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 東園小話 동쪽 동산의 짤막한 이야기
辛酉 一九二一 신유(辛酉) 1921년
濯斯 崔炳憲, 奉岩 呂炳鉉, 迺隱 崔斗榮, 月塘 崔聖模, 秋汀 金克煥, 諸兄 在座.
탁사 최병헌1), 봉암 여병현2), 내은 최두영, 월당 최성모 3), 추정 김극환, 여러 형들이 앉아 있었다.
(1)
吾生淡淡厭瞿塘
우리 인생 담담하여 구당협 싫어하는데 4)
濯隱何時入漢陽
탁사와 내은은 언제나 한양에 들어오나? 5)
古木藤新來作葉
고목에 등나무 기어올라 잎으로 덮지만 6)
幽林蘭馤更杵香
깊은 숲의 난초 향 더욱 향기 찧어내오.
詩色更如東野瘦
시풍은 더욱이 맹교 같이 수척할지라도 7)
塵心已洗北囱凉
세속의 마음 씻어내어 북창이 서늘하네. 8)
獨立門前春艸係
독립문 앞에는 봄의 초목이 이어져가니
居人不絶誦先王
주민들은 쉬지 않고 선왕을 노래한다오.
_____
1) 탁사 최병헌(濯斯 崔炳憲/ 1858-1927): 제천 출신으로 1888년 아펜젤러 목사를 통해 기독교를 소개받고 성경을 얻어 100일간 기도하면서 읽었고, 1893년 세례를 받았으며 배재학당에서 한문을 가르쳤고 아펠젤러 목사가 죽은 뒤 정동감리교회 2대 목사가 되었으며 이상재 윤치호 등과 YMCA 청년들을 지도하였다.
2) 봉암 여병현(奉岩 呂炳鉉/ 1867-?): 황해도 출신으로 일본에 가서 공부하다가 1896년 미국 하바드대학에 유학하여 5개월 후 다시 영국 할레이 대학에서 3년 수학하고 귀국, 배재학당에서 영어교사, 영국 영사관 통역관, YMCA 창립 이사의 하나로 참여하기도 했다.
3) 월당 최성모(月塘 崔聖模/ 1874-1937): 3.1운동 33인 민족대표의 한 사람으로 안국동 북촌 선비로 태어나 15세에 진사에 입격했으나 독서로 집에서 지내다가 28세에 친구 이필주(李弼柱)와 상동감리교회에 들어가 교인이 되고 감리교목사가 되었고, 만주와 몽고 등지로 다니면서 독립군 자금 및 연락을 하였으며 해주와 중국 대련에서 감리교회를 섬기다가 옥중에서 얻은 지병으로 별세했다.
4) 구당(瞿塘): 중국의 사천성 구당협(泗川省 瞿塘峽)으로 장강(長江)의 삼협(三峽) 중의 하나로 강의 양안(兩岸) 암벽이 몹시 가파르고 물길 사나와 배가 전복하는 위험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5) 탁은(濯隱): 이 자리에 앉았던 탁사(濯斯)와 내은(迺隱)을 말하니 탁사는 최병헌(崔炳憲)이고 내은은 최두영(崔斗榮)이다.
6) 고목등신래작엽(古木藤新來作葉): 이 시는 극히 민감한 현실적 이슈(issue)가 되는 일본에 대한 저항 독립심을 표출하므로 그 상징과 은유가 아니면 바르게 이해하기 힘들 것 같다. 고목은 역사가 깊은 조선인데, 거기에 등신래(藤新來) 곧 등나무처럼 새로이 기어오른 일본이 작엽(作葉)하여 가지를 뻗고 잎을 피워내고 있다는 은유가 된다.
7) 동야수(東野瘦): 동야(東野)는 당나라 시인 맹교(孟郊)이고 그의 시는 가난과 고난의 품격을 지닌 것이 특색이라 수척하다고 하므로 맹교의 시문을 뜻한다.
8) 북창(北窗): 도연명(陶淵明)의 ‘북쪽 창가에 누워(北窗下臥)’에서 유래한 말로 느긋하고 자적한(悠閑自得) 모습을 비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