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언가 영원하다는 것을, 변치 않는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영원한 것, 변치 않는 것, 그런 것이 있을까. 그래서 영원한 무엇인가를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나는 그가 진심으로 부러울 것이다. (맹목이나 무지와 진심은 구별하자.) 변치 않는 영원한 믿음의 대상이 신이건 다른 어떤 영적 존재건 혹은 사람이건 아니면 또다른 무엇이건.
사랑은 어떨까. 사랑이라고 다를까. 나는 영원한 사랑,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모든, 아니 거의 모든 사랑은 변한다.(고 생각한다). 위악이라 오해는 마시길. 세상의 그 많은 사람들의 "변치 않는 영원한 사랑"을 모독할 마음도 냉소할 마음도 전혀 없음도 이해해 주시길. 나는 다만 영원함을 믿지 못하는 가엾은 내 자신을 부끄럽게도 고백하는 것이니. 내가 혹 누군가를 무언가를 사랑한다해도 그 사랑은 변할 것이고 흘러갈 것임을, 나의 사랑의 대상 또한 마찬가지임을. 그러나 변한다는 것이 그 사랑의 끝이 아님을. 삶이 그러하듯 사랑도 그 변화 속에서 이어지는 것. 그래서 바라기는 사람이건 관념이건 대상이던 내가 사랑하는 대상의 변화와 내 변화의 정기(ether--로렌스 식으로 말하자면)가 잘 맞기를, 그런 무엇이 사랑이 되기를. 그게 내가 바라는 최선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 오후를 함께 지낸 파스칼 키냐르는 부러운 사람이다. 그의 마음에 자리한 변치 않는 사랑이. 그리고 파스칼 키냐르 그가 다시 그려낸 시미언 피즈 체니의 사랑이 또한 그렇다.
파스칼 키냐르의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젊은 나이에 딸을 낳다 세상을 떠난 부인을 그리며 부인의 체취가 베어 있는 정원에서 부인을 추억하며 정원의 모든 것에서 보이고 들리는, 특히 하나하나의 소리를 음악으로 기록하면서 세상을 떠난 부인과 함께 살다 부인의 세계로 떠나가며 그 음악을 남겨놓은 시미언 피즈 체니. 그리고 그 삶을 다시 이어가는 딸. 그 세 사람의 이야기.
체니에게 정원은 부인과 오롯하게 함께 있는 낙원 같은 곳,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며 살게 될 것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다.
"꿈을 꾸는 사람처럼,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처럼, 낡은 집을 구경시켜 주는 사람처럼, 자신이 기억하는 어느 세계로 옮겨 가고 싶은 사람처럼."(24)
하니, "정원은 늙지 않는 신비로운 얼굴이란다. 오, 심지어 나날이 젊어지는 얼굴이야."(55)하는 그의 말에서 보이듯 정원은 이미 부인과 동일시 된 존재이다. 그러니 정원이 존재하는 한, 그가 정원을 가꾸는 한 사랑은 끝이 없다.
"사랑이란 말로 설명할 수 없단다. 무슨 말이냐 하면, 사랑은 절대적인 거니까. 사랑에 유통기한 따위는 없어."(58)
그런 사랑을 어찌 누구와 나눌 수 있을까. 설혹 죽음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고통을 나누는 건 배신이다." / 이게 늘 속으로 생각했던 바야! /죽은 이들과 홀로/ 독대하고 싶어. / 옛 존재의 추억들, 말없는 이미지들, / 세세한 수많은 일을 / 혼자 되새기고 싶은 거지! (91)
그걸 지나치다 할 수 있을까.
"비밀을 하나 말해 줄까, 딸아, / 사랑엔 결코 지나침이 있을 수 없단다."(144)
이제 그가 할 일은 다른 이들에게는 죽움으로 사라진, 그러나 자신에게는 여전히 생생한 기억의 존재인 그녀를 하루하루 다시 기리는 것, 그것.
"많은 사람이 생전에 자신의 삶을 / 완전히 완성하지 못하고 죽잖아! / 그래서 그들이 남긴 추억이 흩어지기 전에 / 그들의 종말을 자꾸 이야기할 필요가 있어./ 그들의 얼굴이 사라지기 전에 / 눈물에 젖은 얼굴을 자주, 자주, 자주,/ 닦아 줘야만 해."(179)
부인의 체취 가득한 정원에서 부인을 기리고 부인과 대화하는 그 나름의 방법은 세세한 하나하나의 소리도 놓치지 않고 음악으로 기록하는 것이었다.
"그가 한 일이라곤 아름다운 기원의 소리들에 / 인간의 귀를 약간 기울였을 뿐인데 말이죠."(183).
그 소리는 그냥 소리가 아니었다. 그와 부인의 세계, 천국의 소리였더. 마치 에덴동산과도 같은.
"새들의 노래엔 천국의 무엇이 있다. / 하느님은 에덴에서 새들에게 영벌을 / 내리지 않으셨다."(183)
그렇게 평생을 그는 부인의 흔적이 가득한 정원에서 모든 소리를 음악으로 기록하다 그곳에서 세상을 떠나고, 이젠 딸이 그 뒤를 잇는다. 한때, 어머니가 자신을 낳다 세상을 떴다는 이유로, 죽은 어머니를 너무도 닮아간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서 쫓겨났던 그 딸이.
"아버지는 어머니에게서 정원에 대한 사랑을 / 이어받았어요. 아버지는 평생 그 일을 / 수행하셨고, 이제는 제가 돌봅니다. /이제는 감동도 제 몫이죠."(189)
시미언 피즈 체니, 그의 삶은 온통 먼저 떠난 부인의 삶과 함께 하는 시간이었고, 정원이라는 그들만의 천국의 소리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음악으로 만듦으로써 자신의 사랑을 영원히 지켜가는 과정이었다.
그러니 이 정도 쯤 되는 사랑은 영원하다 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데, 의문 하나. 왜 거의 모든 영원한 사랑은 죽음을 동반할까. 그건 나름의 까닭이 있지 않을까. (수업시간에는 나름의 이유를 학생들과 나눈다. 나중에.)
오늘 저녁은 드라마 특강 듣는 분들과 안톤 체홉의 <벚꽃동산> 연극 관람이 있다. 책보다는 무대가 낫다. 드라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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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 책으로 '책과 음악상'을 수상했을 때 키냐르의 수상 소감이라고 한다.
"이 책은 음악에 대한 찬가입니다. 죽은 이들에 대한 애도와 그리움의 음악, 위로가 되는 음악, 새들의 노랫소리에 담긴 생생한 자연의 소리 같은 그런 음악말입니다."(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