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음의 해학:김유정-봄봄 이 작품의 작중 화자이기도 한 주인공은 어느 농촌의 봉필이라는 마름(마름이란 지주와 소작인 중간에서 지주의 대리 노릇을 하는 사람의 직책인데, 이 작품에서 마름이라는 작업이 가지는 의미에 뒤에서 이야기하고 있음)의 데릴사위로 들어와 있다. 딸(점순)이 자라는 동안 그 집에서 살면서 일을 해 주면 딸을 아내로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서 들어왔는데, 4년이 지나도록 아직 성례를 시켜 주지 않은 상태다. 이유인 즉슨 딸이 아직 채 자라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상 점순은 그 사이 열여섯 살이나 되었는데도 주인공의 겨드랑이께만큼 정도에서 더 이상 키가 자라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주인공은 벌써 4년째 아무런 보수도 받지 못한 채 머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예 머슴이라면 새경(머슴이 일한 대가로 주인에게 받는 보수)이라도 받을 터인데, 머슴이 아니라 어엿한 데릴사위니 새경을 달랠 수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4년 간 공짜 일을 해 주는 주인공은 일단 바보스럽다고 할 수 있다. 봉필은 큰딸을 시집 보내기 전에도 그렇게 데릴사위를 들여(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마구 갈아치워 가면서) 장장 10년 동안 공짜 일을 시켜 먹었고, 이제 둘째딸을 그렇게 하고 있다. 다만 이번에는 주인공이 일을 곧잘 하기 때문에 쫓아내지 못하고 있으며, 나아가 이제 여섯 살인 셋째딸에 대한 데릴사위를 들일 수 있을 때까지는 주인공을 붙잡아 두자는 속셈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정은 주인공이 한 동네에 뭉태라는 청년에게 들어서 알게 되었는데(그러면서도 주인공은 이치에 닿는 그런 사정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어리석음을 보여 준다.) 여태껏 주인공은 그런 사정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묵묵히 일만 해 온 것이다. 우리는 일단 이런 우직한 인물의 어리석음에 대해 웃음을 머금게 된다. 참다 못하여 아내가 될 점순이마저도 주인공의 어리석음을 흉보고 탓할 때까지 주인공은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기만 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작품은 주인공이 애초에 계약을 분명히 하지 못한 것을 깨닫는 데서 시작한다. "딸이 자라는 대로 성례를 시켜 주마."라는 막연한 계약은, 만약 점순의 키가 더 이상 크지 않는다면(사실 더 크지 않을 것이 분명한데) 그야말로 영원히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주인공이 이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올 가을에는 혼례를 치르도록 한다는 새로운 약속을 받아내든지, 아니면 머슴 산 셈치고 새경을 받아 내든지 양단간에 결정을 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러나 주인공이 이런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결심을 한다고 해서 이 작품의 해학의 근거가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실 작품에서 주된 웃음은, 주인공이 이런 깨달음과 결심을 한 뒤에 벌이는 행동과 과거 자신의 어리석음을 반추하는 장면에서 주로 유발된다. 과거를 자신의 입으로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앞 단락에서 이야기한) 장인의 엉큼한 속셈에 넘어가 4년 동안이나 공짜 일을 해 준 주인공의 어리석음을 알게 되고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주인공의 어리석은 행동은 그 뒤에도 여전히 줄어들지 않는다. 자신의 결심에 따라 주인공은 장안과 온갖 실랑이를 벌이게 되는데, 그 과정이 또한 한 편의 코미디가 된다. 주인공은 장인의 엉큼한 지혜에 맞서거나 그것을 능가할 만한 지혜를 발휘해서 장인을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다짜고짜로 장인과 생식기를 붙잡고 늘어지는 등의 드잡이(서로 엉켜 붙어 뒹굴면서 시끄럽게 퉁탕거리는 아이들의 거친 장난 짓)를 하여 우리를 즐겁게 웃기는 것이다. 결국 주인공은 그런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자신의 목적을 지혜롭게 관철시키지 못한다. 표면적인 작품의 결말은 장인의 생식기를 붙잡고 늘어진 덕분에 장인으로부터 "올 가을엔 꼭 성례를 시켜 주마."라는 언질을 받아 내고 주인공은 그것이 정말인 줄 알고 아주 고마워하지만, 장인의 계산 속을 알고 있는 독자들은 그 약속이 지켜질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하며, 다시 한 번 주인공의 어리석음에 대해 웃음을 머금게 된다. 더욱이 그 동안 자신의 편이던 점순이로부터도 "에그머니! 이 망할 게 아버지 죽이네!"라는 원망을 듣게 되지 않은가. 실상 주인공은 또 한 번 실수를 저지른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