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치 / 최미숙
작년(2023년) 10월 31일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던 순천만국가정원이 4월 1일 개장했다. 올봄은 예년 같지 않게 비가 잦더니 당일은 동천 변의 벚꽃이 절정이고, 반 팔을 입어도 될 만큼 화창했다. 열 시에 하는 개막식을 보려고 서둘러 동문으로 갔다. 입구에는 식 준비하는 사람, 국회의원 선거 운동원, 쓰레기 소각장 설치를 반대하는 주민 시위까지 뒤엉켜 시끌벅적했다. 1년 회원권(10,000원)을 끊고 들어갔다. 국가정원답게 새로 단장한 가지각색 화려한 꽃이 눈길을 끈다. 비록 짧은 기간 허락된 손님맞이용이지만 간간이 부는 바람을 음악 삼아 전신으로 노래하고 춤추며 보는 사람을 유혹한다.
점심을 먹는데 세종 사는 올케언니가 카톡으로 신발 사진을 보내온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들여다보고 있는데 때마침 휴대폰이 울린다. 해외 직구로 줌바댄스용 신발을 주문했는데 치수가 커서 벗겨진다며 보낼 테니 나더러 신으라는 것이다. 검정 부츠인데 춤과는 거리가 먼 내게는 필요 없는 물건이 될 것이 뻔했다. 작년부터 댄스를 배운다는 말은 여러 번 했는데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나는 춤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춰본 적도 없다. 장작개비처럼 뻣뻣한 그야말로 몸치다. 가끔 몸을 흔들고 있는 나를 상상하면 어색해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도대체가 흥이라곤 하나도 없다. 유명 가수 콘서트장에 가서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참석자 모두 리듬을 타며 소리 지르고 몸을 흔드는데 나는 고작 앉아서 박수치는 것이 다이다. 좋아하는 가수에게 시간을 투자하며 전국을 따라다니는 사람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내게 줌바댄스를 배우라며 신발을 보낸단다. 나를 아직도 모르냐며 필요한 사람 주라며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심심할 때 보라며 페스티벌에 나가서 찍은 동영상을 세 개나 보낸다. 도대체 줌바가 뭔가하고 찾아봤더니 라틴 댄스에 에어로빅 요소를 넣은 유산소 운동이라고 한다. 빠르고 경쾌한 음악 덕분에 흔드는 당사자와 지켜보는 사람 모두 신명이 나는 것은 물론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될 것 같긴 했다.
1970년 초등학교 2학년 때, 학예발표회에 나가려고 녹색 바탕에 검정 무늬가 새겨진 옷을 입고 개구리 춤을 연습하는 친구들을 보고 흉내를 내 본 적은 있다. 학생 수가 많아 선택받은 몇몇 아이들만 무대에 오르고 나머지는 구경꾼인 시절이다. 돈을 주고 옷을 빌려 입을 수 있는 부잣집 아이 위주로 뽑혀 나는 그 축에 끼지 못했다. 날마다 강당 무대에서 동작을 익히는 친구들이 부러워 끝날 때까지 구경하다 집으로 돌아와 거울을 보고 따라 하곤 했다. 개구리 무늬가 새겨진 옷을 입고 폴짝폴짝 뛰던 그 장면이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러고는 춤을 접할 기회가 없다가 대학 시절 친구와 디스코장이라는 곳을 처음 갔다. 입구부터 컴컴하고 음습했다. 반짝거리는 불빛 아래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맞춰 몸을 흔들어 대는 남녀의 모습이 별로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 문화를 접한 적이 없기도 하지만 우선 겁이 났다. 80년대 한창 유행하던 고고와 디스코 춤을 그곳에서 봤다.
그 이후로 춤은 나와 상관없는 분야라 여겼다. 배우려고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교사가 되어 잘하고 못하고에 상관없이 매년 가을 운동회에 선보일 매스게임과 부채춤, 소고, 꼭두각시 춤을 가르쳐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대형과 동작을 구상하고 맞는 음악을 구해 레코드사에 가 직접 녹음까지 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런데도 구령대에 올라 나풀대는 게 어색해 직접 시범을 보이지는 않았다. 말로 설명하든지, 학생 몇 명에게 미리 가르쳐 그 아이를 따라 하게 했다. 다들 춤은 그냥 몸만 흔들면 된다고 하지만 내게는 그게 쉽지 않고 멋쩍다. 가끔 분위기를 맞춰야 할 때면 양쪽 발만 왔다 갔다 하며 박수 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동작이다.
여전히 춤은 내가 넘볼 수 없는 영역이다. 요즘은 춤추는 게 하나의 직업이 될 정도로 일반화돼 못 하는 사람이 바보인 시대이다. 그런데 어쩌랴, 내 몸이 장작개비이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 그냥 생긴 대로 살아야지.
첫댓글 공감합니다. 저도 몸치라서요. 저도 생긴 대로 살랍니다.
선생님. 1년 회원권은 순천 시민에게만 1만원인 거죠?
순천 시민만 해당됩니다.
@최미숙 네. 그렇군요.
여기도 있어요, 생긴 대로 살 사람.
저도요. 몸치. 그래도 흥은 많아요.
저도 몸치지만 춤추는 것은 좋아해요.
이쯤에서 잘 추시는 분 한 분 정도는 나타나셔야 되는데요.
저도 여태 춤과는 전혀 상관없이 살았어요.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하하.
재밌게 읽었습니다!
선생님이 춤을 배우면 잘 추실 것 같아요. 한 번 도전해 보세요.
선생님, 순천에도 라인댄스 강좌 많아요. 이번 기회에 한 번 시작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순천에 사는 친구가 초급, 중급 나뉘어 있다더군요.
아유, 몸을 흔드는 것이 어색해서요.
춤은 어찌해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거 같아요. 하하.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다른 좋아하고 잘하는 걸 하면 됩니다. 하하. 저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하하. 저도 선배님과 같은 몸치.
대신 비장의 무기가 있잖아요.
'발라드의 여왕'
하하. 좋아하지 잘 하지는 않는데요.
선생님 몸속 흥의 기운은 친근하고도 따뜻한 글이 되어 춤을 추던데요?