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 화엄경 강설 31】 12
(14) 금강당(金剛幢)보살의 게송
爾時에 金剛幢菩薩이 承佛神力하사 普觀十方하고 而說頌言하사대
그때에 금강당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살펴보고 게송을 설하였습니다.
<1> 회향할 바의 선근
普於十方無等尊에 未曾一起輕慢心하고
隨其所修功德業하야 亦復恭敬生尊重이로다
시방에 같을 이 없는 어른님께
한 번도 소홀한 마음 일으키지 않고
닦으신 그 공덕과 업을 따라서
또다시 공경하고 존중한 마음 내도다.
▶강설 ; 제9 무착무박해탈회향의 장문을 설해 마치고 다시 게송으로 간략히 거듭 밝힌다. 시방에 같을 이 없는 어른님이란 청정법신 비로자나부처님을 뜻한다. 모든 사람에게 다 같이 갖추고 있는 차별 없는 참사람이며, 참마음이며, 참나이다. 그 당체를 인격화해서 ‘어른님’이라고 표현하였다. 참사람인 법신 부처님께 단 한 번도 가벼운 마음 내지 않고 본래로 갖춘 무한한 그 공덕에 공경하고 존중한다.
所修一切諸功德을 不爲自己及他人이라
恒以最上信解心으로 利益衆生故廻向이로다
수행한 일체 모든 공덕을
자기나 다른 이를 위하지 않고
언제나 가장 높은 신심으로써
중생에게 이익 주려 회향하도다.
▶강설 ; 사람 사람은 누구나 본래로 무한한 공덕을 갖추고 있다. 무한한 생명과 무한한 능력이며 무한한 자비와 지혜다. 그 위대한 공덕을 자신만을 위하거나 다른 어떤 특정인을 위해서만 활용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만인을 위해서 베풀라는 본래의 뜻을 저버리는 것이다. 올바른 이해와 믿음으로서 일체중생들을 이익하게 하려고 회향하는 것이다.
未嘗暫起高慢心하며 亦復不生下劣意하고
如來所有身等業을 彼悉請問勤修習이로다
잠깐도 교만한 마음 내지 아니하고
또한 다시 못난 생각도 내지 않으며
여래의 몸과 말로 하시는 업(業)을
그가 모두 물어서 부지런히 닦아 익히도다.
▶강설 ; 청정법신 부처님은 누구나 다 갖추고 있는 본래의 참마음 자리이다. 그러므로 교만한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 되며, 그렇다고 못났다는 하열한 마음을 내어서도 안 된다. 잘난 것도 없고 못난 것도 없는 평등한 세계이다. 법신여래의 본래 갖춘 일체 업을 묻고 알아서 부지런히 닦아야 한다.
<2> 보현의 구경의 경지(境地)
所修種種諸善根이 悉爲利益諸含識이라
安住深心廣大解하야 廻向人尊功德位로다
닦은 바의 가지가지 모든 선근은
중생에게 이익 주기 위한 것이니
깊은 마음 광대한 이해(理解)에 안주하여
높은 어른 공덕의 지위에 회향하도다.
▶강설 ; 보살이 선행을 닦는 것은 자신의 깨달음이나 부유함을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로지 중생들의 이익을 위해서다. 보살은 오직 요익중생이며, 불교는 오직 요익중생이다. 본래로 법신부처임을 알아 법신부처 안에 있는 무량공덕을 널리 베풀어 중생을 요익하게 하자는 것이다.
<3> 세간의 미세한 지혜
世間所有無量別하니 種種善巧奇特事와
麤細廣大及甚深을 靡不修行皆了達이로다
세간의 한량없이 차별한 일과
가지가지 공교롭고 기특한 일에
크고 작고 광대하고 깊은 것들을
모두 다 수행하여 통달하도다.
▶강설 ; 보살이 각양각색의 중생들을 교화하려면 세간의 온갖 차별한 것을 다 알아야 한다. 가지가지 교묘하고 기이한 일들과 크고 작고 광대하고 깊고 깊은 일들을 다 수행하여 통달하여야함을 밝혔다.
世間所有種種身에 以身平等入其中하야
於此修行得了悟하니 慧門成就無退轉이로다
세간의 가지가지 있는 몸들에
이 몸으로 평등하게 다 들어가고
이렇게 수행하여 깨닫게 되면
지혜문(智慧門) 성취하여 퇴전치 않도다.
▶강설 ; 또 세간의 가지가지 몸들에 보살의 몸으로 평등하게 다 들어간다는 것은 보살이 중생교화를 위해 세상사를 일일이 다 알아야 함을 뜻한다. 그것이 중생을 위한 지혜의 성취다.
世間國土無量種이라 微細廣大仰覆別이어든
菩薩能以智慧門으로 一毛孔中無不見이로다
세간의 국토들이 한량이 없어
작고 크고 잦혀지고 엎어진 것을
보살들이 지혜의 밝은 문으로
한 모공(毛孔) 속에서 모두 다 보도다.
▶강설 ; 세간의 국토인들 얼마나 여러 가지인가. 작고 크고 잦혀지고(기울어지고) 엎어진 것들을 보살이 지혜로 미세한데까지 다 깊이 들어가서 일일이 다 보아야 한다. 열반에만 깊이 빠져있지 않고 무수한 중생들을 모두 교화하는 방편이다.
<4> 중생들의 갈래
衆生心行無有量을 能令平等入一心하고
以智慧門悉開悟하야 於所修行不退轉이로다
중생의 마음과 행(行) 한량없거늘
평등하게 한 마음 속에 들게 하고서
지혜로써 다 열어 깨우쳐 주며
수행하는 일에서 퇴전치 않도다.
▶강설 ; 중생들의 갈래를 지옥·아귀·축생·인도·천도·아수라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그것은 모두 중생들의 마음이 자신의 의지대로 흘러가는데 따른 것이다. 그 모든 마음의 흐름들을 한 마음의 작용으로 섭수하여 열어주고 깨우쳐 준다. 일체가 한마음이며 참마음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바람에 따라 물결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하나의 물인 것과 같은 이치이다.
<5> 중생들의 세계
衆生諸根及欲樂이 上中下品各不同하야
一切甚深難可知어늘 隨其本性悉能了로다
중생의 근성이나 즐기는 욕망
상 중 하품 종류가 각각 다르고
모든 것 매우 깊어 알 수 없으나
근본 성품 따라서 모두 다 알도다.
▶강설 ; 중생들의 근성과 욕망들이 상·중·하품을 따라 각각 달라서 그 종류가 얼마인지 알 수가 없다. 그야말로 업력은 불가사의하다. 그러나 그 본성은 하나이다. 오온과 육근으로 작용하여 천변만화하지만 그 재료는 차별 없는 참사람 오직 하나이다. 예컨대 금으로 별의별 형상을 만들지만 그 재료는 오직 금이라는 한가지일 뿐인 것과 같다.
衆生所有種種業의 上中下品各差別을
菩薩深入如來力하야 以智慧門普明見이로다
중생들의 짓고 있는 가지가지 업(業)
상 중 하품 제각기 차별한 것을
보살이 여래의 힘에 깊이 들어가
지혜의 문으로써 널리 밝게 보도다.
▶강설 ; 중생들이 짓는 업이 상·중·하이며, 다시 상에서 상·중·하가 있고, 중에서 또 상·중·하가 있고, 하에서도 또 상·중·하가 있다. 이와 같이 분별하면 팔만사천 가지다. 그러나 보살은 생명여래의 위대한 힘을 빌려 지혜의 문으로 낱낱이 다 알고 낱낱이 다 본다.
<6> 보살의 행(行)과 덕(德)
不可思議無量劫을 能令平等入一念하고
如是見已徧十方하야 修行一切淸淨業이로다
헤아릴 수 없는 무량한 겁(劫)을
한 생각에 평등하게 들어가게 하나니
이와 같이 보고나서 시방에 두루하여
일체의 청정한 업을 닦아 행하도다.
▶강설 ; 한 순간과 무량한 겁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일념이 즉시 무량겁이요, 무량한 겁이 곧 일념이다. 시간을 이와 같이 보고나서 시방세계에 두루하여 일체 청정한 업을 닦는다. 6바라밀과 10바라밀과 10선과 사섭법과 사무량심과 인의예지들을 시간과 공간에 장애 없이 수행한다. 이것이 보살의 행과 덕이다.
過去未來及現在를 了知其相各不同호대
而亦不違平等理하니 是則大心明達行이로다
과거 미래 현재의 그 모양들이
제각기 다른 것을 분명히 알아
평등한 이치를 어기지 않나니
큰마음 가진 이의 밝게 통달한 행이로다.
▶강설 ; 일념이 무량한 겁이고 무량한 겁이 일념이지만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또한 각각 다른 것임을 분명히 안다. 각각 다른 것임을 분명히 알면서 또한 절대의 경지에서는 평등한 이치임을 어기지 않는다. 그것이 화엄경을 공부하는 대심중생(大心衆生), 즉 큰마음 가진 이의 밝게 통달한 행이다.
世間衆生行不同하야 或顯或隱無量種이어늘
菩薩悉知差別相하며 亦知其相皆無相이로다
세간 중생들의 행동이 각각이라
혹은 나타나고 혹은 숨고 한량없거늘
보살이 그 차별을 모두 알지만
또한 그 모양이 모양 없음을 다 아느니라.
▶강설 ; 세상 중생들의 업이 각각 다르고 업이 각각 다르므로 그 행동도 또한 각각 다르다. 천차만별하고 천변만화한다. 무량무수하다. 그러나 그 모양 각각 다르나 일체가 모양 없는 무상(無相)이 근본이다. 모양 없으므로 온갖 모양을 연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