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정전(停戰) 70주년… 남북학생, 최전방 유해발굴 현장 견학 (고영근 제공)
이번 작전 기간 한국군 추정 1구, 중공군 추정 2구 발굴…아직 수습 못한 한국군 전사자는 12만여 명으로 추정.
RFA(자유아시아방송)
지난 6월 27일 한국 강원도 철원군 원동면 내성동리 일대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을 방문한 '비욘드더바운더리' 소속 남북한 출신 대학생들. /RFA Photo
올해로 한국전쟁이 정전된 지 70년이 지난 가운데 한국 국방부는 전사자 유해발굴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남북한 출신 대학생들의 최전방 유해발굴 현장 견학을 이정은 기자가 동행했습니다.
“여러분들 좀 많이 경사가 높은 데 올라오셔서 1, 2분만 숨 좀 고르고 유해 발견한 곳으로 같이 가겠습니다…시작하겠습니다. 바로 일동 묵념.”
지난달 27일 한국의 강원도 철원군 원동면 내성동리 일대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 한국 군 장병들과 한국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원들의 유해발굴 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한국 내 탈북청년의 활동을 지원하는 단체인 비욘드더바운더리(Beyond the Boundary) 소속 남북한 출신 대학생 30명이 이 곳을 방문했습니다.
민간인통제선 출입통제소를 지나 40여 분간 구불구불한 산길을 차로 오른 뒤 30여 분을 또 도보로 이동한 후에야 도착한 유해발굴 현장은 비무장지대(DMZ) 너머로 북한 땅이 보이는 곳, 말 그대로 최전방입니다.
유해발굴 현장에서 발굴된 탄피들. /RFA PHOT
하루에도 수백 개씩 발굴되는 유품
한국 육군 7사단과 2군단 소속 장병들과 한국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소속 전문인력 100여 명은 지난 5월 20일부터 6월 30일까지 내성동리 일대에서 유해발굴 작전을 진행했습니다. 작전 기간 유품은 각종 총포탄과 부속품 위주로 총 7770개가 발굴됐습니다. 비가 온 날 등을 제외하고 총 23일 간 작전이 진행된 것을 감안하면 하루 평균 3백여 개의 유품이 발견된 겁니다.
70여년 전 이 곳에서 얼마나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이 일대에서는 한국군 6사단과 중공군이 화천지구 등대리 전투, 화천지구 818.9고지 공략전과 전투공방전, 백암산 지구 전투 등 네 차례의 격전을 벌였습니다.
오승래 한국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발굴팀장: 여기서도 주변이 다 보이시죠? 저 앞에 있는 곳이 817 고지인데 저기서 보면은 북한 지역이 다 사방으로 10km 이상 관측이 됩니다. 그 당시에는 관측이 되어야지 폭격도 할 수 있고 시야가 확보되기 때문에 중요한 거점으로서 꼭 점령했어야 했던 것입니다.
대한민국6·25참전유공자회가 발간한 ‘6·25전쟁 증언록’에서 6사단 19연대 기관총사수였던 박봉문 참전용사는 당시 중공군과의 전투에 대해 이같이 회상했습니다.
“해는 서산에 걸리고 중공군은 쉴 새 없이 올라온다. 우리 중기진지에는 직사포, 곡사포 할 것 없이 막 날라 온다. 우리도 목표물이 포착만 되면 있는대로 사격을 한다. 우리가 살든지 우리가 죽든지 판가름을 해야 될 모양이다.”
유해발굴 현장에서 발굴된 유해. /RFA PHOTO
자연의 일부가 된 유해
이와 같이 한국전쟁 당시 이 일대에선 고지 점령을 위한 공방전이 계속됐고 민간인통제선 이북 지역으로서 민간인의 발길이 닿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의 뼈가 수습되면 전사자의 유해일 확률이 높습니다. 다만 가파른 경사면이라는 지형적 특성, 그리고 지난 70여년 간의 풍화작용 등으로 온전한 유해를 찾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오승래 한국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발굴팀장: (전사자가) 참호 안에서 돌아가시지 않고 교전하다가 사면에서 돌아가시면 자연스럽게 백골화가 되면서 살이 탈락하고 뼈만 남습니다. 그 과정에서 멧돼지, 늑대, 여우 같은 동물들이 뼈를 물고 가면서 유해가 흩어집니다. 교전 당시 소총에 맞아서 전사하시기도 하지만 포탄이 쏟아지면서 산화되면서 시신이 흩어지고 없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경사진 사면 따라 (유해가) 흘러지기 때문에 지금 같은 경우는 정말 유해가 찾기도 어렵고 잔존율도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한국전쟁 당시 민둥산이었던 이곳은 이제 수목이 빽빽합니다. 한국전쟁 이후 자란 나무 밑에 유해가 있는 경우도 있어 장병들은 나무 뿌리에 감긴 뼛조각을 분리해내는 고된 과정을 거치기도 합니다.
이번 작전 기간 발굴된 유해는 한국군 추정 1구, 중공군 추정 2구입니다. 마지막으로 발굴된 유해는 학생들의 방문 직전 발견됐습니다. 현장에서 정밀 노출 중인 유해를 보니 백골이 아닌 나뭇가지에 가까운 모습입니다.
방보인 한국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감식관: 나무랑 구분이 잘 가시나요? 잘 안 가죠. 우리는 흔히 뼈라고 하면 흰색이라고 생각하는데 살아있는 사람의 뼈는 흰색이 맞을 겁니다. 그런데 땅에 묻힌 뒤로 70년의 세월이 지나면 (뼈가) 여러 가지 물질 교환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땅에 있는 색깔도 흡수하게 되면서 색깔이 기본적인 토질 색깔과 굉장히 유사한 색상으로 변화하게 된 것입니다.
한국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측은 해당 유해가 중공군의 유해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유해발굴 현장에서 감식관의 설명을 듣는 남북 대학생들. /RFA PHOTO
회복된 자연 생태계, 친구가 된 남북 대학생
유해발굴 현장 주변을 이동하던 차량 앞으로 갑자기 뛰어나온 산양. 한국의 천연기념물인 산양은 이 일대에서 꽤 자주 발견되며 뛰어다니는 도중 낙석을 발생시켜 장병들의 골칫거리가 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포획금지 야생동물인 자라와 천연기념물인 황쏘가리 등도 많이 관찰된다고 합니다. 지난 70년 간 이 곳의 자연 생태계는 여기서 정말 전쟁이 있었는가 싶을 정도로 회복된 모습입니다.
유해발굴 현장에서 사뭇 진지하게 설명을 듣던 남북 대학생들은 이동 시간, 쉬는 시간에 수다를 떠는 모습이 영락 없는 친구들입니다. 이화여자대학교에 재학 중인 김예나 양은 견학에 함께 참여한 친구들과 적으로 만나는 상황을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김예나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생: 목 마르다 하면 물도 건네주고 힘들 때는 손도 잡아주고 이렇게 다녀왔는데 만약에 73년 전이었다면 웃으면서 서로 대화하는 상태가 아니라 총구를 겨누고 있었을 거잖아요. 저랑 가장 친한 친구와 총구를 겨누고 있어야 된다. 이게 너무 무섭기도 하고 진짜 마음 아픈 것 같아요.
유해발굴 현장에 가기 위해 경사면을 오르는 남북 대학생들. /RFA PHOTO
그러면서 남북 청년들이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상황이 다시 있지 않길 바란다고 말합니다.
김예나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생: 저희에게 통일은 추상적인 단어이긴 하지만 그래도 통일이 와야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통일이 아니라도 남과 북이 관계가 개선돼서 서로가 적어도 이 높은 곳에서 장병들이 서로 총을 겨누고 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웹사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감식단이 발굴한 전사자 유해는 총 1만3121구, 이 중 한국군 전사자 유해는 1만1313구 입니다. 한국 국방부는 한국전쟁에서 총 13만7천여 명의 한국군이 전사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어 아직 수습되지 못한 한국군 전사자는 12만 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국 국방부는 지난 2000년 한국전쟁 50주년 기념사업으로 전사자 유해발굴을 시작한 바 있습니다. 당시 한시적 사업으로 시작된 이 사업은 지난 2005년 국가 영구사업으로 전환됐고 현재까지 종료 시점 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 2023-07-13, 05: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