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에세이 광장
그곳에 가면
최찬희
TV 화면에서 그 장면을 본 날부터 새벽이면 눈이 떠졌다. 새벽의 희부연한 빛이 창밖 나뭇가지들 사이로 서서히 차오르는 걸 보면서 다짐했다. 오늘은 꼭 가봐야지. 벌써 닷새째 벼르기만 했던 일이다. 그때 전봇대를 타고 올라가던 여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뉴스 화면에는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 철거’라는 자막 아래 젊은 여자가 전봇대를 오르고 있었다. 질끈 묶은 머리에 검은 패딩 차림으로 얼음장 같은 전봇대를 맨손으로 타오르는 여자를 숨죽여 바라보았다. 어디까지 오르려는지, 도대체 무슨 일인지 보는 나를 궁금하게 했다. 전봇대 위에는 두 남자가 크레인을 타고 CCTV를 설치하고 있었다. 파주시청의 용역원이었다. CCTV를 달지 말라고 외치는 여자를 향해 그들은 공무집행방해라며 맞받아 소리쳤다. 작업 장소까지 올라간 여자는 실족할까 봐 불안해하는 사람들의 비명 같은 외침과 감전의 위험을 무릅쓰고 전깃줄을 팔로 감싸 흔들었다. 그리곤 전봇대를 올라갈 때보다 더 위험하고 아슬아슬하게 용역을 향한 발차기를 허공으로 날렸다. 크레인이 여자를 위협하듯 전봇대 가까이 다가가며 위아래로 움직였다. 급기야 계속해서 헛발질로 소리치는 여자를 한 용역원이 다리로 제압하며 작업을 강행했다. 그러자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이 우~ 하는 함성으로 항의했다. 결국 두 남자는 CCTV 설치를 중단했다. 주변에서 환호와 박수 소리가 들리는데 화면이 바뀌었다. 아나운서는 파주시가 성매매 집결지를 폐쇄하고 철거하는 조치로 24시간 감시카메라를 설치하여 출입하는 사람들을 신고하겠다는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매끈하고 준수 한 외모의 아나운서 얼굴 뒤로 조금 전 맨손으로 전봇대를 타고 올라가던
여자의 뒷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전혀 다른 두 현실이 우리가 살아가는 하나의 세상인 것처럼.
그 장면이 남의 일 같지 않고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시감이 자꾸 드는 것은 이라는 ‘용주골’지명 이었다. 내 기억속의 용주골은 어렸을 때 헤어졌던 친구와 엮여 있다.
용주골과는 버스로 30분 정도 떨어진 광탄에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우리 반으로 전학 온 친구였다. 영애는 당시 누런 콧물을 달고 다니던 시골 아이들 눈앞에 소공녀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서울 청파초등학교에서 전학 왔다며 인사하는 딸을 지켜보던 영애의 엄마는 틀어 올린 머리에 허리를 묶은 베이지색 바바리코트를 입고 있었다. 대부분 ‘배추머리’에 ‘몸빼’를 입었던 우리네 엄마들과는 사뭇 다른 모녀를 번갈아 보는 아이들의 눈이 긴장된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그때 나는 수줍게 얼굴을 붉히는 그 아이의 긴 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걸 보았다. 그 떨림은 나뿐만 아니라 반 아이들 전체에게 전류처럼 전달되었다. 아직 아름다움이 뭔지도 모르는 나이였지만, 곱고 예쁜 걸 느낄 수 있는 인식 언저리에서 반 전체가 황홀한 느낌에 감전되는 순간이었다. 자기소개를 마친 그 아이를 담임선생님이 내 옆자리에 앉으라고 하였다. 그때 나는 뜻밖의 활시위가 내게로 당겨진 듯한 긴장감으로 얼굴이 팽팽하게 달아올랐다. 엄마에게서 가방을 받아 든 그 아이가 또박또박 내게로 걸어와 옆자리에 앉는 게 순간 견딜 수 없이 어색했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그렇게 짝이 된 그 아이와 친해진 어느 날 자기 집에 가서 같이 공부하자는 말을 했을 때 나는 왠지 공주가 사는 성에 초대받은 기분이었다.
그날 나는 영애 엄마의 방에서 만화에서나 보았던 적이 있는 화려한 침대 위를 구르며 놀다가 잠이 들어버렸다. 그러다가 처음 느껴보는 냄새에 잠이 깼다. 역한 노린내와 쉰내같이 확, 풍겨오는 술 냄새와 함께 몸이 공중으로 붕 떠
오르는 것 같은 어지러움이 일었다. 부리부리한 눈을 번쩍이며 이빨이 유난히 흰 검은 피부의 병사가 나를 들어 옆방으로 옮기고 있었다. 나는 놀라움으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뒤이어 영애 엄마가 딸을 안고 왔다. 영애를 내 옆에 뉘는 순간 아주머니의 긴 머리카락이 내 얼굴을 덮었다. 그 상태로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아주머니의 숙인 얼굴에 시린 근심이 드리워졌음을 그때는 알지 못한 채.
방문 밖에는 깊은 어둠이 버티고 있었다. 엄마가 기다릴 거란 걱정에 창호지를 붙인 미닫이 방문만 봐도 서러움이 차올랐다. 가슴을 콩닥거리게 하는 두려움이 어떤 불분명한 감정과 더불어 한밤중 내내 나를 괴롭혔다. 희끄무레 날이 밝아오자 나는 숙제 가방을 챙겨 조용히 그 집 대문을 밀고 나왔다. 박명의 세상에 안개까지 은은했다.
그렇게 등교한 날, 영애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용주골에 있는 학교로 전학 갔다고 했다. 뜻밖의 이별은 나를 번쩍 들어 옮기던 병사를 보았을 때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당시에 청파동에도 미군 기지촌이 있었던 걸 생각하면 아줌마는 딸이 평범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작은 시골 마을로 이사 왔던 게틀림없었다. 그런 모녀가 그렇게 떠날 수밖에 없었던 황망함이 곧 나로 인한 듯한 자책감이 이어졌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현실이 무엇인지 알기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으려 했다는 말은 혼자 삼켜야 했다.
용주골로 가는 버스를 알아보기 위해 대중교통 앱을 열다가 전봇대 위에 있던 여자가 궁금해 검색창부터 열었다. 그 여자는 공무집행방해죄로 재판중이었고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는 철거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검은 롱패딩의 청년 용역원들이 보였다. 형광 연두색 상의를 입은 경찰 무리와 파주시라고 적힌 파란조끼를 입은 공무원들이 어떤 건물을 에워싸고 있었다. 용역원들이 건물 앞 유리로 된 문을 떼어 내자 성매매 종사자들이 얼굴도 가리지 않은 채 몸을 부딪치며 저항했다. 방패를 든 경찰과 소방차 옆으로 용역원들과 소방관, 공무원의 일단이 엉켜 이리저리 밀렸다. 사변이 일어나고 미군이 주둔하면서 집창촌이 생겨난 이후 국가뿐 아니라 누구도 따지거나 벌하지 않았던 곳이 곪은 상처 도려내듯 철거되었다. 철거되는 유리문에 얼굴을 대고 주저앉은 젊은 여자의 머리카락이 젖어 있다. 엄동설한 백주에 설마, 하던 일이 코앞에서 벌어질 때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몸부림이 거대한 힘 아래에 있었다. 제 몸을 부려 쓰고, 쓰고, 또 쓰다가 그만두려다가 다시 쓴 현실이 주저앉아 있다. 오래전 어린 영애를 데리고 떠난 아줌마의 처지가 어떠했을지 짐작해 본다. 그곳에 가면 친구에게 전하지 못한 내 어린 마음과 모녀의 흔적이 핏빛처럼 선연할 것 같다.
나는 검색창을 닫고 대중교통 앱을 켰다.
첫댓글 격월간 그린에세이 (2025.5~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