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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둥지를 튼 오리 가족
현재 귀농 7년차.
귀농을 해서 성공을 했다기 보다는 아직도 농촌에서 이룰 꿈이 많아서
더욱 정착하고픈 38세 젊은 주부의 농촌 생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아직도 더없이 모자란 곳이지만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우리 농장을 소개하고자 공모하게 됐습니다.
농촌에 내려오기 전 우리는 청주 도심에서 전자기기 대리점을 운영하며 20여년을 살았습니다.
우리상가가 있던 곳은 청주의 번화가로 낮엔 젊음이 넘치는 활기찬 곳이지만
밤엔 무법지대를 연상케 하는 등 양면성을 가진 곳 이었습니다.
아이들의 교육을 생각하면 교육의 도시“청주”에서 사는 것 만큼 이로울게 없었지만
아이들에게 삭막한 도시보다는 좀더 안전하고 도심에서 접할 수 없는 여유로움과 순수함
그리고 맑은 공기, 자연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행복을 가르쳐 주고 싶었습니다.
특히나 농촌과 농업에 관심이 많았던 남편의 결심으로 우리는 2001년 남편의 고향인
이곳 천안 동면에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이런 공모전에 참가도 해봅니다.^^
2001년도에 청주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오긴 했지만
시골 생활과 어떤 작목을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없었기에
3년 동안 귀농을 위한 준비를 했습니다. 청주와 천안을 오가며 농사를 지어서
밥벌이가 가능해 질 때까지의 여유자금을 비축했고,
귀농을 위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축사를 짓고 소를 키울까 했었지만
그 당시 사료값의 폭등과 FTA 파동이 염려되어 오랜 고민 끝에 오리를 사육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오랜 고심 끝에 결정한 오리사육.. 그러나 오리사육 또한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습니다.
인허가 과정이 무척이나 고되고 힘겨운 시간이었고
축사 신축을 위한 인허가 과정은 무려 2년이나 걸렸으며,
이렇게 복잡한 과정인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축사 신축이 가능한 지역인지, 인허가에 필요한 경비가 얼마인지,
특히나 환경 부담금 같은 예상치도 못한 비용들로 인해서
일이 생길 때마다 남편과 싸우기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어려운 과정 끝에 농촌에 정착하게 된지 4년이 지나갑니다.
그러면서 어느새 우리도 마을주민과 허물없이 지내는 한마을 사람이 되었고
비로소 제법 어울리는 농사꾼이 되었습니다.
처음 이곳에 내려왔을 땐 원래 고향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족을 바라보는 마을사람들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이제 농촌의 정겨움이 사라진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거짓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진심어린 남편 덕에
이제는 마을사람들과 둘도 없는 이웃사촌으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남편은 저 멀리서 마을 어르신이라도 보일테면 고개를 숙이며 먼저 다가가서 인사하고 주민의 대소사 궂은일도 도맡아 했습니다. 그런 노력 때문일까요. 남편은 우리 마을 이장이 되었고, 마을에 잦았던 소란, 다툼 등은 없어진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오리 농장은 하나둘씩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자, 그럼 우리 농장을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우리농장 이름은 “징검다리 농장”입니다.
언제부턴가 시골 도로 주변에 ‘무슨 무슨 농장’ 이라는 푯말이 하나 둘씩 생겨났습니다.
그 길을 지나 갈때마다 언젠가는 나도 우리 농장에 멋진 이름을 지어줘야지 했었는데,
농장 이름을 짓느라 고심하던 중 때마침 2007년 천안시농업기술센터에서
추진하는 시범사업으로 농장에 쉼터를 조성하게 되었고,
어릴적 개울을 건널 때 조심스레 폴짝폴짝 뛰면서 놀던 향수에 젖어
“징검다리”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우리 농장은 푸른 산자락이 감싸고 있으며
양계장에 자식들 같은 어미오리부터 새끼오리까지 16,000마리가 있고,
6,000평 남짓한 밭과 논에는 온갖 작물들이 골고루 심어져 있습니다.
텃밭과 앞으로 연꽃으로 수 놓이게 될 논.
그리고 우리부부가 농장에서 일하면서 가끔 쉴수 있는 편안한 쉼터가 있으며
정말 멋들어져 대통령할아버지가 와서 산다해도 절대로 팔지 않을 국보급의 소나무도 있으니
농장에 있으면 마음가득 행복합니다.
지금은 그럴듯 하게 갖추진 모습이지만 산자락 아래의 불모지 땅을 새벽녘부터 해질녁까지
해가 떠있는 시간동안 만큼은 일하자 하는 생각으로 열심히 가꾸었더니
이제야 겨우 형태를 갖춘 것 같습니다.
이 땅은 원래 시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땅인데 귀농을 결심했을때 반대하셨고
워낙 고집이 강하시고 술을 많이 좋아하시는 분인데다 연로하셔서
가끔 정신을 놓고 계실 때가 있는데 그런 아버님을 돌보며 시댁어른들과의 갈등도 있었습니다.
남편은 집안의 막내지만,
7년 동안 술로 인해 말짱하시다가도 갑자기 정신을 놓는 아버지를 뒷바라지 하면서 살고 있는데
정작 아버님 본인은 입버릇처럼 “죽을때까지 지켜주고 돌봐줄 사람은 큰아들이다.” 라며
언제나 큰아들이 최고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실은 그런 시댁과의 갈등으로 인해 남편과의 다툼도 많았었지만
그래도 이곳에서의 생활이 재미있고 즐거웠기에 잘 버티고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처음에 아버님께서는 정작 본인의 눈에는 못미덥던 아들이라고 생각해선지,
아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귀농한 것이 꾀심하셨던 건지,
주말마다 오셔서는 감시하듯 하셨지만...
지금은 저희가 사는 모습을 기특해 하시며 말씀은 많이 없으시지만 칭찬 아닌 칭찬,
흐뭇한 웃음으로 답을 해주십니다. 불과 몇 달 전에 AI가 발생했는데,
비록 우리 농장에는 피해가 없었지만
아버님께서는 병중에 있으시면서도 제일 많이 걱정을 해주셨습니다.
그런 사랑하는 사람들의 작은 변화...
힘들었지만 농사짓고 오리 키우는데 더욱 많은 애정을 쏟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농장은 다행이도 이번 AI로 인한 오리 피해가 없었습니다.
16,000마리 모두 안전하게 출하 됐고요.
저희가 사육한 오리는 모두 오리가공 전문공장으로
직접 납품을 하고 있는 상태여서 천만 다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언론의 과장보도로 인해서 소비자들의 불신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AI(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해 위축됐던
닭고기ㆍ오리고기가 다시 큰 인기를 끌고 있다니 다행입니다.
AI로 인해 전국이 떠들썩 할 때,
AI 원인이 철새로 인한 것이라고들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원인보다는 정작 중요한 것이
사육환경과 오리에게 먹일 사료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먹일 음식에도 장난을 치는 세상에 하물며 동물사료는 어떻겠습니까.
미국 광우병 역시도 동물이 먹을 사료로 인해서 생긴 병이지 않습니까.
사람도 마찬가지로 먹는게 부실하고 쾌적하지 못한 환경에 살면
병에 걸릴 환경에 쉽게 노출되듯이 오리 역시도 면역력이 많이 약해질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 자식을 돌보듯 사육하고 있습니다.
오리에게 항상 기분 좋은 뽀송뽀송한 자리 마련을 위해 우리 부부의 하루 일과는
오리에게 왕겨를 깔아주는 일로 시작하고,
오리 사료 역시도 비싼지만 안전한 것으로 먹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오리 사육에 있어서 전문적인 기술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귀농전에 많은 교육에도 다녀오고 잘한다는 여러 농장도 견학해 가면서 배우긴 했지만
그래도 어려운게 많더라고요. 조금 욕심을 내서 일반 오리가 아닌 기능성 오리를 사육하고 싶은게
우리 부부의 작은 꿈이긴 한데 그러기엔 아직도 배울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처음에 이곳에 와서 텃밭을 일구고 씨를 뿌릴 때의 생각이 납니다.
남편은 어릴적에 부모님 농사일을 농사를 돕긴 했지만 전문적인 농사에 대해서는 잘 몰랐고
저 역시 농업에 대해서는 아득했기에 마을 분들께 어깨너머로 하나둘씩 배워가며 시작했는데
이제는 농장 여기저기에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각종 작물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지금은 작물이 뭘 필요로 하는지, 물이 부족한지,
거름이 부족한지도 보기만 해도 아주 조금은 알 듯 한걸 보면
아무것도 몰랐을 때 비해 정말 놀라운 성과지요^^
우리 부부에게는 한가지 철학이 있습니다.
우리가 먹을 농산물을 생산하자는 겁니다.
작물을 키우면서 가장 문제되는 것이 잡초입니다.
그렇게 끈질긴 녀석은 없어 보입니다.
제초제를 주면 쉽겠지만 남편은 힘든일 임에도 불구하고 일일이 낫으로 작업하며
아침에 낫 들고 나서면 함흥차사입니다.
우리가 키우는 작물에는 오리사육하면서 배출되는 똥과 풀을 베어 만든 퇴비를 만들어
영양을 주고 농약과 비료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수확한 농산물이 비록 모양은 예쁘지 않지만 친환경적으로 재배한 농산물이라
건강에도 이롭고 먹으면 자연의 맛이 나는 것 같아서 너무 좋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정성스럽게 키운 농산물을 친척분들,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나눠 먹을 수 있다는 것 역시도 제겐 큰 기쁨입니다.
7월 15일에는 우리농장에서 옥수수 수확체험을 했습니다.
천안시농업기술센터에서 도시민 농촌생활지원 시범사업으로 쉼터시설을 해주시고,
옥수수 수확 체험까지 진행해 주셨습니다.
그날 우리 농장을 찾아오신 도시 주부들은 옥수수수확체험에서
옥수수전을 부치 드시면서 즐거운 시간을 나눴습니다.
우리가 키운 오리로 훈제로 만들어 놓고,
유기농 쌈채류로 점심상을 차렸더니 체험 오신 분들이 정말 맛있게 드셨습니다.
체험 온 분들께 징검다리 농장을 소개하고
정성스럽게 키운 유기농 농산물도 직거래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체험행사가 끝난 후 농업기술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너무나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글을 남겨주신 분들,
전화를 통해 또 참여해보고 싶다는 분들이 많으셨다고 말씀을 전해 들었을 때는
더 없이 기쁘고 보람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앞으로도 징검다리 농장을 도시민이 와서 농촌을 체험할 수 있는 장소로,
농촌의 정취를 느끼면서 편히 쉬어 갈 수 있는 그런 공간으로 만들 계획입니다.
마치 도시와 농촌의 징검다리 역할이라고나 할까요..
그러고 보면 농장이름을 징검다리로 지은 것이 선견지명이 있었나 봅니다.
그러나 아직도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엔 부족한 감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틈만 나면 앞으로의 우리 농장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나누고 설계하곤 합니다.
하지만 막상 신선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걱정이에요.
그러다 우연치 않게 생각난 것이 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논둑에 앉아 담배를 태우는 모습을 봤습니다.
농사일에 지치고, 삶의 재미를 잃은 듯한 모습을 보면서
무언가 남편에게 특별한 선물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제가 적응 못하고 힘들어 할 때, 불만 불평만 털어놔도 받아주고,
농촌생활의 따분함을 달래라고 바쁜 와중에도 기꺼이 교육에도 보내주던 고마운 남편에게 말이죠.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이거랍니다.
논에는 벼농사만 지여야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그곳을 남편의 놀이터로 만들어 주자는 것이었습니다.
올해 벼를 수확하고 나면 그곳에 물을 채우고 미꾸라지를 풀어 놓을 생각입니다.
물고기 잡을 놀이터를 만들어 주고 잡은 미꾸라지로 맛있는 추어탕을 끓여 먹고요.
나아가서는 도시민이 왔을 때 물고기 잡기 체험도 할 수 있게 꾸며놓을 생각입니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물고기 잡는건 모두들 좋아하더라고요
그리고 논을 반으로 나누워 한곳에는 연꽃을 심어 놓고 우리들만의 작은 연꽃축제도 할 생각입니다.
그 위에 징검다리도 놓고 연꽃다리도 만들어 아름다운 볼거리도 만들고
연잎을 이용한 먹거리도 만들고요.
그러다 보면 우리 농장을 찾아오는 분들께도 작은 추억거리를 선물로 드릴 수 있지 않을까요?
앞으로도 우리 부부는 이런 재미있고 신나는 상상을 하며
하루하루 벅차오르는 마음으로 농장을 가꾸어 갈 생각입니다.
귀농을 준비하시는 많은 분들께 우리 농장 그리고 우리네의 모습이 어떻게 그려질지 모르겠습니다.
귀농 생활이 어쩌면 도시생활보다 힘든 일이 더 많습니다.
농촌에서의 생활은 도시에서의 개방적이고 활기찬 생활들과는 달리
조용하고 억압된 빡빡한 일정이 반복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귀농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농촌이 유일한 안식처, 도피처로 생각하신 분들께는 오히려
더 독이 될 것 같습니다. 귀농인 중에는 적응을 하지 못해 떠나시는 분들이 여전히 계시니까요.
솔직히 지금 농촌의 모습은 옛날의 따뜻한 정이 눈에 띄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저 깊은 곳에는 따스함이 샘솟고 있다는 것,
그걸 느끼기 까지는 오래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
본인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힘듬의 시간뒤에는 반겨주는 마을분들의 따뜻한 정과 언제든 뒤를 보면
따뜻하게 안아주는 자연이 있다는 사실도 말이죠^^
마지막으로 정말 중요한 부분입니다. 시골생활도 만만치 않은 돈이 들어간다는 사실입니다.
농사를 지어 밥벌이가 가능해질 때까지는 오래 시간이 걸립니다.
3년동안 도시와 농촌생활을 병행하면서 적은액의 여유자금도 비축해두고 시작했지만
다툼이 잦았던건 바로 그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를 이해해주고 작은것에서 기쁨을 얻고
즐거움으로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징검다리 농장과 저의 농촌 생활 이야기를 이제는 마치려고 합니다.
귀농을 생각하시는 많은 분들... 준비해야 할 것이 많지만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내딛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런한 준비 과정들이 나중에는 기억하고 싶은 추억으로 설레임과 기쁨으로 남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 blog.daum.net/reru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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