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은 버려라
한 해가 저무는 년말이면 언제나 아쉬움뿐인가. 2018년도 무술년이 몇 시간후에는 사라지고 2019년 기해년의 새 아침이 솟아 오를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친구는 어떻고 인생은 무엇이며 그럴싸한 미사여구로 포장된 동영상이나 구구절절한 입에 바른 글을 퍼 날라준 것을 또 퍼서 주는 멍청한 녀석보다 " 새해에는 건강하고 아프지 마라 " " 내일 모레 아침 9시 44분에 지하철 분당선 대모산역 7번 출구에서 만나자. 가볍게 대모산과 구룡산을 오르고 신분당선 양재시민의숲역 근처 맛집에서 한잔 어떠냐 " 카톡으로 보내준 이 한마디가 가슴에 와 닿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때쯤이면 지난 일년을 돌아보며 못 다 한 회한(悔恨)과 반성으로 마무리를 한다. 하루 하루를 살아온 365일이 눈 깜짝하는 찰나에 스쳐 지나간 것이다. 지나간 세월은 순간적이다. 그저 잠깐 꿈을 꾼 것이다. 그 누가 말을 했던가 인간일세여몽중(人間一世如夢中)이라고 말이다. 2018년과 2019년은 무엇이 다른가. 서기(西起)를 원년으로 치자면 2019분의 1이 아니던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할 것이다. 너와 나 모두가 이 지구를 떠나 하직을 한들 돌고 돌고 또 돌고 돌고 있을 테이다. 달라지는 것은 없다. 삼라만상이 태여났다가 잠시 머물다가 떠날뿐이지 아니한가. 무엇이 그리 아쉬운가. 목표대로의 통장에 올라있는 금액이 모자르더냐. 사회적인 지위와 체면과 명예가 남들과 다르지 않은 것인가. 사랑하는 사람이 등을 돌렸던가. 유치원 초중고대학 동기들이 떠났더냐. 세상사 모든 일들이 내 마음대로 생각대로 흐르지는 않는 것이다. 눈이 쌓였다 사라지듯이 가을이면 푸르던 잎새가 낙엽으로 흩어지듯이 당연한 진리이며 순리가 아닌가. 몇십년 희희낙낙 떠들며 즐기던 친구는 어떤가. 새벽에 홀로 앉아서 곰곰히 명상에 잠겨 보아라. 내가 필요할 때 옆에 있으며 함께 아파하며 위로해 줄 수 있는 참 친구가 있던가. 조그마한 일에도 별것 아닌 농담에도 마음을 접고 돌아서지 않느냐. 이런 것이 엄연한 오늘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서운해 하거나 원망할 필요는 없다. 바람에 날리고 구름에 흘러가듯 영원한 친구는 없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지 아니한가. 80을 바라보는 세월에 옆으로 스쳐지나간 사람이 몇이던가. 고향 땅 이북에서 명란젓을 부뚜막 찬장에서 꺼내주던 여섯 살 코흘리개 단발머리 여자 동무, 초등학교 어린 나이에 같은 반에서 옆에 짝이던 놈, 중학교 때 단짝으로 고등학교는 타교를 졸업한 한 녀석, 그리고 고등학교 재학 중에 계속 붙어 다니던 친구, 대한민국 최고인 S대학교에 세명이 지원했다가 모두가 낙방을 한다. 중국집에서 쓰디 쓴 고량주를 완샷하며 반드시 S대를 가자던 그 녀석들, 재수를 선택하여 강원도 산골짜기로 강원도가 고향인 친구와 자취를 하며 1년을 보낸다. 홀로 집을 떠나서 생활한 적이 없다. 강원도에 대한 그리움이 싻이 튼 곳이기도 하다. 일렁이는 동해바다와 설악산을 찾게된 계기가 된 추억이 깃든 곳이다. 어느 해부터인가 일년에 한번은 주문진 바닷가를 기웃거린다. 12월 추운 겨울에 복어회는 핑게이며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신기루를 찾기 위함이었으리라. 이북 고향이 원적(原籍)이고 지금 살고 있는 서울은 본적(本籍)이라면 강원도 주문진 동해바다는 심적(心籍)이라면 어떨까. S대를 접고 Y대로 함께 가자는 그 녀석들의 권유를 뿌리친다. 두 친구들은 Y대학교에 합격의 기쁨을 만끽한다. 연이은 낙방의 고배가 어린 마음에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겠다는 충격이었다. 누님의 절절한 설득과 권유로 포기하려던 마음을 포기해야만 했다. SKK대학교 약학대로 방향을 틀었다. 썩 마음에는 내키지 않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1차로 지원한 S대 공과대학에 합격을 했다면 어찌 됬을까. 나 자신에게는 물론이며 가문에도 영광이었으리라. 출신고 학교 차원에서도 축하파티라도 했으리라. 창립한지 10년도 안된 학교였으니 말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2차로 약학대학에 입학한 것과 미국으로의 이민 계획을 포기한 것도 내 인생의 삶 자체를 바꾼 커다란 변곡점(變曲點)이 아닐까. 첫 직장인 제약회사 영업부서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난다. 양쪽 집안의 반대를 무릎쓰고 백년가약의 선서를 한 것이다. 30여년 넘게 몸 담아온 약국을 작년 9월에 접는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야인(野人)의 꿈을 갖고 정리를 한 것이다. 그것도 잠시 잠간이다. 꿈에도 생각지 않은 병원의 약제실에 출근하는 근무약사가 아닌가. 아들이 개원한 척추 관절 족부를 중점 진료하는 연세한강병원에서 말이다. 황혼의 나이에도 불러주는 곳이 있으니 행복한 노객이렸다. 군복무 시절 의무대에서 남자의 심볼인 방망이를 너무 짧게 만들어준 대북 방송요원에 대한 미안함이 아직도 남아 있다. 비무장지대 GP까지 초빙으로 제대로 된 송이버섯 모양으로 만들어주니 통나무 바둑판을 건네주던 녀석, 요즘은 어림도 없는 불장난으로 초가삼간이 날아갔을 터이다. 한약사 파동 당시에 버스로 청와대를 함께 가자던 경상도 모약사회 회원들, 약사로서 약사(弱士)가 아닌 진정한 약사(藥師)의 길을 걷고 있는 약사, 모두가 다 너무 그립고 보고픈 추억의 벗들이 아닌가. 인간은 추억을 먹고 사는 동물인지도 모른다. 2018년이 가기 전에 함께 걷고 한잔 술로 완샷을 하고픈 친구들이 있다. " 친구야 ~우리 우정의 잔을 ~ 잔을 ~잔을 ~잔을 ~ 높이 들어 건배를 하자 건배 건배 건배 와안 샤~아~아~앗 " 바로 오늘 이 자리 내 옆에 있는 벗이 오늘의 참다운 친구일 테이다. 쓰나미 버쁘바 엉카페 또빠기 샤보바 위짜추 대바기 도야조 가자하 태기우 또파파 미국의 영지니등등 부르면 달려가고 한잔술로 시름을 털어 버릴 수 있는 친구들 아닌가. 절친 중에 절친이던 재수를 하여 S대를 접고 Y대를 졸업한 철이와 진이는 어디에 있는가. 돌아올 수도 없는 마지막 그 길로 떠난지도 40여년이란 세월이 흘렀구나. 고교동기 중에도 20% 이상이 그들의 뒤를 따라가 버린 것이다. 한 해가 가면 달라지는 것은 무엇이더냐.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은 버려라. " 다시는 전쟁의 먹구름이 걷히고 평화스런 한반도이기를 ~~~ " 책상 위에 놓여 있는 2018년도를 2019년 새 달력으로 바꿔 놓으면서 내뱉는 절규가 아닌가.
2018년 12월 31일 무 무 최 정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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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ㅡ 흘러만 가는 강물같은 세월
흘러만 가는 강물같은 세월에 나이가 들어간다 뒤 돌아보면 아쉬움만 남고 앞을 바라보면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인생을 일만하고 인생을 느낄만하고 인생을 바라볼수있을만하니 이마엔 주름이 깊게 새겨져있다 한조각 한조각 모자이크한듯한 삶 어떻게 맞추나 걱정하다 세월만 보내고 완성되어가는맛 느낄만하니 세월은 너무나 빠르게 흐른다
일찍 철이 들었더라면 .....
일찍 깨달았더라면.....
좀더 성숙한 삶을 살았을텐데.....
아쉽고 안타깝지만 남은 세월이 있기에 아직은 맞추어야할 삶이란 모자이크를 마지막까지 멋지게 완성시켜야겠다
흘러만가는 강물같은 세월이지만
살아있음으로 얼마나 행복한가를 더욱더 가슴깊이 느끼며 살아가야하겠다
김 흥 식 ( 프렌씨스꼬 ) 대바기가
2019. 01. 02 am06:00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 요한 13-35 )
대바기야! 그대는 행복한 노인네가 아닌가. 그대만 위하며 당신의 그곳만 바라보며 살아온 아내가 있지 않느냐. 오롯이 바같양반의 눈짓 발짓 손짓으로 그대의 천생연분은 싦의 전부인 것을. 꺼부정한 남편의 육체를 바라보며 아내는 무엇을 생각할까. 인생의 모든 것을 대바기 품속에서 살아온 것을 후회는 없으리라. 안쓰럽게 바라보는 이유는 단 한가지가 아니겠는가. 그토록 밖에서 휘둘러대던 남편의 뿌리가 박달나무가 아닌 문어다리가 됨을 가엾게 여기고 있을 게다. 첫 사랑을 만났을 때 그 때 그 순간의 황홀함을 상상하거라. 새로운 향기에 대바기의 DNA 유전자는 20대 청춘이 될 것이니말이다. 꼭 끌어안아봐 쪽쪽 파아악팍 박아라
젊었을때와 늙었을때와 똑같냐 깃털같이 가벼운 말하기는 쉽지만 행동은 어려운것이다
까또나 친구 !! 새겨들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