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우리말의 유래
◇ 수릿날
'단오 명절'을 달리 가리키는 순 우리말이다.
음력 5월 5일, 즉 단오를 나타내는 우리말인 수릿날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쑥으로 수레 모양의 떡을 해서 먹기 때문에 생겨난 이름이라고 하는가 하면, 이 날은 전통적으로 수리치로 떡을 해 먹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 날은 해가 머리 정수리에 오는 날이라는 뜻을 나타낸 말이다. 단오는 단양(端陽) 또는 천중절(天中節)이라고도 하며, 이 말 자체가 정수리 바로 위에 있는 태양을 뜻하는 것임에서도 알 수 있다.
예로부터 농경생활을 해 오는 동안 열매를 맺게 하는 원동력인 태양을 중히 여기고 기리는 마음에서 여름 햇살이 정수리에 내리 쬐이는 낭릉 명절로 삼게 된 것이다. 수릿날 정오에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다든지, 쑥을 머리 위에 꽂던 풍속이 다 이런 까닭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수리치로 떡을 해 먹지만 옛날에는 쑥으로 떡을 해 먹었다. 옛날에는 구설초 또는 술의초라 하여 수리치와 구별하지 않고 같은 이름으로 사용했다. 단오니 단양이니 하는 것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붙인 이름이니 지금이라도 수릿날이라는 우리 이름을 되살려서 써 봄직하다
◇ 시앗
요즘은 잘 쓰이지 않지만, 다음과 같은 그렇게 낯설지 않은 속담이 있다.
(1) 시앗 싸움에 요강 장수: 두 사람의 싸움에 다른 사람이 이익을 본다는 말.
(2) 시앗을 보면 길가의 돌부처도 돌아앉는다. : 부처같이 어진 부인도 시앗을 보면 마음이 변하여 시기하고 증오한다는 말.
(3) 시앗이 시앗 꼴을 못 본다. : 시앗이 제 시앗을 더 못 본다는 말.
(4) 시앗 죽은 눈물만큼: 몹시 적다는 말.
이들 속담 속의 핵심 단어는 ‘시앗’이다. `시앗`은 `첩(妾)`을 뜻하는 순수 우리말이어서, 앞의 속담 속의 ‘시앗’을 ‘첩’이라는 한자어로 대체해도 무리가 없다. 그런데 ‘시앗’이라는 고유어는 한자어 ‘첩’에 밀려서 잘 쓰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이 ‘시앗’에 대해서는 별로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말 친족 어휘에 빈번히 결합되어 나타나는 ‘시’의 어원을 풀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시앗`은 16세기의 "순천김씨묘출토간찰"에 처음 보인다. 여기에서는 ‘시앗’이 아니라 ‘싀앗’으로 나온다. `싀앗`의 `싀`는 `싀집>시집`, `싀아비>시아비`, `싀어미>시어미’ 등에 보이는 선행 요소 ‘싀’와 성격이 같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라고 잘라서 말하기는 어렵다. 반면, `앗`의 경우는 별 어려움 없이 그 의미를 추정할 수 있다. `처(妻)`을 뜻하는 `갓`이라는 단어가 `싀`의 `ㅣ`에 영향을 받아 변형된 어형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지금의 `시앗`은 16세기의 `싀앗`으로, 16세기의 `싀앗`은 그 이전의 `*싀갓`으로 소급한다고 볼 수 있다. `*싀갓`에서 `싀앗`으로, 또 `싀앗`에서 `시앗`으로 변하는 과정은 음운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배고개`가 `배오개`가 되듯이 선행하는 `ㅣ` 모음 뒤에서 `ㄱ`이 `ㅇ`으로 교체되거나, `믭다`가 `밉다`로 변하듯이 `ㅢ`가 `ㅣ`로 변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음운 현상이었다. `시앗`이 `*싀갓`으로 소급되고 `갓`이 `처`를 뜻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상, `싀`의 정체만 밝혀지면 `시앗`의 어원은 쉽게 드러난다.
`싀갓`이 `본처(本妻)`와 대립되고 `갓`이 `처`와 일치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싀`는 `본(本)`과 대립함을 알 수 있다. `본`과 대립하는 의미는 `부차적, 간접적, 소원한` 등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싀`는 `관계가 직접적이지 않은, 관계가 소원한` 정도로 해석된다. 이에 따르면 `*싀갓`은 `관계가 직접적이지 않은 처`가 된다. `본처`와 비교해 보았을 때 `첩`은 `본처`보다는 관계가 직접적이지 않고 또 부차적인 처이기에 이러한 해석은 설득력을 가질 수 ... ?
◇ 실랑이
'옳으니 그르니 하며 남을 못 견디게 구는 짓'을 가리킨다.
과거 시험을 보고 나서 합격자가 발표되면 예복을 갖춰 입고 증서를 타러 가야 한다. 이 때 부르는 구령인 '신래(新來)위'에서 온 말이다.
흔히 '신래 불리다'라고 하는 이 절차를 밟을 때 선배들이 짓궂은 장난을 했다. 희묵(戱墨)이라고 하여 얼굴에다 먹으로 앙괭이를 그리고 옷가지를 찢으며 '이리워, 저리워'하며 앞뒤로 오랬다 가랬다 하면서 몹시 놀려댔던 것이다. 기강을 세운답시고 신임례를 거창하게 치르던 데서 비롯한 말이다.
#앙괭이 : 정월 초하룻날 밤에 하늘에서 내려와 자는 아이의 신발 중에서 제 발에 맞는 신을 신고 간다는 귀신. 신을 잃어 버리면 그 해의 운수가 불길하다는 속설이 있었다.
◇ 실마리
'일의 사건의 첫머리, 단서'를 뜻하는 말이다.
실마리는 실의 첫머리를 말한다. 감았거나 엉클어진 실뭉치를 풀 때 실의 첫부분을 찾으면 그 뒤부터 쉽게 풀어 나갈 수 있다는 뜻에서 어떤 일이나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단서를 뜻하게 되었다.
◇ 심상찮다
'예사롭지 아니하다'. 「심상하지 않다」가 줄어 하나의 형용사로 굳어진 말이다. 따라서「심상하다」는「예사롭다」의 뜻이 된다. 하지만 지금은 「심상하다」를 활용해 쓴 글은 보기 어렵고 대부분「심상찮다」의 꼴로만 쓰인다. 그렇다면「심상하다」는 왜 「예사롭다」는 뜻이 되었을까.
「심상하다」의 어근인「심상(尋常)」은 원래 길이의 단위였다.「尋(심)」은 8척(尺),「常(상)」은 16척이므로, 지금 단위로 환산하면 242~484cm쯤 되는 셈이다. 그런데 춘추전국시대 제후들은 쟁패(爭覇)에 혈안이 된 나머지 이 한 평 남짓 되는 땅, 즉「심상의 땅」을 빼앗기 위해 싸웠다 해서 훗날 「미미하고 보잘 것 없음」을 가리킬 때 「심상」이라 했다고 한다.
*출처:<이젠 국어 사전을 버려라> -장진한-편저
◇ 십년감수
'몹시 놀라거나 위태로운 일을 겪었을 때' 쓰는 말이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유성기가 들어 왔을 당시의 일이다. 고종 황제가 일본에 와 있던 빅터 회사의 기사인 코란을 초청하여 어전에서 원통식 녹음기를 설치하도록 하였다.
그 당시 명창이던 박춘재가 뽑혀 나와, 나팔통에 입을 대고 원시적인 녹음을 했다. 나중에 원통식 납관에서 박춘재의 판소리가 다시 흘러 나오자 고종은 깜짝 놀라며 "춘재야, 네 수명이 십 년은 감했겠구나"라고 했다. 박춘재의 정기가 녹음기에 빼앗겼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로부터 십년감수라는 말이 생겼다.
◇ 십팔 번
"십팔번"이라는 말은 그 사람이 가진 레퍼터리 중의 으뜸을 가리키면서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이 사실은 일본말인 "주하치반"(十八番)에서 온 것이라는 것을 알면, 도도해진 기분이 깨질 만큼 야릇한 마음이 안들런지?
일본의 에도(江戶) 전기의 "가부키"(歌舞伎) 배우에 이치카와 단주로(市川團十郞) 1세라는 사람이 있었다. 무대 위에서 원한 품은 한 자객(刺客)의 칼에 맞아 죽은, 하여간 그 당시의 대표적 배우였다. 이치카와 9세까지 내려오는 동안 그 집안에 전해져 오는 열여덟 가지의 내로라 하는 교겐(狂言 : 서민의 일상 생활에서 제재를 딴 얘기로서의 희극)을 일러 "주하치반"이라 했다(2세에서 대부분 완성). 여기서 일본 사람들이 "가장 장기로 하는 예(藝)"를 이르게 된 것이 그대로 우리에게 심어져, "가장 자랑으로 여기는 것이나 일"(「국어대사전」)의 뜻으로 되었다
◇ 아사리판
'질서가 없이 어지러운 곳이나 그러한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아사리는 토박이말 '앗다(奪)'의 어근 '앗'에 조사 '을'이 붙고, 그 아래 '이'가 붙어 '앗을이'가 되고, 이 말에서 '아사리'로 바뀐 말이다. 곧 빼앗을 사람이 많으니 빼앗을 사람과 빼앗길 사람이 한 데 어울려 무법천지가 된 것을 비유한 말이다.
또 한편 덕망이 높은 스님을 아사리라고 하는데 이 아사리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아사리가 많으면 다양하고 깊은 의견들이 개진되고, 토론하는 시간도 많이 걸릴 것은 자명한 이치다. 이러한 모습을 피상적으로 보면 서로 자신들의 주장만을 앞세우기 때문에 매우 무질서하고 소란스럽게 비칠 수도 있다. 이런 연유로 무질서한 현장을 뜻하는 말로 잘못 사용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 아수라장
'싸움 따위로 혼잡하고 어지러운 상태에 빠진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불교 용어로 아수라는 화를 잘 내고 성질이 포악해서 좋은 일이 있으면 훼방 놓기를 좋아하는 동물이다. 아수라는 욕심많고 화 잘 내는 사람이 죽어서 환생한 축생이라고 한다. 따라서 아수라들이 모여서 놀고 있는 모습은 엉망진창이고 시끄럽고 파괴적일 수밖에 없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아수라는 줄여서 흔히 수라라고 하며 아수라장 역시 수라장이라고도 한다.
◇ 아양을 떨다
이는 원래 '아얌을 떨다'에서 나온 말이다. 아얌은 여자 들이 겨우 나들이 할 때 추위를 막으려고 머리에 쓰던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떨면 주위 사람들의 눈길을 끌게된다. 그래서 귀여 운 행동이나 말로 시선을 끄는 행위를 말하게 되었다.
◇ 안성맞춤
경기도(京畿道)의 안성(安城) 고을은, 옛날부터 유기(鍮器)로 알려져 있다. 그 밖에도 삿갓이나 종이로 안 알려진 바는 아니로되, 특히 유기로 알려져 왔고, 그것을 맞춤으로 할 때는 참으로 일품이었으므로 거기에서 생겨난 말이 "안성맞춤"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다른 말이 그러하듯, "안성맞춤"이라는 말에다가 안성이라는 고을 이름을 갖다붙인 민간 어원론이라 함이 더 옳을 것이다. 가령, 전라도(全羅道)에 담양(潭陽)이라는 고을이 있고, 그 곳은 예로부터 죽물(竹物)로 유명한 터이지만, 그렇대서 "담양맞춤"이라는 말은 없지 않으냐 해서 하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아낙 군수"라는 말이 안악(安岳)이라는 황해도(黃海道) 고을 이름에 빗대어지고, "행주치마"라는 말이 행주산성(幸州山城)의 싸움과 관련된 듯이 말하여지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 땅이름과는 관련이 없는 말이다.
옛날에 안악군으로 새 군수가 부임해 갔는데, 이 친구가 시쳇말로 공처가인가 아내 무섬쟁인가 돼서, 대비(大妃)의 수렴청정마냥 주렴 건너에 앉아 지시하는 아내의 말을 듣고 공사를 처결했다. 거기 연유하여 늘 안방에만 박혀 있는 사내나 아내한테 쥐어 사는 형편에 있는 사내를 "아낙 군수"라 한다는 것이다. "아낙"이나 "안악"이나 소리나기는 "아낙" 쪽이어서의 얘기이지, 안악 고을과 관계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낙"도 따져본다면 "안"에 "뜰악→뜨락"과 같은 뒷가지 "악"이 붙은 형태라 할 것이다. 그 "아낙"은 부녀자가 거처하는 곳을 이르는데 거기에서 출발한 "아낙네"는 부녀자 일반을 가리키면서 쓰인다.
그렇다 해서 "안악군"과 쉽게 관련지어 버릴 수 없는 것은, 우리 사람들의 말버릇을 살펴볼 때 더욱 그러하다. "아낙" 아래 "군수"가 붙었기 때문에 "안악"과 "군수"를 연관지었으나, 반드시 "아낙 군수"뿐 아니라 관직명(官職名) 같은 것을 끝에 붙여서 어떠어떠한 사람임을 나타내었던 우리말은 한둘이 아니다.
이런 말들에서처럼 안성맞춤을 안성땅과 관련시키는 것은 어학적으로는 무근한 것이다.
*출처:<박갑천의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
◇ 안타깝다
조선조 세종때 경상북도 청송에 ‘안탁갑’ 이라는 노처녀가 있었습니다. 임금님에게만 시집을 가겠노라 고집을 부리던 '안탁갑' 은 드디어 세종의 빈이 되었는데, 그는 세종의 한글 창제와 김종서 장군의 육진 개척에 크나큰 공을 세웠습니다. 너무도 안탁갑이에게 빠져 있는 임금을 걱정한 신하들은 그를 청파동으로 물리쳤습니다. 그런데 임금의 행차 소식을 들은 '안탁갑'이는 행차의 길목에서 정성스레 만들어 온 미음을 올렸습니다. 세종은 이 미음을 단숨에 마셨는데 그 때 두 사람의 괴로움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 후 사람들은 몹시 괴로운 일을 나타낼 때 '세종과 안탁갑이의 사이 같다' 란 표현을 쓰는데, 이 애절한 사연에서 '안타깝다' 란 말이 생겼습니다. 슬픈 사랑이야기지요. 세종 임금과 안탁갑이의 이야기에서 '안타깝다' 의 어원을 찾은 것은 민간 어원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안타깝다' 의 어원을 다른 데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천만 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놋다>. 이는 귀양지인 영월까지 단종을 모셨던 금부도사 왕방연이 청령포의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자기의 심회를 읊은 시조입니다. 이 시조에 나오는 '안' 은 '마음' 이란 뜻입니다. 이처럼 '안' 이 '마음' 의 뜻으로 쓰이는 말에 '애가 타고 마음이 갑갑하다' 란 '안쓰럽다' 가 있습니다. 이 말은 어떤 사전에는 '안슬프다' 로 실리기도 했는데, 현 「표준어 규정」에서는 '안쓰럽다' 를 표준어로 정하였습니다. 이는 '안슬프다' 의 '안' 을 '아니' 로 생각하여, 뜻도 그 정반대인 '아니 슬프다' 로 여기기 쉽기 때문이었습니다. '안타깝다' 의 '안' 역시 '마음' 이란 뜻으로, 이 말은 '안'에 '답답하다' 의 옛말인 '답깝다' 가 붙은 '안답깝다' 가 변한 것입니다.
◇ 알나리 깔나리
'아이들이 서로 놀리는 말이다.
'알나리'는 나이가 어리고 키가 작은 사람이 벼슬을 했을 때 농담삼아 '아이 나리'라는 뜻으로 이르던 말이며, '깔나리'는 알나리와 더불어 운율을 맞추기 위해 별다른 뜻없이 덧붙인 말이다.
'얼레리꼴레리'나 '얼레꼴레리' 같은 말은 다 '알나리깔나리'가 변해서 된 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