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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촌(40분) → 망경사(90분) → 서봉(60분) → 정상(60분) → 동릉(50분) → 어평'의 5시간 코스를 탐방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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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
높이: 1,408.8m
위치: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장산은 상동읍 구래리와 천평리 사이에 위치하는 산으로 백두 대간의 함백산이 서쪽으로 가지를 쳐 웅장하게 솟구친 산으로 남쪽과 서쪽은 바위와 절벽 지대로 이루어져 경관이 매우 수려하고, 북쪽과 동쪽은 완사면으로 상동에서 태백 방면으로 가다 칠량이골에서 좌측으로 쳐다보면 성벽처럼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상동읍 고도암(일명: 꼴두바위)에서 우측으로 가면 교촌 마을에 망경사를 알리는 작은 간판이 보인다. 이곳에서 망경사 방면 도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장산 광업소 가는 길을 알리는 돌로 된 표지석이 서 있다. 이곳을 지나 망경사를 알리는 자연석 이정표가 나타나면 이곳에서 10여 분 올라가면 망경사에 도착한다.
망경사에서 식수를 준비하고 대웅전과 요사채 사이로 난 길을 까라 20여 분 올라가면 산제당이 있으며 이곳에서도 식수를 준비할 수 있다. 여기에서 잠시 쉼을 하고 너덜 지대 곁의 급경사 길을 올라가면 주 능선 서봉 사이의 안부에 도착한다. 이 오름 길은 여름에 숲이 우거지면 길 찾기가 모호하므로 군데군데 달린 표지기를 확인하면서 찾아 오르면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안부에서 동쪽 주 능선 길을 따라 정상으로 향하다 보면 숲길인가 싶으면 바위 지대가 나타나고, 바위 지대는 좋은 전망대 역할을 하며 산행의 피로를 덜어준다.
이 주 능선 길은 사계절 변화무쌍한 자연의 신비를 느끼기에 더없이 좋다. 이른 봄이면 얼레지, 노루귀, 복수초, 중의 무릇 등 눈 속에서 피어나는 야생화가 집단 군락을 이루고, 여름에는 하늘을 가리는 짙은 녹음, 가을에는 형형색색의 단풍과 마가목의 붉은 열매는 꽃처럼 아름다우며, 겨울에는 산호초 같은 설화가 절벽과 어우러져 선경의 세계에 들어온 듯하다.
정상은 6~7평 정도 남짓하며 정상에서의 조망은 더할 나위 없다. 발아래 칠라이골이 아찔하게 내려다보이고 서쪽으로는 순경산, 가매봉, 매봉산이 줄지어져 서 있고 함백산, 태백산, 구룡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하늘금을 그리며 장쾌하게 달려 나가고 있다.
하산은 동릉을 타고 어평 방향이나 칠라이골 백운산장으로 하산할 수 있다. 백운 산장 방향은 급경사와 절벽, 너덜 지대가 많아 초심자는 안내자 없이는 이용을 삼가는 것이 좋다. 주 능선 동릉을 타고 1시간여 가면 능선이 낮아짐을 느낄 수 있는 잘루목이 나온다. 이곳에서 북사면 길을 따라 30여 분 내려서면 잣나무와 전나무 조림지가 나오며 석회석 광산터를 지나 열녀목에 이른다. 이 열녀각은 죽은 남편의 삼우젯날 묘 앞에서 놋젓가락으로 자신의 목을 찔러 자결한 수원 백씨의 열녀행각을 추모하기 위한 비각이다. 이곳에서 20여 분 어평 마을로 내려서면 31번 국도 어평 정류소에 도착한다. - 한국의 산하
애초 9월 첫 주 산행은 야영족의 성지 중 하나인 태기산으로 갈 예정이었다. 1,000m가 넘는 산을 목표로 산행을 진행하고 있지만, 태기산은 교통이 불편하고 소위 얘기하는 명산에 끼지 못해 산악회에서도 가지 않는 곳이라 거의 포기상태였다[산 목록]. 그런데 3주 전쯤 늘 하듯이 산악회 카페에 들어가 무슨 계획이 있나 둘러보다 발견한 '태기산행 후 효석문화제 참가'라는 게 눈에 띄었다. 여기저기서 선정하는 100대 명산에 끼지 못한 산이다 보니, 지역 축제와 묶어서 진행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해서 다른 산악회도 둘러보니 대부분 산악회가 축제 기간 내내 연계 산행을 진행하고 있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발견이다.
의도한 게 아니지만, 거의 매주 산에 다니다 보니 100대 명산을 거의 다 갔다 왔다. 심지어는 기상청이 예보를 위해 각 지역의 거점에 선정한 산도 거의 다 다녀왔다. 고로 소위 명산 위주로 산행을 진행하는 산악회를 이용하는 것도 이제는 한계에 달했다는 걸 최근에 느끼고 있었다. 그럼 다시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는 건데. 대중교통으로 당일 산행이 가능한 곳은 거의 다녀, 이제는 야영이나 숙박 외에는 답이 없는 상황이라 고민 중이었다. 그 와중에 발견한 지역 축제와 연계한 산행! 괜찮은 대안이다. 물론 그것도 한계는 있겠지만.
어쨌든 처음 그 놀라운 발견을 한 산악회에 회비를 내고 자리를 신청했다. 그리고 출발 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저 아래 태평양에서 태풍 링링이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 태풍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데, 산행 당일 한반도를 가로지를 예정이었다. 고로 Plan B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Plan B는 토요일이 아닌 일요일 속행하기로 하고 한 산악회가 진행하는 홍천 가리산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목요일 오전까지 신청자가 9명에 불과해 성원 미달로 취소될 확률이 높아 Plan C도 준비해야 했다. 해서 Plan C는 대중교통으로 가능한 영월 장산을. 물론 태기산을 진행하는 산악회에서 태풍 속에서도 강행하겠다면 같이 갈 준비도 되어있었다.
일기예보는 태풍 위주로 진행되었고, 산행 당일인 토요일 폭우와 강한 바람이 중부지역을 통과하는 게 거의 확정적이었다. 이에 따라 대부분 산악회가 토요 산행을 취소했고, 마지막으로 내가 신청한 산악회도 목요일 오후에 산행을 취소했다. 그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홍천 가리산을 진행하는 산악회에 회비를 넣고 자리를 신청했다. 그러나 결국 금요일 오후까지 신청자가 늘지 않아 결국 홍천 가리산 계획도 취소되었다.
이제는 Plan C 장산이 답이다. 바로 영월행 버스를 예매하고 산행 준비를 했다. 산행기도 몇 개 없는 미지의 산이지만, 그나마 있는 산행기를 다시 검토했다. 그 과정에서 태백이 아니라 영월에서 출발하는 게 시간 절약에 좋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번 산행도 단독 산행이 될 확률이 높았지만, 그래도 같이 할 친구가 있을지 몰라 등산방에 산행 계획을 알렸다. 단독 산행이니만큼 점심은 오랜만에 라면에 햇반, 그리고 빨갱이. 작년 태풍 콩레이 덕에 지리산 왕시루봉 산행[산행기]을 못 한 거와 같이 이번엔 링링 덕에 태기산을 오르지 못했다. 그리고 그 링링이 수확기 작물을 떨어트리고 쓰러트릴 예정이라 메밀꽃 축제와 연계한 태기산행은 올해는 포기하고 내년을 기약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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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기상해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먹고, 전날 미리 단독 산행에 맞게 준비한 작은 배낭에 냉장고에서 먹을 게 들어 있는 디팩을 꺼내 넣었다. 그리고 집을 나서 동서울터미널을 향했다. 터미널에서 미리 예매한 표를 발권하고 배낭을 든 채로 버스에 탔다. 다행히 버스는 거의 반도 차지 않아 자리가 넉넉했다. 버스에서 음악을 들으며 부족한 잠을 청하고 정신을 차리니 제천을 지나고 있었다. 강원도 영월을 가는데 충북 제천을 지나야 하나? 머릿속으로 지도를 그려보다 패드를 들고 책을 보기 시작했다.
버스는 내가 알고 있던 영월 도착 시각인 9시 20분보다 20분 빠른 9시에 영월 터미널에 도착했다.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9시 20분은 영월 도착 시각이 아니라 태백을 향해 영월에서 떠나는 시각인 거 같았다. 문제는 영월에서 상동으로 떠나는 버스는 10시 10분에 출발한다는 거다. 고로 내게는 1시간 20분이라는 여유시간이 생겼다. 동행이 있으면, 터미널 앞에 있는 영월 서부시장에 들어가 막걸릿잔을 기울였겠지만, 오늘은 단독이다. 그때 버스를 타고 오며 본 동강이 떠올랐다. 패드의 지도로 확인해 보니 터미널에서 멀지 않고 해서 동강으로 갔다.
동강 둔치로 가니 한때 용준이 걸어보자고 했던 '외씨버선 길'의 구간임을 알리는 '외씨버선 갤러리'라는 게 도로 밑에 있었다. 해서 영월에서 상동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외씨버선 길을 검색해 보니, 총 13구간으로 청송에서 시작해 영월에서 끝나고 있었다. 갤러리를 구경하고 동강으로 내려가 흐르는 물을 구경했다. 애초 바지를 걷고 건너편으로 건널 계획으로 내려갔는데, 물에서 냄새가 나고 물 색깔이나 돌에 낀 이끼를 보니 그 생각이 싹 사라졌다. 링링이라는 처자 태풍 때문에 산행이 취소될 정도였는데, 강이 왜 이 모양?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처자가 열폭해 달리며 눈물을 뿌려야 하는데, 눈물을 흘릴 정도는 아니었던 듯!
물가에서 주변 경치 사진을 찍은 후 아무리 더러워도 동강에 발을 씻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고 물로 들어갔다. 이끼 낀 돌은 미끄러워, 걷기가 쉽지 않았고, 물은 미지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지역은 비가 필요했다. 찝찝한 기분으로 물에서 나와 햇볕에 젖은 발을 말리는 동안 주변 산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중에는 저기 한번 가봐야지 하는 산도 보였다. 생각해보니 비록 1시간에 불과했지만, 영월읍에서 시간을 보낸 건 처음이었다. 양말과 등산화를 신고 둔치를 벗어나 버스터미널을 향해 갔다. 터미널 앞에 있는 서부시장에 들러 구경도 하고. 서울이나 다를 바 없는 모습에 실망했지만.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 상동행 표를 사서 승차장으로 가니 이미 버스는 대기하고 있었다. 아직 출발 10분 전인데. 태풍 후유증으로 도로에 차가 거의 없어 대부분 버스가 예정보다 일찍 도착하는 거 같았다. 버스에는 심드렁한 기사를 제외하고 승객은 한 명뿐이었다. 내가 탔으니, 둘! 기다려봐야 더 탈 승객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기사는 예정된 시각보다 빠른 10시 9분에 영월을 떠나 태백을 향해 출발했다. 패드로 책을 읽으며 가다가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승객이라곤 두 명에 불과하고 탈 승객도 없어 버스는 모든 정류장을 지나쳤다. 이렇게 달리다가는 내가 내려야 할 상동도 지나칠 거 같았다. 일반적인 시내버스가 아니라 정류장에 대한 안내도 없었다. 해서 패드의 지도에서 상동을 찾아, 내비 모드로 변경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상동을 영월의 한 리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상동도 예정된 시각보다 빠른 11시 3분에 도착했다. 그리고 확인한 사실 상동에서 서울로 가는 차가 있을 정도로 큰 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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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진정한 산행의 들머리인 망경사 입구까지 걸어야 하는 상황이라 내게는 산행의 시작은 버스 터미널을 떠나는 순간이다. 11시 4분에 터미널을 떠나며 산행을 시작해 꼴두바우를 향해 갔다. 꼴두바우는 터미널에서 1km가량 떨어져 있다. 버스를 타고 성동읍에 들어섰을 때부터 마을의 생김새에 놀랐지만, 터미널에서 꼴두바우를 향해 가면서 다시 놀랐다. 양옆 1,000m가 넘는 산의 계곡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보니 집을 지을 공간이 마땅치 않아, 마을이라면 의례 떠오르는 모습과 달리 계곡을 따라 일렬로 건물이 늘어서 있었다. 그나마 꼴두바우 근처에서 계곡이 합류해 약간의 분지가 있어, 거기에 학교와 소방서 등이 있는 정도. 꼴두바우 소개문에도 있듯이 며느리의 희생으로 '중석'이 잉태되지 않았으면 차도 다니지 않는 오지로 남았을 지역이다. 지금은 그나마 그 광산도 폐광되어 생업의 대부분이 관광인 거 같지만.
꼴두바우에서 주변을 구경하고 400여 미터 떨어진 산행의 실질적인 들머리인 망경사 입구를 향해갔다. 그때 위에서 한 무리의 (복장으로 본) 관광객이 내려왔다. 꼴두바우 주차장에 서 있던 관광버스가 태우고 온 사람들로 보였다. 시간이나 행색으로 봐서 망경사를 구경하고 내려오는 듯했다. 그들을 지나쳐 망경사 입구라고 생각되는 곳에 정산 정상까지의 코스와 거리를 안내하는 입간판이 있었다. 해서 그 입간판 쪽으로 들어가니 이제는 폐허가 된 광산 사택 10여 동이 을씨년스럽게 서 있었다. 혹시 길이 사택 사이에 있나 가보았지만, 망경사로 가는 길이 있을 거 같지 않아 돌아 나와 주위를 확인하니 20여 미터 위에 길이 있는 거 같아 올라갔다. 거기에 망경사 입구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었다.
망경사를 행해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헉헉대고 올라가다 밑으로 보이는 황폐해진 사택 촌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리고 드는 생각, 토왜정권 시절에 내가 여기서 이런 사진을 찍고 있으면 바로 간첩으로 몰렸겠구나! 누가 털어가도 모를 거 같은 개복숭아 나무 사이를 지나 11시 38분에 망경사(3.6), 서봉(4.2), 절음박골(3.7) 갈림길에 도착했다. 당연히 나야 정상 기준 가장 짧은 망경사 코스로 갔다. 같은 높이를 올라가는데 가장 짧다는 건 가장 가파르다는 얘기지만. 망경사로 계속 올라 11시 44분에 도착했다. 망경사는 생각보다 규모가 작은 사찰로 마당에서 주지와 보살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밑에서 본 한 떼의 관광객 얘기인 거 같았고, 카메라를 멘 내 모습을 보자 어디서 왔는지 물은 후 사진 찍으러 왔냐고 물었다. 정중히 "장산"이 목적이라고 얘기하고 대웅전을 뒤로 돌아 산신각 앞에 있는 물로 목을 축였다.
11시 45분 포장도로가 아닌 진정한 산길을 따라 장산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길 상태는 양호한 편이었으나, 경사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쏟아지는 땀이 눈에 들어가 따가운 가운데 악착같이 기어 올라 1시 5분에 서봉 갈림길에 도착했다. 2km, 1시간 20분 소요, 경사도에 비하면 괜찮은 성적이었다. 그나마 버티고 올라올 수 있었던 게 집에서 얼려온 찬 물 덕이다. 서봉 갈림길에서 잠깐 망설이다 언제 내가 여기 다시 오겠냐는 생각이 들어 서봉을 갔다 오기로 했다. 과히 갈림길에서 멀어 보이지도 않아 배낭을 메고. 그렇게 서봉을 향해 가니 그쪽에서 등산객 소리가 들려왔다. 1시 11분 서봉 정상에 도착해 보니, 한 무리의 등산객이 자리를 잡고 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나를 보자 미안하다며 길을 터 줄려고 해, 다시 돌아갈 거니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다. 그리고 어디서 왔는지, 혼자인지 묻고, 혼자라고 하니, 앉아서 같이 먹자고 했다. 극구 사양하니 그럼 소주 한잔하라고 해서, 내가 찬 막걸리 있으면 한 잔 달라고 했다. 아쉽게도 막걸리는 이미 다 마신 후였다. 대신 시원한 맥주 한 잔 얻어 마시고, 가지고 있던 카메라도 단체 사진을 찍어 준 후 그 자리를 떠났다. 물론 사진은 다음 날 보내주기로. 아, 그 팀은 대구 산악회에서 온 팀이었다. 나도 점심을 먹어야 할 거 같아 장산 정상을 향해 가며 적당한 자리를 찾다가 주 등산로에서 10m가량 떨어진 전망대로 향하는 길에 마음에 드는 장소가 보여 자리를 잡고 앉아 짐을 꺼냈다.
라면을 끓여 위스키 반주로 점심을 먹는데, 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서봉의 그 대구팀이 점심을 다 먹고 정상을 향해 가는 소리였다. 주 등산로에 등을 보이고 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내 뒤로 선두가 지나며 무슨 라면인지 물었다. 진라면이라고 하자 그 뒤에 있던 여성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끼리 라면 종류에 대해 내기를 했던 거 같다. 역시 라면 끓이는 냄새는 아무리 멀어도 맡는다. 특히 산에서 그 냄새를 맡는 대부분 등산객은 부러워하고. 그렇게 그들이 지나간 이후에도 앞으로 가야 할 길의 상태와 거리를 몰라, 라면으로는 체력이 달릴 거 같았다. 해서 햇반 반 개를 넣고 돼지죽을 끓여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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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라면을 끓여 먹었다는 모든 흔적을 인멸하고 그 자리를 떠나 정상을 향한 시각이 2시 9분이다. 애초 5시까지 날머리인 어평에 도착하는 계획인데, 남은 시각이 3시간 정도였다. 점심을 먹은 곳에서 정상까지의 거리, 그리고 정상에서 어평까지의 거리를 계산해보니 충분해 보였지만, 그래도 모르는 일이라 최대한 속도를 내 길을 따라 정상으로 갔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태풍 때문인지 쓰러진 나무가 이정표에 걸려 있기도 했다. 어느 산이나 그렇듯이 정상을 향하는 마지막 깔딱 2km 같은 200m를 힘겹게 올라 정상에 도착한 시각이 2시 43분이다.
삼각대를 설치하고 인증을 찍은 후 차가운 물 한 모금하고 주변의 산세를 조망했다. 아직 태풍의 여운이 남아서인지 날이 좋지 않아 자세히 볼 수는 없었다. 조망이 좋은 날에는 주변의 산세가 감탄을 자아낼 풍경이었다. 내가 다시 여기에 서리라는 보장이 없어 많아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정상을 떠나 정상석이 있는 곳과 정상 자리를 다투는 전망대에 3시 6분에 도착했다. 조망은 정상보다 좋았지만, 그것도 날이 좋을 때 얘기고. 어쨌든 사진 몇 장 찍고 하산을 시작했다.
등산로를 따라 날머리로 생각하고 있던 어평을 향해 가다가 3시 13분에 하산길 갈림길에 도착했다. 그 갈림길에는 입간판에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어평으로 향하는 코스는 보이지 않았다. 영월에서 세운 거라 태백에 속하는 지역은 자세히 그리지 않은 거로 보였다. 그리고 보니 지금까지 산에서 본 지도 모두가 태백 쪽은 명확하지가 않았다. 그 지도에 의하면 내가 알고 있었던 거와 달리, 신고한의 만항재와 상동의 장산 야영지로 하산하는 두 길이 있었다. 어평으로 바로 가는 길은 없었다. 후에 산꾼들의 지도와 영월군에서 만든 지도를 비교해 보니, 입간판에 절벽지대라고 된 곳이 산꾼이 어평으로 가는 길이라고 한 길과 일치했다. 위험해서 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물론 비법정!
당시에는 이런 사정을 전혀 모르고 있던 터라, 두 길 중 어평 위에 있는 만항재길을 향해 길을 잡아 하산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쪽이 더 짧았다. 1.8km vs 2.5km! 길 상태는 양호했다. 처음에는 등산객이 많이 다녀 상태가 좋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이쪽 사면에 대단위 조림지역이 있었다. 그리고 벌목하고 있었다. 그래서 벌목에서 제외할 보호수를 관리하기 위해 만든 길이었다. 실수로 잘라버리는 일이 없게 하려고 나무마다 '보호수목'이라고 명패를 붙여놓았다. 고로 벌목지대에는 트럭이 다닐 수 있는 길이 있는 것도 당연하고.
20분가량 내려가니 샘터가 나왔다. 그 샘은 바짝 말라 있었다. 어제 태풍이 지나간 나라가 맞는가 싶었다. 그 샘물 대신 내가 가져간 찬물로 갈증을 해소하고 다시 만항재길을 향해 내려갔다. 잘 다듬어진 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거대한 침엽수가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넘어갈 상황이 아니라 한참을 돌아 우회를 하고 나니 다시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길은 오른쪽 능선에 있는 거 같은데 관목을 헤치고 그 능선을 오르기가 쉬워 보이지 않았다. 해서 그나마 관목이 드문 곳을 찾아 하산하다가 가는 나무 줄기가 앞을 가로막는 지역에 도착했다. 그림상 그 너머에 길이든 뭐든 있을 거 같았다. 해서 이런 때를 대비해 가져간 칼을 꺼내 나무 줄기를 자르며 전진했다.
그렇게 10여 미터 전진하자 개활지가 나타났다. 처음부터 개활지가 아니라 벌목 후의 모습이다. 개활지를 가로질러 가는 것도 가능하지만, 아무래도 벌목한 지역이 잔가지도 떨어져 있고 상태가 좋지 않아 길을 찾아야 했다. 해서 주변을 둘러보니 처음 예상대로 오른쪽에 길로 보이는 곳이 보여 그리로 올라가니 임도가 나타났다. 벌목을 위해 최근에 차량이 다닌 흔적이 있었다. 그 임도를 따라 조금 내려가니 갈림길이 나타났다. 밑으로 내려가면 만항재길이고, 옆으로 가면 어평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도상에는 두 길 모두 없다. 해서 과감히 오른편으로 갔다. 가다가 땅에 떨어진 잣송이를 발견하고 모아 보니 꽤 되었다. 벌목한 게 잣나무?
그렇게 300여 미터 가니 광활한 벌목지가 나오고 길은 끝났다. 산세로 보건데, 길이 끝난 지점을 가로막고 있는 작은 언덕을 넘어 조금만 가면 어평으로 향하는 길이 있을 거 같았지만, 관목을 해치고 그 언덕을 오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망설일 거 없이 바로 왔던 길을 되돌아 갈림길로 갔다. 그리고 만항재길로 내려갔다. 임도를 따라 터덜터덜 내려가고 있는데 전방 10여 미터 앞 벌목지대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해서 조심조심 접근하니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멧돼지 새끼 7~8마리가 차례차례 오른쪽 숲으로 뛰어 도망갔다. 첫 놈이 도망가는 걸 본 순간 오른쪽 배낭 멜빵에 걸어둔 카메라를 꺼내려고 노력했지만, 쉽게 빠지지 않았다. 마지막 놈이 뛰는 순간 카메라가 빠졌지만, 이미 늦었다.
아쉬운 마음에 혹시나 해서 그놈들이 도망간 울창하지만, 낮은 관목숲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 순간 등골이 싸해지며 드는 생각이 새끼가 있으면 어미는? 평소 생각하기를 산에서 멧돼지를 만나면 나무를 방패 삼아 대적하면 이기지는 못해도 비길 수는 있을 거 같았다. 그런데 이 벌목지처럼 개활지에서 만나면? 해서 스틱을 가져 다녀야 하고, 단독 산행도 안 되고 비법정을 가면 안 된다. 이 지역은 법정 지역임에도 벌목 시기가 아니면 사람 구경이 힘들고 벌목으로 나무 열매가 많이 떨어져 어미가 새끼를 풀어놓은 게 아닐까? 어쨌든 임도를 따라 내려가 사당을 지나고 사유지를 지났다. 출입금지 팻말이 붙은 사유지는 배추밭으로 그리로 들어가면 어평까지 쉽게 갈 수 있을 거 같았지만, 들어오지 말라니. 잘 포장된 도로를 따라 내려가 4시 18분에 만항재길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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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항재 길을 따라 화방재를 향해 내려가는데, 그 길은 잘 포장된 2차선 도로다. 그리고 화방재는 대략 3.5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그 길은 만항재에서 오는 차, 만항재로 가는 차가 가끔 있었다. 화방재로 가는 차를 얻어 타는 걸 고려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아스팔트를 빠른 속도로 내려가다 고개를 돌자 왼쪽에 나타난 '장산 콘도'! 해발 1,000m가 넘는 곳에 콘도라니. 그때 든 생각, '내가 뭐 하는 짓이냐?'. 바로 태백 택시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그 순간 화방재에서 올라오는 택시가 있었다. 분위기상 콘도로 가는 거로 보였다. 그럼 저 차가 돌아 나오는 걸 타자. 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예상대로 택시는 펜션에 승객을 내려주고 빈 차로 돌아 나왔다. 산행이 끝나는 순간이다. 그 시각이 4시 35분이다.
택시를 타고 태백 버스 터미널로 달렸다. 시간상 동서울행 5시 30분, 6시 차를 탈 수 있었다. 평소 내 지론대로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터미널 근처에서 밥을 먹고 가기로 하고 택시 기사에게 어디가 좋은지 물어보니 몇 곳을 얘기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5시가 되기 전 터미널에 도착해 기사가 옆에 보이는 기사식당이 좋다고 추천했다. 터미널 앞에서 내려 터미널로 들어가 내가 아는 차 시간과 다름이 없음을 확인하고 그 식당으로 갔다. 혼밥이라 청국장과 이슬이 한 병을 시켜 조촐한 뒤풀이를 했다. 역시 청국장 맛은 좋았다.
그렇게 이슬이 한 병을 비우고 5시 25분에 식당을 나와 5시 30분 동서울행 버스를 탔다. 그리고 자다 깨 그동안 읽던 책을 다 읽고 나니 동서울이었다. 전철을 타고 집에 도착한 시각이 9시 20분경. 이른 도착에 모두 놀랐지만.
처음 계획과는 달리 '성동 버스터미널 → 꼴두바우 → 망경사 입구 → 망경사 갈림길 → 망경사 → 서봉 갈림길 → 서봉 → 서봉 갈림길 → 장산 → 전망대 → 만항재 갈림길 → 만항재길 → 장산 콘도'의 10.95km(트랭글 기준), 5시간 29분의 산행이었다. 이동 4시간 26분, 휴식 1시간 3분.
잘 알려지지 않은 산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한 번쯤은 가봐야 할 산이다.
날이 흐려 주변 산세를 자세히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만항재길로 하산은 도로를 걸어 내려가야 한다는 문제가 있으니, 가능하면 어평으로 바로 가는 비법정로나, 장산 야영장으로 하산하는 게 이후 귀경에 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