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스톰>을 본 건 무려 15년 전이다. 심심한 추석 연휴 마산의 허름한 동네 영화관이었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긴박함이 기억난다. 영화관 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선장 조지 클루니가 이끄는 게일호가 폭풍에 휩쓸리는 장면은 또렷하다. 망망대해 바다에서 한없이 나약한 인간의 모습, 끝없이 몰아치는 비바람과 캄캄한 눈앞,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한 명씩 사라지는 동료. <퍼펙트 스톰>을 내내 잔뜩 긴장한 채 봤던 나는 초등학생치곤 겁이 많았다. 원체 수영도 못하고 물을 무서워하는 편이었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에 홀로 남겨질 생각이 가장 소름 돋았다. 실제로 태풍 매미를 고향 마산에서 겪은 뒤에는, 자연재해에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초라함을 몸소 체험했다. 하지만 결국엔 고난을 이겨내는 행복한 결말이 정해진 영화를 보는 건 딱 적당한 긴장감이 있어서 좋았다. 관람이 넘어 체험의 영역에까지 나아가는 재난영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하트 오브 더 씨> 역시 소재와 스케일 그 자체로 이미 기대가 컸다. <하트 오브 더 씨>는 멜빌의 대서사시 '모비딕'을 탄생시킨 에식스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였다. 론 하워드 감독이 빚어낸 <하트 오브 더 씨>는 영웅들의 자랑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처절히 비극적이고 지극히 현실적인 실패담이다. 거리의 빛을 밝혀 어둠을 밀어낼 고래기름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그들의 실패에 차갑게 등을 돌린다. 거대한 향유고래의 공격에 에식스호는 산산조각나고, 선원들은 94일, 7,200km의 망망대해에 남겨졌다. 인간성의 끝에서 결국 그들은 밑바닥까지 다다른다. 자신만만한 일등항해사 체이스(크리스 햄스워스), 명예를 중시하는 선장 폴라드(벤저민 워커), 어린 나이에 배에 오른 토마스 니커슨(톰 홀랜드) 등 8명. 그들은 살아남았지만 차라리 죽음이 더 나은 삶을 이어간다. 30년이 흐른 후 남은 유일한 생존자를 작가 멜빌(벤 위쇼)가 취재하는 액자식 구성이다.
길이 30m, 무게 80톤. 성난 향유고래의 몸집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미 수많은 판타지 영화에서 실감 나는 용, 오우거, 트롤 등 다양한 괴물을 만났지만 <하트 오브 더 씨>, 바다의 중심에 서식하는 고래의 무서움을 이길 수 없었다. 인간이 만든 튼튼한 238톤의 배도 자연 앞에서는 한없이 약한 나무조각일 뿐이었다. 성난 향유고래가 몸 전체로 배를 부수고 덮치는 장면은 그 크기만으로 압도적이고 충격적이었다. 자연과의 '공존'이 아닌 '지배'를 선택한 인간 종족은 결국에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배를 떠나서는 자신만만하게 큰소리치던 선원들 모두 나약한 먼지나 다름없었다. 근육질 몸매로 유명한 크리스 햄스워스의 앙상한 몰골에서 고통을 엿볼 수 있었다. (본인 말로는 벌크업보다 체중 감량이 훨씬 힘들었다고 하더라.) 물론 금수저 선장의 일차원적이고 다소 이해되지 않는 대립은 몰입에 방해되기도 한다. (초반에는 합리적이고 일등항해사와 적절한 역할 배분을 할 것처럼 보였는데, 알고보니 최고의 꼰대 캐릭터였다.) 그렇지만 에식스호가 난파된 이후 절망에 빠진 이들의 무력감은 실감나고 아찔했다.
그들은 눈앞에 죽음이 닥치기 전까지 이를 예감하지 못했다.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고, 아니면 적어도 이겨낼 수 있다고 오만한 마음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은 자연의 무서움을 알고 있었지만, 성공의 단맛에 취해 미처 성큼 다가온 위험을 지나쳤을 수도 있다. 영화 초반 태풍에 정면 돌파하려다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에식스호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고래떼를 만나 첫 사냥에 성공했을 때는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을 정도 환호했다. 그들은 멈췄어야 했다. 고래의 공격으로 동료를 모두 잃은 스페인 선장의 충고를 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성공에 눈이 멀어 선을 넘고 말았다. 작은 성공에 취해 큰 실패가 다가오고 있단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식량도 없고, 목적지도 없고, 희망도 없고. 뗏목에 몸을 싣고 그저 가만히 있는 게 유일한 해법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말이다. 그저 자신들이 고래를 잡고 토막내고 기름을 짜내며 의기양양하게 금의환양할 생각만 했을 뿐이다. 이쯤되면 캐릭터의 갈등이니, 자존심 싸움은 그저 아무 의미 없는 게 되어버린다.
영화의 재미를 더해주는 건 일단 음악이었다. 웅장한 영상에 절묘하게 어우러진 음악은 선원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긴장감과 절박함을 나타내는 음악은 영화의 깊이를 더해주었다. 특히 재난 영화의 압도적인 스케일을 극대화할 IMAX 영화관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 오히려 고래와의 치열한 싸움보다는 홀로 남은 이들의 처절하고 외로운 표류기를 느끼기엔 IMAX가 위력적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심해는 너무나 조용하기에 더욱 무섭고 섬뜩했다. 본능에 이끌려 하지 말아야 할 선택까지 하며 생명을 이어가지만 그들은 이미 인간이 아니었다. 후반부 표류기는 <라이프 오브 파이>가 겹치더라. 과연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의 선택은 얼마나 이성적일 수 있을까? 환경에 길들여져 이미 선택지가 정해져 있는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늘 그렇듯 '도덕'에 관한 문제는 가장 힘들고 나약한 상태에서 붉어진다는 걸 새삼 느꼈다. 선장이 그렇게 추구한 가문의 명예, 일등항해사가 꿈꿔왔던 부, 선원들이 꿈꾼 만선의 꿈은 모두 부질없는 것이었다. 그저 '생존'이라는 하나의 결과가 그들이 간절히 바라던 것이었다.
한편 그렇다 할 최신 기구나 압도적인 무기 없이 그들의 포경은 단순했다. 줄을 매단 창살을 그냥 고래의 몸통에다 냅다 꽂는 게 전부였다. 피가 튀기고 이리저리 작살을 피해 도망다니던 고래가 힘이 빠진채 축 늘어지면 긴 싸움은 끝이 난다. 새삼 포경 산업의 잔인함, 인간의 무자비함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익스트림 롱숏으로 비춰지는 망망대해의 추격전과 클로즈업으로 보여지는 선원들의 광기는 믿을 수 없이 잔인하고 엄청나게 무서웠다. 피가 푸른 바다를 물들이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고래를 보니 포경 산업의 잔인함, 인간의 냉혹함을 날것으로 본 느낌이었다. 막무가내 포경으로 멸종위기종으로 전락한 고래의 운명에 부끄러울 따름이다. 영화의 마지막, 이제는 고래가 아닌 땅속에서 기름을 얻을 수 있단 소식을 전해듣는다. 한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인간의 본성대로 이젠 바다가 아닌 땅에서 얼마나 더 많은 희생을 감수할까? 아마 자신의 생존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건 초라한 뗏목 위에서나 지금 2015년이나 마찬가지일 것 같다. 무대를 끝없이 옮겨 다닐 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