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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멸보궁이란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한 건물로, 불사리 자체가 신앙의 대상이므로 내부에 불상을 모시지 않는 공통적인 형식을 지닌다. 우리나라에는 경상남도 양산의 통도사(通度寺), 강원도 인제의 봉정암(鳳頂庵), 영월의 법흥사(法興寺), 정선의 정암사(淨巖寺), 오대산 월정사 등 5대 적멸보궁이 전해온다. 이 가운데 정암사의 적멸보궁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귀국 직후 직접 창건한 것으로 전한다. 다른 적멸보궁의 경우는 사리를 안치한 장소가 분명하여 방등계단(方等戒壇)이나 사리탑(舍利塔)이 조성되어 있지만, 오대산의 경우는 어느 곳에 불사리가 안치되어 있는지 그 정확한 장소가 알려지지 않아 신비감을 더해주고 있다.
[발췌 :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 사전]
2023년에는 여행을 더 하고 싶어졌다.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해다. 여러가지 여행 기획을 했고, 그 중의 하나가 5대 적멸보궁과 배후산을 가보는 것이다. 5대 적멸보궁은 이미 다 가본 곳이지만, 다시 한번 천천히 차근 차근 주변과 배후산을 들여다 보는 기회를 가지고 싶어졌다. 먼저 발길을 함백산 정암사로 향했다. 함백산은 태백산 국립공원에 속한 산이고, 정암사 일주문에는 『태백산정암사』로 현판이 씌여 있다.
전체적인 진행은 가능한 적멸보궁을 감싸고 있는 배후산을 오른 후 적멸보궁에 들리는 경로를 선택하기로 했다. 어쩔 수 없이 적멸보궁을 먼저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적멸보궁은 불교에서는 부처님이 계시는 성지이다. 적멸보궁으로 가는 길이 그래서 여느길보다 더 경건해야 하고 가는 여정 자체가 의미 있다는 생각이다.
먼저 만항재에서 출발해 함백산을 오른 후 같은 방향으로 하산하여 만항재와 정암사 갈림길에서 도로를 따라 정암사까지 걸었다. 만항재부터 전체적으로 8km 정도를 걷는 성지순례길이다. 사방에 눈이 가득했다.
산이란 올라야 제멋이고 '겨울산이 산중에 으뜸이다'는 말이 있다. 겨울산은 힘들다. 우선 춥고 위험하다. 하지만 주변의 산세와 산의 모든 것을 드러낸 모습을 보고, 산행의 맛을 느끼기에는 겨울산행 만한 것이 없다. 위 사진은 정상에 거의 오른 뒤 돌아본 만항재쪽 풍광이다.
함백산은 강원도 정선군과 태백시의 경계에 있는 해발 약 1,573m의 산으로.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 계방산에 이어 대한민국(남한 한정)에서 6번째로 높은 산이다. 태백산국립공원 구역 안에 있는데, 구역 내 봉우리들 중 최고봉이다. 태백산에 비해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높이는 태백산보다 오히려 5m 더 높다. 높이는 대한민국에서 6번째로 높지만 시작점의 해발고도가 높아 어렵지 않다. 함백산이 있는 정선 고한읍과 태백시 자체의 해발고도가 높다. 특히 차를 타고 만항재 위쪽까지 올라오면 해발 1,300m 이상이고 거리도 1km 정도밖에 안되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함백산 정상에 서면 주변 풍광이 무척 아름답다. 위 풍경은 우리나라 최대 풍력발전단지 중의 하나가 있는 매봉 인근이다.
산은 이어진다. 그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풍경이 앞에 펼쳐져 있다. 왼쪽 하단에서 시작하여 우상단 멀리 매봉 풍력발전단지가 있는 곳까지 산길이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위 사진은 운탄고도 제 5구간이 놓여 있는 길로 멀리 중앙 우측에 있는 산이 백운산이다. 역시 길은 화절령에서 시작하여 종점인 만항재로 이어지고 있다.
함백산을 내려와 도로를 따라 정암사로 향했다.
함백산은 야생화 단지로 유명한 곳이다. 지대가 높고 다양한 식물군이 자연 서생하고 있어 각종 야생화를 볼 수 있다. 이 곳(정선군 고한리 야생화 마을)과 만항재에서는 해마다 함백산 야생화 축제가 열린다. 야생화 모종 판매도 한다.
정선군은 이곳에 지난 9월(2022년) 야생화 추리 본부를 개관하고 운영에 들어갔다.
지상 4층 규모의 연면적 689㎡로 주요시설은 2층 미니체험관 5개 테마(셜록홈즈의 탐정사무소, 살인사건, 판결, 사형집행, 블랙미디어), 3층(광부의딸 아리)과 4층(베이커가의 유령, 엄마는 우주인)에 본 체험관 3개 테마 등이 있다.
[사진 발췌 : 고한 야생화마을 추리본부. ⓒ정선군 제공]
산골 마을의 어느 집 처마에 도시에서는 거의 보기 힘든 고드름이 잔뜩 매달려 있었다. 문득 어릴때 고드름을 잘라 입에 넣고 오물거리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맛난 기억이다.
개울 건너 마을이 눈속에 파묻혀 있었다. 어떤 분이 짐을 플라스틱 상자에 넣고 끌고 가는데 힘이 부쳐 보인다.
3.5km의 도로 길이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지던지. 모퉁이를 돌아서자 흰눈이 쌓여 있는 전각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까지의 피곤함은 어디로 갔는지 가벼운 흥분이 밀려왔다.
겨울 산사에서 가장 보고 싶은 풍경은 기와 지붕위 골을 따라 쌓여 있는 흰 눈길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내가 보고 싶었던 전각의 모습이 그대로 그려져 있었다.
수마노탑은 정암사 자체를 상징하는 대표적 문화유산입니다. 특히 2020년 보물(제410호)에서 국보(제332호)로 승격 지정되는 영예를 안았는데 수마노탑에 관한 일화가 발견된 탑지석 제4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643년 문수보살은 자장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그대의 나라에 인연이 있는 곳 중에 삼재(三災)가 닿지 않는 명승지가 있을 것이니, 그곳에 탑을 세우고 이것들을 안치하시오.”자장율사가 바다를 건너 본국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당나라의 여러 승려들이 “나라의 귀중한 보물을 어찌 해외의 작은 나라로 보낼 수 있겠는가?” 하고는, 병사들을 동원해 그것들을 빼앗으려 했다. 자장이 바닷가로 나가서 그것을 용왕에게 전하니, 용왕이 받아들고 바다를 건너 우리나라 영남의 울산군(蔚山郡) 포구에 내려주면서 마노석과 함께 부처님의 정골사리를 자장에게 돌려주었다. 자장은 이것들을 받아서 태백산 아래 문수보살이 가르쳐준 갈반지(葛盤地)에 탑을 세우고 봉안하고 수마노탑이라 이름했다. 탑 아래쪽에 향화(香火)를 올리는 법당을 하나 짓고, ‘정암(定岩, 淨巖)’이라고 이름 지었다. (탑지석 제4석의 내용, 1713년 作)[발췌 : 불교문화 2022년 7월호, 한국의 수행처 순례, 태백산 정암사 적멸보궁]
수마노탑이 있는 곳을 찾아 보려고 고개를 들었더니 수마노탑이 눈앞에 홀연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봄에 왔을때에는 나뭇잎들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는데 겨울철이라 볼 수 있는 것 같다. 정암사 수마노탑은 정암사 자체를 상징하는 대표적 문화유산으로 2020년 보물(제410호)에서 국보(제332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태백산 정암사는 비교적 뚜렷한 창건주와 창건 연기가 확인되는 사찰 가운데 하나입니다. 특히 정암사의 역사적 위상과 신앙적 위치를 상징하는 수마노탑에서 1972년에 발견된 5매(枚)의 탑지석(塔誌石)은 신라로부터 고려와 조선을 이어가는 동안 텅 비어버린 것만 같은 공백의 역사를 보다 세밀하게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를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발췌 : 불교문화 2022년 7월호, 한국의 수행처 순례, 태백산 정암사 적멸보궁]
정암사는 함백산 아래에 있기 때문에 보통 함백산 정암사로 블리지만, 정확하게는 태백산 정암사다.
적멸보궁을 모시고 있는 사찰이라 무척 클 것이라 생각하지만, 정암사는 의외로 생각보다는 외형적인 면에서는 소탈한 편이다. 나는 오히려 이 소탈한 모습때문에 정암사를 더 좋아한다.
아래층은 공양간이고, 위는 심검당이다. 쌓인 눈들로 입구가 묘한 신비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지난 여름에는 없었던 것 같은(내 기억이 잘못 될 수도 있다) 『삼소정(三笑亭』이란 현판이 있는 정자가 보였다. 아직 단청이 안되어 있는 것을 보니 만들어진지 오래 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세 번 웃고 가는 곳' 사뭇 궁금했다. 왜 하필 3번일까... 세번이란 숫자의 의미는 늘, 항상을 의미한다. 전생, 현생 그리고 후생을 생각하면 삼생에 걸쳐 늘 웃으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늘 웃자~~
안내판에도 눈이 그득했다. 이 안내판을 기준으로 오른쪽 비탈로 올라가면 진신사리가 모셔진 수마노탑이 있고, 왼쪽으로는 '자장율사 순례길'이 있다. 순례길은 이곳에서 시작하여 적조암터(자장율사의 열반지로 전하는 암자), 뾰족바위(자장율사의 유골을 안치한 바위로 전해지는 곳)를 거쳐 만항마을까지 이어진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국내로 모셔온 자장율사는 이곳에서 노년을 보내다가 열반에 들었다.
수마노탑이 국보로 지정되기 전 세워진 안내비석이다.
수마노탑 앞에 도착했다. 수마노탑은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안치된 곳이고, 적멸보궁은 산 아래 수마노탑이 일직선으로 바라다 보이는 곳에 있다. 적멸보궁은 수마노탑에 봉안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지키기 위해 건립한 전각이다. 정확히 말하면 수마노탑과 적멸보궁은 구분이 되어야 하지만 대개는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가볍게 삼배를 하고 사진에 담았다. 지난 봄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섰다. 지난 봄에 적멸보궁을 해체 후 보수 작업중이었는데, 이번에 보니 다시 세워져 있었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검색해보니 지난(2022년) 6월 18일 복원을 마치고 '적멸보궁 해체·복원 불사 회향법회와 전통 음악회를 개최한다'는 기사가 있었다. 위의 사진은 해당 연합국회방송 기사에 나온 사진 자료를 발췌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자장은 원녕사에 머물면서 문수보살을 친견한 다음 칡덩굴이 우거진 곳에 이르러 절을 짓고 석남원(石南院) 또는 갈래사(葛來寺)라고 했다가 후에 정암사로 했다고 합니다. 갈래사라고 하는 이름은 탑을 한 곳에 세웠는데 무너지고 자꾸 또 무너져 정성으로 기도했더니 칡이 세 줄기가 뻗어 지금의 수마노탑과 적멸보궁이 있는 자리에서 멈춰 그 자리에 탑과 본당을 세웠으므로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발췌 : 불교문화 2022년 7월호, 한국의 수행처 순례, 태백산 정암사 적멸보궁]
아래로 허리를 굽혀보니 전각들이 보인다. 산문(일주문)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어떤 분이 걸어 나가고 있었다. 불심 가득히 기쁨을 안고 가는 길이려니...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적멸보궁 전각도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수마노탑은 모전 석탑 양식의 탑입니다. 모전(模塼)이라고 하는 것은 석재를 벽돌 형태로 가공해 축조한 석탑을 말하는데 마노석을 뜻하는 ‘마노탑’ 앞에 왜 물을 의미하는 물 수(水)자가 붙었을까요? 그것은 자장이 귀국할 때 서해 용왕이 자장의 도력에 감화해서 준 마노석으로 탑을 쌓았고, 물길을 따라 마노를 가져왔다고 해서 물 ‘水’ 자를 앞에 붙여 ‘수마노탑(水瑪瑙塔)’이라 불렀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정암사와 수마노탑은 현존하는 적멸보궁 가운데 설악산 봉정암과 함께 석탑을 이용해 보궁을 형성한 사례로 주목받는 곳입니다.
[발췌 : 불교문화 2022년 7월호, 한국의 수행처 순례, 태백산 정암사 적멸보궁]
앞산 이미에 저녁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수마노탑에 매달린 풍경은 미동도 없고 어느새 차분해진 내 마음도 미동 없이 잔잔하게 시간을 흘러보냈다.
범종각. 겨울 깊은 오후 주변이 흰눈이 가득한 시간에 본 범종각의 수수한 단청들이 지금까지 내가 만난 그 어느 단청들 보다 휠씬 아름답게 보였다. 문득 사물을 대하는 마음의 상태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내 마음이 조용할때 세상은 조용하고, 내 마음이 깨끗할때 사방은 정돈되고 아름답게 빛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