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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형세는 산천에서 볼 수 있다. 산은 본디 하나의 뿌리로부터 수없이 갈라져 나가고, 물은 본디 다른 근원으로부터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목판에 나오는 말이다. 문경의 산천은 천하제일의 형세를 갖추었다. 백두산으로부터 시작된 대간의 줄기를 따라 수없이 갈라져 나온 반도의 산들, 그중에서 문경의 산들은 백두대간 전 구간 중 도상거리가 가장 긴 구간(110㎞)을 간직하고 있으며 1,000m 이상 산만도 9개나 있는 백두대간의 척추(脊椎)다.
2002년 산림청이 선정한 한국 100대 명산 중에도 문경은 주흘산(1,106m), 황장산(1,077m), 희양산(999m), 대야산(930m) 등 4곳이 포함됐다. 문경의 산들은 호랑이의 등뼈같이 튼실한 바탕 위에 수많은 골짜기와 계곡에서 물이 솟구친다.
골골이 다른 근원으로부터 나와 서서히 하나로 합쳐진다. 바로 영강(穎江)이다. 영강은 명산인 상주 속리산을 포함해 여러 개의 문경 명산에서 흘러내린 물을 받아 생긴 명품 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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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제1지류 영강의 발원지와 물줄기들
지방2급 하천으로 낙동강 수계의 제1지류인 영강의 유역면적은 921.80㎢, 하천길이는 56㎞다. 속리산 물과 문경새재 물이 가장 큰 줄기다.
속리산 물은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 청화산(984m)과 속리산 문장대 밑에서 발원해 문경시를 동서로 가로질러 흐르고 지천인 이안천과 합류해 상주시 사벌면 퇴강리에서 낙동강으로 유입된다.
순서를 보면 속리산 물이 문경시 농암면에 가장 먼저 들어와 청화산, 도장산 쌍룡계곡, 율수리, 궁기리 조항산 물과 만나 농암천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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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암천이 돌고 돌아 가은읍에서 또 한 줄기의 큰물과 합해지는데, 대야산과 선유동천에서 발원한 물과 희양산에서 발원한 원북천이 만나 양산천 물이 된다.
여기서부터 가은천을 거쳐 마성면에 들어오면 구랑리에서 백화산, 어룡산 물을 받아 진남교반에 이른다.
문경새재 물은 문경새재 마루에서 발원한 초곡천이 시작이며, 그 아래로 내려와 이화령과 백화산 물을 받아 조령천이 되고, 문경읍 마원리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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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원리에서는 신북천과 만나는데, 신북천은 대미산과 포암산 하늘재 물이 갈평에서 만나 이루어졌으며, 이 물이 문경읍으로 오면서 운달산, 성주봉, 단산, 봉명산 물을 받아 문경읍 마원리에서 다시 조령천과 만나 소야천이 된다.
소야천이 문경읍과 마성면을 지나면서 오정산과 백화산 물을 받아 진남교반에 이르고, 이곳에서 가은천과 만나 마침내 강다운 영강이 된다.
이처럼 큰물을 만들어낸 영강은 과거 소금 나룻배가 드나들 수 있는 뱃길이 되었다.
진남교반을 따라 내려가 호계면에서 조선소 터가 발견되었고, 나루터인 뱃나들이란 지명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 뱃나들부터는 충적평야가 펼쳐지고, 물이 모인 것처럼 사람들도 많이 모여 지금은 국군체육부대가 강변에 한창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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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강과 들판 사이에 시가지가 아담하게 형성되었으니 이곳이 영강을 낀 문경시청 소재지 (구)점촌시다.
◆영강의 유래
영강을 낀 점촌은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지세(地勢)인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시가지로 아름다운 도시다. 영강은 1500년대 후반, 이곳 출신 태촌 고상안 선생이 쓴 ‘태촌집’의 남석정기문에 그 지명 유래가 잘 나와 있다.
“물의 발원은 속리산 천왕봉에서 보은, 문경의 백여리를 두루 돌아 돈산(遯山`지금의 돈달산)을 둥글게 안고 흐르는 것이 영강이다”이라고 했다. 또 ‘영강’의 유래가 선계(仙界)라고 일컬어지는 중국의 영수(穎水)에서 지명을 따왔다는 것이다. 중국의 영수는 소부(巢父)와 허유(許由)의 고사에 나오는 세상의 더러운 물을 씻어낸 깨끗한 물이다.
그들은 영수에 귀를 씻고 ‘기산’(箕山)에 들어가 속세를 멀리했으니, 그 기산을 바로 점촌을 둘러싼 돈달산(遯達山)에 비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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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영강은 문경의 백두대간에 걸친 대부분의 산골 물을 다 받아들여 마침내 깨끗한 문경 물을 만들어 이곳 사람들의 젖줄이 되었다.
문경 사람들은 말한다 “흐르는 물이라고 다 물이 아니다”고. 깐깐하고 청렴한 선비들이 꿈꾸는 이상향이 묻은 생명의 강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영남인들의 기상이 이 물로부터 비롯돼 낙동강을 따라 도도히 형성된 것이라는 것이다.
◆영강의 환경과 생태계
영강은 북쪽과 서쪽이 높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평야와 침식분지가 발달하는 지형적 특성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상류에 있는 문경새재 관광객들의 방문에 따른 수질 오염도가 과거보다 높아질 것이란 우려가 있지만, 영강의 수질은 최근 평균 BOD 1.5㎎/ℓ의 값을 나타내고 있어 매우 양호하다.
하천변에는 버드나무 군락이 많이 형성돼 있는데 특히 합류부 지점에 많다. 버드나무는 영강에서 버들치가 살 수 있도록 은신처의 역할과 오염물질의 정화기능을 하고 있다. 양서류는 희귀종 멸종위기 1급인 구렁이와 멸종위기 2급인 맹꽁이가 서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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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유류는 희귀종 멸종위기 1급인 늑대, 여우, 반달가슴곰, 수달, 사향노루, 대륙사슴 등 9종과 멸종위기 2급인 담비, 삵, 하늘다람쥐 등이 관찰되고 있어 영강이 청정지역임을 방증해주고 있다.
◆영강 상류에 건설되는 문경댐과 농암댐
영강 상류인 문경시 문경읍 갈평리에 건설 중인 문경댐과 농암면에 건설 중인 농암댐은 문경읍과 가은읍 마성면 일대 관광지 개발에 따른 상수원 확보와 홍수피해 방지, 농업용수의 안정적 공급 등을 위해 농식품부가 2000년 착공했다.
문경댐은 문경읍 용연리 일원을 수몰지역으로 높이 35.3m, 길이 217m의 제방을 쌓아 370만t의 물을 담수하는 중소규모의 다목적 댐이다. 2013년 완공예정으로 현재 공정률은 76%이고 농암댐은 2014년 완공예정으로 공정률 44%이다.
이 댐들이 완공되면 영강은 더욱 이곳 주민들을 이롭게 할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유지수가 줄어들어 현재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경북 제1경, 진남교반
영강 중류지역으로 신라시대 성곽인 고모산성을 끼고 있는 문경시 마성면 진남교반은 경북팔경 중 제1경으로 꼽힐 만큼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경관자원을 자랑한다. 기암괴석과 층암절벽이 이어지고 강 위로 철교, 구교, 신교 등 3개의 교량이 나란히 놓여 있어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노송과 숲 안으로 모래사장, 인공폭포 등이 있고 상류부에 비해 유속이 빠르지 않아 여름철 물놀이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물과 산, 길 등 3개가 동시에 태극형상을 나타내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남기성(74`한국예절문화원 문경지부장) 씨는 “강태극(江太極)은 속리산에서 발원한 영강이 신현리 봉생정 앞에서 조령천과 합쳐져 진남교반 일대를 굽이쳐 돌면서 형상을 이루고 있다”면서 “영남대로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토끼비리의 오솔길이 있는 산태극(山太極)은 물줄기를 따라 벼랑으로 태극을 만들고 있으며, 길태극은 강과 산을 따라 개설된 3번 국도와 문경선 철도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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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지부장은 “진남교반의 경관을 감상할 때 삼태극이라는 특이한 지형을 알고 보면 문경의 영강을 낀 산천이 천하제일의 형세를 갖추었으며 과연 대한민국의 명품산천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영강의 명품 계곡들
영강 상류의 계곡들은 풍광이 좋고 시원해 피서철만 되면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가은읍 대야산 기슭에는 유명한 용추계곡과 선유동계곡이 있다.
용추계곡은 암수 두 마리 용의 승천설화를 간직한 계곡이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용추폭포도 있다. 아무리 가물어도 결코 마르는 법이 없는 폭포로, 2단으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물이 떨어진 자리는 소를 이루는데, 그 모양이 하트처럼 생겼다.
선유동계곡은 용추계곡에서 자동차로 약 2분 거리에 있는데, 전체가 하나의 넓은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그 바위 사이로 물이 흐르고, 천연의 수영장과 물썰매장을 만들어 놓았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무사 백동수’를 이곳에서도 촬영했다. 한국의 비경 100선에 꼽히는 계곡으로 이 일대를 소금강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이 계곡에는 옥하대, 영사석, 활청담, 세심대, 관란담, 영규암 등으로 이어지는 아홉 개의 경승이 있는데, 이를 두고 선유구곡이라고 한다.
선유동계곡 하류의 관람담에는 칠우정이라는 정자가 서 있다. 계곡과 어우러진 정자의 풍경이 한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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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동계곡에서 서쪽으로 약 30㎞쯤 떨어진 농암면은 상주시 화북면과 연결되는 지역이다. 이곳에 해발 828m의 도장산 자락을 휘감아 흐르는 쌍룡계곡이 있다. 농암리부터 쌍용터널 지나서까지 약 4㎞가량 아름다운 계곡이 펼쳐진다. 청룡과 황룡이 살던 곳이라고 해서 쌍룡계곡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집채만한 바위들이 듬성듬성 놓여 있기도 하고, 계곡가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는 낙락장송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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