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찬양하는 시로서 기업을 주심과 비천한데서 기념하심과 대적에서 건지심과 식물을 주신 분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기독교의 추수감사절은 1620년, 신앙의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 대륙에 온 102명의 영국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해 63일 만에 신대륙에 착륙했다. 그들의 씨앗과 영농법은 새로운 대륙에 적합하지 않았고, 지식층이 대부분이었기에 그들은 농사도 잘 몰랐고, 집을 지을 줄도 몰라 47명이 죽고 봄이 되자 인디언들로부터 받은 곡식을 심고 농사를 배웠다. 예상 밖의 수확을 하고 감사예배를 드릴 때 인디언들을 초청하여 축제를 베풀었던 예배가 추수감사 유래이다. 오늘은 바람직한 추수감사란 제목으로 은혜가 되자.
1. 개인적인 믿음을 충전하는 감사절이어야 한다.
추수감사절은 청교도들이 목숨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했던 ‘신앙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신앙의 자유 속에서 믿음으로 사는 축복을 알아야 한다. 말씀과 추수감사절을 통하여 영적으로 재충전되고 영광스러운 축복들을 바라면서 성숙한 믿음과 자립에서 멈추지 않고 많은 영혼들을 예수님께 인도할 수 있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세례식을 실시하는 것도 좋다. 그 동안 결신한 성도들에게 세례를 베풀면서 교회전체가 새롭게 되는 계기를 삼는다. 다만 세례식을 위해서는 추수감사절 이전부터 좀더 세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 외에 교회 자체적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실시하는 것도 좋다. 성찬예식을 거행한은 것도 집례 자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재충전하기 위해서 해마다 지키었다. 그러므로 추수감사절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다시 한 번 감사한 마음을 회복 시켜서 영광을 돌리면서 영적회복의 계기로 삼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영성회복을 무시한 축제분위기만의 추수감사절을 보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고 또한 헌금을 위한 추수감사도 바람직하지 않고, 의식을 위해서나 축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믿음을 충전하는 감사절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일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우해서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믿음을 키우는 절기가 되자.
2. 공동체적 사랑과 감사를 회복하는 감사절이어야 한다.
예전에는 인정이란 것이 있어서 친교가 잘되었고 이는 신, 불신간에 친교가 잘되었다. 내가 어릴 적에 농촌에 살았는데 들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식사 때가 되면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러서 함께 먹으며 친교를 하였으나 지금은 그런 것을 볼 수 없다. 교회도 문을 열어 놓았지만 지금은 문을 닫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성도들도 친하게 지내었지만 세월이 지나고 말세가 가까울수록 교제가 약하게 되었다. 교회의 크기를 떠나서 교제가 적은 것이 현대교회의 특성이다. 교회 안의 지체들끼리 서로 사랑으로 하나 되고 서로를 축복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성도의 특권이고 예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가족찬양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이다. 온 가족이 다 함께 출석하는 교회는 건강한 교회다. 가족 단위의 팀들이 나와서 찬양경연대회를 가진다면 교회 전 성도들에게 가족공동체와 같은 교회의 모습을 도전 받게 할 수 있으며, 교회에 나오지 않은 가족들을 전도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분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가정과 교회의 크기와 상황에 따라서 많은 준비를 한다면 효과적일 것이며 바람직한 추수감사가 될 것이다.
3.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감사절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이웃을 배제하고 교회 자체적인 행사로 나누면서 사랑을 실천하면 잘한 일이며 더 나아가서 이웃과 함께 나누면서 사랑을 실천한다면 바람직하고 예수님도 기뻐하실 것이다. 우리들이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추수감사절을 보낸다면 추수감사절에 성공한 셈이다. 추수감사에 세 가지 정신이 있는데 죽음을 각오한 신앙의 중요성과 낮선 곳에서 겨울을 보내며 102명 중 47명이 죽어가는 중에 살려주심에 감사하는 마음과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지역사회에서 감당해야할 중요한 역할과 소명이 있다. 청교도의 축제에는 주변의 인디언 친구들이 동참했다. 교회는 남녀노소, 빈부귀천, 종교를 떠나서 지역주민들과 축제를 나눌수록 좋은 것이며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임한다. 청교도들이 복음을 전할 기회로 삼아 인디언들을 초청했다면 우리는 누구를 초청해야 하는가? 우리의 주변에 인디언들은 누구인가? 나의 이웃이란 어떤 자인가를 살펴보면서 결실의 계절에 아름다운 열매!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귀한 열매를 맺어가는 신앙생활은 바람직한 추수감사절이다. 모든 행사가 반드시 전도와 연결되어야 하지만 추수감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더욱 알리고 곡식을 주신 사랑을 알려야 할 것이다. 첫 곡식에 이어 이어서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곡식을 주신 것을 감사하며 온 천하에 알려야 할 것이다.
결론: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우리가 주일 오전 예배시간에 강단에 추수감사주일이라는 글씨를 붙이고, 예쁜 장식과 과일로 꾸며, 예배를 드리면서 감사헌금을 하는 것으로만 끝내지 말고 자기들의 믿음을 충전하고 성도들과 공동체인 한 몸 사랑과 교제를 나누면서 기뻐하고 그 이후에 이웃과 아직도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인간들에게 먹을 것을 주신 분이 누군가를 알리고 함께 나누면서 뜻있고 바람직한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우리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