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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김민호 목사
주일설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이사야 40장 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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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중에 ‘앙망(仰望)’ 이라는 한자는 옛날 서간문(書簡文, 편지글) 형식에나 나오는 잊혀져 가는 구어체 글자입니다. 예를 들자면 “時下 立冬之節(시하입동지절)에 氣體候 一向萬康(기체후 일향만강)하옵시며 高體(고체) 健安(건안)하시기를 仰望(앙망)하옵나이다” 같은 식으로 사용 됩니다.(나무위키 참조) 仰은 ‘우러르다, 믿고 따르다’는 뜻이고 望은, ‘바라고, 원하고, 기대하는 것’인데, 상대편 동태를 살피기 위해 멀리 바라본다는 뜻도 있습니다. 지금 당장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가까운 미래든, 먼 미래든, 좋은 일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간절함과, 소원이 ‘앙망’이라는 단어에 담겨져 있습니다.
성경의 구절들을 살펴보면, 다윗의 쓴 시편 25편 3절,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라는 말에서 “바란다, 기대한다”라는 말이 앙망의 단어입니다. 또, 시편 52편 8절,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에서, “의지한다, 기댄다”라는 뜻도 앙망한다는 단어입니다. 창세기 1장 9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라고 명령 하신 말씀에서, “모인다, 함께하다”라는 뜻이 있고, 영어 성경 킹제임스(KJV) 번역에서는 “기다리는(wait)”것으로, NIV 번역에서는 “바라는(희망, hope)”것으로 각각 번역을 했습니다.
여러 가지 번역을 보듯, 의지하고, 바라고, 기다리고, 희망하고, 혹은 모이는 경우들은 매 한가지로, 오직 초점이, 그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에게로 집중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우러러본다는 극존칭의 한자를 써서 번역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신뢰 속에, 최대한 낮은 자세, 겸손한 자세로 나아가는 것을 말하려는 의도입니다. “앙망” 이라는 단어 자체가 간절함이 담겨져 있는데, 앞에 “오직” 이라는 단어를 붙이니 얼마나 간절함이 큰지 더욱 더 절감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절대자 앞에 나아갈 때 “겸비(謙卑, humbleness)”한다는 말을 사용합니다. 철저한 회개나, 확고한 돌이킴의 자세를 취할 때 “겸비”라는 용어를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이론을 통해 바로 왕에게 말하기를, “네가 어느 때까지 내 앞에 겸비하지 아니하겠느냐 내 백성을 보내라”(출 10:3) 말씀 하셨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남 유다의 왕이 된지 5년째 되던 해에, 애굽 왕 시삭이 쳐들어오자, 왕과 모든 백성들이 스마야 선지자와 함께 겸비한 자세를 취하자 하나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스스로 겸비하였으니 내가 멸하지 아니하고 저희를 조금 구원하여 나의 노를 ~ 예루살렘에 쏟지 아니하리라”(대하 12:7) 하셨습니다. 겸비하지 못하면 진노를 받게 되고, 겸비하여 돌이키면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의 삶이 갈수록 곤고해지고,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사라져가는 것은 앙망하지 않고, 겸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정답인데, 문제 해결을 다른데서 찾으려고 하니 더욱 빡빡한 삶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 한해가 점점 저물어 갑니다. 올 한해 하나님 앞에 죄송하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열매 없이 살았지만, 11월 감사의 계절, 12월 성탄의 계절만큼이라도, 하나님 아버지를 앙망 하시고, 하나님 앞에 겸비함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예배의 자리에서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십시오. 우선 예배에 성공하면 반쯤은 이룬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앙망하는 마음으로, 겸비하는 자세로 하나님 앞에서 회복되고, 재충전되어서, 새로운 시작을 잘 준비하시는 믿음의 성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의 주인공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입니다. ‘오직’이라는 부사에는 상당히 이중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여호와 하나님만이 앙망의 유일한 대상이라는 사실을 지극히 강조 하는 표현이라는 것을 쉽게 예상 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선민(선택받음 백성)들은 당연하게, 그리고 습관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기대해야 된다는 것을 “오직”이라는 강조를 하면서 새삼스럽게 들려줍니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거의 절대 다수가 앙망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에 초점을 맞추며 살아가고 있다는 심각한 단면이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주신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인데도, 하나님을 떠나고, 멀리하고, 심지어는 배반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직접 택하신 백성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이 모양 이 꼴 이었으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직”이라는 말이 얼마만큼 심각성 속에 나온 말인지, 굳어진 믿음과 완악해진 마음을 다시 돌이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선택인지를 느껴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오늘 말씀의 주인공이십니까? 내게는, 여러분에게는, 절대적으로 선택해야 할 대상인 당연하고 간절함의 대상으로 “오직 여호와” 이십니까? 아니면, 너무 멀리 가서, 세상에서 원하고, 바라는 것이 너~무 많아서. 다시 돌이키기 위해 “오직 여호와”가 필요 하십니까? 이사야 선지자의 외침 속에는 이쪽은 잘하고 있구나!, 저쪽은 못하고 있구나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책망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지금이라도 말씀이 귀에 들리는 대로 받아들여서,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로 다시 서고, 하나님과의 소원했던 관계를 뜨겁게 회복시켜 가라는 것입니다.
“오직”은,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 앞에만 붙여져야 합니다. 다른 어떤 것에는 일체 붙여지거나, 그것으로 인해 마음이 따라가면 안 됩니다. 우리는 육신의 자녀이기 이전에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 예정 되었고, 선택되었고, 부르심을 받았고, 온전함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존귀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아버지의 사랑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와, 오직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멘.
그런데도 우리는 미련하게도 이 세상에서 만들어진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한 가짜 오직을 찾아 헤매면서, 그 올무에 단단히 붙잡혀 살아갑니다. 오직 돈, 오직 성공, 오직 자녀, 오직 향락, 오직 음란, 오직 우상의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 오직 예수, 오직 성령, 오직 말씀, 오직 은혜, 오직 전도, 오직 기도, 오직 천국, 이런 오직은 언제 찾고, 언제 부르려고, 꽁꽁 숨겨 두시고, 남겨 두십니까?
오늘 말씀이 11월 암송 말씀입니다. 외우실 때마다, 내가 얼마나 하나님과 떨어져 지냈고, “오직 앙망하는 마음”이, 나에게 얼마만큼 필요하고, 절실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가 남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내 귀에, 내 심장에 대고 하는 말로 들려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말씀의 주인공이 다 되십시오. 세상이 아닌 오직 여호와, 우리 아버지 하나님만을 사랑하시고, 가까이 하시고, 말씀을 청종하는 온전한 믿음을 회복하시는 11월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호와를 앙망 하게 되면, 새 힘을 얻게 되는데, 그 힘이 마치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갔다고 비유를 합니다. 새 힘, 할 때 '새롭다'는 말은 '갱신한다(renew)' 말입니다. 운전면허증은 기한 내에 갱신해야 계속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느슨하고, 게으름을 피우던 신앙생활들은 반드시 새롭게 갱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급하고, 강하게 새로움이 필요할 정도로 극도로 나태했습니다. 신앙의 열정도 식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정성으로 제사 드리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들을 아주 소홀하게, 그리고 형식적으러만 했습니다. 이 시대의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이와 비슷합니다. 갱신대상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만을 앙망하며 나아오는 자들에게는, 그가 누가 되었든지 반드시 새로운 힘을 공급해 주십니다. 그런데 이 힘은 단순히 무언가를 이루어낼 능력(power), 혹은 지혜(wisdom)나 지식(knowledge)를 뜻하기 보다는, 권능, 권위(authority)에 복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가 새롭게 갱신되어 받는 힘은, “복종”하는 능력을 받는 다는 것이 됩니다. 잘못된 길로 가던 것을 멈추고, 악한 행실을 끊어내고, 향락과 음란의 유혹들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옵니까? 오직 하나님의 능력 앞에(말씀 앞에) 복종하는 사람만이 가능합니다. 새 힘을 받은 사람들, 새롭게 갱신된 사람들은 옛 사람의 행실을 끊고, 새 사람으로 변화 되는 것입니다,
복종하지 않는 사람은 땅만 바라보지만, 복종하는 사람은 드높은 창공을 활강하는 새의 왕 독수리와 같이 높은 곳에서, 온 하늘과 세상을 바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차원 높은 삶, 복 되고 영광스러운 삶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늘나라 백성답게, 만국을 다스릴 제사장 나라의 권세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곧, 새 힘을 공급 받은 사람은, 성령 충만함으로, 영안이 열려서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신비로운 영적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이것이 새롭게 된 자, 새로운 능력, 힘을 공급 받은 자들이 누릴 특권입니다.
여러분은 갱신 대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아직 쓸만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믿음은 멈추는 것이 아니고 자라나는 것이기 때문에, 계속 기름칠이 필요하고, 펌프질이 있어야 합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한 순간도 갱신 대상이 아닌 적이 없습니다. 믿음을 갱신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너무나도 잘하고 있다고 교만해져 있거나, 영적무지함의 깊은 수렁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아셨죠. 저와 여러분은 인정하거나, 하지 않거나, 다 갱신대상입니다.
날마다 새 힘 받고, 영적인 충만함 속에서, 복종하는 삶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것, 이렇게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진정한 성도요, 참 그리스도인들입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들은 날마다, 시시 때때로, 새 힘을 받으셔서, 복종함으로 충성을 다하시고, 영적 충만함 가운데 진실함으로 세상을 능히 이겨 나가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자녀들로 성장해 나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말씀 하반절에,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는 말씀이 대구를 이루듯이 되어 있습니다. ‘곤비하다’는 말은 숨이 차고, 기진맥진하고, 피로에 지친 상황을 뜻합니다. 이는 우리의 노동과 연관이 많습니다. 달음박질 한다는 것이, 쉴 틈이 없이 일을 해야 먹고 사는 우리의 고단한 현실을 짚어주는 듯합니다.
여러분들, 무성영화 시대에, 중절모와 콧수염, 헐렁한 바지에 커다란 구두의 떠돌이 신사, 이러면 누가 떠오릅니까? 네, 찰리 채플린이죠. 그는 1936년 『모던 타임즈』라는 영화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합니다. 이른 아침 수많은 사람들이 공장에 도착합니다. 그들은 이곳에서 하루 종일 기계 부품을 조립합니다. 나사를 조이는 주인공 찰리 채플린, 컨베이어가 어찌나 빠른지 가려운 데를 긁을 여유나 날아드는 벌레를 쫓을 여유는커녕, 잠시 한눈을 팔면 금세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버립니다. 한숨 돌리려고 작업장을 조금만 벗어나도 곧장 불호령이 떨어집니다. “봐! 당장 작업장으로 돌아가” 신경쇠약에 걸린 채플린, 눈에 보이는 건 죄다 조이려 달려들다 결국은 해고를 당합니다. 달음박질한다는 표현이, 쉴 틈 없이 일만해야 하는 찰리 채플린의 연기와 잘 매치가 됩니다.
이 영화가 나온 지 80년이 지났지만, 그 시대나, 이 시대나, 먹고살아가야 하는 서민들의 고달픈 현실은 다 비슷해 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달픈 삶의 현장을 제일 우선적으로 찾아오십니다. 곤비하지 않은 능력, 힘을 주신다고 하신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일주일 내내 빠듯하게 일해야 먹고사는 현실은 변하지 않지만 그것을 기쁨 가운데 이겨낼 수 있는 평안의 마음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응원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의 일터에는 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셔야 합니다. 저도 조금이나마 응원합니다. 힘내십시오.
“걸어가도 피곤하지 않게 해 주신다”는 말도 비슷합니다. 여기서 ‘피곤’은 약해진다는 의미가 있는데, 특히 정신적인 면의 약해짐을 말합니다. 걸어간다는 표현은, 마라톤과 같은 인생길, 고난을 감수해야 하는 신앙의 오랜 여정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오르셨지만, 우리의 인생의 동반자, 위로자, 상담자로서, 성령 하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장거리 믿음의 경주에서 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심신이 약해지지 않도록 방향도 잡아 주시고, 수많은 문제와 상황들을 이겨나가게 도와주십니다.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는 말씀 속에서 동행자 되시는 성령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세밀하신 분이십니다. 지쳐가는 우리의 육신과, 마음의 연약함을 살피시고, 다시 세워 주십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성령의 동행가운데, 육체와, 정신과, 영혼까지, 일어서고 또 일어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새 힘주시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의 큰 은혜입니다. 매일 같이 이 큰 은혜가 하늘로부터 부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단지, 이 은혜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만 일어난다는 사실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오직”이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얼마나 나에게 절실한 단어인지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힘을 받아야 하는 갱신 대상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고단한 육체적인 내 삶과 고난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믿음의 여정위에 동행자가 되어 주신다는 약속도 받았습니다. 11월 한 달 동안 이 말씀을 입에 달고 다니시고, 마음에 새기시면서,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로서 새 힘 받고, 성령님과 동행 하는 가운데, 많은 믿음의 열매들을 맺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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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지 못하고, 세상의 유혹에 빠져 있던 우리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말씀이 들린대로 새롭게 결단하여 새 힘을 받게 하시고, 성령 하나님과 온전히 동행함으로 곤비하지 아니하고, 피곤하지 아니한 삶을 살아가도록 능력에 능력을 더하여 주옵소서. 새 힘주시고, 고단한 삶을 평안으로 인도하여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