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107] 청, 가경(嘉慶), 분채(粉彩 지선(芝仙) 축수(祝壽) 거문고 들고 벗 찾네(携琴訪友) 벼루병풍(硯屛)
■ 청나라 문인ㆍ궁전 등 재현
[卍 108] 청 문인 방문의 卍字
[卍 109] 태을분청실(太乙分靑室) 창 卍字
[卍 110] 태을분청실(太乙分靑室) 창 卍字(2)
[卍 111] 사고전서 문연각(文淵閣)의 창살 卍字무늬
[卍 112] 사고전서 문연각(文淵閣)의 창살 卍字 무늬(2)
■ 칠기진열(漆器陈列) : 주로 홍콩의 曹其鏞 부부 기증품
[卍 113] 안내문 옆 디자인 卍字
[卍 114] 유물번호 43. 청(淸) 중기, 척홍(剔紅) 주칠(朱漆)을 여러 번 되풀이하여 무늬를 나타냄. 또는 그런 기법.
8보 무늬(八寶紋) 미닫이(抽屉式) 합(盒)
<윗면>
[卍 115] 유물번호 33. 명(明) 만력(萬曆, 1573~1620), 전칠(塡漆) 전칠=구장(培醬): 구장은 태국에서 성행하는 칠 기법으로서 조각한 문양 부분에 채 칠을 넣어 象嵌(상감)하는 기법이다. 중국에서는 이를 '전칠(塡漆)'이라 부른다. [출처] 옻의 장식재료와 장식기법|작성자 단장미인.
화훼문(花卉紋) 소반(盤)
[卍 116] 유물번호 33. 명(明) 만력(萬曆), 전칠(塡漆) 두 용이 구슬가지고 노는(雙龍戱珠) 긴네모꼴(長方) 합(盒)
[卍 117] 명, 척홍(剔紅) 산수인물도 팔각합(八角盒)
[卍 118] 청, 중기, 전채(塡彩) 칠 비단무늬(漆錦紋) 연잎식(蓮瓣式) 찬합(攢盒)
[卍 119] 청, 건륭(乾隆), 전칠(塡漆) 운용문(雲龍紋) 손잡이(提梁) 갑(匣)
[卍 120] 청, 중기, 척채(剔彩) 복숭아꼴(桃形) 수춘(壽春) 보합(寶盒).
4. 서호(西湖)
박물관이 바로 서호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수묵화 같은 서호를 구경할 수 있었다.
■ 서호(西湖)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ㆍ항주가 있다(上有天堂下有蘇杭)”
역사적으로 많은 시인묵객들이 소주와 항주를 찬미하면서 수많은 찬사를 쏟아냈다. 여기서 항주는 바로 서호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너무 많은 찬사를 들어서인지 1993년 처음 서호를 갔을 때 크게 실망하였다. 그리고 바로 그런 시인묵객들의 ‘말’에서 벗어났다. 이 세상의 땅에 소주나 항주보다 아름다운 곳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1968년부터 세계를 돌아다녔으니 50년 이상 이 세상의 아름다운 곳을 많이 본 나로서는 이런 말장난에 젖어들 수가 없었다.
북유럽의 피오르드, 스위스의 수많은 호수들, 뉴질랜드의 아름다운 호수들, 그 가운데 특히 캐나다 로키의 루이즈호수, 에메랄드호수, 자스퍼의 말린호수 같은 호수들에 비하면 서호는 비교를 할 수 없을 만큼 탁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대국이라며 서호 같은 곳을 찾아가 옛날 시인들의 시나 읊조리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 정말 새로운 눈으로 솔직한 시각을 가져야 한다.
■ 소동파(蘇東坡)의 뒷걸음질한 삶, 그리고 그의 시(詩).
중국의 10대 명승지라는 서호는 1산(一山)인 고산(孤山), 2제(二堤)인 백제(白堤)· 소제(蘇堤) 등 두 둑(隄防)에 의해 바깥 호수(外湖)와 북리호(北里湖)·서리호(西里湖)·악호(岳湖)·남호(南湖) 같은 5개의 작은 호수로 나뉜다. 여기서 2개의 둑이 안팎의 호수를 나누게 되는데, 두 개의 둑은 소동파가 쌓은 소둑(蘇堤)와 백거이가 쌓은 백둑(白提)를 말한다.
□ 소동파의 시는 어디서 왔는가?
그의 가문은 부유한 지식인 집안으로 명망이 높았다. 소동파는 송나라 최고의 시인이며, 문장에 있어서도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1071년 당시 정치적 실세였던 왕안석의 개혁정책인 ‘신법(新法)’이 실시되자 ‘구법당(舊法黨)’에 속했던 소동파는 지방관으로 전출되어 항주(杭州)로 갔다(1071년). 소동파는 항주에 부임하자 20만 명을 동원하여 서호의 물길을 쳐내고, 연못의 진흙과 풀뿌리를 이용해 남북쪽으로 2.8㎞나 되는 뚝(隄防)을 쌓아, 남병(南屛) 산허리부터 곡원풍하(曲院風荷)까지 이었다. 제방 위에는 6좌의 다리(六座橋)를 세워 호수 위를 통과하도록 했으며, 제방 가에는 앵두나무와 버드나무 같은 꽃과 풀을 심었다. 이것이 유명한 소동파의 둑(蘇提)이다.
그리고 이런 서호를 바라보며 이런 시를 지었다.
물빛이 빛나고 맑으니 마침 좋고
비 오는 모습 어우러진 산색도 기이하네
서호를 서시(西子)와 견주어보니
옅은 화장이나 짙은 화장이나 다 아름구나.
(水光瀲 晴方好 山色空濠雨亦奇 浴把西湖比西子 淡粧濃抹總相宣)
이 시는 소동파(蘇東坡)가 서호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음호상일초청후우(飮湖上一初晴後雨)’라는 시다. 이 시에서 소동파가 20만 백성들을 동원하여 둑을 만든 목적이 드러난다. 20만 백성을 동원할 때 일한 삯을 주지도 않았을 것이고, 일이 제대로 진행 되지 않으면 행정력을 동원하여 독려하며, 결국은 백성들의 고혈을 바탕으로 서호에 둑을 쌓았을 것이다. 이것은 백성을 위한 것도 아니고, 임금에게 충성한 것도 아니고, 그것을 바라보며 미인의 얼굴에 비교하여 시나 지으려고 한 짓이다. 정말 한심하지 않는가? 그리고 이런 시를 아름답다고 읊조리며 감탄하는 선비들은 더 한심하지 않는가?
아름다운 서호에 흙과 바위를 집어넣어 둑을 만들고, 그 위에 그늘을 만들어 쉬며 시를 지을 정자를 지은 것이 아름답다고 보는 안목이 당송팔대가가 되었다. 앞에서 본 캐나다 록키의 호수나 북유럽의 피오르드에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이런 번잡한 말장난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언제든지 그런 곳을 가볼 수 있게 되었다. 서호에서 자는 호텔비로 그곳에서 호수 속의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가 될 수 있다. 영혼을 깨끗하게 해주는 호수를 어찌 몇 마디 시로 더럽힐 수 있겠는가?
□ 소동파의 뒷걸음질한 삶
소동파에 대해 중국 선사들에게 여담으로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종효(宗曉) 스님이 지은 『낙방유고(樂邦遺稿)』에 보면 “『용서정토문(龍舒淨土門)』에 오조(五祖) 계선사(戒禪師)는 바로 (소)동파의 전신으로 그 증거가 많다.”고 했다. 송나라 때 오조산(五祖山) 사계선사(師戒禪師)를 말하는 것으로 운문종 쌍천사관(雙泉師寬)의 제자로, 호북성 오조산 오조사에 머물며 크게 종풍을 일으켰다.
이처럼 수행을 많이 한 스님이었지만 다시 태어나서는 벼슬을 하면서 백성들을 시켜 둑을 쌓게 하고 시나 지으며 세월을 보냈던 것이다. 그의 시는 철학적이라고 평가하고 있지만 선승에게 그의 시는 속세의 말장난에 불과했다.
△ 소동파 시(1)
소동파가 황주(黃州)에 머물 때 강 건너 남쪽에 있는 금산사 주지로 있던 불인요원(佛印了元, 1032-1098) 선사와 자주 시문을 주고받았다. 어느 날 붇다를 기리는 시를 한 수 지어 보냈다.
최고 하늘이신 (붇다께) 머리 숙여 절합니다.
백호에서 나온 빛 대천세계를 비추고
8풍이 불어도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자금색 대좌에 단정하게 앉아계시네.
(稽首天中天 毫光照大千 八風吹不動 端坐紫金臺)
시를 본 스님은 ‘방귀소리(放屁)’라는 답장을 보냈다. 소동파는 화가 나서 바로 강 건너 불인선사를 찾아가 따졌다.
“붇다를 기리는 시에 무슨 허물이 있습니까?”
“8풍이 불어도 흔들림 없다고 하더니, ‘방귀소리’ 한마디에 바로 강을 건너 오셨군요!”
△ 소동파와 차
불인선사가 소동파가 전생에 큰 스님이었지만 누진통을 못하고 다시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옛날 수행 결과를 잇지 못하고 고관이 되어 부인 한 명과 첩 두 명을 데리고 5가지 즐거움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깨우쳐주려고 소동파의 집으로 가서 하룻밤을 묵었다.
소동파는 첩에게 화로 7개를 가지고 가서 숯불을 피우고, 한 차관에 물을 부은 뒤 여러 활로에 차례로 끓였다. 차관을 여러 화로에 끓였기 때문에 물이 너무 오래 끓어 물이 다 마르자 차관이 큰 소리를 내며 깨져버렸다. 선사는 웃으며 그 첩에게 밤이 깊었으니 가서 자라고 했다.
다음날 새벽 소동파가 전날 밤의 이야기를 듣고 애욕을 못 끊으면 그 차관처럼 물이 마르면 터진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깨닫고 그 뒤부터 선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 소동파와 좌선.
소동파가 어느 불인요원 스님과 마주보고 좌선을 하는데 소동파가 문득 한 생각이 떠올라 선사에게 물었다.
“스님, 제가 좌선하는 자세가 어떻습니까?”
“부처님 같습니다.”
소동파는 선사의 말에 의기양양해졌다. 이번에는 선사가 동파에게 물었다.
“그럼 자네가 보기에 내 자세는 어떠한가?”
“스님께서 앉아 있는 자세는 마치 한 무더기 소의 똥 덩어리 같습니다.”
선사는 미소를 지으며, 동파거사에게 합장하였다.
소동파는 집에 돌아와 여동생에게 낮에 선사와 좌선하면서 대화했던 내용을 들려주며 어깨까지 으쓱거렸다. 여동생이 가만히 다 듣고 나서 태연스럽게 말했다.
“오늘 오라버니는 선사에게 비참히 패하신 겁니다. 선사는 마음속에 늘 부처 마음만 품고 있으니 오빠 같은 중생을 보더라도 부처님처럼 보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오빠는 늘 마음속에 탐욕스런 마음만 품고 있으니, 6근이 청정한 선사를 보더라도 똥 덩어리로 본 것이네요.”
바로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이성계보다 300년 이상 먼저 있었던 이야기다.
나는 비오는 날 서호를 다시 보지 못한 것에 대해 조금도 아쉬움을 남기지 않고 호텔에 돌아와 오랜만에 휴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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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진 첨부가 글 한 개당 50장만 허용이라서
항주 편은 두 개(1),(2)로 글을 나눠서 올려야 하는군요.
나모아미따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