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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이 일어나기 1세기 전,
중동 지역은 기독교의 비잔틴 제국(Byzantien Empire, 동로마 제국)과 조로아스터교의 사산조 페르시아(Sasan Dynasty, 이란 지역에서 세력을 키운 사산 가문의 왕조) 두 강대국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비잔틴 제국은 지금의 시리아, 이라크, 팔레스타인, 레바논 지역과 아나톨리아 반도를 지배하고,
사산조 페르시아는 이란, 이라크 일부, 중앙아시아 일부를 장악하고 있다.
사막으로 뒤덮힌 아라비아 지역은 기독교, 조로아스터교, 유대교, 마니교 등이 혼재하는 버려진 땅이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기존의 토착 종교로부터의 박해를 피해 메카에서 야스리브(Medina, 메디나)로 이주한다.
이를 이슬람에서는 헤지라(هِجْرَة '관계로부터 분리')라 하며 이슬람교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주변 종교나 부족들이 공격하나 이를 물리치고 메카와 메디나를 포함한 히자즈 지역을 종교 공동체인 움마 형태로 시작하여 주변 지역으로 확장한다. 이슬람 국가의 첫 시작이다.
이슬람 국가의 주권은 군주나 국민이 아니라 알라(Allah, The God, 신)만이 가지고 있다. 알라의 계시를 기록한 '꾸란(Quran)' 은 헌법이나 마찬가지이다.
문제는 예언자 무함마드 이후 '꾸란'이 추가되거나 변경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20세기 이후에 발달한 민주주의나 공화정 제도들이 중동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유럽의 기독교는 로마 제국에서 국교로 선택되지만 종교와 정치는 근본적으로 분리되어 각각 발달되고 있다는 것이 이슬람과의 차이점이다.
632년 예언자 무함마드는 메카 입성 2년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의 후계자인 칼리파(Khalifa, Khalifat rasul Allah의 줄인 말, 종교적 정치적 최고 지도자)들은 계속 영토를 넓혀나간다. 아라비아 반도를 넘어, 사산조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비잔틴 제국의 중동 지역을 장악한다. 제국이라 불릴 만큼 영토를 넓히고 사산조 페르시아의 행정 제도를 흡수하여 행정, 군사 조직을 체계화한다. 이슬람과 기독교, 유대교는 모두 같은 뿌리를 가진 일신교라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가르침에 따라 칼리파들은 모든 종교를 동등하게 인정한다.
첫 후계자인 1대 칼리파 아부 바크르는 구전되어 오던 예언자의 말씀들을 어록으로 기록하게 하고, 2대 칼리파 우마르를 거쳐 3대 칼리파 우스만 이븐 아판에 이르러 이슬람 경전인 '꾸란'이 완성된다. 여러 언어로 번역된 기독교의 '성경'과 달리 '꾸란'은 아랍어로만 기록된다. 이슬람이 전파되는 곳은 꾸란의 아랍어가 그 지역의 주류 언어가 되면서 같이 확산된다. 아랍인이라는 칭호는 특정 인종 개념이라기 보다 이슬람을 믿고 아랍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문화적인 민족 개념이다. 이슬람교가 탄생하기 전까지 아랍인이라는 '정체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랍인'은 '이슬람'과 함께 탄생한 새로운 '민족'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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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
우리는 흔히 사우디 아라비아, 이라크, 시리아, 이란 등이 위치한 지역을 '중동(middle east)' 라고 부른다. '가운데의 동쪽'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동쪽은 유럽인들의 위치에서 동쪽이다.
유럽의 지도를 보면 유럽이 지도의 중앙에 위치하고 동쪽이 아시아 대륙, 서쪽이 대서양과 아메리카 대륙이다. 유럽인들은 자기들에서 가까운 곳부터, 또는 가장 중요한 인도를 중심으로, '근동(near east)', '중동(middle east)', '극동(far east)' 등으로 부르고 우리도 같이 따라 부르고 있다.
참고: '중동은 왜 싸우는가? 박정욱'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