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대중가요의 노랫말에 대한 반성
오늘날 청소년들에게 스타는 당연히 대중가수와 스포츠맨이다. 청소년들은 스타를 선망하는 이유에 대해 '화려한 생활과 경제적 부'를 서슴없이 든다. 자본주의의 병폐가 그대로 청소년들에게 옮겨지고 있다. 물론 스타에 대한 선망을 뭐랄 수는 없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그리는 모델이 있을 수 있다. 다만 스타의 범주가 지나치게 한정적이란 점이다. 흑인 차별에 대한 반대 운동을 하다 암살당한 마틴 루터킹을 선망하던가, 민중의 해방을 위해 쿠바의 밀림에서 죽어간 체 게바라를 동경하던가 하는 등의 폭넓은 스타의식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시창작 시간에 스타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대중가수들이 부르는 대중가요의 대부분이 문학에서 말하는 시와 너무 다르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청소년들은 시를 쓰는데 시가 아닌 대중가요의 가사를 쓰고 있다는 점이다. 시창작에 미숙한 그들에게는 시와 가사의 구분이 어렵고, 쉽게 접할 수 있는 가사를 시로 오인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현상은 시감상의 깊은 맛마저 말초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거나, 아얘 대중가요의 가사처럼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을 요구하게 하거나, 아니면 시는 난해하고 고답적인 것으로 치부해버리고 말게 한다.
어떤 가수 이름만 들면, 그가 언제 데뷔했고 어떤 음반을 냈으며, 어떤 종류의 노래인지 줄줄이 꿰뚫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청소년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대중가요의 가사가 시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해 준다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일까? 그러나 불행히도 가요의 가사가 시의 위치까지 다다른 작품은 별로 눈에 띄지 않고 있다.
몇 년 전 송창식이란 가수가 미당 서정주의 <푸르른 날>이란 시에 곡을 붙여 부른 것은 대중 가요의 품격을 높여 보려한 바람직한 시도였으며, 7,80년대의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이 민중가요로 부른 많은 노래들이 김지하, 문병란 시인들의 작품을 가요와 접맥시켜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이러한 노력도 사라지고 있어 안타까움이 크다.
알아 내 모습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오랜만인데 날 대하는 니 표정엔
알 수 없는 어색함에 내가 먼저 웃어도 점점 더 어려워져
바쁜 나의 생활에 나도 지쳐 있어 부탁이야 날 믿어줘 제발
그런 식의 니 표현을 난 알아 지금 니 모습이 더 초라하다고 느껴선걸
내 친구야 외로워마 니곁엔 내가 있잖아 이젠 나를 향해 닫았던 니 마음 열어줘
고마워 니 충고 거만해진 날 느꼈고 작은 내 실수가 날 멍들게 한다 했지
변하는 내 모습이 너의 눈에 비춰져 그럴 땐 정말 힘들어
바쁜 나의 생활에 나도 지쳐있어 부탁이야 날 믿어줘 제발
그런식의 니 표현을 난 알아 지금 니 모습이 더 초라하다고 느껴선걸
내 친구야 외로워마 니곁엔 내가 있잖아 이젠 나를 향해 닫았던 니 마음 열어줘
임창정의 노래 <날 믿어줘>
여기서 우리는 언어 사용의 가장 초보적 단계를 접하게 된다. 언어의 지시적 기능만으로도 만족스럽고, 언제 비유니 상징이니 따질 게재가 없는 직설적 표현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오늘날의 연애방식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부처님이 제자 가섭에게 말없이 내민 연꽃 한 송이나, 풀꽃 한 송이를 책갈피에 끼워 말려서 내어미는 은근함이 없다, 바꾸어 말해 시적(詩的)인 삶이 없다는 것이다.
시적인 삶을 잃어버린 채, 건조한 삶을 살면서 학교에서 학생들이 쓰는 대부분의 시들은 행가르기와 연나누기로 형식만 갖추고 있을 뿐 직설적 감정의 토로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런 현상은 그들이 익숙하게 듣고 따르는 대중가요의 모습 바로 그대로이다. 대중가요의 흐름과 언어사용의 방법을 학생들이 그대로 모방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가요의 노랫말을 '가사(歌詞)'라 하지 시(詩)라고 하지 않음을 깨달아야만 한다.
첫댓글 선생님 생각에 공감합니다.
요즈음에는 수신자와 발신자 사이에 신호가 너무 짧아
생각할 틈이 없어 걱정입니다.
좋은 글입니다.
가수 윤형주가 윤동주의 시를 노랫말로 곡을 만들려다 아버지(영문학 교수?)로 부터 '어디 네 따위 대중가수가 윤동주 시로 노래를 만드려 하다니'라며, 혼이 났다고 했습니다. 얼마 전에 작곡하는 분을 만났는데, 자기가 200여 곡을 작곡해 두었는데, 노랫말을 구하지 못하여 썩히고 있다 하였습니다. 노래 가사는 시어와 다르다고 했습니다. 곡의 운율에 맞아야 하고, 노랫말은 음악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청소년들이 대중가요를 부르더라도, 애송시도 몇 수 쯤은 가지고 있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젊은 날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