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8월 책 꾸러미 <아! 소리 나게 하는 반전 있는 그림책 >
내가 만든 책꾸러미
아! 소리 나게 하는 반전 있는 그림책
오은미 제주지회
반전이 있는 그림책으로 꾸러미를 만들 생각으로 오랜만에 세 아이들과 그림책을 함께 보았습니다.
“이 책은 반전이 약해.” “이 책은 내 취향이 아니야.” “난 이 책 읽으면서 ‘아!’ 하고 소리를 질렀어. 언니는 어때?” “난 알겠던데 범인을.”
아이들은 각자의 얘기를 쏟아놓고는 마음에 드는 책은 고르지도 않고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서 가버리더군요. 그래도 좋았어요. 어차피 내 생각대로 꾸러미를 만들 생각이었거든요. 이걸 핑계로 아이들과 같은 주제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던 시간에 만족합니다.
짧은 글과 그림으로 반전 있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그림책을 만날 때마다 작가들의 기발함과 사고의 참신함에 감동할 때가 많습니다. 감동의 짜릿함을 느낄 때면 처음으로 돌아가 작가가 준비했던 장치들을 몇 번이고 부담 없이 찬찬히 살펴볼 수 있는 그림책이 나는 참 좋습니다. 아이 셋을 총동원했지만 결국엔 내 마음대로 골라 본 반전 있는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배고픈 거미》
강경수 글, 그림 | 그림책공작소 | 2017
거미가 노란 거미줄을 만들어놓고 낮잠 자러 간 사이에 거미줄에는 파리, 사마귀, 개구리, 뱀이 차례대로 걸립니다. 이 정도면 이 거미줄 보통 거미줄이 아닌 것 같습니다. 뱀을 노리던 올빼미가 걸리고 마지막으로 동물의 왕 호랑이가 거미줄에 걸리면서 거미의 존재가 더욱 궁금해지네요. 파리는 “우린 이제 끝난 목숨이야, 배고픈 거미가 우리를 몽땅 먹어 치울 테니까!” “내가 아는 한 배고픈 거미보다 더 무시무시한 건 본 적이 없으니까.”라는 말을 해요. 파리의 말에 거미를 본 적 없는 다른 동물들은 겁에 질리게 되는데 특히 올빼미랑 호랑이는 세상 다 잃은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알록달록한 색들로 채우던 그림들 사이로 한 장 가득 시커먼 거미 다리가 강한 카리스마를 풍기며 스윽 나타납니다. 거미의 등장에 잔뜩 겁에 질린 동물들이 살려달라 애원하고 거미는 거미줄을 끊어주는데 이때 거미의 실체가 보입니다. 거미는 호랑이 발톱만한 크기예요. 하지만 동물들은 거미의 진짜 모습을 보지도 못한 채 도망가네요. 거미를 가장 잘 아는 파리만 붙잡혀 거미의 먹이가 될 것 같습니다. 거미가 파리를 가리키며 “넌 남아 봐”라고 꼭 집어 말했으니까요.
실체를 모르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무시무시한 거미를 만든 것이 아닐까요? 두려움의 실체를 알고 나면 모두는 아니겠지만 누군가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무화과》
크리스 반 알스버그 글, 그림 | 이지유 옮김 | 미래M&B | 2003
치과의사인 비보 씨는 반려견 마르셀과 사는데 몹시 까다로운 편입니다. 어느 아침 예약 없이 찾아온 할머니의 아픈 이를 치료해 주고 어쩔 수 없이 치료비 대신 꿈을 현실로 만들어 준다는 특별한 무화과 두 개를 받습니다. 하지만 비보 씨는 이 무화과의 특별함을 믿지 않고 무화과 한 개를 맛있게 먹고 잠이 듭니다. 다음 날 비보 씨는 마르셀과 산책하는 동안 어젯밤 꿈속 장면이 현실이 되는 사건을 겪으면서 무화과를 다시 보게 됩니다. 열심히 노력한 덕에 부자가 되는 꿈을 매일 꾸게 된 비보 씨는 드디어 오늘 밤을 디데이로 정합니다. 오늘 밤 꿈을 꾸고 내일 부자가 되는 행복한 상상을 하면서 식탁 위에 무화과를 올려놓고 잠시 식탁에서 등을 돌린 순간 반려견 마르셀이 무화과를 잽싸게 먹어 버립니다. 비보 씨의 꿈과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네요. 무화과를 먹은 마르셀은 오늘 밤 어떤 꿈을 꿀까요?
다음 날 아침 일어난 비보 씨는 자신이 침대 밑에 자고 있고 힘껏 소리 질렸을 때 개 짖는 소리 밖에 나오지 않는 현실을 만나게 됩니다. 비보 씨와 마르셀이 영혼이 바뀌었네요. 혹시 무화과를 먹은 마르셀도 매일 비보 씨랑 몸이 바뀌는 꿈을 훈련했던 건 아니었을까…라는 의심이 듭니다. 영혼이 바뀐 후 비보 씨의 표정이 행복해 보였거든요.
《파리의 휴가》
구스티 글, 그림 | 최윤정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07
“수영하기 딱 좋은 날이야!”
파리가 가방, 선크림, 커다란 수건, 물놀이 공까지 완벽하게 챙겨 수영장으로 갑니다. 물 온도까지 맞추고는 물속으로 들어가 수영을 즐기는 파리의 모습은 세상 가장 행복한 표정입니다. 한창 수영을 즐기던 수영장이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천둥소리가 요란스레 들리고 비까지 내립니다. 우산을 챙기지 않은 것을 속상해하던 파리는 높은 곳에서 축구장만큼이나 커다란 별똥돌 같은 게 내려오는 걸 보고 놀랍니다. 별똥돌이 수영장에 풍덩 떨어지자 갑자기 뭐든지 다 삼켜버릴 것만 같은 파도가 파리를 덮치네요. 이게 웬 날벼락! 파리는 죽을힘을 다해 행글라이더처럼 날아올라 폭풍우 속에서 겨우 빠져나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엄마, 엄마 나, 다했어!”라는 아이의 소리가 들리네요. 파리가 휴가를 와서 수영한 이곳은 과연 어디일까요? 천둥소리, 비, 축구장만큼이나 커다란 별똥돌은 무엇이었을까요?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
맥 바넷 글 | 존 클라센 그림 | 서남희 옮김 | 시공주니어 | 2014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을 찾아낼 때까지 땅을 파야 한다는 사명을 가진 샘과 데이브는 월요일에 땅을 파기 시작합니다. 두 사람은 모르지만 독자들은 압니다. 조금만 옆으로 파면 다이아몬드가 있고, 조금만 밑으로 파면 더 큰 다이아몬드가 있고 또 딱 거기만 피해서 만나지 못한 어마어마하게 큰 다이아몬드도 있다는 걸요. 얼마나 안타깝던지요. 같이 간 강아지는 다 아는지 나처럼 답답해합니다. 바로 코앞에서 모든 행운을 놓친 두 사람은 마지막 남아있던 과자를 먹고 땅을 파다 너무 지쳐서 까무룩 잠이 듭니다. 이때 감 좋은 강아지는 뼈다귀를 찾아 땅을 파게 되고 땅속이 아닌 새로운 공간이 나타나는데 셋은 아래로 아래로 떨어집니다. 그곳에 집이 보이고 두 사람은 초코우유와 과자를 먹으러 그 집으로 들어가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합니다. 이렇게 끝나면 반전이 아닌데…. 찬찬히 들여다보니 두 사람 집 마당에 있던 나무도 집 앞 화분 속 꽃도 고양이 목줄도 지붕 위 방향계도 처음에 보여주었던 모습과는 다르네요. 이번에도 감 없는 두 사람은 모르고 감 좋은 강아지만 의심의 눈초리로 배나무 앞에서 집 앞 고양이를 쳐다보네요. 뒤표지에는 앞표지에 나온 빨간 목줄을 한 고양이가 두 사람이 판 깊은 구덩이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네요. 셋이 떨어진 이곳은 어디일까요? 이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샘과 데이브는 자신들을 기다리는 고양이를 만날 수 있을까요? 질문을 많이 남기게 하는 책입니다.
《도서관의 비밀》
통지아 글, 그림 | 박지민 옮김 | 그린북 | 2009
도서관을 어지럽힌 도둑을 찾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입니다. ‘나’가 도서관 사서로 일한 지 사흘 만에 도서관에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문 닫힌 도서관에 사서인 ‘나’ 말고도 다른 누군가가 있는 것 같고 책이 없어지기도 하고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펼쳐져 있기도 하고 특히 빨간색 표지의 책들은 치워도 치워도 다시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도서관 사서인 ‘나’는 빨간 원피스 소녀를 따라 범인이라 생각되는 초록색 누군가를 잡으러 열심히 눈도 마음도 뛰었습니다. 어떻게 범인을 잡을까 궁금했거든요. 그런데 빨간 원피스 소녀가 그물에 잡혔을 때 왜 사서인 소녀가 잡히는 거지? 그런데 책장을 넘기니 도서관 사서 ‘나’는 빨간 원피스 소녀가 아니고 초록색 옷을 입은 개였네요. 내가 믿었던 진실이 가볍게 뒤집히는 반전의 묘미와 작가의 재치가 돋보이는 그림책이었어요. 처음으로 돌아가 초록색 개를 따라가면서 다시 읽기를 해 보았습니다. 이게 그림책의 매력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