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한시 모음
하늘을 지붕삼고 바위를 베개 삼은 김삿갓 시모음
황혼 나그네에게 사람들은 손사래 짓고
술을 한잔 하고 싶어도 마음 터놓을 친구하나 없다.
나도 청춘시절에는 옥처럼 고왔는데
세상맛을 알만하니 어느새 백발이 되었구나!
바람 치는 대로 물 흘러가는 대로
달이 뜨면 걸음을 멈추고 해가 뜨면 나그네 길로
천리를 삿갓과 지팡이 하나에 의지한 채 떠돌다 보니
푸른 잎 푸대접 가을비에 더욱 애처롭구나
그대여, 낙엽 뒤에 오는 찬바람과 눈보라 인생길에
멍하니 서서 돌아갈 곳 없어 생각조차 잊었는데
오늘도 고요한 암자에 이 한 몸 의탁하며
외로운 봉우리 안개속 초승달에 눈시울을 적신다.
아래 시 모음은 노루목 김삿갓 묘지와 문학관에 있는 “김삿갓 시비(詩碑)”을모은 것이다.
▲고을 이름이 개성인데 왜 문을 닫나
邑號開城何閉門(읍호개성하폐문)-고을 이름이 개성인데 왜 문을 닫나
山名松嶽豈無薪(산명송악개무신)-산 이름이 송악인데 어찌 땔나무가 없으랴.
黃昏逐客非人事(황혼축객비인사)-황혼에 나그네 쫓는 일이 사람 도리 아니니
禮義東方子獨秦(예의동방자독진)-동방예의지국에서 자네 혼자 되놈일세.
※모든 집에서 땔 나무가 없다는 핑계로 내쫒는 개성인심을 풍자한 시
▲향수(鄕愁)
對酒慾歌無故人(대주욕가무고인)-술을 마시며 노래하고 싶어도 친구가 없고
一聲黃鳥獨傷神(일성황조독상신)-꾀꼬리 울음소리만이 울적한 마음을 괴롭히네.
過江柳絮晴獨電(과강유처청독전)-강 건너 버들가지는 마냥 싱그럽기만 한데
人峽梅花香如春(인협매화향여춘)-산골짜기에 들어가니 매화향기가 봄 같구나.
地接關河來往路(지접관하래왕로)-이곳은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길목이라
日添車馬迎送塵(일첨차마영송진)-날마다 우마차 수레에 티끌이 이는 구나
臨津關外萋萋草(임진관외처처초)-임진나루 강북에는 잡초만이 무성한데
管得羈愁百種新(관득기수백종신)-나그네 많은 수많은 생각으로 새롭구나.
▲거울을 보며(看鏡)
白髮汝非金進士(백발여비김진사)-백발이시여, 자네 김진사 아닌가
我亦靑春如玉人(아역청춘여옥인)-나 역시 청춘 때는 옥처럼 고왔는데
酒量漸大黃金盡(주량점대황금진)-주량이 느는 만큼 가진 돈은 말라갔지
世事纔知白髮新(세사재지백발신)-세상사 알만하니 백발이 새롭구나.
白髮: 백발이시여! 汝: 자네는 非: ~이 아니던가. 金進士: 김진사.
我亦: 나 또한. 靑春: 청춘에. 如玉人: 옥처럼 고운 사람이다.
酒量: 주량이 늘다. 漸: 점차. 大黃金盡: 황금이 많이 다해버렸다.
世事: 세상사. 纔: 겨우. 知: 알다. 혹은 알만하다. 白髮新: 백발이 새롭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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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 특유의 해학과 페이소스가 느껴지는데,
고려 때의 대 문장가이며 시인인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우물에 비친 얼굴을 보고 장난삼아 짓다(炤井戱作)'을 연상케 하여 실소를 금할 수 없네요.
우물에 비친 얼굴을 보고 장난삼아 짓다(炤井戱作) / 이규보(李奎報)
不對靑銅久(부대청동구) 오랫동안 거울을 보지 않았더니,
吾顔莫記誰(오안막기수) 내 얼굴이 통 기억이 나지 않아.
偶來方炤井(우래방조정) 우연히 우물에 막 비친 모습은,
似昔稍相知(사석초상지) 전에 어디서 얼핏 본 듯한 녀석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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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시(竹詩)
此竹彼竹化去竹(차죽피죽화거죽)-이대로 저대로 되어 가는 대로
風打之竹浪打竹(풍타지죽랑타죽)-바람 치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飯飯粥粥生此竹(반반죽죽생차죽)-밥이면 밥, 죽이면 죽, 이대로 살아가고
是是非非付彼竹(시시비비부피죽)-옳으면 옳거니 그러면 그러려니, 그렇게 아세
賓客接待家勢竹(빈객접대가세죽)-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하고
市井賣買歲月竹(시정매매세월죽)-시장에서 사고팔기는 시세대로 하세
萬事不如吾心竹(만사불여오심죽)-세상만사를 내 마음대로 안 되니
然然然世過然竹(연연연세과연죽)-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살아가세.
스무나무 아래(二十樹下)
二十樹下三十客(이십수하삼십객) 스무나무 아래 설흔(서러운) 나그네,
四十家中五十食(사십가중오십식) 마흔(망할) 놈의 집에서 쉰 밥을 먹네.
人間豈有七十事(인간기유칠십사) 인간 세상에 어찌 일흔(이런) 일이 있나?
不如歸家三十食(불여귀가삼십식) 집에 돌아가 설흔(선) 밥 먹는 건만 못하리.
20, 30, 40, 50 그리고 70을 넣어 한문과 우리말을 교묘히 비벼 시 한 수를 멋드러지게 지었네요.
60이 빠진 건 생각이 나지 않은 건지, 아니면 아주 심한 욕(육시럴?)이 있기는 하나 차마 넣지 못한 건지..
▲외로운 주막에(自詠)
寒松孤店裡(한송고점리)-겨울 소나무 외로운 주막에
高臥別區人(고와별구인)-베게 높이 누우니 딴세상 사람
近峽雲同樂(근협운동락)-산골짝 가까이 구름과 노닐고
臨溪鳥與隣(임계조여린)-개울가에서 산새와 이웃하네.
稚銖寧荒志(치수영황지)-하찮은 세상 일로 뜻을 거칠게 하리
詩酒自娛身(시주자오신)-시와 술로써 내 몸을 즐겁게 하리라
得月卽帶憶(득월즉대억)-달이 뜨면은 옛 생각도 하면서
悠悠甘夢頻(유유감몽빈)-유유히 단꿈을 자주 꾸리라
▲주막에서(艱飮野店)
千里行裝付一柯(천리행장부일가)-천리를 지팡이 하나에 의지 한채 떠돌다 보니
餘錢七葉尙云多(여전칠엽상운다)-남은 돈 엽전 일곱 푼이 아직도 많은 것이니
囊中戒爾深深在(낭중계이심심재)-그래도 너만은 주머니 속 깊이 간직하려 했건만
野店斜陽見酒何(야점사양견주하)-석양에 주막에서 술을 보았으니 내 어찌하랴.
※저녁노을 붉게 물든 길을 가다가 주막을 보고 술 생각이 간절하여 읊은 시
▲낙엽을 읊다(落葉吟)
蕭蕭瑟瑟又齊齊(소소슬슬우제제)-소슬바람에 나뭇잎이 우수수 소리 없이 떨어지니
埋山埋谷或沒溪(매산매곡혹몰계)-산골짜기에도 쌓이고 시내물 위에도 떨어지누나.
如鳥以飛還上下(여조이비환상하)-새처럼 아래위를 훨훨 날다가는
隨風之自各東西(수풍지자각동서)-바람결 따라 저마다 동과 서로 흩어지네
綠其本色黃猶病(녹기본색황유병)-본디 잎새야 푸르건만 누렇게 병들어
霜是仇緣雨更凄(상시구연우경처)-푸른잎 시샘하는 서리를 맞고 가을비에 더욱 애처롭구나
杜宇爾何情薄物(두우이하정박물)-두견새야 너는 어찌 그다지도 정이 박약하여
一生何爲落花啼(일생화위낙화제)-지는 꽃만 슬퍼하고 낙엽에는 안 우느냐
※가을을 맞아 소슬한 바람에 사방으로 흩어져 날려가는 낙엽의 쓸쓸함을 읊은 시
▲거짓말(虛言詩)
靑山影裡鹿抱卵(청산영리녹포란)-푸른 산의 그늘 속에서 사슴이 알을 품었고
白雲江邊蟹打尾(백운강변해타미)-흰 구름 지나가는 강변에서 참게가 꼬리를 치네.
夕陽歸僧紒三尺(석양귀승계삼척)-석양에 돌아가는 중의 상투가 석 자나 되고
樓上織女囊一斗(누상직녀낭일두)-베틀에서 베 짜는 계집의 불알이 한 말이네.
▲낙엽(落葉)
盡日聲乾啄啄鴉(진일성건탁탁아)-까마귀 쪼는 소리같이 진종일 떨어지더니
虛庭自屯減空華(허정자둔감공화)-텅 빈 뜰에 쌓인 낙엽 화려한 빛을 잃었네
如戀故査排徊下(여연고사배회하)-옛 향기 그리운 듯 배회하며 떨어지고
可恨餘枝的歷斜(가한여지적력사)-가지에 있을 때를 그리워하며 흩어지누나.
夜久堪聽燈外雨(야구감청등외우)-밤 깊도록 창밖에 빗소리 들리더니
朝來忽見水西家(조래홀견수서가)-아침이 다가오자 강 건너 집 바라보네.
知君去後惟風雪(지군거후유풍설)-그대여, 낙엽 뒤에 오는 찬바람과 눈보라를
怊悵離情倍落花(초창이정배락화)-이별의 정 서러움이야 낙엽에 비길 손가
▲산을 구경하다(看山)
倦馬看山好(권마간산호)-게으른 말을 타야 산 구경하기가 좋아서
執鞭故不加(집편고불가)-채찍질 멈추고 천천히 가네.
岩間纔一路(암간재일로)-바위 사이로 겨우 길 하나 있고
煙處或三家(연처혹삼가)-연기 나는 곳에 두세 집이 보이네.
花色春來矣(화색춘래의)-꽃 색깔 고우니 봄이 왔음을 알겠고
溪聲雨過耶(계성우과야)-시냇물 소리 크게 들리니 비가 왔나 보네.
渾忘吾歸去(혼망오귀거)-멍하니 서서 돌아갈 생각도 잊었는데
奴曰夕陽斜(노왈석양사)-해가 진다고 하인이 말하네.
※주마간산(走馬看山)이라 했으니 산을 구경하기에는 빨리 달리는 말보다 게으른 말이 좋다는 것이다.
▲금강산(金剛山)
靜處門扉着我身(정처문비착아신)-고요한 암자에 이 내 몸 의탁하여
賞心喜事任淸眞(상심희사임청진)-기쁜 마음 즐거운 일 모두 님께 맡겼더니
孤峯罷舞擎初月(고봉파무경초월)-외로운 봉우리에 안개 개고 초승달이 떠올라
老樹開花作晩春(노수개화작만춘)-늙은 나무 꽃이 필 때 늦봄이 오네.
酒逢好友惟無量(주봉호우유무량)-친구 만나 술을 드니 흥취가 무량했고,
詩到名山輒有神(시도명산첩유신)-명산에서 시를 읊어 마냥 신기로웠소.
靈境不順求物外(영경불순구물외)-선경이 따로 있나 다른 데서 찾지 마소.
世人自是少閑人(세인자시소한인)-한가롭게 사는 분 네, 그가 바로 신선이오.
무제 [죽 한그릇(粥一器)]
四脚松盤粥一器(사각송반죽일기) 네다리 소반위에 죽 한 그릇,
天光雲影共排徊(천광운영공배회) (그 안에) 하늘 빛 구름 그림자 함께 떠도네.
主人莫道無顔色(주인막도무안색) 주인이여 무안하다 말하지 마소.
吾愛靑山倒水來(오애청산도수래) 나는 물에 거꾸로 드리운 靑山을 사랑한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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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땅에서 만난 김삿갓
김삿갓(金炳淵, 1809~1863)이 팔도강산을 유랑하며 일년이상 머물렀던 곳도 적지 않은데 그의 메인 유적지(김삿갓계곡)가 영월 땅이냐는 데는 이론이 없지않다.
조부의 대역죄로 집안이 풍지박산이 나자 고향(경기도 양주)을 등지고 강원도 산속으로 들어가 유년시절부터 어머니와 형님과 함께 살며 결혼까지 한 곳이 영월입니다.
더욱이 그가 죽은 후(전라도 동복 땅) 아들이 시신을 모셔다가 장사지낸 곳도 이곳이기 때문이지요.
지자체에서도 서둘러 지명을 '김삿갓면'으로 개칭했다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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