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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진 장로 간증-하늘가는 사형수
소망교도소 부소장
저는 생일이 3개 있습니다.
태어난 날과 거듭난 날, 사형수들에 대해 사형이 집행되던 어느 날 입니다.
1987년 1월 청송군 진보교회에서 하나님을 알게 됐습니다. 청송감호소에서 근무할 때였습니다.
하나님을 늦게 안 것이 아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좀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것인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매일 기적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시골교회는 1년에 10명 전도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청송감호소 직원들을 전도해 주일마다 4~5명씩 진보교회에 데리고 갔습니다.
매달 전도왕상을 받았습니다.
성경이 읽고 싶었고, 기도가 하고 싶었습니다. 자다가도 눈만 뜨면 기도를 했습니다.
보는 사람마다 칭찬을 했습니다.
그럴 때 마다 “하나님이 하셨죠.”하며 철저하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러면서 “중직자인데 왜 성경을 많이 읽지 않나, 기도를 많이 하지 않나” 이런 마음이 들곤 했습니다.
겸손을 가장한 교만이 제 속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위험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됐습니다.
몇 년 지나 장로가 됐습니다.
이 상태로 이어졌으면 골치 아픈 장로가 됐을 것입니다.
그 무렵 하나님은 저를 서울구치소 사형장으로 보내 주셨습니다.
서울구치소에는 제소자 4천200~4천300명과 직원 1천명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제소자 중에서도 관심을 끄는 사람들은 사형수들이었습니다.
사형수들은 붉은 명찰을 달고 다녔습니다.
멀리서 봐도 알 수 있었습니다.
사형수들은 스쳐 지나가도 피 냄새가 났습니다. 감각적으로 맡을 수 있었습니다. 굉장히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윤도영이라는 사형수를 3~4평되는 상담실에 불렀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도영이의 인상은 아주 좋지 않았습니다.
도영이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청송에서의 신앙생활 등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일들을 간증했습니다.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열정적으로 간증했습니다.
도영이의 표정을 볼 때 얼굴에 감동이 없었습니다. 오리혀 앙심을 갖고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구치소 보안계장과 사형수는 하늘과 땅차인데.
열을 받았습니다.
도영이에게 “죽을 준비가 됐나”고 물었습니다.
사형수들이 제일 듣기 싫은 소리입니다.
도영이의 얼굴은 시멘트처럼 더 굳어졌습니다.
눈을 내려 깔고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전도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너만 사형수가 아니라 나도 사형수다. 모두 날 받아 놓은 사형수다. 올 때는 순서가 있지만 갈 때는 순서가 없다. 죽음의 준비, 신앙의 준비를 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달랬습니다.
오늘은 도영이에게 복음이 들어가지 않을 것 같아 “다음에 보자”하고 도영이의 등을 치고 일어서려했습니다.
그 순간 ‘장로가 기도도 하지 않고 가서야 되겠느냐’는 마음과 ‘저런 놈에게 무슨 기도를 해주나’하는 마음의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훗날 전도를 위해 도영이의 손을 잡고 형식적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에 대한 도영이의 반응이 없었습니다.
벽을 보고 기도하는 듯했고, 등에 벌레가 스물 스물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살짝 눈을 뜨고 도영이를 보다 도영이의 눈과 마주쳤습니다.
영적으로 심히 창피했습니다. 그 때부터 기도의 언어체계가 깨트려 졌습니다.
그 때 바닥에 무릎 꿇고 기도하라는 감동이 전해져 왔습니다.
소파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으니 순간 창피함이 사라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이 밀려왔습니다.
도영이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하니 사형수 도영이의 심적 상태가 고스란히 전달돼 왔습니다.
터프한 사형수 도영이의 모습과 징그러운 사형수 대부 도영이의 모습은 도영이의 껍데기에 불과했습니다.
도영이의 내면은 찢어지고 늘어지고 만신창이가 돼 있었습니다. 울고 싶은 마음이 농축돼 있었습니다. 그 영혼이 불쌍하게 느껴졌습니다.
이것이 도영이의 내면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손이 잡힌 도영이는 도망갈 수도 없었고, 보안계장이 사형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데 쇼파에 앉아 기도 받기가 뭐했는지 제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5분 정도 뜨겁게 울며 기도를 했습니다. 꿈틀거리는 도영이의 반응이 느껴졌습니다.
살짝 눈을 뜨고 바라보니 도영이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라 있었습니다. 이빨을 물고 터져 나오는 통곡을 간신히 참고 있었습니다.
가장 냉혈한 인간이 운다는 것이 자신에게도 용납이 안 됐던 모양입니다.
그로부터 5분가량 더 기도하자 도영이가 저의 등을 잡고 통곡을 하며 울기시작 했습니다.
같이 부둥켜안고 울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도영이는 “저도 죽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죽는 것이 두렵다. 이제 죽을 준비를 할테니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그날 이후 도영이는 풀 죽은 배추 같이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창틀을 붙잡고 울기도 했습니다.
어디에 가든 성경을 들고 다녔습니다.
사형수들을 만나면 “죽을 준비를 하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제수 없이 그런 말을 하지 말라”는 사형수를 향해 울면서 “죽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설득하기도 했습니다.
도영이는 사형수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어느 날 야간근무를 하는데 법무부에서 공문이 왔습니다.
8명에 대한 사형 집행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첫 번째 명단에 도영이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 명단은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세밀하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청송에 있던 저를 이곳으로 인도해 도영이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는 등 도영이 등 사형수를 향한 하나님의 완벽한 구원의 드라마가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다음날 사형을 집행하기 위해 교도관 중 40~50명을 차출하기로 했습니다.
그날 밤 기독신우회 11명이 구치소에 모였습니다.
마지막까지 사형수들을 위해 기도해 주기로 했습니다.
저들을 위해 지원근무를 하기로 했습니다.
참고로 전국 교도소 45개 중 사형장이 있는 곳은 5곳 뿐 입니다.
사형수들이 사형장으로 이동할 때 어머니를 목이 터져라 부르기도 합니다.
조금씩 발걸음을 떼기도 하고, 고무신을 벗어 놓고 걷다 고무신이 벗겨졌다며 다시 왔던 길로 돌아와 고무신을 신고 걷기도 합니다. 1초라도 더 머무르고 싶기 때문 일 것 입니다.
믿음이 좋은 집사 교도관 4명을 도영이에게 보냈습니다.
저승사자 같이 끌고 오지 말 것을 당부했습니다.
저는 감독을 했습니다.
15~20분 쯤 되니 지하실에서 사형장이 있는 곳으로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할렐루야”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문이 열리고 계단을 타고 오는 일행이 보였습니다.
옆에서 따라 오는 집사님(교도관)들의 얼굴이 모두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할렐루야”를 부르는 사람은 사형수 도영이었습니다.
나는 눈을 감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땅에 사형장이 생긴 이래 이 무서운 형장에서 사형수로부터 저렇게 할렐루야를 부르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까? 하나님, 오늘 힘을 주십시오.”
도영이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도영아, 잘 가. 먼저 가.”
“예, 장로님 저 먼저 갑니다. 천국에서 만납시다.”
교도소장이 도영이의 죄상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도영이는 수갑 찬 두 손을 치켜들며 말합니다.
“소장님, 그 죄를 제가 다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 죄는 하나님을 알기 전에 지은 죄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그런 죄를 짓지 않았을 것이고, 오늘 이와 같이 사형대에 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늦게나마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께서는 저의 죄를 모두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용서 받은 이 깨끗한 몸과 영혼 그대로 하늘나라에 갈 수 있도록 그 부끄러운 죄상을 읽지 말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도영이는 조리 있게 또박또박 말을 했습니다.
소장님은 도영이의 요구를 받아 주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소장님이 감동을 받고 흐느낍니다.
소장님의 양쪽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제 마음에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영이 제가 아무리 잘 나도 이럴 수 없는데….
임종예배를 드렸습니다.
눈물이 안 날 수 없었습니다.
정작 죽을 사람인 도영이의 얼굴은 시간이 지날수록 빛이 났습니다.
수십 명의 직원들이 모두 봤습니다.
소장님이 “유언하시겠습니까”라고 도영이에게 물었습니다.
도영이에게는 올해 대학에 들어가 딸이 있습니다. 사랑스런 아내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유언을 할지 귀를 기우렸습니다.
도영이는 이렇게 유언을 했습니다.
“제 마지막 유언은 여기 계시는 모든 분들이 제가 믿는 하나님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망치로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었습니다.
성경의 스데반 집사나 베드로에게나 들어 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죽음 앞에서의 위대한 신앙고백'을 사형수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는데 놀랐기 때문입니다.
도영이는 이 신앙고백을 남기고 밧줄 밑으로 향했습니다.
목에 밧줄이 걸리고 두건이 씌워졌습니다.
모두 뒤로 돌아섰습니다.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면 몇 달 동안 그 모습이 어련 거려 정상생활을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 기독신우회 회원들마저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손을 잡고 빙 둘러 서 도영이를 바라봤습니다.
주위는 너무나 조용했습니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했습니다.
손에 땀이 나고 떨렸습니다.
너무나 긴장됐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찬송가가 울려 퍼졌습니다.
도영이가 그 상태로 찬송가 “하늘가는 밝은 길이”를 불렀습니다.
이럴 수가 있나. 목에 밧줄이 걸려 있는데, 5초나 10초 후면 죽을 지도 모르는데….
그 찬송가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덜컹 소리와 함께 형이 집행됐습니다.
도영이의 시체는 그의 유언대로 의사들에게 내 주었습니다.
도영이는 유언을 미리 써 놓았습니다.
“내 눈 등 모든 장기는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나눠 주라. 내 시체도 의과대학에 기증을 하니 해부실습용으로 사용해 달라.”
도영이가 떠난 빈자리에서 나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도영이가 죽음 앞에서 저토록 당당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내가 만약 도영이의 입장이 돼 있다면 도영이가 보여줬던 저 놀라운 모습과 저 위대한 신앙고백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내게 물었습니다. 대답은 “자신 없다”였습니다.
자신이 없다는 마음이 들자 제 몸이 휘청 흔들렸습니다.
윤도영이가 믿어왔던 신앙은 뭐고, 나 박효진 장로가 믿어왔던 신앙은 뭔가?
“나는 성경 많이 읽고 기도 많이 해 왔다고 자부해 왔는데 사형수 정도는 우습다고 자부해 왔는데….”
삶과 죽음이 갈라지는 밧줄 앞에서 사형수가 보인 이 엄청난 모습은 무엇이며, 나자신의 한계는 무엇인가?
그때 내 자신이 쌓았던 신앙의 탑들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런데 도영이 뿐만 아니라 그 뒤에 따라오는 크리스천 사형수들의 모습이 도영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도영이에 이어 예수님을 믿는 3명이 차례로 사형장으로 올라왔습니다.
하나같이 떨거나 두려워하거나 실족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두 해 같이 밝은 모습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천국 가는 소망을 이야기 하고 예수 믿고 죄 사하함을 받은 것을 기쁨으로 여겼습니다.
자기의 모든 허물과 죄를 사해 주신 그 분을 너무너무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찬양하며 이 땅을 떠났습니다. 충격적이었습니다.
도영이는 성령의 불을 받았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나머지 아이들은 무엇 때문일까?
특히 네 번째로 올라온 태화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태화는 26세의 청년이었습니다.
서울 구로동 룸살롱사건의 주범이었습니다. 얼굴이 조각품 같아 잘 생겼습니다. 저런 녀석이 어떻게 사형수가 됐을까 할 정도였습니다.
교도관 집사님들은 도영이를 데리고 올 때 도영이의 모습을 보고 불덩어리가 됐습니다. 부흥회에 온 것 같이 사형수들과 함께 찬양하면서 기도하면서 사형장까지 들락날락했습니다.
태화가 문을 열고 오는데 태화의 얼굴에서 도영이보다 더 큰 기적을 보게 됐습니다.
태화의 얼굴에서 그렇게 밝은 빛이 났습니다.
환한 빛이 났습니다. 제 혼자만 본 것이 아닙니다. 안 믿는 직원들도 봤습니다. 당시 직원들이 요즘도 저를 만나면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장로님, 그 때 태화 얼굴에 진짜 빛났습니다.”
사람 얼굴에 어떻게 빛이 나느냐고 하겠지요.
사람 얼굴에도 빛이 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 지니까 빛이 났습니다.
얼굴에 광채가 났습니다.
태화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찬송하며 형장으로 올라왔습니다.
사실 그대로 입니다. 증거 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간증할 수밖에 없습니다.
태화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거듭나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믿음이 별로 없었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형 집행장에 올라온 태화의 모습은 달라 있었습니다.
어떤 종교 종파에서는 저의 간증이 맞나 안 맞나 조사까지 했습니다.
그 현장에 있었던 자기 종교 직원들을 불러 확인을 했습니다. 사실이니까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한 천주교 신자 사형수가 사형장에 올라왔습니다.
그는 “8년이 너무 긴 세월이었다. 두려웠다. 좀 더 일찍 이곳에 데려와 죽여 줬다면 좋았다. 그것이 나를 위한 배려였는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믿음의 고백은 없었습니다. 신앙고백 역시 0.1%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이야기도 없었습니다.
인간적인 말 몇 마디를 한 뒤 마지막 소원이 “담배 한 대 피우자”였습니다.
필터가 타들어갈 때까지 담배를 피우고 그 담배 연기가 몸에서 빠져나가기 전에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그 것으로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왔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죽음은 하늘과 땅 차이였습니다.
일곱 번째 집행된 사람의 별명은 도사였습니다.
다른 종교를 믿었습니다. 경을 많이 읽고 참선도 많이 했습니다. 누가 바늘을 쿡 찔러도 5분 쯤 있다가 반응했습니다.
그 정도로 인격이 수양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천하 인간에게 구원 얻을 만한 다름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도사라 불리던 사형수는 자기 발로 바닥을 밟지 못하고 질질 끌려 올라왔습니다.
도사는 밧줄을 본 뒤 ‘억’하고 주저앉았습니다.
교도관들이 다시 일으켜 세우니 바짓가랑이 밑으로 오줌이 나왔습니다.
소장님이 인정신문을 했습니다.
도사는 서너 마디를 한 뒤 끈 떨어진 연이 됐습니다.
묻지도 않는 말을 하는 등 왔다 갔다 했습니다.
횡설수설했습니다.
그런 뒤 “내 죽이고 너희는 얼마나 잘 사는 지 보자. 이빨을 물고 원망했습니다. 온갖 욕을 했습니다. 통제 불능 이었습니다. 벌써 넋이 나가 버렸습니다.
소장님이 모든 절차를 생략하고 바로 집행하라고 했습니다.
도사는 형이 집행되기 직전까지 욕을 하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도사를 바라보던 모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때부터 모두 멍해졌습니다.
어떤 사람은 죽음마저 뛰어 넘어 기쁨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어떤 사람은 벌벌 떨고 울고 몸부림 치고 욕하며 생을 마감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은 직원들이 제게 말을 건넸습니다.
“계장님, 뭔가 있기는 있는 가 봐요.”
마지막에 올라오는 용필이가 가장 걱정이 됐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기록은 돼 있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용필이는 도영이 정도는 안 됐지만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서울구치소에서는 골칫거리였습니다.
어느 날 용팔이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네가 예수님만 믿으면 내가 알고 있는 사장 집사와 자매결연 맺어줄게. 매주말 마다 영치금을 넣어 주고 치킨도 사주고 할 것이다.”며 예수님을 믿을 것을 요청했습니다.
용팔이는 “그렇게 해 주신다면 내가 고려 해 보지요. 좋습니다. 예수를 믿을게요.”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날 춤을 췄습니다. 천하의 용팔이가 예수님을 믿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나흘 만에 용팔이가 죽게 됐습니다.
나흘 동안 너무 바빠 용팔이를 찾지 못했습니다. 영접시키지 못했습니다.
용팔이가 사형 집행장으로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한 달이라도 시간을 주셔야지요. 이렇게 데리고 가면 어떡합니까.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으리라 했는데.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했는데…”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집사 교도관들이 급히 용팔이에게 사영리를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고 기도를 해 줘도 계단을 올라오는 용팔이를 보니 그의 얼굴이 반쯤 돌아가 버렸습니다.
중풍 걸린 사람처럼 침을 질질 흘리고 다리가 풀려 인형다리처럼 덜렁덜렁 거리며 매달려 올라 왔습니다. 동공이 풀렸습니다.
자리에 앉혀 놓아도 인정신문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미 혼이 다 나가 버렸습니다.
이런 용팔이를 보니 마음이 더 아팠습니다.
“그날 밤을 새워도 용팔이를 붙들고 복음을 전하고 왔어야 했는데….”
소장님이 마지막으로 “예배드리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직원들이 “예”라고 대답했습니다.
목사님 모시고 예배를 드릴 준비를 했습니다.
부랴부랴 성경을 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을 용팔이 눈앞에 댔습니다.
용필이가 성경을 받아 읽으려고 노력해도 읽지 못했습니다. 동공이 풀어져 성경을 볼 수 없었습니다.
나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목이 터져라 외쳤습니다.
머리털 하나라도 걸려 구원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였습니다.
아무리 소리쳐도 허사였습니다.
소장님이 형을 집행하라고 했습니다.
직원들이 용팔이를 밧줄 밑으로 끌고 갔습니다.
용팔이의 얼굴을 봤습니다.
사람의 얼굴이 그렇게 무섭게 변할 수 있다니…. 영화 속 귀신 모습 그대로 였습니다.
‘지옥’이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마음이든 순간 “그날 밤 용팔이를 붙들고 밤을 새도록 복음을 전해야 했는데.”라는 마음에 괴로웠습니다.
시간이 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용팔이가 밧줄 밑에 다다랐습니다.
그냥 보내면 안 된다는 마음에 막무 간에 뛰어가 용필을 끌어안았습니다.
소장님을 향해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소장님은 고개를 꺼덕였습니다.
용팔이는 식물인간이 돼 있었습니다.
정신이 다 나가 버렸습니다.
집사 교도관들이 “용팔이를 이대로 보낼 수 없다”며 우르르 몰려 와 기도했습니다.
용팔이를 향한 집사님들의 아픔과 고통이 폭발했습니다.
용팔이를 붙들고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용팔이를 살려 주십시오”라며.
저도 용팔이의 머리를 끌어 앉았습니다.
“이제 용팔이는 우리 것이다”며 하나님이 응답해 주실 때까지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집사 교도관들이 목이 다 쉬었습니다. 저도 탈진직전이었습니다.
그때 퍼질고 앉았던 용팔이가 몸을 꿈틀 거리며 일어섰습니다.
손을 반쯤 들고 “주여 주여” 두 마디를 외쳤습니다.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용팔이가 완전히 돌았나보다. 우리의 기도에 도취되어 ‘주여 주여’ 하는 줄로 알았습니다.
10초 정도 더 지나니 용팔이가 팔을 들어 뻗치고 허공을 처다 봤습니다.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주여 이 죄인을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여 이 죄인을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여 이 죄인을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용팔이가 그렇게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용팔이는 폭포수 같이 흐르던 눈물을 닦고 고개를 돌려 저희들을 바라 봤습니다.
용팔이의 얼굴이 그렇게 달라질 수 없었습니다.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복숭아 빛같이 얼굴이 볼그스럼해졌습니다.
제 손을 붙들고 고맙다고 했습니다. 우리 직원들을 보고 감사하다. 고맙다고 했습니다.
소장님이 너무 충격을 받아 입을 반쯤 벌리고 쳐다보고만 있었습니다.
용팔이가 소장님을 바라봤습니다.
갑자기 소장님 앞으로 나가 공손히 인사를 했습니다.
소장님이 너무나 놀아 엉덩이를 반쯤 들고 인사를 받았습니다.
“소장님, 너무나 감사합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만수무강하십시오. 꼭 승진하셔서 우리와 같이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 많이 해 주십시오.”
용팔이는 다시 한 번 소장님에게 인사를 꾸벅했습니다.
소장님은 손수건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어깨를 들썩이며 우셨습니다.
지금까지 예수 믿는 사람들이 보여준 위대한 모습에 충격을 받았던 소장님이 마지막 순간에 처절하게 허물어져 가던 한 인간이 그렇게 놀라운 모습으로 변화되어 자기를 죽여라고 명령한 지휘관에게 최고의 축복을 다해 주고 있는 저 밝은 모습 앞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용팔이가 우리와 마지막 하직 인사를 나눴습니다.
나는 용팔이 손을 잡고 있을 때 용필이의 손을 통해 흐르는 100만 볼트의 전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라락…. 두두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손이 떨려 왔습니다.
그 순간에 용팔이의 얼굴이 성령충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용필이 또 다시 손을 들고 환한 얼굴로 외쳤습니다.
“주여 이 죄인 받아 주셔셔 감사합니다.”
용팔이는 갑자기 “인해하신 구세주여”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찬송가 '찬'자도 모르는 용팔이가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우리도 따라 불렀습니다. 용팔이가 얼마나 기쁜지 덩실덩실 춤까지 췄습니다. 교도관 11명도 나가 밧줄 밑에서 춤을 추며 “인해하신 구세주여”를 목청껏 불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밧줄 아래서 덩실덩실 춤추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사람들은 펑펑 울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신실한 종으로 돌아왔습니다.
천국에 가면 용팔이에게 “어떻게 찬송가를 알았느냐”고 꼭 물어 보고 싶습니다.
모두 떠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자리에서 3번째 위대한 세계를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자리에서 “나는 용팔이 보다 못한가. 나는 태화보다 못한가. 도영이보다도, 영리보다 경수보다도 못한가.”라는 그 처절했던 내 고통을 잠재우셨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네가 보기에 저 사형수들도 저토록 위대하고 아름다운 신앙고백을 남기고 초인적인 믿음을 보이고 갔지만 그러나 따지고 보면 저들도 나의 손길이 같이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믿는다 믿는다 할지라도 벌벌 떨고 오줌 싸고 욕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었다.”
사형수라도 예수님을 믿기만 한다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기만 한다면 사형장까지 찾아 오셔셔 은혜를 베푸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로마시대 그리스도인의 수난사를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말목에 묶어 놓고 며칠 씩 굶긴 사자를 풀어 팔과 다리, 몸통, 내장 등을 뜯어 먹게 했습니다.
그 처참한 상황 속에서도 단 한 명도 아파서 울부짖거나 비명을 지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들 모두 천사 같은 모습으로 “주 예수여 오시오소서”라고 기뻐하며 찬송을 부르며 죽어갔습니다.
그 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과장이 너무 심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형장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들을 붙들고 있으면 이들의 인간적인 약함이 사라짐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들의 아픔과 고통을 차단시키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나의 믿음은 성령 안에서만 존재함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사형수’라는 사실을 잠시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1장 28절~32절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으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악독,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하느니라
위 말씀 같이 21가지의 죄 중 한 가지의 죄만 지어도 사형 선고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갔습니다.
우리는 그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의 죄가 사해지고 죄 사함을 받은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죄사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