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漢詩)
오도송(悟道頌)
十方同聚會시방동취회 仄平平仄仄
箇箇學無爲개개학무위 仄仄仄平平
此是選佛場차시선붕장 仄仄仄仄平
心空及第歸심공급제귀 平平仄仄平
방온거사<龐蘊居士>
시방 세계 도반들 한데 모여
저마다 무위법 배우고 있네
이 자리는 부처를 뽑는 도량이라
마음을 비워 급제 하면 돌아가네.
이 게송(偈頌)은 중국 방온(龐蘊) 거사(居士) 오언절구(五言絶句) 평기식(平起式) 오도송(悟道頌)이다. 압운(押韻)은 위(爲)는 하평성(下平聲) 담통(覃統) 운족(韻族)이고, 귀(歸)는 상평성(上平聲) 미통(微統) 운족(韻族)이다. 평측(平仄)은 승구(承句) 전구(轉句)가 측다(仄多)가 되어 근체시(近體詩) 작법(作法)은 아니다. 방거사(龐居士)는 석두선사(石頭禪師)와 마조도일(馬祖道一) 선사(禪師) 유발(有髮) 제자(弟子)다. 인도(印度)에는 유마거사(維摩居士)가 있고, 한국에는 부설거사(浮雪居士)가 있고, 중국에는 방거사(龐居士)다. 동양(東洋) 삼국(三國)에 삼대(三大) 거사(居士)라고 한다. 출가(出家) 삭발(削髮)하지 않고 부처님 법을 깨닫고 고승(高僧)들과 교류(交流)를 했다. 방거사는 세속(世俗)에서 살면서 벼슬은 하지 않고 식솔(食率) 모두가 도를 깨달아 가족들과 함께 화로(火爐) 앞에 돌아앉아서 도담(道談)을 논(論)하면 단란하게 살았다고 전한다. 방거사 집에는 단하(丹霞) 선사(禪師)가 자주 찾아왔다. 딸 영조(靈照)는 시집도 가지 않고 아버지 방거사를 시봉(侍奉)했다. 아들과 부인은 황무지(荒蕪地) 산(山)을 개간(開墾)해서 같이 살았다. 방거사(龐居士)가 노후(老後) 어느날 딸 영조(靈照)에게 말했다. 밖에 나가 해를 보다가 정오(正午)가 되면 일러다오. 딸이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면서 아버지 정오(正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일식(日蝕)을 합니다. 그래! 방거사(龐居士)가 밖으로 나와 해를 보니, 정오는 되었는데 일식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방으로 들어와 보니, 딸 영조(靈照)가 방거사(龐居士) 자리에 않아서 좌탈입망(坐脫入亡)해 버렸다. 불교수행(佛敎修行)은 이렇다. 가고 싶을 때 바로 간다. 방거사(龐居士) 딸 영조(靈照)가 종사열반(宗師涅槃)이 아닌가? 수행은 말로 떠든 것이 아니라 이렇게 가고 싶을 때 임의자재(任意自在)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경지(境地)를 보여야 한다. 방거사(龐居士) 정오(正午)에 열반(涅)에 들려고 했는데, 재치 빠른 딸 영조(靈照)에게 기회(期會)를 뺏겼다. 방거사(龐居士) 흡족(洽足)한 마음으로 이놈 봐라! 할 수 없군! 나보다 솜씨가 빠르니, 나는 일주일 후에나 가야겠다. 하고 딸 영조(靈照)의 시신(屍身)를 다비(茶毗)를 해주었다.
그러고 일주일 약속한 날 막 가려고 하는데 그 고을 태수(太守) 우적(子顆)이 찾아왔다. 어서 오시오, 우적태수와 방거사 반갑게 손을 맞잡고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자, 방거사(龐居士)가 태수 우적의 무릎은 베고 편안하게 누우면서 하는 말이 허공에 꽃 그림자도 떨어지고, 아지랑이 파도는 물결칩니다, 하니 우적이 파도가 쉬면 물결은 저절로 가라앉으리다, 말을 마치고 무릎에 누어있는 방거사(龐居士)를 보니, 방거사(龐居士)는 벌써 입적(入寂)을 하고 말이 없었다. 허~허~ 이 사람 벌써 갔구만! 너무 빠르지 않는가? 우적 태수도 방거사(龐居士)가 열반(涅槃)에 들줄 알고 왔지만 인생사(人生事)가 허망(虛妄)한 일이라 손수 방거사(龐居士) 치상(治喪) 다비(茶毗)를 마치고, 화장한 한 줌의 재(灰)를 방거사(龐居士) 아들과 같이 사는 부인(婦人)에게 유골(遺骨) 재를 전해주었다. 남편 유골 재를 본 방거사 아내 하는 말이 걸작(傑作)이다. 정신 나가 빠진 늙은이 할아범, 어리석은 몹쓸 계집애! 가면서 한마디 말도 없이 가버려! 그러나 가버렸으니 용서할 수 밖에 없지, 태수양반! 이왕 오셨으니, 밭에서 일하는 우리 아들에게 아버지 부음(訃音)이나 전해 주시오. 태수가 방거사(龐居士) 일하는 밭에 가서 아버지와 누이동생 돌아가셨다고 전했다. 아~ 그래요. 갈려면 소식이나 전해주고 가시지, 그렇다면 나도 이젠 가야겠다, 하고 괭이를 잡고 선체로 가버렸다. 손 얼굴에 흙 투성가 된채로 밭일하다 말고 방거사 아들도 입적(入寂) 해버렸다. 방거사(龐居士) 가족(家族) 생사여탈자재(生死與奪自在) 조사열반(祖師涅槃)이다. 우적 태수가 방거사(龐居士) 아내에게 아들 소식을 전했다. 아들이 가버렸다는 말을 듣고, 거참! 못난 놈! 자식(子息)! 가려면 분수는 알고 가야지, 하고 자식(子息) 다비(茶毗) 화장(火葬) 마치고 일가친척(一家親戚)들에게 다 알리고 집을 나간 뒤로는 종무소식(終無消息)이라는 방거사(龐居士) 한 가족 선화(禪話)다. 방거사는 많은 게송을 남겼다. 속가 거사지만 출가 스님들보다 수행정진 하여 지혜보검(智慧寶劍)을 갖춘 거사다.
방거사 게송을 보자, 세상 사람들은 보배를 중하게 여기나, 나는 찰나의 고요함을 귀하게 여기네. 황금이 많으면 사람 마음은 어지럽고, 고요하면 진여의 성품을 본다.<世人重 珍寶我貴刹那靜 金多亂人心 靜見眞如性> 세상사람들은 금은보화 귀금속을 보배로 중하게 여기는데 방거사(龐居士)는 찰나의 선정(禪定)에 드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는 말이다. 황금 재산이 많으면 사람 마음을 어지럽히는데, 마음이 고요해 지면 진여 자성을 깨달은 다는 체험의 소리다. 방거사는 엄청 부자였다고 한다, 그런데 불법을 만나 깨달음의 얻는, 뒤로는 많은 재산을 몽땅 실어서 바다에다가 버렸다고 한다. 또 다른 게송을 보면 성품이 공하면 법도 또한 공해서 18경계(境界)도 자취가 끊겼네, 다만 마음에 걸림이 없으면 어찌 신통을 얻지 못할까 걱정하랴!<性空法亦空 十八絶行蹤 但自心無礙 何愁神不通> 마음 성품이 공하면 법도 또한 공하다는 말이다, 법이 공하기 때문에 18경계도 자취가 끊어져서 마음이 자유자재로 걸림이 없어져서 신통을 얻지 못한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배고플 때 밥 먹는 것도 신통이고 피곤 할 때 잠자는 것도 신통이라는 말이다. 다음 게송은 무심(無心)을 체득(體得)한 게송이다. 무쇠소는 사자후(獅子吼)도 두려워하지 않고 다만 스스로 만물에 무심해지면 만물이 애워싼들 무슨 방해가 되겠는가? 쇠로 만든 소는 사자후도 두려워 하지 않고 나무 사람은 꽃과 새를 보아도 무심하네,<鐵牛怕獅子吼 但自無心於萬物 鐵牛不怕獅子吼 恰似木人見花鳥> 마음이 무심해지면 이렇다는 말이다. 다음 게송도 무심를 읊은 게송이다, 목인은 본래 자체에 마음이 없으니, 꽃과 새가 목인을 보고 놀라지도 앖는다, 마음이 이와 같이 한결 같으면 어찌 깨달음을 얻지 못할까 근심하랴!. 다음은 방거사(龐居士) 인생결산(人生決算) 노래인 열반송(涅槃頌) 이다. 다만 온갖 있는 것 비우기를 원할 지언정 진실로 없는 바를 채우려 하지 말라 즐거이 머문 세간에 모두 그림자 메아리와 같다,
벽암록(碧巖錄) 42측(則) 방거사(龐居士) 호설편편(好說片片)을 보면 선승(禪僧)들을 손바닥으로 후려 치기도 한다. 하루는 방거사가 약산(藥山) 선사(禪師)를 방문(訪問)하고 하직(下直)를 고하자 약산선사가 열명의 선객을 방거사를 산문앞까지 전송하게 했다, 방거사가 때 마침 허공에 날리는 눈송이를 보고 가리키며 정말 멋진 눈이야! 눈송이 하나하나가 다른 곳에 떨어지지 않는군! 그때 선승들이 모두 방거사에게 말했다. 어느곳에 떨어집니까? 방거사 손바닥을 한번 쳤다. 선승들은 모두 말하기를 거사는 지나친 행동은 하지 마시오, 방거사가 말했다. 그대들이 이 정도 안목으로 선객(禪客)이라고 한다면 염라대왕(閻羅大王)이 용서(容恕)하지 않을 것이다. 선객(禪客)들이 말했다. 그럼! 거사(居士)라면 어떻게 하겠소? 방거사가 또 다시 손바닥을 치면서 말했다. 눈을 뜨고 있지만 장님 같고, 입은 벌려도 벙어리 같구나! 설두(雪竇) 선사(禪師)가 착어(著語) 하기를 처음 물었을 때 눈을 뭉쳐서 곧 바로 쳤어야지, 했다. 擧. 龐居士, 辭藥山. 山, 命十人禪客, 相送至門首. 居士, 指空中雪云, 好雪片片, 不落別處. 時, 有全禪客云, 落在什處. 士, 打一掌. 全云, 居士, 也不得草草. 士云, 汝恁麽稱禪客, 閻老子未放汝在. 全云, 居士作麽生. 士, 又打一掌云, 眼見如盲, 口說如啞. (雪竇別云. 初問處, 但握雪團便打> 이 선문답에서 보면 방거사가 선승들을 바보 취급을 하고 있다. 시절(時節) 인연(因緣) 때맞춰 허공에 날리는 눈송이로 전송나온 선객(禪客)들의 안목(眼目)을 점검(點檢)하고 있다. 꼭 떨어져야 할 곳에, 떨어진다고 한 말의 낙처(落處)를 알아들으면 눈송이, 마다 지금 곳곳에 떨어지는 그곳이 진리의 현현이다. 분별심으로 보고 알아듣지 못한 채로 거사의 말을 쫓아가면 함정(陷穽)이고 덫이다. 그 덫에 열 명의 선객들이 말 함정에 걸려든 것이다. 방거사는 시절인연의 여법한 풍광(風光)을 무분별(無分別) 삼매심(三昧心)으로 한 말을 선승(禪僧)이란 선객(禪客)들이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 귀 머거리가 되고, 눈앞에 여법한 풍광도 보지 못해서 눈뜬장님 취급을 받고 말았다. 그래서 설두선사(雪竇禪師)가 착어(著語)로 눈덩이로 쳐라, 눈덩이로 쳐라고 한 것이다. 던진 돌멩이나 쫓은 사냥개 되도 말고, 돌멩이 던지 사람을 달려 물어뜯는 사자가 되라고 한 것이다.<韓盧逐塊 獅子咬人>이라 한 것이다. 방거사(龐居士)는 중국 선종사(禪宗史)에 가장 걸출(傑出)한 거사다. 선승(禪僧) 조사(祖師) 같은 지혜안목(智慧眼目)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방거사(龐居士)는 석두희천(石頭希遷) 선사의 선법(禪法)을 이은 거사로서 제방의 훌륭한 선승들과 많은 문답을 나누었고, 처와 딸 영조(靈照)와 함께 대나무로 조리를 만들어 팔면서 청빈(淸貧)하게 살았고, 가족이 모두 불법을 깨달아 독자적인 안목을 갖춘 재가불자(在家佛子)다. 오늘은 중국 선종사에 걸출한 방거사 오도송을 평측운목에 맞추어 보았다. 여여법당 화옹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