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나 이 라 세
2
"휘유~ 경치 좋은걸?"
"어라? 가기 싫다던 녀석이 가고 싶다던 녀석보다 더 좋아하고 있네?"
"하핫......."
라이샤는 뒤통수를 긁적였다. 아까까지는 가기싫어하던 라이샤였지만 지금은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불어오는
바람내음과 자신의 몸을 스치는 바람의 느낌이 아주 좋았기 때문이었다.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느낌을 맛보
는 라이샤에게 나미가 톡 쏘듯이 말했다.
"얼씨구, 저 혼자 신났군."
"......."
나미가 뭐라 그러든 말든 라이샤는 그저 그대로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미가 더 독하게 말했다.
"어쭈? 너 이 고귀하고 예쁘고 잘나신 나미님이 만든 음식을 맛보고 싶지 않다는거냐? 감히 나의 말을 무시
해?"
".......죄송합니다, 누님."
"오호호홋! 그래야지."
라이샤는 왕국의 기사처럼 무릎을 꿇었고 나미는 마녀처럼 웃으며 공주행세를 하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카이드라스가 냉철히 평했다.
「눈이 삔 기사와 미친 공주의 단편을 보는 것 같군.」
「오, 카이드라스. 그 평 꽤나 내 맘에 드는걸?」
「내가 너 좋으라고 그런 소릴 하였는거 같으냐?」
「호홋! 내가 좋으면 그만이지!」
「......」
나미가 눈에 불을 켜고 자신을 노려보던 말던, 하이네가 자신을 보고 뭐라뭐라 주절대건 말건 카이드라스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언어들을 회피해버리고 묵묵히 하늘만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은 째려보는 나미와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는 라이샤와 계속 뭐라뭐라 주절대는 하이
네와 하늘만 바라보며 침묵을 일관하는 카이드라스와 장난스레 뛰어노는 자이커와 묵묵히 걸어가는 퉁가리와
젠스, 마이샤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 바람이 멈춘곳에는 누가 서 있었다. 그곳에 서 있던 사람이 천천
히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다.
모두들 말을 잃었다. 설마 그가 이런 곳에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카이드라스와 하이네는 재빨리 무릎을
꿇으며 예를 표했다.
「불의 전사 카이드라스, 여기서 고귀하신 가이샤님을 뵙습니다!」
「물의 전사 하이네, 여기서 저보다 약간 더 예쁘신 가이샤님을 뵙습니다.」
애교가 가득한 하이네의 말이었다. 그런 하이네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가이샤는 씨익 웃어보였다. 하지만
그 웃음을 본 라이샤의 평은......
"악마가 웃는군."
"......"
모두들 말을 잃었다. 예전부터 라이샤가 가이샤를 신으로써, 아버지로써 대하는 것이 아니라 철원치 원수로
대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이것을 대면하게 되자 그만 굳어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익숙한 가이샤는 그
것을 가볍게 넘겼다.
【허허, 넌 여전히 말이 거칠구나. 라이샤야.】
"뭐...... 다 잘나신 당신덕이지. 안그래?"
【허허허.......】
가이샤의 이마엔 힘줄이 서 있었다.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엄청 삭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긴박한 긴장(?)을 깨어버린 것은 다름아닌 마이샤였다. 마이샤는 멍한 표정 그대로 계속 걸어오고 있었던 것
이다. 한참을 걷던 마이샤는 자신 혼자 앞에 나섰음을 알 수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본 마이
샤는 다시 고개를 돌려 앞의 가이샤를 바라보았다. 가이샤는 뒤의 후광을 사용하여 더욱 멋있게 보이려하고
또 더욱 엄청난 충격을 욕을 먹을 것을 준비하였다.
하지만 마이샤의 다음 행동은 그것들 보다 더욱 충격적이었다. 꾸벅 인사를 한것이다.
"오랜만이에요, 아버지."
【어, 으, 응......】
모든 일행은 말을 잃었다. 마이샤가 뒤에서 빛나는 가이샤를 보고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것이 신기하였던
것이다. 그들의 눈이 휘둥그래지던 말던 마이샤는 계속해서 자신의 말만을 이었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혹시 저희들이랑 소풍을 가고 싶은 것이세요?"
【내 나이가 얼마인데 너희들과 소풍을 가겠느냐. 난 그저 나의 오랜 벗을 만나러 왔단다.】
그의 말에 마이샤는 고개를 천천히 돌려 일행을 바라보고는 다시 물었다.
"여기에는 아버지가 생각하시는 오랜 벗이 없는 것 같은데요."
【훗, 내 벗은 저기 있단다. 여기 이렇게 천한 자리에 끼여있을리가 ㅇ벗지.】
가이샤가 가르킨 곳은 한 사람이 어깨에 곡괭이를 메고 산밑을 바라보고 있었다. 산 밑에는 여러대의 마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차가 지나가려는 길 앞쪽에서는 무언가가 움직이는 듯 숲이 웅성이고 있었다.
마이샤는 그 사람을 한번 쓱 보더니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편한 시간 보내세요. 그럼 전 이만......"
【T?그, 그래......】
천상계를 갔다오고 점점 라이샤화 되어버린 마이샤였다. 하지만 지금의 마이샤에서는 라이샤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라이샤가 불퉁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말했다.
"마이샤야, 오늘 뭐 먹었니?"
그러자 마이샤는 하늘을 바라보며 한참 생각하더니.
"먹은게 없어."
라고 말했다. 그러자 라이샤가 말했다.
"그럼 뭐 잘못먹은건 아닌데......"
【이봐이봐, 지금 저 녀석은 지극히 정상이라고!】
"그것을 당신이 판별할 수 있다고 전 생각지 않기에 저 나름대로의 판단을 세워보았을뿐 그 이상도 그 이하
도 아님을 밝힙니다."
【오늘따라 제정신인 놈은 없는 것 같군. 그렇지 않아, 나이라세? 아, 여기선 다른 이름으로 불렸었지. 그래,
안그래 늉?】
그러자 어깨에 곡괭이를 메고 있던 사람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은걸. 내가 알던 예전의 쌍둥이가 아닌데?」
순간 라이샤와 마이샤는 굳어버렸다. 라이샤는 부들부들떨며 말까지 더듬으며 말했다.
"바, 방금 뭐, 뭐라고? 나, 나이라세?"
【어허, 이놈들이. 너희는 나이라세가 다시 부활한 것이 기쁘지 않느냐? 왜 그런 표정들을 짓고 있는거냐?】
그러자 라이샤와 마이샤는 동시에 달려들었다.
"나이라세!"
「으아앗!」
늉의 정신체를 지배하는 것은 나이라세였지만 육체는 아직 늉이었다. 즉 늉은 그 둘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넘어가고 말았다. 게다가 그곳은 언덕이었고 늉은 비탈진 곳에 서 있었기에 그 셋은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
다. 하지만 기분만은 최고였다.
"나이라세가 살아 있구나~!!!"
"살아있어~!!!"
마이샤의 눈에도 생기가 이는 것 같았다. 린화가 가고 처음으로 보는 마이샤의 생기있는 눈이었다. 그 둘이
안기며 데굴데굴 구르자 나이라세가 소리쳤다.
「이놈들아! 무겁다! 난 너희같은 젊은이가 아니라고오~!!」
"하하하하하~!!!"
나이라세가 무어라고 하던 말던 그 둘에게는 상관없었다.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이 그 둘에게는 소중했다. 그
셋은 그렇게 구불러서 언덕을 내려가고 말았다.
위에서 그들을 바라보던 나미가 냉철히 평했다.
"농부 하나와 검사 하나와 마법사 하나가 구르는 군. 이거 꽤나 어울리는 팀인데? 농부는 땅파고 검사와 마
법사는 그곳으로 몰아넣고 셋이 동시에 그것을 묻어버리면 엄청난 공격이 되겠는걸?"
"지금 농담이 나오나?"
"지금 안하면 네가 언제 정신차리겠냐?"
나미가 퉁가리의 복부를 툭치며 말했다. 퉁가리도 이제 정신이 제대로 돌아와 있었다.
가이샤는 모든 것을 웃으며 바라보았다.
"나이라세, 언제 정신차린거야?"
「10년 전에.」
라이샤가 붉은검을 꺼내들며 말했다.
"또 죽기 싫으면 똑바로 대답하는 것이 좋을껄?"
하나도 무섭진 않았지만 나이라세는 무서운척 하며 말했다.
「하핫, 이거 무서워서 살겠나? 제대로 말해서 목숨을 연명하는 수밖에 없겠는걸? 좋아, 제대로 답해주지. 그
들이 처들어왔을때.」
"그들?"
「너희들을 습격한 카이젤을 비롯한 몇몇 말이야.」
카이젤의 이름이 나오자 라이샤와 퉁가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지금은 밤이라 아무도 그들의 표정이
어두워진것을 보지 못하였다.
「그들이 처들어오고 내가 식물들을 펼쳐 나의 딸을 구했지. 이름이 뭐더라...... 아, 막가파. 그 녀석을 꺼내서
보는 순간 난 깨달았어. 난 늉이 아니라 나이라세임을.」
"그럼 넌 늉의 몸에 봉인되어 있던 거야?"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
"이런 바보. 그럼 이때까지 왜 안나온거야?"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내가 의미없이 밭을 갈거나 일굴때에 가끔 이런 생각이 들곤 했지. 난 누
구길래 이런 짓을 하고 있는가. 답은 항상 같았어. 넌 늉이라는 농부이고 린화라는 딸을 먹여살리기 위해서,
였지.」
"......"
린화란 이름이 거론되자 마이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럼 너와 린화와의 관계를 밝혀. 넌 죽은지 몇년밖에 안되었는데 그렇게 큰 딸이 있을리는 없잖아?"
「그 애는 확실히 내 딸이 맞아.」
"그러니까 설명을 해달란 말이야."
「그러니까...... 난 옛날부터 두려웠어. 태어나고 무한한 생명을 맛보면서 죽어가는 이들을 볼때마다. 죽음이라
는 것이 두려웠어. 훗, 지금 생각하면 바보 짓이었지. 왜 내가 죽음을 두려워했는지 지금 내가 이해하려면 안
된단 말이야. 훗...... 난 죽음에서 벗어나고 싶었어. 난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었지만 다른 자의 손에 죽으면
의미없는 거잖아? 그래서 난 내 몸을 단련시키고 발달시켜 모든 인간들이 달려들어도 이길 수 있는 나 자신을
이룩했지.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어. 인간보다 더욱 강한 몬스터란 존재들이 남아있었지. 그들을 이기기 위해 훈련을
시작하였을때T? 난 깨달았어. 이 모든 것이 부질 없음을. 솔직히 말해서 인간에 대한 훈련만 1만년 가까이 했
거든.
그러고 나니까 삶에 대한 미련이 없어지더군. 그때가 되니까 죽고 싶은 생각뿐이었어.」
"......"
「그래서 강한 몬스터나 인간들을 찾아다니며 결투를 청했지. 하지만 아무도 날 이길 순 없었어. 그러다나 네
아버질 만났지.」
나이라세는 가이샤를 가리켰다. 가이샤는 씨익 웃었다.
「아, 그때 나는 내가 맨 처음 만든 생명이란 것을 모르고 있었고 저 녀석도 그때는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세
상을 여행하던 중이었거든. 물론 나의 승리였어. 저 녀석이 신의 모습으로 변하지 않았으면 말이지. 저 녀석은
궁지에 몰리자 갑자기 자신의 모습을 신으로 변화시켜 날 위협했지. 날 죽이려던 순간 그 녀석의 눈은 나의
눈과 마주쳤어. 그리고 그 녀석이 갑자기 내뱉은 말이 무엇이었는줄 아나? '나이라세?'였어. 멍한 얼굴로 내
칼이 자신의 눈 앞에 있는데도 그 녀석은 내 이름을 불러주더군. 왠지 마음이 통하는 녀석인 것 같기에 같이
놀아주었지. 그 녀석은 날 데리고 천상계로 가려했지만 내가 반대했어. 그냥 인간세상에서 있고 싶을 뿐이었
지. 그래서 내 몸을 나무로 만들고 내 정신을 정령으로 변화시킨 거야. 그리고 너희를 만났지.」
라이샤와 마이샤는 마치 그때를 회상하듯 생각에 잠겨있었다. 나이라세는 말을 이었다.
「너희들을 보면서 난 바로 알 수 있었지. 저 녀석의 아들들이라는 것을.
또 저녀석이 사고치고 인간계에 온것임을 알 수 있었지. 그때였어. 내가 다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생각해낸건.
왠지 너희들을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지금 보니까 난 너희들의 미래를 보고 죽음의 느낌을 가진 거지.
왠지 나 자신이 죽을 것만 같은 기분...... 그래서 난 저 멀리 긴데스와 자이드라의 국경선에 나의 분신들을 만
들었어. 그렇게 탄생한 것이 늉과 린화지.」
나이라세는 잠시 말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늉은 나중에 내가 죽기라도 하면 내 영혼을 담을 곳이었지만 그렇게 신경쓰지는 않았어. 왠지 일어나지 않
을 것 같은 일에 혼신의 힘을 다하는게 이상하게 보였거든. 하지만 린화에는 내가 엄청난 공과 힘을 들이부었
어. 그래서 좀 멍하게 보이지만 그 녀석의 피부는 너희 붉은검과 푸른검으로 베어내지 못해. 그리고 엄청난 지
능을 지니고 정령들을 부리는데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지. 하지만 난 그 능력들을 그녀에게 일깨워주지
않았어. 그녀 스스로 깨우치길 바란거야. 마치 자신의 딸이 공부를 잘하게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처럼. 난 어느
새 아버지가 되어 있던 거였어. 창조신인 가이샤가 모르는 생명체를 하나 만들어내고 말이야.」
나이라세는 가이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가이샤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이라세는 그 모습을 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