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연대기>
1. ‘중산층’은 거의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경제적 지위에 해당된다. 지나치게 많은 재산이나 권한에 의해 비난받는 상류층이나 극심한 가난 때문에 고통받는 빈곤층이 아니라 적절한 규모의 부와 소득을 통해 삶의 다양한 조건을 실현할 수 있는 중산층이라는 조건은 개인의 발전에도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산층’의 확산은 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한 기반이라고도 평가되어 왔다. 정치적 안정을 중산층의 확대에서 찾는 연구자도 있었다. 이런 다양한 이유로 중산층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영향력있는 집단으로 인정받았으며 국가의 기본정책은 중산층을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2. 그렇다면 중산층의 기준은 무엇일까? 현대의 경제학자들은 중산층을 빈곤의 나락으로 즉각 떨어질 위험이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본다. 이런 사람들의 구체적인 조건을 위하여 그들의 소득과 부가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었다. 『중산층 연대기(2025)』의 저자 호미 카라스는 중산층을 좀 더 정확하게 포집하기 위해서는 ‘지출규모’에 초점을 맞춰야한다고 주장한다. 소득과 부는 실질적인 경제순환에 직접적 영향을 주지 못하며, 부가 실제로 소비되었을 때에만 다양한 영역에서 경제적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카라스는 일정 수준의 소비규모가 가능한 사람들을 중산층이라고 보았다.
3. 이런 기준에 따라 세계 역사를 분석하면 중산층은 크게 4단계로 걸쳐 10억명씩 증가했다고 카라스는 본다. 첫 번째 중산층 형성시기는 (1830 – 1973)로 자본주의의 발전과 제조업의 성장으로 급속도로 부가 확산되는 시기였다. 하지만 이 시기의 중산층은 거의 북미와 유럽에서만 형성되었다. 서구의 세계 지배와 중산층 형성이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카라스는 서구 중산층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서구의 중산층은 부지런함, 정직-검약, 인내를 통해 얻은 개인의 성취와 자립을 신뢰하고 자신들을 국가에 종속시키려는 시도에 맹렬히 저항”하는 성향을 보인다고 말한다. 이러한 19-20세기 서구 중산층 성장을 통해 중산층과 정치적 발전이라는 신화가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4. 하지만 시대적 변화 속에서 중산층의 양상은 급격하게 변모한다. 서구의 산업화가 주춤하고 제3세계 특히 동아시아 지역의 발전이 20세기 후반과 21세계 초반 엄청나게 발전한다. 이러한 발전을 주도한 것은 일본이지만 곧이어 아시아의 4대 용이라는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폴.의 경제적 발전이 확대되면서 새로운 중산층이 다시 10억명 만들어지게 된다. 이 시기 중산층 확대는 여성의 사회적 진출과도 밀접한 관계를 보인다. 여성들이 직업을 갖게 되고 출산율이 줄어들고 적은 자녀에 대한 투자의 질이 높아지면서 중산층 규모가 커지게 된 것이다. 아시아 뿐 아니라 군부독재에서 벗어난 라틴 아메리카나 사회주의 권력이 몰락한 동부유럽에서도 많은 수의 중산층이 생겨난다. 동유럽 중산층 확대에는 서유럽 중심의 ’유럽연합‘의 지원이 큰 몫을 하였다. 유럽연합은 ’코펜하겐 기준(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주의)‘를 바탕으로 동유럽에 막대한 지원을 주었고 그 결과 상당한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5. 또 다른 10억명의 중산층 생성은 아주 빠른 시기에 거의 중국을 중심으로 발생한다. 낙후된 경제에서 변화하지 못하던 중국은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2001년 WTO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인 세계경제에 진입한다. 파격적인 세금정책과 경제유인정책을 통해 전세계 수많은 생산업을 유인하고 그 결과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압도적으로 빠른 경제성장을 성취한다. 그 과정 속에서 새로운 중산층이 중국을 중심으로 발생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아주 빠르게 성장한 중국의 중산층은 서구의 중산층과는 전혀 다른 성향을 보인다는 점이었다. “중국에서 급격하게 눌어난 중산층은 서구의 중산층과 달랐다. 그들은 개인이 자유롭게 살아갈 자유, 책임과 구속받지 않을 자유에 대해, 특히 이들 가치가 전체사회의 이익을 위한 집단행동과 충돌할 때, 서구와는 다른 입장을 보였다.” 중국의 성장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제조업 몰락과 시기적으로 겹치게 되면서 미국 고졸 이하 백인남성노동자들의 급격한 몰락현상과 괘를 같이 한다.(하지만 백인노동자의 몰락은 중국의 성장 이전부터 시작되었다는 반론 또한 존재한다)
6. 중산층 형성은 점점 시기가 단축되어갔다. 다음 중산층은 인도를 중심으로 탄생한다. 인도는 제조업이 낙후된 지역이었다. 다만 인도는 인도공과대학을 중심으로 IT기술에 집중하였고 IT산업의 발전 속에서 중요한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공급하면서 중산층이 확대되었다. 인도는 1차산업에서 제조업으로 다시 서비스업으로 발전한다는 오랜 경제적 원리를 부정하였다. 제조업 발전과는 관련없이 서비스업 자체로 성장한 특이한 국가였다. 하지만 인도의 중산층들은 대부분의 부를 서구기업과의 연관 속에서 벌어들일 뿐 아니라 인도정부의 농촌중심 정책에도 결이 맞지 않아 정부와 약간의 괴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도의 중산층은 세금을 거의 내지 않는 대신 어떤 서비스도 기대하지 않으며 차라리 국가로부터 ‘탈출’한다.”
7. <중산층 연대기>의 저자 카라스는 중산층 확산의 시기를 이렇게 4단계로 구분하면서 현재 약 40억명의 중산층이 지구상에 있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중산층이 더 확산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 고민하고 중산층의 변모된 태도가 요구된다고 본다. 저자가 제기하는 질문은 먼저 ‘중산층은 소비자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둘째 ‘중산층의 생활방식이 모든 사람들의 행복에 도움이 되는가?’, 셋째 ‘전 세계 중산층의 연대는 가능한가?’ 등이다. 중산층의 확산은 이제 더 이상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에만 몰두해서는 가능할 수 없다. 현재 직면하고 있는 전지구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지구의 미래는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으며 결국 중산층이 확산하기 보다는 축소되기 쉬운 것이다.
8. 그런 이유로 저자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전지구적 문제를 ‘기후변화와 환경파괴’ 그리고 ‘불평등’이라고 본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아먄 전지구적 긍정적 변화가 가능한 것이다. 중산층이 여전히 ‘소비주의’에 빠져 낭비적이고 환경에 위협적인 방식으로 소비에만 빠진다면 위기는 가중될 수밖에 없다.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행위를 줄이고 소고기나 양고기 소비를 줄여 기후위기에 대처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단순히 개인적 변화 뿐 아니라 중산층 전체의 연대를 바탕으로 한 힘으로 국가의 정책에 영향을 주고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중산층은 분명 안락한 물질적 삶에 대한 욕구가 강하지만 또한 계기가 주어진다면 더 나은 가치실현에 대한 욕구도 지니고 있는 집단이다. 물질적 어려움에서 벗어난 중산층은 더 나은 삶의 기준을 높이기 위한 실천에 참여할 수 있는 충분한 자원과 능력을 가진 집단인 것이다. “중산층은 오랜 세월에 걸쳐 다른 집단과 연대를 추구해왔다. 이제 중산층은 그들 삶의 방식을 보전하고 개선하기 위해 거대한 규모로 연대를 이뤄내야한다. 중산층의 안녕을 위협하는 위기에 서로 협력해서 대처하도록 각국 정부에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9. 저자는 중산층에서 ‘변화의 희망’이라는 단초가 시작될 수 있다고 본다. 중산층의 윤리적 의식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는 부에 대한 탐욕은 중산층의 욕망만을 확인하게 된다. 중산층은 점점 경제적 이익에 저당 잡힌 채 자신의 정당성 논리만을 확대시키고 있다. 중산층은 여전히 희망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