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탈출을 꿈꾼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우리가 몸담고 살고 있는 지금 이곳에서 벗어나 다른 삶 다른 세계로 나아갈 수 있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프랑스의 한 천재 소년 시인이 말한 바대로 ‘생生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삶은 진정한 삶에서 멀리 떨어진, 우발적이고 비본질적인 일종의 추문, 일과성의 덧없는 환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 모두는 일상성의 두터운 벽에 갇힌 채 범상한 하루하루를 살아나가고 있지만 우리의 가슴 속에는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시원에의 그리움이 휴화산처럼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고원정의 장편소설 <바다로 가는 먼 길>(문학동네/1994)은 이처럼 일상의 지층 깊숙이 묻혀 있는 시원에의 그리움을 독특한 형식으로 찾아나서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미 이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 속도감 있는 사건 전개와 개성적인 등장인물의 적절한 포진은 이 작품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이 작가가 지금까지의 작품에서 추구해 왔던 남성 중심적 ‘권력의 생태학’에 대한 집요한 탐구를 잠시 보류하고 그러한 남성 중심적 세계 이면에 억압되고 숨겨져 왔던 측면, 바꿔 말해서 권력 투쟁의 장에서 낙오한 존재들, 상처받고 지쳐 있는 영혼들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 어린 시선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등단 후 숨 가쁜 질주로 일관해 왔던 이 작가로서는 대단히 이색적인 작품이며 그 문학적 성과에 상관없이 이 작가의 작품세계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때 놓쳐서는 안 되는 문학적 화두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 할 것이다.
이 작품은 크게 두 이야기의 병렬 구조로 이뤄져 있다. 그 하나가 한 남자의 실종-도주의 이야기라면 다른 하나는 그 남자를 찾아나서는 한 여자의 추적-탐색의 이야기다. 남자는 달아나고 여자는 뒤쫓는다. 몸을 숨긴 남성과 그를 찾아 나선 여성이 그리는 나선 운동이 이 소설의 처음과 끝을 관류하고 있다. 즉 남자의 돌연한 잠적과 그 잠적의 배경과 이유‧의미 그리고 그 잠적이 몰고 온 사회적 파장이 이 소설의 하부구조를 이룬다면, 그 남자를 찾아 나선 여인이 겪게 되는 예상 밖의 다채로운 모험이 상부구조를 이룬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영광의 절정에 있는 줄 알았던 한 남자의 돌연한 전락의 기록이자 남자가 남겨놓은 흔적을 따라 그 남자의 실체를 파악해 가는 추리 소설적 성격이 다분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하나하나 그 남자가 쓰고 있던 가면이 벗겨짐에 따라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대다수 사람들이 꿈꾸는 부와 명예, 성공의 허망함과 위선성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한 야심 많은 남자의 좌절이 자아내는 우수와 조락의 풍경이다.
후기산업사회는 한 마디로 ‘관리되는 사회’이며 ‘냉각된 사회’이고 그 어떤 일탈과 비정상도 용납되지 않는 자동 조절 기능을 갖춘 사회다. 그런 사회에서 한 예외적인 개인의 돌출 행동은 거대 조직의 메커니즘에 의해 조만간 매몰, 무화돼 버릴 수밖에 없는 운명을 맞게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조직사회의 바깥으로 필사적으로 탈출하려고 하는 몸부림은 그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생은 지금 이곳이 아닌 그 어딘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고원정의 이 소설은 바로 현실을 넘어선 현실을 찾아 나선 자의 어쩔 수 없는, 그러나 뜻깊은 실패의 궤적을 뒤따르고 있다.
오늘도 가정에서 직장에서 거리에서 술집에서 아니면 어두컴컴한 극장 구석에서 남모르게 방출에의 욕망을 음지식물처럼 키우고 있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그 욕망을 구체화시킬 어떤 방도도 찾지 못한 채 회한과 상실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고원정의 이 소설에서 자신의 이지러진 자화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남진우/1990년대 중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