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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신혜령의 작은 도서관 원문보기 글쓴이: 신혜령
안녕하세요, 곧 설 명절입니다.
이 말인 즉, 연휴가 시작될 거라는 뜻이죠. 월차만 잘 쓰면 제법 긴 휴가가 될 수도 있고요.
전 오늘부터 연휴 시작입니다. 금요일 월차를 썼거든요.
새로운 한해 1월이다 생각했는데, 여차저차한 각 100p 넘는 의뢰물 6종과 온갖 일감을 하다 보니 어느새 1월이 끝날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와, 벌써 2월이 코앞이야!
그런 분주한 나날 가운데서도 제 취미활동은 계속되었죠. 일한테 쫓기는 건 어쩔 수 없는데, 그렇다고 마냥 쫓기면서 업무에만 올인하는 건, 또 괜히 인생 헛사는 것 같단 말이지.
잘 살려고 일하는 거지, 일하려고 잘 사는 건 아니란 말씀입니다!
그래서 업무의 피난처로 틈틈이 독서한 작품의 감상을 정리하겠습니다.
도서명: 마령의 세계
저자: 최상희
* 이 책은 시각장애인 재활통신망 아이프리 도서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아동․청소년 도서에 문학 부문에 있어요.
그냥 전체 검색창에서 도서명 입력해 찾는 방법을 추천합니다. 시각장애인한테도 돌직구 다이렉트 검색이 편하니까요.
* 소개글 서평
원래는 일명 <에놀라 홈즈 시리즈> 전 6권에 대한 서평을 남길 계획이었다. 작년부터 눈탐을 내던 시리즈물이다. 솔직히 이 시점 즈음이면 시리즈 작품 모두 데이지도서 제작이 완료되어 완전체가 돼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었더랬다. 마침 얼마 전에 4권에 이어 5권이 시각장애인 재활통신망 도서관에 등록되기도 했다. 그래서 내심 기대하며 희망을 품었으나, 희망은 그저 희망으로 끝났다.
그 결과, 심신을 달래줄, 혹은 위로할 다른 작품을 물색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위안이 좀 필요한 상황에서, 아동 및 청소년 도서로 눈을 돌리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발견한 작품이 최상희 작가님의 《마령의 세계》이다. 청소년 소설이고, 장르는 판타지, 주인공은 ‘마녀’이다.
사진 설명: 지난 19년도, 다가올 2020년을 기대하며 열렸던 빛초롱 축제에서 찍은 다리 위에서 본 불빛 환한 남대문 조형물. 조명이 도배되어 꽤나 화려하다.
작품 《마령의 세계》로 입성하기 위한 문으로 연상해주시길.
우리의 세계는 담담하지만 특별한 것, 우리의 일상 - 《마령의 세계》
마령은 마녀의 딸이다. 해리 포터처럼 마법 세계에 속해 있지만, 모종의 사정으로 머글들의 세계, 곧 인간 세계에 머무르게 됐다는 설정은 없다. 본인조차 몰랐던 출생의 비밀도 없다. 마령은 자신이 마녀의 딸임을 안다. 그렇다고 마령이 무슨 특별한 마법을 부리고, 모두가 잠든 밤에 어떤 특별한 일에 뛰어들지는 않는다. 그저 매일 학교에 가고, 동생 마루를 돌보고, 비 오면 구멍 뚫린 지붕에서 떨어지는 물을 막기 위해 바닥에 그릇들을 쫙 깔아놓고, 공과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요양원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성적이 우수하지도 않은 것 같고, 인기가 많지도 않으며, 그냥 동생 마루와 동거묘 만옥이와 함께 무난하게 일상을 살아간다.
그나마 마령이 마녀의 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장면, 그러니까 독자가 그래도 얘가 좀 남다른 애였지 참 하는 자각을 느낄 때는 학교에 가기 전에 집안에 방을 돌며 결계를 치는 마령을 접할 때뿐이다. 그녀의 집은 꽤나 독특하다. 삼각 지붕에 암탉 모양 피뢰침이 달려 있고, 30개 정도 되는 방이 있으며, 그 방들의 개수는 일정하지 않고 때때로 사라졌다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방들에는 제법 난폭하고 사납고 위험한 ‘세입자’가 봉인되어 있다. 마령의 엄마, 마령의 할머니, 그리고 그 윗대의 마녀들이 차곡차곡 봉인한 ‘어둠의 것들’이다.
그럼에도 마령의 하루하루는 평범하다. 비록 그녀가 마녀의 딸이라고는 하지만 솔직히 할 줄 아는 마법이 몇 되지 않는다. 결계 치기 마법, 그리고 디저트나 떡볶이 등 음식을 불러내는 환상 마법만 가능하다. 더구나 그럴싸한 환상일 뿐이라 맛은 있을지언정 먹어도 포만감은 없는 듯하다. 글쎄, 다이어트에는 도움이 되려나?
그녀의 유일한 낙은 특이하게도 장기 게임이다. 동양의 체스, 붉고 푸른 기물로 대변되는 한나라와 초나라, 그 말들이 네모난 사각판 위에서 각자의 왕을 지키며 차, 포, 상, 마, 사, 졸을 움직여 벌이는 전쟁.
시각장애인이라 직접 장기를 둬본 적은 없다. 장기짝은 만져봤다. 사실 장기나 체스 등을 막연하게 동경할 뿐, 실력은 쥐뿔도 없는 게 본인이다. 하지만 룰은 안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 마령은 장기를 제법 둘 줄 아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런 것 치고 통쾌하게 이기는 경우가 소설 내에서 없다시피 하다. 주변 친구들이 강해서인가, 어째 지거나 겨우 비기거나 한다. 마령의 친구들도 장기에 미친 광인들(?)이다. 터프한 맹공을 펼치는 이랑, 침착한 플레이어 묘주, 살짝 럭비공 같은 스타일의 명리, 느긋하게 변수를 이루는 능이는 모두 학교 장기 동아리 소속이다. 마령은 뭐, 같은 동아리라고 해야 할지, 그냥 우연히 눌러앉은 멤버라고 해야 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같이 어울리긴 한다.
물론 명리와 묘주와 능이와 이랑, 이 친구들도 어딘가 비범해 보이긴 한다. 그리고 실제로도 비범한 친구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의 일상은 담담하고 특별할 것이 없다. 특별함이 일상처럼 흐르고, 그저 그런 일상 안에 특별한 존재들이 있다. 그것이 마령이 사는 세계고, 이랑과 명리와 묘주와 능이의 세계라는 것처럼.
마령의 세계는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소중하다. 우리의 일상이 특별하지 않은 것처럼, 그러나 돌이켜보면 소중한 것처럼. 소설의 ‘1부 친구 혹은 적일지도 모를’에서는 마령의 특별하고도 여상스러운 담담한 일상과 그 주위 인물들의 일상적인, 그러면서도 특별한 하루하루를 보여준다. 하지만 불길한 전조가 얼핏얼핏 보이면서 평온하던 일상은 깨어지고 마는데......
사진 설명: 19년도, 빛초롱 축제에서 찍은 개선문 비슷한 조형물. 두세 개의 문 조형물이 터널처럼 설치되어 있다.
소설 《마령의 세계》의 봉인된 문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를 찾아봤다. 이것도 문이니까 대충 그러겠거니 여겨주시면 감사하겠다.
《마령의 세계》 - 믿음과 이기로 멸망으로 걸어가는 세계 속에서
작품 내에서는 전쟁과 자연재해, 전염병 등의 전조가 등장한다. 세계 멸망의 징조들이다. 코로나 사태가 되고 어디에 씽크홀이 뚫려서 사고가 나고, 북극과 남극 빙하가 녹고, 열대야는 매년 길어지며, 이상기후는 일상이 되고, 아파트가 붕괴했다는 둥, 그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지구가 진짜 멸망하려나 우스개도 함께 들려온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그런 일이 우스개가 아닌 진짜 징조였다. 어째 남의 일 같지 않더라.
그런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대마녀가 회의를 소집하고, 중대한 사안에 대해 논의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령이 접하는 징조는 소소했다. 그녀의 세계가 작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한 사람이 보고 듣고 경험할 수 있는 세계 말이다. 마령이 마녀의 딸이라고 해도 그녀는 일단 고등학생이다. 볼 수 있는 시야에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마령의 주위에서 보이는 전조는 죽은 쥐가 현관 앞에 놓여 있다든가, 까마귀 사체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좀 사소한 것 같지만 분명 좀 찜찜한 일들.
더구나 마령네 집에, 정확히 말해 무수한 방에 강금된 세입자들은 나날이 기세가 강렬해진다. 회유하다가 놀리다가 협박하다가 경고하고, 종국에는 저주와 같은 예언을 한다. 얼마 안 남았다고.
그리고 어느 날 밤, 집안이 쥐 죽은 듯 고요한 가운데, 마침내 결계가 깨지고 ‘어둠의 세력’이 세상에 풀려난다. 그들의 목적은 하나, 이 세상을 닫는 것이다. 표현이 다소 추상적인데, 그냥 한마디로 말하면 ‘세계 멸망’이다.
방에 봉인이 풀렸으나, 처음에는 일상에 변함이 없는 듯 보인다. 하지만 구름은 어느새 천지에 가득해 있었다. 무심히 올려다본 하늘이 어느새 먹구름으로 뒤덮혀 있는 것처럼. 어둠 속에서 바라본 구름, 그 형체가 불분명하던 것, 악의가 마령의 세상을 차곡차곡 덮어간다. ‘2부 불길한 구름이 사방에 자욱하니’의 본격적인 전개가 그랬다.
작게는 버스를 놓치는 사소한 불운부터 도시에 웬 미친 방화범이 날뛰질 않나, 질 나쁜 무리에게 쫓기질 않나, 나름 평화로워서 어디 시골 마을 같던 동네가 한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린다. 더 오싹한 건, 삽시간에 지옥처럼 변해버린 거리의 모습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약탈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말하는 게 아니다. 소설 속에서 마령과 동생 마루가 쫓기고 있을 때, 분명 눈이 마주쳤음에도,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도와줄 수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문을 닫아버린 사람, 어떤 아저씨의 모습이 인상에 남는다. 심장 한켠을 쿵 내려앉게 하는 서늘함, 혹은 암담함이 있달까.
작품 내에서 이기심과 함께하는 믿음으로 세계가 멸망한다는 문장이 나온다. 이 세상이야 어찌 되든 나 혼자 잘 살면 된다는 이기심, 다른 사람은 어쨌거나 나는 다를 거라는 믿음, 그 둘이 합쳐진 행동이 이 세상을 망하게 한다고.
2부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행동들을, 혹은 1부에서 살짝 엿보이는 페어플레이 정신에 위반되는 행동을 접하고 곱씹을 때마다 위의 문장도 같이 떠올랐다. 진짜 그 말이 맞아서 슬픈 한편 참담하기도 했다. 그것을 우리 인간이 자초한 일이라는 게 더 서러웠다. 왜 마녀 회의에서 ‘밤을 듣는 자’와 ‘이야기를 짓는 자’가 세상을 닫는 데 한 표를 준 건지 납득이 될 정도로.
그렇지만 인간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어 길을 찾는다고 했던가. 암중모색의 가운데 이따금 손끝에 닿는 온기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미래 요양원의 보호사 선생님처럼.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이 세계는 아직도 이럭저럭 굴러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설 속에서 마녀 같은 인외의 존재, 요양원에서 은둔하는 윤금주 할머니를 움직인 건, 그런 사람들이었으니까.
사진 설명: 역시 2019년 12월 빛초롱 축제에서 찍은 천사 조형물. 전체적으로 희고 슬림한 형상이다.
인생에서 가끔은 수호 천사가 필요하다. 그 천사는 주위에 있는 친구일 수도 있다. 작품 《마령의 세계》에서 주인공을 돕는 장기 동아리 친구들처럼.
그래도 나의 세상, 작지만 소중한 우리의 나날들 - 《마령의 세계》
어릴 적에는 별생각 없이 봤는데, 어른이 되고 생각하니 좀 의아한 구석이 있는 설정이 하나 있다. 만화, 즉 애니메이션 관련이다. 바로 왜 지구를 구하고 악당들과 싸우고 세계를 지키는 건 왜 아이들인가 하는 부분이다. 최소한 학생, 많이 잡아도 중학생 내지는 고등학생이다. 슈퍼맨이나 베트맨 등 아닌 경우도 있지만, 또 요즘은 대학생 등 청년층으로 영웅의 연령대가 높아진 듯도 하지만, 어쨌거나 내 기억 속의 무슨무슨 요정이나 뭐뭐 레인저 같은 인물들은 애들이었다. 한때 유행했던 <달의 요정 세일러문’인가 하는 그 캐릭터도 학생 아닌가.
이유가 뭘까 새삼스레 궁금했던 적이 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아이들 취향을 적중하기 위해? 감정 이입 잘 되라고 자기네 또래를 내세웠나?
제법 그럴싸한 가설이지만 솔직히 논리적으로는 말이 안 된다. 지구를 구하고 나쁜 범죄자 잡고, 세상을 지키는 건 어른들의 몫이니까. 아이들은 미래고, 어른들은 그 아이들에게 미래를, 더 나은 내일을 온전히 넘겨줄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러니 아이들이 로봇에 탑승해서 우주에서 온 모종의 세력과 싸우거나, 고작 여자애가 마법 좀 쓴다고 위험한 일에 막 뛰어들게 된다는 설정은 순전히 만화이기에 가능하다.
누군가는 그 현상의 근거를 이렇게 말했다. “애들이니까 아직 뭘 몰라서 지구를 구하고 세상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야. 너 같으면 이 꼴 저 꼴 막나가는 이 세상 구하고 싶겠냐?”
‘웃픈’ 정곡이었다. 진짜 그럴 것 같다. 만약 지금의 나한테 예전 애니메이션에서나 본 그런 능력이나 마법이 생긴다면, 국가적이나 우주적, 혹은 전 세계적인 스케일을 품은 이로운 일은 고려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 세상을 많이 탄 나는, 그래서 어른이다.
반대로 세상이 얼마 후에 끝장난다고 해도, 그러니까 작품 《마령의 세계》처럼 어둠의 세력이 이 세상을 점거한다고 해도,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은 안 들 것 같다. 그냥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심정? 변하는 게 뭘까 하는 마음이랄까.
그래서인지, 소설 속에서 마령도 세계를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은 별로 없다. 일단 결계가 깨졌고 뭔가 큰일이 날 것 같아서 친구들에게 상의를 하지만 적극적이라는 인상은 들지 않는다. 그리고 마령의 친구들, 알고 봤더니 청룡과 은여우 일족, 그리고 늑대인간과 숲의 정령인 그들도 마령의 상담에 별반 열의를 갖지 않는다. 어차피 모든 건 끝이 있기 마련이고, 인간들 잘못이니 내 알 바 아니며, 세계를 구하는 건 너네 담당, 마녀의 소관 아니냐는 말, 이 세계 한번쯤 뒤집어질 때도 됐다는 반응.
하지만 결국 마령의 동생 마루가 어둠의 세력에게 끌려가면서, 마령은 자신의 세계가 부서졌음을 인식한다. 그리고 자신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또 되찾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게 된다. 더불어 이랑과 명리, 묘주와 능이도 마령과는 아무 연고도 없지만 그래도 ‘같이 장기 두는 사이’라는 미묘한 인연으로 마령의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무심한 듯 뭉치게 된다. ‘3부 세계의 끝, 마령의 포진’의 전개는 본격적인 모험 액션 구출, 그리고 수수께끼 풀이로 이어진다. 시공이 뒤틀릴 때 세계의 끝에서, 마령이 선택한 승부수는 과연?
사진 설명: 물 위로 떠가는 불 밝힌 유등. 19년 빛초롱 축제에서 즉석 유등을 만들어 물에 띄워보냈다. 소원 성취를 다짐하며!
자고로 소원이란 건, 성취되길 기원하기보다 성취되게끔 노력을 이어갈 수 있도록 기원하는 법이다.
《마령의 세계》 총평 - 어둡지만 밝은, 담담하지만 찬란한
소설 《마령의 세계》는 분위기가 참 묘한 작품이었다. 전반적인 느낌은 활기차기보다 가라앉아 있고, 명랑하기보다 담담하다. 흐릿하고 어둑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따스하다.
글쎄,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발걸음은 좀 무겁지만 그래도 묵묵하게 숲을 헤치고 길을 지나고 밤하늘 아래 오솔길을 걸어가는 느낌이다. 혹은 배를 타고 나아가는 듯한 감상이 든다. 달빛은 희미하고 물살은 고요하다. 노 젓는 소리만 적막을 깨는데, 다소 불안한 감이 없지 않지만, 외롭거나 무섭지는 않다. 작품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이런 시각화가 떠올랐더랬다.
묘한 이미지 탓인지 이 소설은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마녀와 용, 은빛 털의 여우와 늑대인간, 그리고 정령이 평범한 고등학생의 모습을 하며 살다가 악에 맞서 세상을 지키는, 끝내주게 재미있고 정교한 판타지라고 하기에는 분위기가 너무 열혈 모드가 아니었다. 엄밀하게 말해 주인공 마령과는 별반 연고도 없는 대단한 존재들이 그녀의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쿨하게 뭉쳤다가 쿨하게 제자리로 돌아가는, 영웅 일상물이라고 하기에도 어딘가 좀 맞지 않는다. 그렇게 정의하기에는 분위기가, 아니 각 인물들이 겪은 서사가 너무 안타까워서 그럴 수 없다. 특히 이랑과 묘주가 너무 안됐다. 한편 비혈연으로 맺어지는 마녀의 가계도와 공동의 취미(장기)로 인연을 맺는 인물들을 보며 우정 및 가족애 소설인가 하기에도 찜찜하다. 인간과 결혼하면 마녀의 자격을 상실함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마령의 엄마를 그렇게 이끌었는지 오래 생각하게 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 작품이 연애나 로맨스물은 결단코 아니다.
한가지 확실한 건 소설 구성이 상당히 정교하다는 것이다. 파편처럼 흩어진 이야기들이 하나씩 모이고, 거미나 고양이, 떠돌이 개 등 그저 소품인 줄 알았던 아주 작은 존재까지 그 실체가 밝혀지면, 그야말로 놀라움을 넘어 경외감이 들게 된다. 작가님, 이런 세계를 창조한 비결이 뭘까요?
한편 장기에 대한 묘사도 인상적이었다. 장기판을 통해 앞으로의 이야기 전개를 살짝 암시한 것 같은 부분이 특히 그랬다. 왕과 왕이 서로 독대하는 장면, 승자도 패자도 없는, 바로 그 장면 말이다. 뭐든 혼자서 마주하고 독대해야 하는 게 있다는 걸 시사하는 걸까?
좌우간 총평을 적자면, 《마령의 세계》는 섬세한 세계관과 캐릭터 간의 연관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알고 보면 깨알 설정이라 버릴 게 없다.
또, 어쩐지 이 소설은 지루한 일상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비록 나의 하루가, 또 당신의 하루가 뻔하고, 하는 일은 도무지 나아질 것 같지 않고, 나는 혹은 당신은 무기력할지라도. 잘하고 싶어도 꼭 어디선가는 실수가 생기고, 나, 또는 당신은 그것을 뒤늦게 알게 되며, 바로잡아야 하는 책임이 있지만, 자신의 실책을 내놓는 일은 언제나 버거운 일이기에 심장은 조여들고 만다. 그럼에도 그런 세계를 붙드는 이유는, 그래도 나의 세계이기에. 소중하기에.
우리들 각각의 세계는 한없이 작고, 초라하고 보잘것 없지만, 그래도 협소한 세계지만 소중하다고, 《마령의 세계》는 속삭인다.
주인공 마령이 세계가 닫히는 걸 막는 계기도 별거 없다. 순전히 개인적인 동기니까.
왜 소년 영웅이나 마법 소녀, 대학생 청년 레인저가 세계를 구하러 뛰어드는지 살짝 이해가 갔다. 동기는 사소해도 된다. 친구와 계속 축구하기 위해, 동생을 지키기 위해, 가족을 건드리는 악당들의 행동 양식이 눈꼴 시려서, 친구가 도와달라고 하니까 등등.
그저 자신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일상을 살기 위해 묶묵하게 노력할 뿐이다. 그게 세계를 구하는 것일지라도.
개인적으로 외부적 스트레스 요인으로 인해 약간 심신 상태가 불안할 때, 이 책 《마령의 세계》를 들길 권한다. 직접 겪어봐서 하는 얘기인데, 효과 좋더라.
하지만 아쉬운 점이 마냥 없지는 않았다. 소위 말하는 ‘떡밥’ 회수가 좀 부족한 감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할머니가 왜 마령의 아빠가 개로 보이도록 하는 마법을 걸었는가, 마령의 엄마와 할머니가 그런 모습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등등 소설 속에서 풀리지 않고 마령의 상상 혹은 독자의 상상에 맡겨버린 의문들이 몇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점은 좀 아쉬운 부분.
그래도 《마령의 세계》, 읽는 동안 재미있고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