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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의 완성
23.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어떻게 닦고 어떻게 거듭거듭 행하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을 성취하는가?" (*15)
몸의 관찰[身隨觀]
24. "비구들이여, 비구는
① 길게 들이쉬면서 '길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길게 내쉬면서는 '길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② 짧게 들이쉬면서는 '짧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짧게 내쉬면서는 '짧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③'온몸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온몸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④ '몸의 작용[身行]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몸의 작용를 편안히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공부지을 때 그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身隨觀]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면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 들숨과 날숨은 몸들 가운데서 한 가지 [형태의] 몸(*16)이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여기서(*17) 비구는 그때에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면서 머무는 것이다."
(*15) 이하 본경에서는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공부] 지어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완성하고(§§23~28),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완성하고(§§29~40),
명지와 해탈을 완성하는 것(§§41~43)을 설하고 계신다.
그리고 여기 본경§§23~43에 나타나는 이 내용은 『상윳따니까야』 제6권 「아난다 경」(S54:13)의 전체 내용과 같다.
(*16) “‘한 가지 [형태의] 몸(kāy-aññatara)’이란 흙의 몸 등 네 가지 몸 가운데서 어떤 하나라고 나는 말한다.
즉 바람의 몸[風身, vayo-kāya]이라고 나는 말한다는 뜻이다.
혹은 눈의 감각장소, 귀의 감각장소 … 덩어리진 먹는 음식이라는 25가지 물질의 부분들을
물질의 몸[色身, rūpa-kāya]이라한다.
그중에서 들숨날숨은 감촉의 감각장소[觸處, phoṭṭhabb-āyatana]에 포함되기 때문에 몸의 한 형태이다.
그 때문에도 이와 같이 설하셨다.”(MA.ⅳ.140)
(*17) “‘그러므로 여기서(tasmāt-iha)’하는 것은 네 가지 몸 가운데서 어떤 하나인 바람의 몸이다.
혹은 25가지 물질의 부분들인 물질의 몸 가운데서 어떤 하나인 들숨날숨을 관찰하기 때문에
몸에서 몸을 관찰한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느낌 등의 모든 곳에서 그 뜻을 알아야 한다.”(MA.ⅲ.271)
느낌의 관찰 [受隨觀]
25. "비구들이여, 비구는
⑤ 희열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희열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⑥ '행복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행복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 짓는다.
⑦ '마음의 작용[心行]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의 작용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⑧ '마음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공부지을 때 그 비구는 느낌들에서 느낌을 관찰하면서[受隨觀]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면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 들숨날숨을 잘 마음에 잡도리하는 것은 느낌들 가운데서
한 가지 [형태의]느낌이라고 나는 말한다.(*1)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여기서 비구는 그때에 느낌들에서 느낌을 관찰하면서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면서 머무는 것이다."(*2)
마음의 관찰[心隨觀]
26. "비구들이여, 비구는
⑨ '마음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⑩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⑪ '마음을 집중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을 집중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⑫ '마음을 해탈하게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을 해탈하게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공부지을 때 그 비구는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면서[心隨觀]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면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분명히 알아차리지 못하는 자가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3)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여기서 비구는 그때에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면서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면서 머무는 것이다."(*4)
(*1) “‘느낌들 가운데서 한 가지 [형태의] 느낌(vedanāsu vedanāññataraṃ)’이란
세 가지 느낌 가운데 하나인 즐거운 느낌[樂受, sukhavedanā]을 두고 설한 것이다.
‘잘 마음에 잡도리하는 것(sādhukaṃ manasikāra)’이란
희열 등을 경험함으로써 생긴 확실하게 마음에 잡도리함이다.
(*2) “‘잘 마음에 잡도리하는 것’이란
희열 등을 경험함으로써 생긴 것이니, 아름답게 마음에 잡도리함이다.
그리고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 고찰[伺]를 제외하고
마음과 연결된 모든 법들은 마음의 작용[心行]에 포함된다.”(cf Yam.ⅰ.229)라는 말씀이 있기 때문에
마음의 작용이라는 이름으로써 느낌을 설했다.
마음에 잡도리함이라는 이름으로써 그 모든 것을 포함하여
여기서 ‘잘 마음에 잡도리하는 것’이라고 하셨다.”(SA.ⅲ.271)
(*3) “이 뜻은 다음과 같다. 마음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라는 방법으로 공부하는 비구가
들숨날숨의 표상을 대상으로 삼지만 그의 마음이 대상에 대해 마음챙김(sati)과 분명한 알아차림(sampajañña)을
확립하면서 공부짓기 때문에 그를 오직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는 자라고 이름한다.
마음챙김을 잊어버리고 분명하게 알아차리지 않는 자에게 들숨날숨의 수행은 없다.
그러므로 대상으로써 마음을 경험함 등에 의해
그때 비구는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면서 머문다고 했다.”(MA.ⅳ.141~142)
(*4) “‘마음챙김을 잊어버리고 분명하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자가’라는 구문에서 그 취지는 다음과 같다.
마음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라는 방법으로 공부하는 비구가 들숨날숨의 표상을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대상에 대해 마음챙김과 분명히 알아차림을 확립하면서 공부짓기 때문에
그를 오직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는 자라고 이름한다.
마음챙김을 잊어버리고 분명하게 알아차리지 않는 자에게 들숨날숨에 마음챙김을 통한 삼매를 닦는 수행은 없다.
그러므로 대상으로써 마음을 경험함 등에 의해 그때 비구는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면서 머문다고 했다.”(SA.ⅲ.372)
법의 관찰[法隨觀]
27. "비구들이여, 비구는
⑬ '무상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무상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⑭ '탐욕이 빛바램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탐욕이 빛바램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⑮ '소멸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소멸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⑯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공부지을 때 그 비구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法隨觀]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면서 머문다.
그는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린 것을 통찰지로써 보고 안으로 평온하게 된다.(*5)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여기서(*6) 비구는 그때에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세상에 대한 욕심 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면서 머무는 것이다."
28.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거듭거듭 행하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을 성취한다."
29. "비구들이여,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어떻게 닦고 어떻게 거듭거듭 행하면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들[七覺支]을 성취하는가?"
30. "비구들이여, 비구가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身隨觀]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면서 머물 때, 그에게 잊어버림이 없는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잊어버림이 없는 마음챙김이 확립될 때,
그때 그 비구에게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念覺支]가 생긴다.
그때 비구는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고,
이러한 닦음을 통해 마음챙김의 깨달음이 구성요소를 성취한다."
31. "그가 그렇게 마음챙기면서 머물 때 그는 통찰지로써 그 법을 조사하고 점검하고 탐구한다.(*7)
비구들이여, 비구가 그렇게 마음챙기면서 통찰지로써 그 법을 조사하고 점검하고 탐구할 때,
그때 그에게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擇法覺支]가 생긴다.
그때 비구는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고,
이러한 닦음을 통해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성취한다."
32. "그가 통찰지로써 그 법을 조사하고 점검하고 탐구할 때 지칠 줄 모르는 정진이 생긴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통찰지로써 그 법을 조사하고 점검하고 탐구하면서 지칠 줄 모르는 정진이 생길 때,
그때 그에게 정진의 깨달음의 구성요소[精進覺支]가 생긴다.
그때 비구는 정진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고,
이러한 닦음을 통해 정진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성취한다."
33. "정진이 생긴 자에게 출세간적인(nirāmisā)(*8) 희열이 생긴다.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정진이 생겨서 출세간적인 희열이 생길 때,
그때 그에게 희열의 깨달음의 구성요소[喜覺支]가 생긴다.
그때 비구는 희열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성취한다."
34. "희열을 느끼는 자는 그의 몸도 편안하고 마음도 편안하다.(*9)
비구가 희열을 느껴 몸도 편안하고 마음도 편안할 때,
그때 그에게 편안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經安覺支]가 생긴다.
그때 비구는 편안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고,
이러한 닦음을 통해 편안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성취한다."
35. "몸이 편안하고 행복한 자는 그의 마음이 삼매에 든다.
비구가 몸이 편안하고 행복하여 마음이 삼매에 들 때,
그때 그에게 삼매의 깨달음의 구성요소[定覺支]가 생긴다.
그때 비구는 삼매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고,
이러한 닦음을 통해 삼매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성취한다."
36. "마음이 그렇게 삼매에 들어 그는 안으로 평온하게 된다.(*10)
비구들이여, 비구의 마음이 그렇게 삼매에 들어 안으로 평온하게 될 때,
그때 그에게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捨覺支]가 생긴다.
그때 비구는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고,
이러한 닦음을 통해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성취한다."(*11)
37. "비구들이여, 비구가 느낌들에서 느낌을 관찰하면서[受隨觀]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면서 머물 때,
그에게 잊어버림이 없는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잊어버림이 없는 마음챙김이 확립될 때, …<§§30~36의 반복> …
그때 그에게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捨覺支]가 생긴다.
그때 비구는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고,
이러한 닦음을 통해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성취한다.”
38. “비구들이여, 비구가 "비구들이여, 비구가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면서[心隨觀]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면서 머물 때,
그에게 잊어버림이 없는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잊어버림이 없는 마음챙김이 확립될 때, …<§§30~36의 반복> …
그때 그에게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捨覺支]가 생긴다.
그때 비구는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고,
이러한 닦음을 통해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성취한다.”
39. "비구들이여, 비구가 "비구들이여, 비구가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法隨觀]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면서 머물 때,
그에게 잊어버림이 없는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잊어버림이 없는 마음챙김이 확립될 때, …<§§30~36의 반복> …
그때 그에게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捨覺支]가 생긴다.
그때 비구는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고,
이러한 닦음을 통해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성취한다."
40. "비구들이여,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거듭거듭 행하면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覺支]들을 성취한다."
(*5) “‘그는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린 것을 통찰지로써 보고 안으로 마음이 평온하게 된다.’라고 설하신 구문에서
‘욕심(abhijjhā)’이라는 단어로 감각적 욕망의 장애(kāma-cchanda-nīvaraṇa)를 설하셨고,
‘싫어하는 마음(domanassa)’이라는 단어로 악의(byāpāda)의 장애를 설하셨다.
그리고 이 네 번째 네 개조는 위빳사나로써 설하셨다.
법을 관찰하는 것은 장애 등의 단락으로써 다섯 가지이다.
(「대념처경」(D22)에서 법념처는 오장애, 오취온, 육내외처, 칠각지, 사성제의 다섯 단락으로 분류되어 나타난다.)
그 중에서 장애의 단락이 처음이고, 그 중에서도 감각적 욕망의 장애와 악의의 장애가 처음이다.
이와 같이 법을 관찰하는 것의 처음을 보이기 위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고 설하셨다.
‘버림(pahāna)’이란 무상의 관찰로써 항상하다는 인식[常想]을 버리기 때문에 버림이라는 형태의 지혜를 뜻한다.
‘그것을 통찰지로서 보고(tam paññāya disva)’란 무상, 탐욕의 빛바램, 소멸,
놓아버림의 지혜라 불리는(anicca-virāga-nirodha-paṭinissagga-ñāṇa-saṅkhāta) 그 버림의 지혜를
그 다음의 위빳사나의 통찰지로써, 그것도 그 다음의 것으로써 본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그 다음 단계의 위빳사나를 보이셨다.
‘안으로 평온하게 된다(ajjhupekkhitā)’란
① 사마타에 든 자가 평온하게 되는 것과 ② 하나로 확립된 자가 평온하게 되는 것으로 두 종류의 평온함이 있다.
함께 생긴 법들에 대해서도 평온함이 있고, 대상(ārammaṇa)에 대해서도 평온함이 있는데
여기서는 대상에 대한 평온함을 뜻한다.(MA.ⅳ.142)
(*6)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여기서(tasmātiha bhikkhave)’란
무상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라는 등의 방법으로 공부지을 때
그는 단지 장애 등의 법들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필두로 설한
법들에 대한 그 버림의 지혜도 역시 통찰지로써 보고 안으로 평온해지기 때문에
“그때 비구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머문다.”라고 알아야 한다.”(MA.ⅳ.142)
(*7) “‘조사한다(pavicinati).’는 것은
무상 등(anicc-adi)으로 조사하는 것이고, 나머지 두 단어도 이와 같은 뜻이다.”(MA.ⅳ.142)
(*8) “‘출세간적(nirāmisā)’이라는 것은 오염원이 없다는 뜻이다.”(MA.ⅳ.143)
(*9) “’편안하다(passambhati)‘는 것은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불안이 편안하게 가라앉았기 때문에
몸도 마음도 편안하다는 뜻이다.”(MA.ⅳ.143)
(*10) “‘삼매에 든다(samādhiyati)’는 것은
마치 본삼매에 드는 것(appanāpatta)처럼 바르게 놓인다(sammā thapiyati)는 뜻이다.
‘안으로 평온하게 된다(ajjhupekkhitā hoti).’는 것은
함께 생긴 내적인 평온으로 인해 안으로 평온하게 된다는 뜻이다.”(MA.ⅳ.143)
(*11) “이와 같이 비구가 열네 가지 방법으로 몸을 파악할(kāya-pariggāhaka) 때
그의 몸에 마음챙김인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있고,
마음챙김과 함께 한 지혜(ñāṇa)인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있고,
반드시 그것과 함께한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정진인 ‘정진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있고,
‘희열’이 있고, ‘경안’이 있고, 일념(citt-ekaggatā)인 ‘삼매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있다.
그리고 이 여섯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들이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음이라 불리는 중립(majjhattākāra)인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upekkhā-sambojjhaṅga)’가 있다.
마치 말들이 고르게 나아갈 때 마부가 ‘이놈이 느리다.’라면서 채찍질을 하거나
혹은 ‘이 놈이 빠르다.’라면서 고삐를 잡아당겨 제어하는 일이 없이
다만 그렇게 볼 때(passamāna) 확고함(ṭhitākāra)이 있는 것과 같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여섯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들이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음이라 불리는 중립을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라 한다.”(MA.ⅳ.143)
명지와 해탈의 완성
41.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들을 어떻게 닦고
어떻게 거듭거듭 행하면 명지(明知)와 해탈(*12)을 성취하는가?"
42.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한적함에 의지하고
탐욕이 빛바램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고 놓아버림에 이르는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 정진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 희열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 편안함의 깨달음이 구성요소를
… 삼매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13)
43.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覺支]들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거듭거듭 행하면 명지와 해탈을 성취한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그 비구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14)
(*12) ‘명지와 해탈’은 vijjā-vimutti를 옮긴 것이다.
『청정도론주석서』는 “‘명지(vijjā)’는 도(magga)를, ‘해탈(vimutti)’은 과(phala)를 뜻한다.”(Pm.237)라고 설명한다.
(*13)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覺支, satta bijjhaṅga]는 「모든 번뇌 경」(M2) §21의 주해들을 참조할 것
(*14) “여기서 들숨날숨을 파악하는 마음챙김(ānāpāna-pariggāhikā sati)은 세간적인 것(lokiyā)이다.
세간적인 들숨날숨이 세간적인 마음챙김의 확립을 성취하고,
세간적인 마음챙김의 확립이 출세간적인 깨달음의 구성요소(lokuttara-bojjhaṅga)를 성취하고,
출세간적인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명지와 해탈의 결과인 열반을 성취한다.
이처럼 세간적인 법일 경우에는 세간적인 것이라고 설했고 출세간적인 법일 경우에는 출세간적인 것이라고 설했다.
그러나 [마하담마락킷따 장로(Mahādhammarakkhita thera)-MAT.ⅱ.314]는 그렇지 않다고 설하였다.
본경에서는 출세간(lokuttara)은 높은 경지의 가르침(upari desanā)으로서 설한 것이다.
세간적인(lokiyā) 들숨날숨이 세간적인 마음챙김의 확립을 성취하고,
세간적인 마음챙김의 확립이 세간적인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확립하고,
세간적인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출세간적인 명지와 해탈의 결과인 열반을 성취한다.
여기서 명지와 해탈이라는 두 단어는 명지와 해탈의 결과인 열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MA.ⅳ.143~144)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경(M118)이 끝났다.
대림스님 옮김 『맛지마니까야』 제4권 174-19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