리 셋에 다리 하나인
해동청 보라매가 삼재충을 쪼아 먹는 의미의 삼재부를 가리킵니다.
(南來三頭一足鷹 啄盡三災鬼) 그렇지만 이같은 부적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첫댓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인도 바르나시 갠지스강에서 퍼온 항하사를
낯 모르는 처자와 둘로 나눴습니다.
그 항하사가 15년전 창고에서
창고를 지켰습니다.
보리수 나무 위에서 타탁 불타 떨어지는 발목을 기억해 보면서
갠지스 강에서 채취한 항하사를 쭈루룩
손가락 사이로 흘립니다.
시간도 이처럼 쭈루룩 흘러 내리다 보면
30년쯤 흐르겠지요.
그럼 나는 어디 있을까요
땅 속에서 우쭈쭈하며 기지개를 펴겠지요
신비한 글과 그림 잘 감상합니다.
설악산 흘림계곡에 계셨던 분
생각이 납니다
밤새 소주와 막걸리를 마시며
세상에 모든 시와 노래를 씹던
이젠 나이들어 찾아뵙지도 못하지만
그리워해 봅니다
南來三頭一足鷹 啄盡三災鬼
감사합니다.
벽사부같은 부적들은 마음 속 허세입니다
글치만 복숭아나무 가지로도
목살경을 주문합니다
'이놈들 물렀거라' '남계대감 나가신다'
앞 다투어 잡귀들은 엎드립니다
난 한탄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고열에 시달리며
원인도 모르는 대학병원에서 6개월 동안 죽어갈 때
외삼촌이 살구나무 흔드는 목살경 한 방에 완쾌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삶이란 것이 이렇듯 허무맹랑한 구석이 있어
살만하지 않습니까?
진실은 진달래같은 인위적인 허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