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포의 새벽 편지1731
발심수행장144
동봉
조악造惡과 작선作善2
오늘날이 다하지도 아니했는데
짓는악은 하루하루 늘어만가고
내일또한 이어져서 다함없는데
짓는선은 날로날로 줄어드누나
금일부진今日不盡
조악일다造惡日多
명일무진明日無盡
작선일소作善日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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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어제 글은 좀 딱딱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끄적거리는 글이지만
어떤 때는 부드럽게 쓰고
어떤 날은 좀 어색하게 풀린다
삶도 하나의 과정이라
그렇지 않을까싶다
어떤 날은 싱숭생숭하다가
어떤 때는 세상의 우울이란 우울은
혼자서 다 짊어진 듯 팍삭 쭈그러든다
속담에 열흘 가는 태풍이 없고
하루를 넘는 소나기가 없다지 않던가
우리말로 된 오늘을 중심으로
가까운 날짜들을 한 번 살펴볼까
우선 오늘의 뜻이 무엇일까
오늘은 바로 '온을'에서 온 말이다
'온'이란 99.99%가 아니라
완벽한 100%를 뜻하는 말이다
지구가 한 번 자전하는 동안이 하루다
'온全'이란 이에 주어진 시간이다
'온'이 '全'의 순우리말이라면
'全'은 한자를 빌려 표현한 '온'이다
따라서 '온全하다'는 라는 말은
같은 말의 중복이다
하여 '온을'을 온전하게 함이
삶을 가장 알차게 사는 방법이다
이 온을/오늘을 중심으로 하여 앞뒤로
하루 전을 보통 어제라 하고
이틀 전을 그제라 하며
이들을 묶어 엊그제로도 표현한다
어제와 그제를 묶음인 동시에
엊그제는 사나흘 전을 가리키기도 한다
엊그제 본 발심수행장에서
차사무한此事無限이고
피모무제彼謀無際라 했는데
거기서 한할 한限 자가 공간이라면
즈음 제際 자는 시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즈음이란 달리 '제'라 칭하는데
이 '제'가 바로 순우리말이고
이 순우리말 '제에서 즘/즈음이
즘/즈음에서 즈음 제際로 파생한다
어제, 그제, 엊그제를 비롯하여
이제, 저제 따위도 모두 시간 개념이다
시간 개념의 '제'와 짝을 이루는
'승'이라는 게 있는데 이는 세상이다
'승'이란 시간을 머금은 공간 개념이다
그래서 살아가는 세상을 이승이라 하고
죽은 뒤 가는 세상을 저승이라 한다
지시대명사 '이' 와 '저'를 달리할 뿐
하나는 당장 살아있는 곳이고
다른 하나는 죽은 뒤 가는 곳이다
아무튼 사흘 전을 그끄저께라고 한다
그끄저께의 '저'가 '제'의 변형이다
이런 말을 이어가다 보면
시간의 순우리말 변주가 느껴진다
'제'의 변주곡에 한자 표기에서 따 온
내일來日의 순우리말 '하제'와
다가울來 즈음日의 뜻인
순우리말 '올제'가 보태지면
변주는 절정climax으로 치닫는다
시간의 아름다운 변주의 하모니이다
시간을 뜻하는 즈음 '제'가
가장 가깝게 느껴지고
가장 소중하게 여겨질 때가
'언제'라고 생각되는가
그렇다
'이제'다
어제보다, 그제보다, 엊그제보다
하제보다, 올제보다, 저제보다
가장 가깝고 현실적인 게 '이제'다
이 '이제今'에 날日을 보탠 게
금일今日이며 '이제날'이며 '온을'이다
그렇게 하여 하루 뒤를 내일
이틀 뒤를 모레
사흘 뒤는 글피
나흘 뒤는 그글피다
이는 어디까지나 순우리말이다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 많이 달라진다
물론 소릿값만 달라질 뿐이고
의미소意味素는 언제나 그대로다
'온을'과 '이제날今日'로 인하여
시간의 긴 페이지를 할애하는 것은
'이제'가 삶의 모든 과정이기 때문이다
'오늘' '온을'을 금일今日이라 하고
어제를 작일昨日이라 하며
그저께부터는 전일前日이라 한다
이와 같이 내일은 내일來日
또는 명일明日이라 하는데
여태껏 이들 용어만큼은 변함이 없다
중국어에서는 이를 약간 달리하는데
날 일日을 하늘 천天으로 바꾸어
오늘을 진티엔今天이라 하고
내일을 밍티엔明天이라 한다
모레를 허우티엔後天
글피는 따허우티엔大後天
어제는 주어티엔昨天
그저께는 따주어티엔大昨天이다
이처럼 한자로 표기된 문어체와
백화체로 표기된 표현방식에
약간의 차이를 두고 있다
어떻게 된 게 내게는
문어체 날 일日 자보다는
구어체 하늘 천天에 정이 더 간다
어쩌면 이 끌림이 나만의 느낌일까
오늘은 금일이고 내일은 명일이다
오늘 내일을 한마디로는 금명今明이다
사이 간間 자를 금명 뒤에 붙여
금명간今明間이라고 하는데
시간적으로 오늘과 내일은
어느 누구에게나 가까운 시간이다
이 금명에는 희망希望이 있다
하여 오늘에 이어지는 날을
명일明日이라 부른다
표로는 해日+달月=밝음明이다
날짜에 붙인 이름을 보고 있노라면
그 속에서 삶의 문화가 느껴진다
이 밝음明에 태양日을 덧붙여
오는來 날日이라 하고
밝은明 날日이라 하는데
훌쩍 떠나過 간去 시간이 아니라
장차 다가올 시간이기에 희망이 있다
따라서 '오늘내일'이란 말 속에
'어제오늘'보다 더 밝고
더 행복한 느낌이 배어 있다
첫새벽이 발심수행장에서 제공한
오늘今日과 내일明日을 놓고
글의 페이지pages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의 페이지까지 할애하였다
그렇다면 과연 삶의 공간空間과
가장 가까이 있다고 느껴지는
시간時間이란 게 존재하기는 하는가
여태껏 나는 나의 많은 글에서
시공간은 곧 씨줄과 날줄이라 하였다
우주라는 피륙을 구성한 얼개로 보았다
그런데 첫새벽의 명저 발심수행장
바로 이 '오늘'과 '내일'에 이르러
조악造惡과 작선作善을 앞에 놓고
문득 시공간을 다시 생각한다
시간時間은 한마디로 '때時 사이間'다
아무리 짧은 시각이라 하더라도
시각이라는 점과 점 사이가 시간이다
하면 때時 사이間는 있을지언정
때時 혼자 스스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때도 때 사이도 다시 생각할 일이다
이는 공간空間도 마찬가지다
하늘空과 하늘 사이間가 공간이다
가령 크고 넓은 홀에 들어갔을 때
우리는 게서 무엇이 느껴지는가
아름다운 조각과 장식과 조명에 빠져
비어있는 공간을 놓치지는 않는가
공간 분위기에 홀릭이 되어
정작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는 않는가
공간空間이란 언어만이 아니라
공간이 실재한다고 우길 수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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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껍질에도 도가 있다/사진 꾸밈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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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2019
종로 대각사 봉환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