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국 프랑스 견문기 (7) 불어 말하며 이웃 나라 돌아다니니
정확한 통계는 모르니 재미삼아 대충 말해보자. 이탈리아나 스페인 사람들은 3분의 1쯤은 영어를, 3분의 2쯤은 자기네 말과 비슷한 불어를 할 줄 안다. 나머지 3분의 1쯤은 두 말을 다 모르고 자기네 말만 안다. 영어보다는 불어가 더 잘 통하지만, 불어에 대한 감정이 미묘하다. 불어를 말하며 두 나라를 돌아다니니 기묘한 사건이 벌어지곤 했다.
한국에 유학 온 이탈리아 학생과 주고받은 말을 먼저 소개한다.
"이탈리아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모두 사기꾼이다."
"그럼 그대도 사기꾼이냐?"
"물론 나도 사기꾼이지."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모두 사기꾼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메뉴를 영어로 써서 밖에 내건 식당에는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다. 음식의 품질이나 가격이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뒷골목으로 들어가 영어 메뉴가 없고 영어는 통하지 않는 식당을 찾아가면 진짜 이탈리아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불어마저 통하지 않으면 더 좋다.
이탈리아 어느 소도시에 가서 하나뿐인 호텔에 하나뿐인 손님이 된 적 있다. 주인이 친구와 저녁을 드는 자리 맞은편에서 나도 식사를 하는데, 주인이 말을 걸었다. 주인이 하는 이탈리아어를 주인 친구가 불어로 통역했다. 내가 불어로 하는 말은 이탈리아어로 통역했다. 주인은 순수한 이탈리아인이고, 주인 친구는 반쯤 순수한 이탈리아인이었다. 영어는 오고가지 않았으니 사기꾼은 없었다.
주인은 내가 불어를 하는 것이 못마땅해 시비했다.
"너는 어째서 이탈리아어는 할 줄 모르고 불어만 하는가? 인도차이나에서 왔나?"
인도차이나는 프랑스 식민지 통치를 받아 얕잡아볼 만했다.
"아니, 나는 한국에서 왔다."
"한국 사람이 어째서 불어를 하는가?"
세상 사람들이 이탈리아는 알아주지 않고 프랑스만 알아주는 불만을 토로하는 쪽으로 발향을 돌렸다. 내가 졸지에 세상 사람들의 대표가 되었다.
"프랑스 여자들은 모두 못난이다."
이 한 마디로 결정타를 안기더니, 조금 가벼운 공격을 했다.
"바게트라는 것도 빵이라고 옆구리에 끼고 다니기나 한다."
바게트를 옆구리에 끼고 뒤뚱뒤뚱 걷는 시늉을 하면서 실내를 왔다 갔다 했다.
"프랑스 포도주는 형편없고, 이탈리아 포도주가 맛있다. 맛을 보아라."
이렇게 말하면서 내 잔에 계속 포도주를 부어 주었다. 이탈리아 포도주가 더 맛이 있다고 항복하고서야 술 폭탄에서 가까스로 벗어났다. 대표자를 앞에 놓고 세상 사람들의 편견을 모두 시정한 듯이 여기고 기분이 좋아 술값은 받지 않았다.
이번에는 스페인 차례이다. 마드리드의 가장 큰 역, 우리 서울역 같은 곳 국제선 안내 창구에 가서 "너 영어 하는가?" 영어로 묻고 "너 불어 하는가?" 불어로 물었더니, 화를 버럭 내면서 "에스파뇰!"이라고 했다. "스페인어"라는 말이고, 적으면 "Español"이다. "스페인어도 하지 못하면서 왜 와서 껍죽거리는가!"라고 하는 말을 그 한 마디로 나타냈다.
프랑스 사람이 마지못해 영어를 쓰면서 기분 나빠 하듯이, 스페인 사람은 마지못해 불어를 쓰면서 기분 나빠 한다. 프랑스에 대해 깊은 반감이 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은 "피레네 산맥만 넘으면 아프리카다." 이런 말로 모욕을 주고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가 스페인을 정복했다. 저항하는 스페인인들을 처형하는 장면을 화가 고야가 그려 생생한 증언을 남겼다.
이런 역사가 있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마드리드 서울역의 국제선 안내 창구에 앉아 있는 녀석이 "Español"이라고 외친 것은 심하다. 자기 직분이 무엇인지 모르고 스페인 사람의 본색을 드러냈다. 그렇게 외치고는 문을 닫거나 외면한 것은 아니다. 물을 것을 불어로 물으니, 대답할 것을 불어로 대답했다. 기분이 나빠도 할 일은 했다.
스페인어는 불어와 비슷해 짐작해 알아내기도 했다. 점심 먹으려고 식당에 들어가니 종업원이 나를 밀쳐내면서 "우나 오라, 우나 오라"라고 했다. "una hora"라는 말이었다. 불어의 "une heure"와 흡사해 "한 시"라는 것을 알았다. 식당을 한 시에 여는데 왜 벌써 들어왔느냐 하면서 밀어냈다. 손짓 언어로 의자에 앉아 기다리겠다고 해서 허락을 받았다.
스페인어는 몇 마디만 알아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불어를 사용해 볼일은 그럭저럭 볼 수 있으나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스페인어는 모르고 불어는 알아 죄를 짓은 것 같기도 했다.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왔으면 얼마나 떳떳했겠나. 스페인어는 불어보다도 사용 지역이 더 넓고 사용자가 더 많은 세계어이다. 그 영역이 영어보다도 더 넓다. 스페인어를 모르고 세상을 안다는 것이 거짓말이다. 세계문학을 논한 것이 모두 헛것이다. 이런 생각을 절실하게 했다.
바르셀로나에 가니 아주 딴판이었다. 바르셀로나 일대는 스페인어로 'Cataluña'라고 하고 자기네 말로는 'Catalunya'라고 하는 카타로니아어를 쓰는 지역이다. 언어뿐만 아니라 사람, 역사도 다르다. 스페인이 아랍인의 지배를 받을 때 카타로니아는 독립을 유지한 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긴다. 스페인이 팽창해 카타로니아를 집어삼킨 것을 원통하게 여기고 독립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카타로니아어는 불어와 가까운 관계이다. 카타로니아 사람들은 스페인에 대한 반감 때문에 스페인어를 좋아하지 않고, 불어에 대해서는 거의 무한한 친근감을 가지고 있다. 바르셀로나에 가서 불어를 쓰면 아주 좋아한다. 스페인어를 아는 체하고 쓰면 반감을 자극해 냉대를 받을 터이니 조심해야 한다. 차라리 영어를 쓰는 편이 나을 것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동네 광장에 가서 길을 물었다. 이 사람 저 사람 와글와글 떠들어 종잡을 수 없었다. 불어로 묻는 말에 불어로 대답하고 싶어서 몰라도 아는 척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서점 주인이 보다 못해, 지도를 들고 나와 내가 찾는 곳을 표시해주었다. 지도 값을 내려고 하니 그냥 가지라고 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 다음에 나타난 사람은 자기 차에 타면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고맙다고 하면서 차를 타고 가서 사례를 하려고 하니 사양했다. 세계 어디서도 두 번 경험할 수 없는 이처럼 지극한 친절을 베푼 이유는 단 하나이다. 자기네 말과 비슷한 불어를 쓰는 것이 너무나도 반갑기 때문이었다.
오랜 투쟁의 결과 지금 카타로니아어가 스페인어와 함께 이중의 공용어가 되었다. 모든 안내 표시에 두 말이, 카타로니아어가 위에, 스페인어가 아래에 적혀 있다. 스페인에서 독립하고 카타로니아어만 공용어로 쓰는 것이 카타로니아 사람들의 강렬한 소망이다. 그러나 스페인 중앙정부가 허용하지 않고,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야금야금 들어와 카타로니아어 사용자보다 더 많아져 독립하기 어렵게 되었다. 카타로니아어는 스페인과 프랑스 사이에 있는 작은 나라 안도라에서나 공용어로 쓴다.
국경을 넘어 프랑스로 가도 카타로니아어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스페인ㆍ안도라ㆍ프랑스의 카타로나아인이 단결해 한 나라를 이루면 좋을 것인데, 스페인이 허용하지 않고, 프랑스는 더욱 완강하게 반대한다. 'Catalan'이라고 일컬어지는, 프랑스의 카타로니아어는 스페인에서보다 더욱 심한 곤경을 겪고 있다. 불어의 공격 때문에 빈사상태에 있다.
프랑스의 한국어학 전공 학자 파브르(André Fabre)라는 분이 불어가 카타로니아어를 괴롭히는 것이 일제의 침략으로 한국어가 겪은 고난과 흡사하다는 논문을 쓴 적 있다. 이 분은 카타로니아인이다. 파리에서 교수 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임하자 카타로니아어를 쓰는 자가 고장으로 돌아가 은거했다. 은거가 간접적인 항변이다. 소식을 알리지 않아 아직 생존하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바르셀로나 일대의 카타로니아인들은 스페인어에 대한 반감 때문에 카타로니아어와 비슷한 불어에 대해서 거의 무한한 친근감을 가진다고 했다. 그런데 프랑스의 카타로니아인들은 카타로니아어를 빈사상태에 빠트리는 불어를 원수로 여긴다.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지만, 둘 다 당연하다. 언어는 생활에 필요한 도구 이상의 것이다. 주체성의 표상이고 자부심의 근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